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44)
두르핀
* * *
“거인산이라면…… 설마 남쪽에 있는 산을 말하는 건가?”
거인산에 대한 이야기는 유명했다.
거인 일가족이 살고 있어, 함부로 지나가다가는 잡아먹힌다는 곳.
특히 거인은 여러모로 두려움을 사는 이들이었는데, 섣불리 토벌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러했다.
동족의 복수를 잊지 않는 거인들을 잘못 건드렸다가 왕국이 몰락해버린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하다.
“그 거인들을 이용하자는 말인가?”
“그렇소.”
“그들이 우리랑 함께 싸워주긴 하겠나? 아니. 그보다 말이 통하기는 하나?”
“안면이 있소.”
거인들과는 즐겁게(?) 대결에 임했던 사이다.
일단 말이 통하긴 할 것이다.
데일의 담담한 수긍에 세 명다 놀라워했다.
“허어. 거인들과도 친분이 있다니.”
“자네는 역시 대단한 기사일세. 역시 내 호적수다워.”
“역시 경이에요!”
친분이라기보다는 악연에 가깝지 않을까?
하지만 그 점은 구태여 설명하지 않았다.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일 때도 있는 법이니까.
‘뭐. 설득하는 건 어렵지 않지.’
설득 방법 정도야 이미 다 생각해두었다.
일단 희망적인 방안을 제시하자, 아이렉도 더는 반론하지 않았다.
결정이 내려졌으니 그저 따르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앞으로의 계획에 상의를 하는 사이.
마침내 피난민들이 우물을 모두 빠져나왔다.
수천명의 사람들은 바깥의 따뜻한 공기를 만끽하며 잠시나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어딘가로 사라졌던 하티가 돌아와 낮게 으르렁거렸다.
“놈들이 근처까지 온 건가?”
하티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다는 뜻이었다.
쩡! 쩡! 쩡!
데일이 건틀릿으로 손뼉을 쳤다. 쇠가 부딪히는 소리에 담소를 나누던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지금부터 말할 게 있소.”
데일은 그리 크게 얘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너무나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이곳으로 악마와 그 무리가 오고 있소.”
데일은 상황을 차분히 설명했다.
악마가 오고 있다는 것.
자신은 일단 남쪽으로 향한다는 것.
악마의 군세에게 쫓기는 건 상당히 위험할 거라는 것.
일부러 거인산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거인은 악마만큼이나 악명이 자자했으니.
좋지 않은 상황에 사람들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갔다.
“우리를 따라오고 싶다면 따라와도 좋고 여기서 흩어지고 싶다면 그래도 좋소. 어쩌면 그편이 더 안전할지도 모르니. 다만 결정은 빨리하시오. 이미 놈들이 근처까지 와 있소.”
웅성거리던 사람들은 금방 결정을 내렸다.
“난 고향으로 가봐야겠어. 어머니가 살아계신지 확인해야 해.”
“엘드리엄에 친척이 있어서…….”
“뭉쳐다니면 먹잇감이 될 뿐이다. 흩어지는 게 백번 나아.”
전체 피난민의 삼 할에 달하는 숫자가 흩어지는 걸 택했다.
에스델과 에리얼은 그들에게 챙겨온 식량의 일부를 나눠주었다.
‘생각보다 많이 남았군. 절반은 도망칠 거라 생각했는데.’
남은 이들은 간절한 눈으로 데일에게 몰려들었다.
“저희, 살 수 있겠죠?”
“데일 경. 부탁드립니다.”
“신께서 우리를 보호해주시길.”
이들이 잔류를 택한 건 데일에 대한 기대 탓도 있는 것일까?
이들의 간절함이 조금 무겁다.
하지만 그렇다고 발걸음마저 무거워질 수는 없다.
“그러면 바로 출발하겠소.”
데일은 사람들을 이끌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남쪽으로.
* * *
워낙 많은 숫자가 한꺼번에 움직인다. 자연히 흔적이 남을 수밖에 없다.
적들에게 발각당하는 건 예정된 수순이었다.
‘이대로는 안돼. 거인산까지는 아직 많이 남았어.’
도망치기만 해서는 금방 따라잡힐 것이다.
데일은 사람들을 불러 놓고 말했다.
“3조로 나눠야겠소. 그리고 지금부터는 가급적 숲을 통해 움직이는 게 좋을 것 같소.”
비라도 내려 흔적을 지워주고, 냄새를 가려주면 좋으련만.
봄을 맞이한 하늘은 얄미우리만치 청명하다.
데일의 지시에 엘레나가 물었다.
“경. 그건 악마의 추격을 뿌리치기 위해서죠?”
“시간벌기다. 이대로는 거인산에 다다르기 전에 놈들한테 따라잡힐 거다. 그러면…….”
승산이 낮다. 설령 이기더라도 피해가 극심할 것이다.
데일의 설명에 엘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결국 따라잡히는 건 마찬가지예요. 더 효과적으로 적들을 방해할 필요가 있어요.”
“좋은 생각이라도 있나?”
“최고의 방어는 공격. 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소수의 인원을 돌려서 적들을 공격하게 해야 해요.”
도리어 상대측에 역공을 가해 무시 못 할 피해를 준다면.
그렇다면 적들도 발걸음을 늦추고 주위를 살피면서 이동할 수밖에 없을 터.
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단시간에 적들에게 타격을 입힌 뒤, 곧바로 후퇴해야 한다. 그게 되는 사람은 기껏해야 나나 소수밖에 없을 텐데…….”
“큼큼. 큼.”
갑자기 엘레나가 부자연스럽게 헛기침을 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마치 자기를 알아봐달라는 듯이.
“……너?”
“흠흠. 맞아요. 바로 이럴 때를 위해서 마법을 갈고닦은 거 아니겠어요? 안 그래도 보물고를 다녀온 뒤, 실력이 늘어서 시험해보고 싶던 참이에요. 마침 잘됐네요.”
아이렉과 프라우가 곧장 난색을 표했다.
“공주님. 너무 위험합니다!”
“그렇습니다! 실전도 별로 안 치러보시지 않았습니까.”
데일도 동의했다.
“나도 둘이랑 의견이 같다. 물론 네 마법 재능이 뛰어나다는 건 잘 안다만 너는 아직 어리다. 굳이 벌써부터 싸울 필요는 없어.”
“……경은 항상 저를 애 취급하시는군요.”
“아닌가?”
“아니에요!”
“원래 애는 자기가 애가 아니라고 하는 법이다.”
“그런 말은 비겁해요.”
평소에는 말 잘 듣던 엘레나가 좀처럼 물러서지를 않았다.
데일은 엘레나와 조용히 눈을 마주쳤다. 잠시간의 눈싸움.
결국. 데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일단 멀리서 한번 해보자.”
“……고마워요!”
“위험하면 바로 후퇴할 거다.”
“실망시키지 않을 게요.”
아이렉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괜찮겠나? 상대가 악마인데.”
“여차하더라도 안고 도망치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소.”
“자네만 믿겠네. 프라우, 자네도 함께 가주게나.”
“물론이지.”
데일은 엘레나를 업었다.
4군단에서 병사와 마법사들이 사용하던 방식을 써먹어 볼 생각이었다.
일행을 먼저 떠나보낸 데일은 악마가 올법한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 머지않아 데일은 악마의 군세를 발견했다.
이쪽의 흔적을 제대로 추격하기 위해, 군세 역시 여러 개로 흩어져서 이동하는 중이었다.
마침 적당한 상대다.
일행은 수풀 속에 조용히 몸을 숨겼다.
“마법을 준비하면, 마력 흐름 때문에라도 놈들이 알아차릴 거다. 우리가 시간을 벌어주겠다.”
“아뇨. 그럴 필요 없어요.”
“?”
“어차피 얼마 안 걸리거든요.”
“뭐?”
순간. 주위에 마력이 세차게 휘몰아쳤다.
데일은 움찔했다. 그 양이 심상치 않다.
여태 그가 봐왔던 그 어느 마법사도 이 정도로 방대한 마력을 다루지는 않았다.
엘레나는 주문의 구결을 영창하지도 않았다. 그저 상대를 향해 오른손을 뻗을 뿐.
악마의 하수인들도 갑작스러운 마력의 흐름에 이쪽에 무언가 있음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마법이 완성된 후였다.
‘이렇게 빠르게?’
다음 순간.
허공에 물방울이 모여들더니, 이내 파도가 되어 하수인들을 덮쳤다.
“케르륵?”
“키이익.”
갑작스러운 물살에 휩쓸린 하수인들이 어리둥절하게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온몸이 홀딱 젖었지만, 특별히 다친 곳은 없었다.
하지만 그때.
엘레나가 양손을 앞으로 펼쳤다.
그 눈동자에서 환한 빛이 뿜어져나오고. 머리카락은 하늘로 붕 떠오르며, 주위에는 미세한 전류가 타닥였다.
이윽고 마법이 완성되었다.
온 세상이 순간. 하얀빛으로 물들었다.
콰지지직!
그게 손에서 뿜어낸 번개가 낸 빛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 이미 상황은 종료되었다.
물에 젖어 흠뻑 젖었던 하수인들이 있던 자리에는, 타버린 시체들밖에 없었다.
비명조차 내지를 시간이 없었던 막강한 마법.
프라우와 데일은 동시에 말을 잃었다.
“…….”
“…….”
데일이 프라우를 흘끔 봤다.
엘레나가 이 정도 실력이었던 걸 프라우도 알고 있었을까?
프라우는 고개를 저었다.
자기도 몰랐다는 뜻이었다.
엘레나만이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어떤가요? 경의 의견을 들려주셨으면 좋겠어요.”
잔뜩 칭찬을 원하는 표정.
이렇게 보면 또 그냥 애 같긴 한데…….
“훌륭했다. 실력이 많이 늘었군.”
“헤헤. 처음이라 긴장했어요. 다음에는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근데 왜 저한테서 멀찍이 떨어지시는 거예요 두 분 다?”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적들을 확실히 죽여버리기 위해 우선 물을 퍼부은 뒤. 그 위에 번개를 흩뿌린다니.
마법의 위력도 위력이지만, 그 철저함이나 지극히 효율적인 방식은 어딘가 섬뜩한 구석이 있었다.
‘애 교육을 잘못시켰나.’
무언가 데일과 어울리면서 안 좋은 영향을 미친 것 같기도 하고…….
어쨌거나 엘레나의 실력은 완벽히 증명되었다.
이렇게 계속해서 상대를 깎아나가면, 유의미한 성과를 거둘 수 있을 터.
하지만 데일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시체로 다가간 데일은 마력을 일으켰다.
‘영혼 지배.’
죽은 하수인들의 몸이 꿈틀거리더니,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데일에게 명령을 구하듯. 고개를 숙였다.
“그어어.”
“왔던 곳으로 흩어져 되돌아가라.”
“그어.”
되살아난 하수인들은 비척비척 되돌아갔다.
저 시체들이 얼마나 움직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흔적을 교란하는 데에는 도움이 될 것이다.
“아. 적들에게 혼선을 주기 위해서 일부러 되살린 거군요.”
“동족이 시체로 움직이는 걸 본다면, 좀 더 경계하면서 이동할 수밖에 없겠지.”
“역시 데일 경이에요.”
가능성을 보았으니 이제는 더 적극적으로 행동할 때다.
셋은 이 주위를 옮겨다니며 악마의 군세를 찾아다녔다.
소규모로 돌아다니던 군세는 엘레나의 마법 한 방이면 쉽게도 쓸려나갔다.
설령 몇몇이 살아남는다 해도 문제는 없었다.
기민한 데일과 프라우는 절대 사냥감을 놓치지 않았다.
그렇게 군세의 세 개 조를 전멸시켰을 때쯤.
드디어 저쪽도 행동을 바꾸기 시작했다.
자신들에게 향하는 위협을 깨닫고 무리를 한데로 모으기 시작한 것이다.
‘슬슬 우리도 발을 빼야겠는데.’
하수인이면 모를까, 악마와 마주치면 안전을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바로 물러서지 않은 건 이번 기습으로 꽤나 쏠쏠히 재미를 보았다는 것. 그리고 아직 피난민들과 악마의 거리가 가깝기 때문이었다.
데일이 물었다.
“여력은 좀 남아있나?”
“마법을 두 번. 많으면 세 번 정도는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흠.”
잠시 고민하는 사이. 데일의 민감한 청각에 나무가 풀썩 넘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 악마 두르핀이 몸을 굴리면서, 나무들을 깔아뭉개는 소리일 것이다.
데일이 엘레나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마지막으로 큰놈으로 한방. 가능하겠나?”
“……예! 믿어주세요!”
“믿고 있겠다.”
엘레나는 마치 부모한테 잘 보이려고 열심인 아이처럼. 주먹을 불끈 쥐었다.
데일은 그런 엘레나와 함께 적당한 나무를 타고 올랐다.
쿠구구구.
머지 않아 땅이 진동했다. 거대한 괴물이 빠르게 굴러오고 있었다.
악마의 모습에 마른침을 꿀꺽 삼킨 엘레나가 물었다.
“큰 거라고 하셨죠?”
“가능한 가장 강하게.”
“……알겠어요.”
엘레나는 조용히 의지를 다잡았다.
‘데일 경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제대로 성공해서…….’
칭찬받고 싶다.
엘레나는 빠르게 마력을 움직였다. 이미 적들이 마력에 민감하다는 건 앞서서 배웠다.
필요한 건 속도. 그리고 화력.
허공에 불덩이가 생겨나고. 불덩이는 거대한 창의 형태로 변환했으며. 그 창 주위에 뇌전이 타닥였다.
불벼락.
그 모든 과정이 이루어지기까지 걸린 시간은 그야말로 찰나와도 같았다.
오죽했으면 악마와 그 하수인들은 마력의 흐름보다, 불덩이의 열기에 이변을 알아차렸을 정도.
단단한 등껍질을 가진 악마 두르핀은 멍하니 이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화염 창을 발견했다. 놈은 곧바로 무언가를 외치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번개를 머금은 화염 창이 날아오고 있었다.
이윽고 화염창이 악마와 부딪혔다.
성대한 폭발. 끔찍할 정도로 뜨거운 열기. 하늘로 솟구치는 불기둥.
잠시간 온 세상의 소음이 사라지고. 꽈르르릉! 온 숲을 뒤흔드는 폭음이 뒤이어 터져나왔다.
“…….”
두 눈으로 봐도 믿기 어려운 화력에 데일은 생각했다.
‘내가 뭘 키운 거지?’
딱히 데일이 키운 것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