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43)
날아오른 이레네
* * *
입구가 돌무더기로 단단히 봉쇄되었다. 햇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지하수로는 지극히 어두웠다.
미리 기다리고 있던 에스델이 손에 빛을 밝히며 다가왔다. 옆에는 에리얼도 함께였다.
“경.”
“후우. 무사하셔서 다행이에요.”
성벽을 무너트려서 지상을 초토화시킨다니. 둘의 당황스러운 감정이 전해졌다.
“황제는 대체…… 그래도 다행이에요. 이걸로 악마의 군세에도 큰 타격을 주었겠죠?”
데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의 무자비한 질량 폭격이 지상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떼로 몰려들었던 악마의 군세는 그야말로 몰살을 당했을 것이다.
“어쩌면 악마가 죽었을지도 모르겠네요. 못해도 군세의 절반은 죽었을 거고요. 혹시 성이 어느 쪽으로 날아갔는지는 확인하셨나요?”
“내가 마지막으로 봤을 때, 성은 동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동쪽이라…….”
일단 성을 하늘로 띄웠지만, 영원히 날아다닐 수는 없다.
상위구역만으로 자급자족할 수 없으니 언젠가는 지상에 내려서야 할 터.
“동쪽으로 향했다면 역시 다른 군단들과 접선하려는 걸까요?”
“모르겠다. 동쪽으로 가는척하면서 진로를 틀 수도 있겠지.”
“으음. 역시 어렵네요.”
하늘로 날아오른 이레네가 어디로 향하는지는 중대한 문제다.
셋은 향후 피난민들을 이끌고 어디로 향해야 할지에 대해 논의했다.
“황제가 동쪽으로 간다면 저희는 그 반대편으로 가는 게 좋지 않을까요? 악마의 시선이 쏠릴 테니까요.”
“이번에 이레네가 무너지면서 대륙의 중앙은 완전히 무법지대가 될 거예요. 위험해도 동쪽으로 함께 이동해서 아직 세력이 건재한 군단에 몸을 위탁하는 것도 방법이에요.”
선뜻 결론이 나지 않았다.
그만큼 상황이 안 좋기도 했다.
이들은 지금 수천 명의 목숨을 책임지고 있다.
그 목숨의 무게 탓에 선뜻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결국. 데일이 말했다.
“일단 밖으로 나가는 게 좋겠다. 여기서 꾸물거려봤자 좋을 게 없으니.”
크나큰 피해를 입었을 테지만, 악마의 군세가 전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기서 꾸물거린다면 금방 표적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에스델과 에리얼도 고개를 끄덕였다. 데일의 의견이 옳았다.
“일단 계속 움직이죠.”
지하수로를 따라 수천의 시민들이 줄을 지어 이동했다.
선두에는 하켄이 길을 안내하고 있을 터였다.
데일은 하티와 함께 성큼성큼 걸어 줄지어 이동하는 사람들을 앞질렀다.
급하게 도망쳐 나와, 짐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한 사람들은 우울한 기색이었다.
아이들은 칭얼거렸고, 아기는 울음을 터트렸다.
그럴 때마다 부모들은 쩔쩔매며 아이를 달랬다.
“으아앙!”
“자꾸 그렇게 울면. 악마가 잡아간다?”
“으아앙!!”
아이는 악마라는 단어에 도리어 크게 울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부모가 곤란해하던 차.
데일이 그 옆을 지나가다 우뚝 멈춰섰다.
데일은 아이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울지마라.”
사람이었을 적의 버릇 탓인지 우는 아이를 보면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그러자 아이는 뚝 울음을 그쳤다.
왜인지 얼굴이 창백해졌지만, 데일은 일단 울음을 그쳤다는 데에 만족했다.
부모들은 미묘한 얼굴로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별거 아니오. 다음에도 말하시오. 애 달래는 데에는 자신 있으니.”
“…….”
부모들은 더더욱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데일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예상대로.
선두에 선 하켄은 지하 통로의 끝에 다다르기 직전이었다.
하켄은 데일을 알아보고는 손을 흔들었다.
“아. 데일 경. 마침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도착한 것 같은데요?”
하켄은 위쪽으로 손가락을 가리켰다. 깊은 우물 저 높이 푸른 하늘이 보였다.
“이 위로 올라가면 되나요?”
데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이 아래로 내려올 때 사용한 밧줄 사다리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데일은 사다리를 타지 못하는 하티를 옆구리에 낀 채. 우물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가자 바닥에 폴짝 튀어내린 하티가 작게 기지개를 켰다.
그러고는 주위를 휙휙 둘러보았다.
돋아나기 시작한 새싹과 따스한 햇빛. 봄이다.
심각한 상황과는 별개로, 세상은 너무나 평온했다.
데일은 우물 아래쪽을 향해 말했다.
“한 명씩 올려보내라.”
“예!”
수천 명이 우물에서 나오려면, 못해도 반나절은 걸릴 것이다.
그전에 데일은 상황을 봐두고 싶었다.
하티와 함께 이레네를 향해 걸어간 데일은 곧 도시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죄다 박살 났군.’
줄지어 늘어서 있던 빈민가는 악마들에 의해 불타버린 지 오래.
하늘 높이 서 있던 성벽도 모두 허물어졌고, 수많은 사람들의 터전이었던 곳은 돌무더기에 깔려 그 흔적만을 간신히 남겼을 뿐이다.
마치 오래된 폐허 같다.
어제까지 사람들이 숨 쉬고 삶을 이어가던 장소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성은…… 여전히 동쪽으로 가고 있군.’
하늘로 날아오른 성은 저 동쪽으로 나아가고 있다.
제법 속도가 빠른지. 어느새 검은 점이 되어 잘 보이지도 않았다.
‘그리고 악마의 군세.’
악마의 군세가 취한 행동은 제각각이다. 우선 꽤 많은 무리가 날아가는 성을 따라가고 있다.
또 다른 무리는 폐허가 된 도시를 뒤지며 먹이를 찾고 있었고, 그 외 대부분은 뿔뿔이 흩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 한 무리가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한데. 그 무리가 심상치 않다.
“악마…… 인가?”
제일 앞에서 몸을 말아 데굴데굴 굴러가는 거대한 괴물이 보인다.
괴물이 구를 때마다 다른 하수인들이 짓뭉개져 비명을 질렀지만, 녀석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데일은 저 악마의 이름을 안다.
‘두르핀. 하필이면’
아르구르보다는 급이 떨어져도, 만만치 않게 호전적인 악마다. 게다가 성질도 더럽다.
여러 악마들 중에서 데일이 특히 싫어하는 놈이었는데, 그런 악마가 이쪽을 향해 오고 있었다.
‘냄새라도 맡은 건가? 아니. 아니야.’
그러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다.
아마 저 악마는 이 주위를 약탈하기 위해 걸음을 옮기는 것뿐이리라.
참으로 재수없게도. 그 방향에 데일과 피난민들이 있었을 뿐이고.
‘피해야 해.’
저 악마와 홀로 싸운다면. 어쩌면 아슬아슬하게 승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데일은 혼자가 아니며 악마도 혼자가 아니다.
시민들을 모두 지키며 악마의 군세를 막아내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야단났군.’
정말이지. 쉴 틈을 주지를 않는다.
데일은 황급히 우물로 복귀했다.
이미 상당한 숫자의 사람들의 밖으로 나온 상태.
그중에는 엘레나와 프라우.
그리고 아이렉이 있었다.
가장 먼저 데일을 알아차린 프라우가 반갑게 맞았다.
“아. 데일 경. 어디 갔다 왔나?”
“잠시 이레네를 둘러보고 왔다. 완전히 쑥대밭이 되었더군.”
아이렉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럴 만하지. 하늘에서 성벽을 무너트렸으니.”
“악마들은 어떻게 되었나요?”
그리 물은 건 엘레나였다.
데일은 상황을 숨길까 잠시 고민했다. 악마가 다가온다고 하면 시민들이 혼란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기로 결정했다.
“악마가 오고 있다. 정확히 이쪽으로 오고 있는 건 아니지만, 늦든 빠르든 우리 흔적을 찾아낼 거다.”
“그, 그럼 큰일 난 거 아닌가요?”
데일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를 들은 일행의 표정도 덩달아 심각해졌다.
아이렉이 물었다.
“내가 얼추 추려보니, 이곳에 있는 사람 중에서 즉시 전력이 될 수 있는 병사는 잘 쳐줘도 500이네. 당연히 내 부하들도 포함이고. 이 정도로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은가?”
“다행히 놈들의 숫자도 그렇게 많지 않소. 성벽을 공략할 때도 많이 죽었고, 돌덩이에 얻어맞고 크게 준 것 같으니. 하지만.”
“그래도 악마가 우세하다는 말인가?”
데일은 수긍했다.
“게다가 이쪽은 시민들을 지키면서 싸워야 하오. 더더욱 불리하지.”
“…….”
아이렉은 깊은 고민에 빠져들었다. 그러고는 의지를 다진 듯. 굳은 얼굴로 말했다.
“버리세.”
“……?”
“도움이 되지 않는 자들을 전부 버리자고 말했네.”
곧바로 반응한 건 프라우였다.
프라우는 아이렉의 멱살을 쥐고 성을 냈다.
“아이렉 이 개자식! 그러고도 네가 바이만의 귀족인가! 명예는 대체 어디다 팔아먹었단 말인가!”
“냉정히 생각하게. 나는 바이만의 귀족이네. 경은 바이만의 기사고. 우리는 오로지 바이만을 위해 살아야 하네. 그럼. 지금 바이만은 무엇인가.”
“…….”
“지금은 공주님이 바로 바이만일세. 공주님이 살아 계시다면 바이만은 여전히 건재한 거지만, 공주님께서 변을 당하시면 정말로 바이만은 끝이란 말이네.”
아이렉은 화를 내지도.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았다. 그저 지극히 서늘한 목소리로 주장을 이어갈 뿐이었다.
하지만 그 담담한 기백에 프라우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설령 저 아래에 있는 수천이 죽더라도, 나는 공주님만 무사하면 되네. 오히려 저들이 미끼가 되어줄 테니 우리는 살아날 확률이 높겠지.”
“아이렉. 네놈…….”
“아니면 다른 좋은 방안이라도 있는가? 냉정히 생각하게. 무엇이 옳은…….”
“그만하세요.”
말을 끊은 건 엘레나였다.
엘레나는 노한 얼굴로 말했다.
“더 이상의 발언은 허락하지 않겠어요.”
“하지만 공주님…….”
“그만하라고 했어요.”
무어라 더 말하려던 아이렉이었지만, 그러면 엘레나가 정말로 화를 낼 것 같았다.
아이렉은 마지막으로 데일에게 물었다.
“경은 알지 않나. 여기 있는 수천을 모두 데리고 갈 수는 없네. 이건 모두가 몰살당하느냐, 아니면 일부라도 확실히 살 것이냐의 문제네. 나도 이런 얘기를 하고 싶지는 않아. 하지만 지금은 결단을 내려야 할 때일세.”
모두의 목숨을 걸고 희박한 확률에 도박을 걸 것인가 아니면 일부라도 확실히 살아남을 것인가.
아이렉이 특별히 나쁜 인간이라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건 아니다.
이게 내심 옳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단지 주위의 시선이 걱정되어 입 밖으로 내지 못할 뿐.
아이렉은 그저 남들보다 책임 있는 자일 뿐이다.
그는 부하들을 수십이나 거느리고 있다. 그는 책임지고, 선택하는 데에 익숙한 사람이다.
자기 사람을 구하기 위해 아이렉은 악역을 자처했다.
‘그래. 아이렉의 말이 맞을지도.’
데일은 문득.
이전에 이 비슷한 상황이 있었음을 알아챘다.
예전. 하켄과 마젤과 함께 미치광이 마법사를 쫓을 때.
그때에도 하켄은 눈물을 흘리며 마을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자고 말했고.
마젤은 더 큰 피해가 생기지 않게, 원칙을 지키자고 했었다.
그때 데일은 선택했다.
위험을 감수하자고.
그런 결정을 내린 데에는 하켄에 대한 친분이나 데일의 오지랖 등등. 다양한 요소가 개입되었다지만, 결국 큰 이유는 하나다.
그게 데일이 생각하는. 조부가 가르쳐준 사람다움이다.
우둔하고 멍청한 선택이라도 옳다고 믿는 것을 행하는 것.
어리석은 인간.
예나 지금이나 그게 데일이 추구하는 길이다.
지금이라고 그 길에서 벗어날 생각은 없었다.
“나는 사람들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
“하지만…….”
아이렉이 어떻게든 데일을 설득하려 했다. 이곳에서 제일 발언권이 큰 건 누가 뭐라 해도 데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데일은 아이렉의 말을 끊었다.
“어리석을 수도 있지. 하지만 나는 지금껏 그렇게 살아왔소.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거고. 여기 있는 엘레나를 위해 결투를 선언한 것도. 목숨을 걸고 싸워나간 것도 전부 그 때문이오.”
데일은 여전히 크리스틴을 기억한다. 그 대단했던 적수를.
그 점을 언급하자 아이렉도 더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아이렉 역시 그 일로 데일에게 크게 빚을 졌다.
반박할 수 있을 리 없다.
“그리고 아무 생각 없는 건 아니오.”
“……무슨 수가 있습니까?”
“요컨대 우리가 전력면으로 좀 불리하지만, 아주 밀리지는 않는단 말 아니오.”
“그렇네. 기사나 마법사 같은 고급 병력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해볼 만 할 테지만. 황제도 우릴 버린 마당에 지원병 같은 게 있겠나?”
아이렉은 여전히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데일은 주저 없이 답했다.
“있소. 어쩌면 기사들보다 강한 지원군이.”
방금. 하켄과의 과거를 되새길 때 덩달아 떠올랐다.
몬스터도 아니면서, 개개인이 기사 정도는 너끈히 뭉개버릴 괴물들을.
“혹시 거인산이라고 들어보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