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45)
두르핀
* * *
데일은 마법의 결과를 살폈다.
‘초토화군.’
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져 있던 숲의 한가운데에, 검은색 공터가 생겼다.
마법의 여파로 인한 뜨거운 열기로 숲에는 불이 번져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있었던 악마와 그 군세는 당연하게도 무사치 못했다.
약한 하수인들은 열기만으로 녹아내렸고.
악마 두르핀의 단단한 등껍질에도 마법이 훑고 지나간 여파가 남아 있었다.
‘마지막에 반응한 건가.’
몸을 공처럼 둥글게 말았을 것이다. 그 상태의 두르핀은 무지막지한 방어력을 자랑한다.
방금 같은 마법을 얻어맞고도 버텨낼 정도로 말이다.
두르핀은 통증을 삼키고, 이쪽을 노려보았다.
“그으윽. 마탑의 마스터인가? 황제와 함께 사라졌어야 할 마스터가 왜 여기 있지?”
마법의 위력을 보고 엘레나가 마스터급 마법사라 착각한 것일까?
굳이 그 오해를 정정해줄 필요는 없다.
상대가 이쪽을 과평가할수록, 더 조심스러워질 테니.
‘어쩌면 추격을 포기할 수도 있고.’
데일은 대답 대신 지쳐서 기진맥진해진 엘레나를 들쳐업었다.
“프라우. 후퇴다.”
“알겠네.”
그러고는 전속력으로 달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뭣. 이 노옴! 도망치지 마라!!”
당황한 두르핀이 다시 몸을 공처럼 말아 이쪽을 향해 데굴데굴 굴러오기 시작했다.
그 속도가 상당히 빠르다. 두르핀의 장점은 그 단단함과 기동성이다.
만약 평지였다면 금방 따라잡혔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나무가 울창한 숲이다.
나무줄기를 계속해서 깔아뭉개고 이동하는 탓에 그 속도에는 한계가 있었다.
엘프답게 나는 듯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달리는 프라우가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건가!”
“본대랑 일부러 반대편으로 이동해서 놈을 끌어들인 뒤 다시 본대랑 합류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네가 방향을 잡아라. 나는 길을 잃을 수도 있으니까.”
“알았네!”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기 위해 적의 주의를 끌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본대랑 너무 멀어져서는 안 된다.
언제 저 악마가 데일 대신 본대를 향해 움직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데일은 빠르게 달렸다.
엘레나는 지쳐서 업혀있는 상태에서 데일에게 은근하게 물었다.
“어땠어요 경.”
“뭐가.”
“방금 마법이요. 왕가에 대대로 내려오는 마법이에요. 어땠어요?”
“……대단하더군.”
“그쵸?”
데일의 담담한 칭찬에 엘레나가 배시시 웃었다.
“하루만 지나면 다시 마법을 사용할 수 있을 거예요. 그때 또 악마를 기습하죠.”
데일은 고개를 저었다.
“놈도 바보는 아니야. 똑같은 걸 계속 당하지는 않을 거야.”
게다가 두르핀의 방어력이 엘레나의 화력을 능가한다는 게 증명되었다.
똑같이 기습을 시도해봤자, 위험에 비해 얻는 게 적었다.
‘그리고 이 정도면 충분히 시간을 벌었을 것 같은데.’
하수인들을 습격해 그 숫자를 크게 줄이고, 이제는 두르핀의 주의까지 이쪽으로 돌려놓고 있다.
두르핀이 다시 본대를 추적하려 해도 쉽지 않을 것이다.
처음부터 다시 흔적을 찾아야 하고. 데일이 시체를 되살려 만들어낸 가짜 흔적들도 많았으니까.
하지만 완전히 안심하기는 이르다.
피난민들의 체력을 생각하면 이동이 예상보다 느려질 수도 있다.
그러니까.
“노오오옴! 부끄러움이 있다면 당장 멈춰라!”
아슬아슬한 거리에서 최대한 두르핀의 시선을 끌어두어야 했다.
* * *
본대를 셋으로 나눠 이끄는 건 에스델과 에리얼. 아이렉이다.
그들은 데일이 두르핀의 시선을 성공적으로 끄는 데에 성공했다는 걸 알아챘다.
‘역시 데일 경이야.’
‘엘레나 공주님과 함께 잘 해낸 모양이군.’
그 뒤로도 한참이 지나도 데일은 돌아오지 않았다.
에스델은 순간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설마 악마한테…….’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 없지.’
그간 데일과 함께 하며 쌓아온 믿음은 두텁다. 에스델이 가장 신뢰하는 이가 바로 데일이었다.
에스델은 불안해하는 대신.
사람들을 독려했다.
“저기 연기 보이시죠? 아무래도 숲에 불이 난 모양이에요. 거리가 좀 있지만, 그래도 부지런히 움직이죠.”
“예에!”
피난민들이 힘차게 대답했다.
에스델이 이끄는 조는 빛의 여신을 따르는 자들이 속해 있었다. 에스델의 말이라면 불만 없이 따라주었다.
며칠간의 이동 끝에, 피난민들은 순차적으로 거인산의 초입에 다다랐다.
하켄은 착잡한 얼굴로 거인산을 올려다보았다.
“내가 설마 이곳을 두 번이나 방문할 줄은 몰랐는데.”
에스델이 물었다.
“거인을 만나보았나요?”
“데일 경과 같이 만났었지.”
“아. 그러면 하켄도 데일 경처럼 거인과 친분이 있나요?”
“……친분?”
데일이 거인과 친분이 있었던가?
‘서로 귀싸대기를 주고받는 게 친분은 아닌 것 같은데.’
하켄이 의아해하는 사이.
몇몇 남쪽 출신 피난민들은 거인 산을 알아보았다.
“자, 잠깐. 여기는 거인산이잖아.”
“거인산? 거인이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곳?”
“기껏 악마랑 도망쳐서 온 게 거인산이라니…….”
거인의 악명에 사람들이 술렁였다. 몇몇은 도저히 산에 들어가고 싶어 하지 않은 눈치였다.
그때. 데일이 시기적절하게 돌아왔다. 거인산 앞에서 머뭇거리는 사람들에게 데일이 물었다.
“무슨 문제 있소? 왜 안 들어가고 있소.”
어느 한 용기 있는 사내가 따지려 했다.
“아니. 남쪽으로 간다 했지, 거인산으로 간다는 말은…… 말은…….”
“말은?”
사내는 데일을 올려다보았다.
투구의 양옆으로 뿔 같은 장식품이 돋아난 데일은 이제 악마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두려운 생김새를 하고 있었다.
그런 데일에게 직접 따지고 드는 건. 정말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리고 사내에게는 그 정도의 용기는 없었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런가? 어서 올라가시오. 악마가 오고 있으니.”
“예…….”
눈에 안 보이는 거인보다는. 당장 뒤에 있는 데일이. 그리고 악마가 더 무서운 법.
피난민들은 말없이 산을 올랐다.
그렇게 산을 오르다 보니 어느새 해가 졌다.
거인들이 살고, 지세가 험해 악마를 상대하기 좋은 중턱에는 다다르지도 못했다.
‘어쩔 수 없나. 오늘은 일단 여기서 야영해야겠는데. 아직 거리는 있으니까.’
피난민들 중에는 노인도 있고, 어린아이들도 있다.
밤중에 무리하게 걷게 시킬 수는 없다.
곳곳에 모닥불이 피어났다.
구태여 불을 숨기지는 않았다.
어차피 사람이 워낙 많아, 조심한다 해도 들키는 건 금방이다.
차라리 따뜻하게 몸을 쬐고 배불리 먹어 체력을 온존하는 게 나았다.
데일과 하켄. 엘레나와 프라우. 마지막으로 에스델이 모닥불 앞에 둘러앉았다.
밀가루를 넣어 만든 죽이 솥 안에서 보글보글 끓었다.
“자! 다 됐다! 빨리 먹어! 앗뜨. 앗뜨뜨.”
급하게 먹으려다 체하는 하켄을 엘레나가 한심스럽게 쳐다보고. 프라우는 그릇에 얼굴을 처박고 식사했다.
데일은 언제나처럼 무덤덤하게 죽을 떠먹었다.
먹을 필요는 없지만, 데일이 사람임을 잊지 않기 위해 거르지 않는 의식이다.
말 그대로 영혼을 위한 수프였다.
유일하게 가만히 있는 건 에스델이었다.
에스델은 어딘가 아련한 눈으로, 그저 조용히 모닥불만을 쳐다보았다.
데일이 물었다.
“왜 그러나? 입맛이 없나?”
멍하니 있다가 흠칫한 에스델이 고개를 저었다.
“데일 경이랑 하켄이랑 함께 모험을 다닐 때. 항상 이렇게 모닥불에 둘러앉아서 식사했잖아요. 그때가 생각나서요.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는데, 엄청 아련하게 느껴져요. 그립기도 하고요.”
불과 1년도 되지 않은 일들이다.
하지만 에스델에게는 너무나 멀게 느껴지는 추억이었다.
그때는 이렇게 이레네가 무너질거라고. 오르단에게 배신당하고 형제자매들을 잃을거라고. 그리고 악마에게 쫓기며 떠돌아다닐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마음이 복잡한가보군.”
에스델은 순순히 인정했다.
“예…… 특히 오르단에 대해서는 너무 큰 충격이라. 지금도 잘 모르겠어요.”
에스델은 속에 있던 말들을 꺼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데일에게는 털어놓을 수 있었다.
“엄청 밉기도 하고. 증오스럽고. 한편으로는 무언가 착오가 있는 게 아닐까? 오르단에게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나 싶은 생각도 들고. 여전히 믿고 싶고. 사람이라는 것 자체에 환멸도 느끼고…….”
에스델은 침울한 얼굴로 그릇을 내려놓았다.
대강의 사정을 전해들은 다른 이들도 숙연해졌다.
프라우만이 에스델이 내려놓은 죽 그릇에 손을 가져가려다 엘레나에게 제지당했을 뿐이다.
“저도 데일 경처럼 강했으면 좋을 텐데요. 육체적인 의미가 아니라…… 경은 강한 사람이잖아요.”
“…….”
불쏘시개로 모닥불을 뒤적거리던 데일은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마음속의 버팀목이던 사람을 잃는다는 건 견디기 힘든 일이지. 그게 스승이든.”
데일은 에스델을 봤다.
“오래도록 봐온 친구든.”
이번에는 하켄을 봤다.
“아니면 부모든.”
마지막으로 다시 모닥불에 시선을 주었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나는 조부 아래서 자랐다. 어렸을 적부터 나를 돌봐주셨지. 내게는 부모와 다름없는 분이셨다.”
주변인들이 귀를 쫑긋 세웠다.
데일이 자기 과거 얘기를 하는 경우는 좀처럼 없기 때문이다.
데일은 담담히 말했다.
“조부께서는 어느 날 갑작스레 사고를 당하셨다. 억울한 죽음이었지. 그때의 기분은 여전히 생생하다. 그러니 에스델. 나는 네 마음을 이해한다.”
“아…….”
배신이든 죽음이든. 그 형태가 달라도, 버팀목을 잃은 건 동일하다.
데일은 에스델이 느끼고 있을 아픔을 공감한다. 그녀가 억지로 참아내고 있다는 걸 안다.
지금은 그런 사사로운 감정을 토해낼 때가 아니니까.
“버팀목을 잃으면 두 가지 중 하나다. 스스로 우뚝 서거나. 아니면 넘어지거나.”
에스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데일 경은 어떻게 우뚝 설 수 있었나요?”
데일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넘어졌다.”
“예?”
“나는 강한 사람이 아니니까.”
에스델과 데일이 눈이 마주쳤다. 에스델은 저 무기질적인 눈동자에서 처음으로 어떤 감정을 느꼈다.
후회와 슬픔. 혹은 분노.
딱 잘라 표현하기 힘든 복잡한 감정이었다.
에스델은 처음으로 이 흑기사에게서 약한 부분을 보았다.
“그만하고 자라. 아침 일찍 움직여야 하니.”
데일은 그렇게 말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 하티와 함께 걸음을 옮겼다.
날이 샐 때까지 이 주위를 경계할 생각이다.
오늘만큼은 꿈을 꿀 생각은 없었다.
분명. 나쁜 꿈을 꿀 테니까.
* * *
아침 일찍 일어난 피난민들은 부지런히 움직였다.
이대로라면 금방 거인산의 중턱에 다다를 터였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적들이 예상보다 빨리 추격해오는군.’
연이은 방해로 두르핀이 잔뜩 열이 오른 듯하다.
적들이 바로 뒤까지 따라붙었다.
여유가 없다.
“모두 조금만 더 힘내세요!”
“마지막이에요! 이 앞만 넘으면 돼요!”
에리얼과 에스델이 사람들을 독려했다. 사람들도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그렇게 숨 가쁘게 움직이길 한참.
마침내 우거진 나무의 숲이 끝이 나고. 바위가 훤히 드러난 산 중턱이 눈에 들어왔다.
저 위에 뾰족하게 솟은 봉우리. 아래로는 깎아지르는 듯한 아찔한 협곡.
그 바로 옆에 나 있는 크지 않은 길목.
거인 가족들은 이전에 보았던 그 장소에 앉아 있었다.
왜인지 입을 벌린 채, 멍하니 하늘을 보고 있었다.
“아아아.”
“인간. 먹고 싶다. 하늘에서 인간. 안 떨어지나?”
“기다려라. 입 벌리고 있어라. 운 좋으면 인간. 떨어질 수도 있다.”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던 거인 중 하나가 코를 벌름거렸다.
어디선가 맛있는 냄새가 났다. 입에 침이 고여 잠시 입을 다물고, 고개를 내린 거인의 눈에 이쪽을 향해 몰려드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너무 놀라 사레가 들린 거인이 가슴을 쿵쿵 두드렸다.
“허억! 컥! 컥!”
“왜 그러냐?”
“만찬! 만찬이다!”
“허어억! 진짜다!”
“입 벌리고 있었더니! 진짜 인간이 생겼다!”
거인들은 이 꿈같은 기적에 방방 뛰며 즐거워했다.
하지만 그 즐거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사람들의 선두에서, 언젠가 본 적이 있는 흑기사가 다가오고 있었다.
“……껍질 인간이다.”
“껍질 인간? 나 껍질 인간 싫다.”
그들은 데일과의 대결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 놀라운 괴력과. 무시무시한 지혜는 도무지 잊을 수가 없었다.
데일이 앞으로 나서며 인사했다.
“오랜만이다. 기억하고 있겠지?”
“물론! 껍질 인간. 기억하고 있다!”
콧김을 흥! 내뿜은 아빠 거인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이번엔 너랑 내기 안 할 거다! 그냥 너희. 잡아먹을 거다!”
“맞다! 그냥 잡아먹을 거다!”
이기지 못할 내기는 하지도 않는다는 걸까?
이 거인들. 저번에도 느낀 거지만 비겁한 구석이 있다.
“이번에는 내기를 하러 온 게 아니다. 저 협곡을 지나가려고 온 것도 아니고.”
“무슨 소리냐.”
“악마가 오고 있다. 너희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악마?
거인들은 자기들끼리 수군거렸다.
악마라는 이름은 방랑자 거인한테 들은 적이 있다. 아주아주 강한 적으로, 많은 거인 동지들을 죽였으며, 기회가 되면 꼭 복수해야 한다는 말도 들었다.
거인은 목소리를 떨며 말했다.
“아, 악마라니. 무슨 말이냐! 제대로 말해라!”
“말 그대로다. 악마가 이곳으로 오고 있다. 너희들은 싸우기 싫더라도 우리와 함께 싸워야 할 거다. 악마가 너희를 내버려두지는 않을 테니까.”
처음부터 데일은 설득이나 거래할 생각이 없었다.
악마를 이곳으로 끌고 오면, 좋든 싫든 함께 싸울 수밖에 없었다.
게임식으로 말하면 ‘몹 몰이’. 혹은 트레인이라 해야 할까.
거인도 상황을 파악했다. 데일이 무슨 짓을 벌였는지도. 거인들은 데일에게 화를 내려 했다.
하지만 그때.
저 너머 숲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나무가 풀썩풀썩 넘어가는 소리.
이윽고. 몸을 둥글게 만 거대한 악마가 이쪽을 향해 매섭게 굴러오기 시작했다.
“이 비겁한 놈들! 도망도 여기서 끝이다! 이 달을 뭉개는 자, 두르핀이 직접 너희를 짓이겨주마!”
데일은 그 살벌한 돌진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거. 너희들이 상대해야 한다.”
멍하니 눈을 깜빡인 거인이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물었다.
“제가요?”
이럴 때만 또박또박 말하는 거인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