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50)
늪
* * *
라그나는 검은 이빨을 뚫어져라 노려봤다.
“검은 이빨은 이 근방에서 가장 세력이 큰 리자드맨 무리를 이끄는 놈이다. 여기서는 안 보이지만, 무리의 숫자만 100이 넘는다. 게다가 본인도 나이가 많고, 교활하지. 건드리면 귀찮아질 거다.”
“그래?”
“그렇다.”
“그러면 저놈을 죽이자.”
“……내 말을 제대로 들은 게 맞나?”
라그나가 미간을 좁혔다.
하지만 데일은 마검을 발견해버린 이상, 그냥 넘어갈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게다가 성장의 기회를 구태여 피할 이유가 어딨겠는가.
데일은 백 마디 말로 라그나를 설득하는 대신, 짧게 물었다.
“혹시 겁먹었나? 그럼 나 혼자 가겠다.”
“무슨 그런 모욕을!! 내가 겁먹었을 것 같나?”
발끈하는 라그나에게 데일이 말했다.
“겁먹은 거 아니라면, 어서 가자고.”
“……알겠다.”
그제야 당했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이미 늦었다.
이제 와서 안 가겠다고 해봤자 겁쟁이 소리밖에 안 들을 터.
그리고 라그나는 죽으면 죽었지, 겁쟁이라는 말 같은 건 듣고 싶지 않았다.
나무에서 뛰어내린 데일이 라그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무기 하나만 빌려줘라.”
“뭐?”
“활도 있고, 도끼도 있고, 칼도 있잖아. 도끼나 칼 중에서 하나만 빌려줘.”
라그나가 검을 휙 끌어안고, 뒷걸음질했다.
“……무기는 부부끼리도 안 빌려주는 거라고 배웠다.”
“…….”
데일은 손을 펼친 채 말없이 라그나를 노려보았다.
둘은 잠시간 눈싸움을 벌였지만, 데일은 눈싸움에서 져본 적이 없다.
결국. 라그나가 눈물을 글썽이며 검을 내밀었다.
마치 자기 자식이라도 내어주는 듯한 태도였다.
“우리 리리에를 잘 부탁한다. 소중히 다뤄야 해!”
“검한테 붙이기에는 너무 귀여운 이름 같은데.”
데일은 라그나가 건네준 투박한 검을 붕붕 휘둘렀다.
날이 많이 상해있었지만,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자. 가자. 리자드맨 죽이러.”
“으음. 알았다.”
둘은 우거진 나무를 헤치며 걸었다.
라그나가 앞장서고 데일이 거리를 두고 뒤따랐다.
데일은 갑옷 때문에 금방 들켜버리는 반면. 라그나는 은밀하게 적들에게 가까이 접근할 수 있었다.
“조용히 해라. 내가 우선 몇 놈을 저격하겠다.”
“그래.”
훤히 뚫린 공터에서 여전히 리자드맨들은 검은 이빨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검은 이빨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기다란 혀를 내빼, 마검의 옆면을 핥았다.
까드득.
데일은 저도 모르게 주먹에 힘을 주었다.
라그나가 휙 고개를 돌렸다.
“조용히 하라고 말하지 않았나.”
“……실수했다.”
데일은 다시 놈들을 살폈다.
저 공터는 리자드맨들의 둥지로 보였다.
한구석에는 동물의 시체와 뼈 따위가 가득 쌓여 있었다.
개중에는 사람의 뼈로 보이는 것도 있었다.
아마 늪에 잘못 발을 디딘 운 없는 여행자를 잡아먹었을 것이다.
다른 한편에는 쇠붙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검이나 창 따위의 무기부터 시작해, 농기구나 장식품까지 그 종류가 다양했다.
‘쇳조각만 모으는 게 아니라, 금속이면 전부 좋아하는 건가.’
물건 대부분은 늪의 습기에 녹이 슬었거나 부식되어 사용할 게 못 되었다.
하지만 개중에는 제법 상태가 괜찮은 것들도 섞여 있었다.
데일이 리자드맨들을 관찰하는 사이. 라그나는 천천히 놈들의 둥지로 다가갔다.
맨발로 사뿐히 걷는 라그나는 숙련된 암살자처럼 기척을 지웠다.
시위에 화살 세 개를 동시에 걸었다.
그리고는 데일 쪽으로 시선을 한번 준 뒤, 시위를 놓았다.
퉁!
“카악!”
“크르르!”
빠르게 날아간 화살이 정확히 급소를 꿰뚫었다.
리자드맨 셋이 목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저 활 솜씨는 언제봐도 묘기 같다니까.’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데일이 땅을 박찼다. 포효를 지르며 혼란에 빠진 놈들에게로 뛰어들어갔다.
“우아아아아!”
그에 공명하듯. 라그나도 전투 함성을 내지르며 도끼를 들고 뛰쳐나왔다.
데일이 외쳤다.
“뒤에서 화살로 계속 저격이나 할 것이지, 왜 튀어나온 거냐!”
“내 마음이다!”
데일은 검을 휘둘러 가장 앞서 있던 리자드맨의 머리를 쪼갰다.
리자드맨이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하고 바닥에 허물어졌다.
그제야 검은 이빨도 혼란에서 벗어나 외쳤다.
“카! 카락! 카룸!!”
저 새끼를 죽여!! 따위의 말이 아니었을까?
퍼뜩 정신을 차린 리자드맨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손에는 나무 창, 녹슨 곡도, 반쯤 쪼개진 방패 따위를 들고 덤볐다.
‘일일이 상대할 필요는 없어.’
다수의 약한 적들은 흑기사에게는 먹잇감에 불과할지니.
데일은 마력을 움직였다.
“물러나라 라그나.”
“뭐?”
마력이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얼마 전 팔다리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던 시절.
데일은 적은 양의 마력을 이용해 사냥감들을 사로잡아야 했다.
한 번의 실패가 치명적인 결과로 돌아오던 절박한 사냥은 데일이 마력을 다루는 솜씨를 더욱 향상시켜주었다.
정확하게 뻗어나간 마력이 리자드맨들의 머리에 닿았다.
정신지배.
“카르…… 륵.”
“……그륵.”
리자맨들의 동공이 탁 풀렸다.
지능도 낮고, 정신력이 낮은 놈들답게 지배가 정확히 먹혀들었다.
데일은 명령을 내렸다.
“죽여.”
그러자, 지배에 걸린 리자드맨들이 동료의 몸을 향해 무기를 휘둘렀다.
갑작스러운 동료의 배신은 몬스터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많은 리자드맨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치명적인 일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이 압도적인 광경에 라그나의 동공이 흔들렸다.
“데일 너…… 주문쟁이였나?”
“…….”
그 표정은 동료에게 배가 꿰뚫린 리자드맨들보다도 더 큰 배신감으로 얼룩져 있었다.
어쨌거나 싸움은 순조롭다.
이대로는 데일을 따르는 리자드맨이 적보다 많아질 것이다.
하지만.
“카라아악!!!”
검은 이빨이 하늘을 향해 쩌렁쩌렁한 포효를 내질렀다.
그러자 지배에 빠져 있던 리자드맨들이 제정신을 되찾았다.
데일은 속으로 혀를 찼다.
‘로어인가?’
몇몇 강력한 몬스터는 울음소리에도 특별한 힘이 있으니. 그걸 로어라고 불렀다.
검은 이빨의 포효로 제정신을 찾은 리자드맨들이 다시 맹렬히 달려들었다.
그 움직임에는 이전보다 독기가 서려 있었다.
감히 동료를 찌르게 만든 데일에 대한 적의가 묻어나왔다.
‘어쩔 수 없군. 우선 우두머리 놈부터 노려야겠어.’
데일은 라그나에게 말했다.
“잠시 리자드맨들을 맡고 있어라.”
“뭣? 나 혼자?”
데일은 땅을 박차 검은 이빨의 앞에 안착했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검은 이빨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다른 리자드맨보다 족히 두 배는 큰 체구에 무서울 정도로 근육질이었다.
데일은 곧장 찌르기를 찔러넣었다. 심장을 꿰뚫어 한 방에 보내버릴 생각이었다.
캉!
검은 이빨이 마검을 비스듬히 세워, 데일의 검을 튕겨냈다.
‘어쭈. 막아?’
운일까?
데일은 기세를 살려 연속해서 검을 찔러 들어갔다.
빠르고, 정확한 데다, 강력한 일격이다.
다섯 번 정도 찌르면 한 방은 맞을 거라 생각했다.
캉! 캉! 캉! 캉! 캉!
그런데. 이 리자드맨. 심상치 않다.
수려한 움직임으로 찌르기를 전부 막아낸 데다가, 도리어 반격까지 해버리는 것 아닌가.
갑작스레 휘둘러져 오는 횡베기에 데일이 반사적으로 방어동작을 취했다.
마검과 검이 맞부딪혔다.
데일은 곧장 반격을 돌려주려 했다.
하지만 그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게 있었다.
콰창!
항상 무시무시할 정도로 튼튼한 마검을 사용해서 잊고 있었지만, 데일의 괴력을 감당할 수 있는 무기는 흔치 않았다.
게다가 검은 이빨도 만만치 않게 힘이 센 녀석이었다.
괴력과 괴력의 맞부딪힘에 라그나의 검은 산산이 조각났다.
“내 리리에가!!”
라그나가 절규를 내뱉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손잡이만 남은 검을 내팽개친 데일은 곧장 새벽 안개를 전개했다.
그대로 검은 이빨을 공포 속에 말려 죽일 생각이었다.
하지만 가소롭다는 듯.
리자드맨이 마검을 붕 휘둘렀다.
마검에 닿은 어둠은 너무나 쉽게 잘렸다.
검은 이빨은 이죽거리며 외쳤다.
“카룸! 카카카!”
무슨 뜻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비웃는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귀찮게 됐군.’
지금껏 사용할 때는 몰랐지만 이 마검이라는 무기. 생각보다 까다롭다.
‘주문 계열은 전부 베어내다니. 사기 아닌가?’
이제야 자신을 상대하던 적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일이었다.
게다가 마검의 사용자 역시 심상치 않다.
이 리자드맨.
믿기지는 않지만, 검을 다루는 게 수준급이다.
리자드맨은 굳어 있는 데일을 향해 검을 까딱였다.
빨리 덤비라는 뜻이었다.
“어지간히도 자신 있나 보군.”
늪지에 사는 검의 달인 리자드맨은 꽤 어처구니 없는 존재였지만, 데일은 그냥 이해하기로 했다.
세상은 넓으니까.
애초에 별로 중요한 문제도 아니었다.
“그래봤자 도마뱀 새끼 주제에.”
“카락……!”
상대가 마검을 사용하고, 검술의 기량이 뛰어나면 뭐 어떤가.
데일은 검은 이빨을 향해 느긋하게 접근했다. 마치 놀리듯이. 조롱하듯이.
무시당했다 느낀 검은 이빨은 미간을 좁혔다.
녀석은 이내 괴성을 내지르며, 데일을 향해 마검을 내리쳤다.
데일은 손을 뻗었다.
놈의 팔을 텁. 하고 붙잡아버렸다.
“카룸……?”
검은 이빨은 힘으로 데일의 손을 풀어내려 했다. 자기 힘에 자신이 있었다.
틀렸다.
검은 이빨은 처음부터 잡히면 안 되었다. 그 잘난 검술로 거리를 벌려야 했다.
데일은 점점 힘을 주기 시작했다.
검은 이빨이 끔찍한 고통에 안간힘을 썼지만, 도무지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카르. 카락!”
검은 이빨은 다급히 외쳤다.
녀석은 이 말도 안 되는 괴력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 늪지대에서 놈의 힘을 능가하는 적수는 없었다.
하다못해 저 짜증 나는 하이 엘프조차 자신에게는 한 수 접어주건만!
검은 이빨은 모른다.
상대는 자신보다 몇 배는 더 강한 적을 쓰러트려왔다는 걸. 악마조차 사냥해본 적이 있는 기사라는 걸.
우물 안 도마뱀의 한계였다.
드드득!
검은 이빨의 양팔이 동시에 뽑혀나왔다. 더운 피가 후두둑 흩러내렸다.
‘압도적인 힘 차이 앞에서는 기술도 의미가 없는 법이지.’
데일은 놈의 팔을 쓰레기처럼 버린 뒤.
마검을 쥐었다.
데일은 마검에 대고 말했다.
“그래. 나 말고 다른 주인에게 사용되니까, 기분이 좋았나?”
당연히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데일은 흠칫했다.
‘잠깐. 지금 나, 검에 말을 건 거야?’
그건…… 엘프나 할 짓거리 아닌가.
아무래도 라그나랑 함께하다보니 물들어버린 모양이다.
이러다가는 머지않아 마검에 귀여운 이름을 붙여주는 자신을 보게 될 것 같았다.
데일은 상념을 지웠고. 마검을 들어 고통스럽게 땅을 구르는 검은 이빨에게 향했다.
“카라? 카룸……?”
놈은 여전히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는 표정으로 땅에서 버르작거렸다.
“뭐가 억울한 거지?”
강한 자는 먹고, 약한 자는 먹힌다.
그게 이 늪의 법칙 아닌가.
검은 이빨에게도 차례가 왔을 뿐이다.
퍼걱!
마검이 검은 이빨의 머리를 반으로 쪼갰다.
놈의 몸이 허물어졌다.
데일은 시체에 건틀렛을 박아 넣어 생기를 흡수했다.
아직 불안정하던 몸이 이제야 완전히 회복되었다.
이제 나머지 리자드맨만 무리만 처리하면 그걸로 끝.
오랜만에 마검을 들고 몸이나 빙글빙글 돌릴까 생각하던 데일은 멈칫했다.
라그나가 싸우다 말고 멍한 얼굴로 서 있었다.
그리고 그녀와 치열하게 싸우고 있던 리자드맨들은…… 어째선지 데일에게 엎드려 절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