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42)
날아오른 이레네
* * *
쿠구구궁!
상위구역이 하늘로 떠오른다.
지하수로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데일도.
부상자들을 치료하던 에스델도.
주위를 경계하던 하티도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로 날아오른 성이 태양을 가려 긴 그림자가 지상에 드리웠다.
데일은 중얼거렸다.
“여러 의미로 대단하군.”
자기 보신적인 황제.
유난히 깊었던 해자.
부유 마법에 대한 집착.
바깥과 비교해 전혀 별개의 세계처럼 느껴졌던 상위구역.
에스델도 당황해서 중얼거렸다.
“대체 어떻게 저게 가능한지…… 대체 무슨. 이게 동화도 아니고…… 이건 말도 안 되잖아요.”
“이미 일어난 일이다. 부정해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나.”
상황은 예상을 뛰어넘는 식으로 흘러가지만, 지금 해야 할 건 명확하다.
황제가 시민들을 버리고 성이 하늘로 날아오른 순간.
악마들은 닭 쫓던 개가 되어버렸다.
그런 놈들이 다음으로 노릴 곳은 뻔하다.
한시라도 빨리 도망쳐야 한다.
그때.
일단의 무리가 이쪽을 향해 다가왔다.
안대로 눈을 가린 엘프 사제장.
에리얼이 데일을 보고 총총 달려왔다.
“데일 경! 여기 계셨군요!”
“무사했나?”
“예. 근데 도대체 어디 계셨던 거예요! 신도들이 다들 데일 경만 기다리고 있었다고요.”
“아. 잠시 교단에서 일이 있어서.”
“……그러니까. 교단을 찾아가느라 신전 쪽에는 오지도 않으셨단 말인가요?”
“…….”
바람맞은 아내 같은 표정을 짓는 에리얼에게, 데일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배신감에 젖어 있기에는 상황이 여유롭지 않다.
하늘에 떠오르는 성을 슬쩍 살핀 에리얼은 다시 뒤쪽을 바라보았다.
밤의 신도들과 살아남은 병사들. 그리고 시민들이 에리얼을 따라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도시를 탈출할 생각이라 사람들을 모았어요.”
“살아남은 이들은 이게 전부인가?”
“……예.”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하지만 번성했던 이레네의 인구를 생각하면, 결코 많은 수라 할 수는 없었다.
“경도 도시를 탈출할 생각이셨죠? 저희도 같이 데려가주실 수 있나요?”
데일은 고민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지하수로를 통해 도시 밖으로 나가려고 하고 있었다.”
“지하수로요?”
데일은 이 밑에 지하수로를 통해 바깥으로 나가는 길이 있다고 설명했다.
“기사단장이 알려준 길이다. 애초에 그 길로 도시 안으로 들어온 거기도 하고.”
“아. 기사단장이…… 그런 길이 있는 줄은 몰랐군요.”
“그나저나 기사단장이 성 밖으로 나왔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그가 어딨는지는 아나? 저렇게 성을 띄워버리며 기사단장은…….”
기사단장을 신뢰하는 황제가 도주를 택했다?
불길한 예감이 데일의 머릿속을 스쳤다.
‘설마?’
“기사단장이 악마를 쫓아 전장에 파고든 뒤에는 아무런 소식도 없습니다. 기사단이 같이 동행하지도 않았고요. 아마도…….”
에리얼은 뒷말을 흐렸지만, 그 의도는 명확히 전달되었다.
하지만 데일은 선뜻 믿을 수 없었다.
“기사단장은 강하다. 하위 서열 악마 정도는 혼자서 베어낼 수 있어. 고위 서열 악마가 나와도 도주할 정도의 실력자다. 근데 죽었다고?”
“경. 어디까지나 최악의 가정을 말하는 겁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걸로 입씨름할 시간은 없습니다.”
그 말대로다.
벌써부터 악마의 군세가 날뛰고 있었다. 놈들이 피난민들의 후열에 따라붙었다.
속으로 혀를 찬 데일이 말했다.
“사람들을 이끌고 밖으로 나가라.”
“경은요?”
“나는 뒤를 맡겠다.”
에리얼은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도와주기에는 에리얼이 다루는 힘은 주위까지 말려들게 해버릴 가능성이 컸다.
에리얼이 에스델에게 말했다.
“그쪽이 에스델이죠? 얘기는 많이 들었어요.”
“아, 예. 바, 반갑습니다.”
에스델이 당황하며 인사했다.
에리얼은 에스델을 지그시 쳐다보았다. 안대로 가려져 감정이 드러나지 않지만, 그렇기에 더 섬뜩한 구석이 있었다.
하지만 에리얼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에스델. 사람들을 이끄는 걸 도와주세요.”
“예?”
“아무래도 사람들 중에는 빛의 신자가 더 많으니까요. 저 혼자서 이끄는 것보다는 에스델이 도와주는 게 사람들을 인솔하기 더 좋을 것 같아요.”
“아, 예!”
에스델과 에리얼은 사람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지하수로로 걸음을 향했다.
이미 하수인들에게 쫓겨 마음이 다급해진 사람들은 우르르 그 뒤를 따랐다.
데일만이 혼자서 그 인파의 흐름에 거슬렀다.
모두가 살기 위해 도망칠 때.
데일은 적들에게로 향했다.
지나치는 시민들중에서는 아는 얼굴도 많았다.
암흑가의 주민. 자주 물건을 샀던 대장장이. 도시를 순찰하던 경비대원. 길거리에서 한 번쯤 스쳐 지나갔던 인연들.
데일은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어느새 이렇게 아는 사람이 많아진 거지.’
고작 1년. 겨우 1년.
이레네에서 길고도 짧았던 시간이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묘한 감상을 느끼며 걸어가던 데일은 우뚝 멈췄다.
도망치는 인파 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이가 하나 있었다.
밤의 신도에게 업혀 허공을 향해 목검을 휘두르는 스켈레톤.
그와 데일의 눈이 마주쳤다.
기분 탓일까? 왠지 데일은 이 스켈레톤이 데일을 알아봤다는 느낌이 들었다.
돌연. 우직하게 검을 내리치던 스켈레톤이 자세를 바로 하고. 목검을 횡으로 휘둘렀다.
부웅!
깔끔한 횡베기.
스켈레톤은 데일을 향해 말했다.
“이백만.”
스켈레톤을 업은 신도는 쌩하고 사라졌다.
혼자 남겨진 데일이 중얼거렸다.
“숙제. 잊지 말라는 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데일은 다시 앞으로 걸음을 향했다.
데일과 비슷한 이유로 뒤편에 남은 병사나 신도들이 악마의 군세와 맞서고 있었다.
그들은 데일의 얼굴을 알아보고 환호했다.
“데, 데일 경이다!”
“악마 살해자…….”
“사, 살았어.”
데일은 대답 없이 마검을 곧추세웠다.
흑기사의 발아래에 일렁이는 유난히 짙은 그림자가 적들을 위협했다.
‘사람들이 수로를 다 빠져나갈 때까지는…… 시간을 꽤나 많이 끌어야겠군.’
상위구역이 하늘로 올라가고 남은 그 빈자리에 군세가 속속 모여들었다.
아직 악마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머지않아 악마들도 이쪽에 몰려올 것이다.
만약 기사단장이 죽었다면.
그 기사단장을 죽인 원흉도.
‘쉽지 않겠군.’
어려운 싸움이 될 것 같았다.
데일은 이제 강하다. 어쩌면 악마조차도 홀로 상대해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만한 숫자에 끝없는 공격을 받으면 아무리 데일이라도 버텨낼 수 없다.
‘빌어먹을 황제놈. 그놈이 조금이라도 시간을 더 끌어줘야 했는데.’
끝까지 도움이 안 되는 작자였다.
그렇게 생각한 데일이 짜증 어린 감정을 담아 하늘로 날아오르는 성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한 가지 이상함을 눈치챘다.
‘뭐지?’
일정 이상 날아오른 성이 더 올라가지 못하고 주춤하고 있었다.
마치 성이 너무 무거워서 그 힘을 못 이겨 다시 떨어지려는 모양새였다.
데일은 문제점을 알아챘다.
‘왜 성벽과 함께 날아오른 거지?’
상위구역은 성벽 통째로 하늘로 날아올랐다.
저 두껍고 높은 벽에는 여전히 악마 하수인 몇이 달라붙어 있었다.
문제는 왜 굳이 성벽까지 들어올렸느냐다.
성벽이란 결국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한 구조물이다.
저렇게 하늘로 떠오른 순간 그 효용은 크게 줄어든다.
오히려 무게만 늘리는 셈이니 쓸데없이 힘만 낭비하는 꼴이 되는 셈.
지금도 하늘로 날아오른 성은 어찌어찌 움직이고 있지만, 금방이라도 추락할 것 같지 않은가.
그러자 악마의 군세도 분위기가 바뀌었다.
어쩌면 저 성이 다시 지상으로 떨어지지 않을까? 도망치던 황제와 귀족들을 찢어발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으로 성을 따라 이동하기 시작했다.
‘황제가 잘못 생각한 건가?’
구조적인 문제일까.
미처 이런 부분은 생각하지 못한 것일까?
애초에 성을 하늘로 띄운다는 건 터무니 없는 망상일 뿐이었던 걸까.
‘아니.’
데일은 고개를 저었다.
직접 마주해본 적은 없지만 그가 아는 황제는 교활했다.
그리 멍청했으면, 이 살얼음판 위에서 수십 년간 제국을 유지할 수 없었으리라.
그리고 데일의 생각은 적중했다.
황제는 멍청하지 않았다.
악마의 군세가 성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며 몰려들던 그때.
돌연.
성벽에 쩌적, 하고 금이 갔다.
“!”
자그마하던 금은 이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더니, 성벽 전체에 거미줄 같은 균열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성벽이 무너졌다.
꽈르르릉!
그건. 비유를 하자면 산이 무너지는 것 같은 광경이었다.
성벽을 이루던 단단하고 무거운 돌덩이가 땅을 향해 낙하했다.
그리고. 그 아래에 있던 건…… 잔뜩 몰려든 악마의 군세다.
꽈광!
이전보다 훨씬 큰 진동이 지면을 울렸다.
무자비한 질량 폭격에 땅이 쩍쩍 갈라졌다.
원시적이지만, 그 어떤 마법과 폭약보다도 강력한 공격.
저런 무식한 공격 앞에서 무사할 존재는 없다.
설령 악마라도 운석처럼 떨어져내리는 바위들에 직격당한다면 목숨을 건사하기 힘들다.
이 어이없는 광경에, 데일은 중얼거렸다.
“……무슨 메테오도 아니고.”
아니. 이렇게 한가하게 쳐다볼 때가 아니다.
성벽이 무너지며 점점 더 많은 돌이 떨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쪽 역시 안전지대가 아니다.
돌과 돌이 서로 부딪히면서 궤도가 튕겨나가고. 무시할 수 없는 숫자가 도시 전체에 흩뿌려지고 있었다.
꽝! 꽈광!
데일이 서 있던 바로 근처에도 몇 개가 떨어졌다.
굉음과 함께 바닥에 깊은 구멍이 생겨났다.
이런 거에 얻어맞았다가는 데일이라도 무사하지 못하다.
남은 건 하나.
‘지하수로로 달려간다.’
데일이 결론을 내린 그때.
문득. 병사들과 전투를 벌이던 하수인들이 움직임을 우뚝 멈춘 걸 깨달았다.
그들 역시 당황한 눈으로 지상을 향해 낙하하는 죽음의 비를 쳐다보았다.
고개를 내렸고. 이내 지하수로 쪽 구멍을 확인했다.
마지막으로 병사들과 하수인들의 시선이 마주쳤다.
“…….”
“…….”
잠깐의 침묵.
이윽고 병사고 하수인이고 할 거 없이, 미친 듯이 수로를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무, 무기 버려!”
“비켜!”
“케르르륵!!”
인간과 하수인들이 사이좋게 달린다.
이따금 서로를 공격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당장 도망치는 것에 급해 옆에서 달리는 적은 신경 쓰지도 못했다.
꽈르르르!
그 순간. 돌무더기가 본격적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데일도 땅을 박찼다. 이 기묘한 달리기 경주에 끼어들었다.
하지만 다른 주자들처럼 정직하게 달리기만 할 생각은 없었다.
뻥!
“케엑!”
데일이 내지른 주먹에 얻어맞은 하수인이 저 뒤로 날아갔고. 이내 떨어져내린 돌무더기에 납작하게 뭉개졌다.
“!!”
다른 하수인들은 데일의 접근을 알아차렸다. 그들은 다급한 얼굴을 했다.
마치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이러다 둘 다 죽어! 라고.
데일은 신경 쓰지 않았다. 피 묻은 주먹을 닦아내며 조용히 중얼거릴 뿐이다.
“일단 한 놈.”
그러고는 곧바로 다음 하수인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사마귀처럼 생긴 하수인이 그 주먹을 막아내기 위해, 커다란 낫을 휘둘렀다. 아니. 휘두르려 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 이미 데일의 주먹은 하수인의 머리를 뭉개놓고 있었다.
“둘.”
이번엔 양옆에서 동시에 이루어지는 합공이다.
아가리가 유난히 큰 하수인은 산성 액체를 토해냈고. 촉수가 여럿 달린 놈은 데일을 칭칭 휘감으려 했다.
산성액은 맞아주었다.
오른손으로는 촉수를 붙잡아, 힘껏 잡아당겼다.
하수인이 맥없이 끌려왔다. 저항하려 해도 힘의 차이가 너무 심했다.
데일은 그대로 촉수 하수인을 아가리가 큰 하수인에게 집어 던졌다.
요란하게 부딪힌 두 하수인은 바닥에 넘어졌다. 지금 달리는 걸 멈춘다면 맞이하는 결과는 하나다.
죽음.
꽈릉!
하수인은 흘러내린 돌무더기에 깔려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비명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제야 다른 하수인들은 깨달았다.
지금 눈앞의 흑기사는 괴물이며, 절대 데일을 맞상대해서는 안 된다는 걸.
하수인들이 미친 듯이 내달렸다.
하지만 아무리 필사적으로 내달려도, 데일을 뿌리칠 수는 없었다.
데일은 성큼성큼 달리며 한 마리씩 착실히 줄여나갔다.
이제 남은 하수인은 하나.
마지막 하수인은 지하수로의 입구에 거의 다다랐다.
결승선이 코앞이다.
하수인의 얼굴에 희망이 보인다.
복잡한 지하수로라면 분명 숨어들 구석이 있을 터.
그렇게 생각하며 하수인은 땅을 힘껏 박찼다. 하수인의 몸이 화살처럼 앞으로 날아들었다.
그러다 우뚝. 허공에서 하수인의 몸이 멈췄다.
데일이 허공에 날아오른 하수인의 발을 잡고 있었다.
“잡았다.”
데일은 곧바로 팔을 뒤로 휘둘렀다.
날아오른 하수인은 그대로 지하수로 밖으로 튕겨나갔다.
“끼에에엑!”
끔찍한 비명이 점점 멀어져갔다.
그리고 꽈릉!
돌무더기가 지하수의 입구를 완전히 메워버렸다.
그러고도 한참이나 천장이 웅웅 울려댔다.
돌무더기가 쉼 없이 도시를 뭉개놓고 있는 것이다.
다행히 지하수로는 튼튼하게 지어졌는지, 천장이 무너지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안도한 데일은 걸음을 옮겨 계단을 내려갔다.
그곳에는 같이 달렸었던 병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나같이 경악한 얼굴이었다.
그중 하나가 물었다.
“……혹시 이곳에 들어오려던 하수인들. 데일 경이 다 죽이신 겁니까?”
“그렇다만?”
데일이 별것 아니라는 듯. 가볍게 답했다.
“…….”
병사들은 한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