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51)
늪
* * *
왜인지 리자드맨들은 싸우다 말고 데일을 향해 엎드리고 있었다.
몇몇은 깊은 두려움에 몸을 부들댔다.
데일이 라그나에게 물었다.
“얘들. 왜 이러는 거지?”
“리자드맨 무리는 서열 다툼을 통해 우두머리를 정한다. 데일 네가 검은 이빨을 쓰러트렸으니 이제 네가 서열 1위다.”
“……보통 다른 종족을 우두머리로 삼나?”
그 점은 라그나도 의아한지 멍하니 머리를 긁적였다.
“혹시 그 검을 들고 있어서 그런 거 아닌가?”
“검? 마검을 말하는 건가?”
곰곰이 생각하니 라그나의 말이 꽤 일리가 있었다.
당장 이곳에 오기 전.
리자드맨들은 마검을 든 검은 이빨을 향해 고개를 조아리지 않았던가.
‘그게 만약 검은 이빨이 아니라 마검을 숭상하는 거였다면?’
쇠로 된 건 뭐든 좋아하는 리자드맨들이다.
그런 그들의 눈에 마검은 어떻게 비춰질까.
놀라울 정도의 날카로움에 튼튼함.
습한 늪지대에서도 녹이 슬지 않는 신비로움.
검 면에 새겨진 알 수 없는 문자.
마지막으로, 모든 주문을 갈라내는 불길하고 오싹한 기운.
어쩌면 리자드맨들은 이 마검을 종교적인 의미로 숭배한 게 아닐까?
‘검은 이빨은 그걸 교묘히 이용한 거고.’
적어도 검은 이빨만큼은 이런 어처구니없는 신앙을 가지진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마검을 휘두르지도 못했을 테니.
그때. 리자드맨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카룸. 카락. 카. 카으.”
“뭐라는 거야.”
라그나가 해석해주었다.
“그 새카만 칼은 오로지 검은 이빨만이 다룰 수 있던 특별한 물건이었다 한다. 우두머리의 상징이었지. 그러니 이제 새로 칼 님께 선택받은 네가 무리를 이끌어주었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너. 리자드맨 언어도 할 줄 아나?”
“아니? 그냥 대충 눈치껏 이해했다.”
라그나는 뻔뻔하게 대꾸했지만, 그 말이 딱히 틀린 것 같지는 않았다.
라그나가 물었다.
“그래서 데일. 이제 어떻게 할 거냐? 제일 깔끔한 건 역시 그냥 죽여버리는 거다. 죽일 건가? 당연히 죽이겠지?”
잔뜩 흥분해 얼굴을 들이미는 라그나를 밀쳐낸 뒤. 데일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60마리가 넘는 리자드맨들이라.’
리자드맨들은 뛰어난 사냥꾼들이다. 데일을 따른다는데 구태여 거절할 이유가 있을까?
게다가 한 가지 시킬 일도 있었다.
“죽이지는 않겠다.”
“뭐! 대체 왜냐!”
“이래저래 쓸모가 있을 것 같거든. 우선 의사를 전달할 필요가 있는데…… 아.”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데일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리자드맨에게 다가갔다.
그 머리를 덥썩 붙잡았다.
“카락! 카칵!”
당황한 리자드맨이 발버둥을 쳤다.
데일이 그대로 자기 머리를 으깨버릴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데일은 마력을 일으켰다.
영혼 지배.
리자드맨의 동공이 탁 풀렸다.
‘이런 식으로 명령을 내리면 되지.’
데일은 머릿속으로 명령을 내렸다.
‘사자가 그려진 망토를 찾아라. 이 늪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기왕이면 한 쪽짜리 유물 장갑도 찾아오고.’
장갑은 워낙 작아 찾기 힘들 수도 있지만, 망토는 운이 좋다면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데일은 마력을 거뒀다.
지배가 풀리자 제정신으로 돌아온 리자드맨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데일이 물었다.
“이해했나?”
리자드맨이 급하게 혀를 날름거렸다. 대충 데일이 말하는 바를 의미한 것 같았다.
“그럼 당장 부하들을 데리고 찾으러 가라.”
명령을 받은 리자드맨은 다른 리자맨들에게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한 뒤, 이내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제 지시할 건 다 해놨으니 전리품을 챙길 시간이다.
데일은 리자드맨들이 쌓아놓은 쇳덩이들을 살폈다.
대부분 영 상태가 아니었지만, 개중에는 썩 쓸만해 보이는 것도 있었다.
데일은 그중 몇 개를 추려냈다.
그 사이.
뒤쪽에 있던 라그나는 쏘아보낸 화살을 회수하고, 부러진 검을 쥐고는 울상을 지었다.
“아아, 리리에……! 흑. 리리에는 좋은 아이였다. 너를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이거나 받아.”
징징거리는 게 듣기 싫어 데일은 제일 상태가 괜찮은 바이킹 소드를 던져주었다.
리리에라고 부르던 투박한 검보다 훨씬 좋은 물건이었다.
라그나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황홀한 표정을 짓던 라그나는 이내 망가진 검손잡이를 내팽개치고, 바이킹 소드를 하늘 높이 들었다.
“이제부터 네 이름은 클라라다. 우리 평생 헤어지지 말자 클라라!”
“그것도 검에 붙이기에는 너무 귀여운 이름 같은데.”
그래도 마음에 드니 다행이다.
이 하이엘프한테는 미우나 고우나 도움받은 게 있으니 말이다.
어느새 해가 졌다.
나무가 울창한 늪에는 밤이 빨리 찾아왔다.
데일은 일단 오늘 밤은 리자드맨의 둥지에서 보내기로 했다.
이동과 전투로 라그나가 지치기도 했고. 리자드맨들이 망토를 찾아올 때까지 시간도 필요했다.
축축한 바닥을 피해 굵은 나무에 올라간 라그나가 말했다.
“그럼. 나는 조금만 자겠다. 데일도 적당한 나뭇가지를 찾아라.”
“그래. 잘 자라.”
“!”
라그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데일이 물었다.
“왜 그러지?”
“아니. 딱히. 음. 그냥, 누군가에게 잘 자라라는 말은 오랜만에 들어봐서…….”
그러고는 수줍은 표정으로 외쳤다.
“데일도 잘 자라!”
라그나는 사슴 가죽 망토를 덮고 금방 곯아떨어졌다.
라그나가 요란하게 코를 고는 소리를 들으며 데일도 눈을 감았다.
데일은 이전의 기억들을 떠올렸다.
라그나랑 온종일 같이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하이엘프에 대한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건. 데일이 이 세상에 처음 떨어졌을 때의 기억이다.
기억은 이윽고 현실과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선명해졌다.
데일은 이걸 꿈이라 불렀다.
‘……또 악몽을 꾸는군.’
주위는 설산이었다. 세찬 바람이 몰아쳤고 눈은 허리까지 쌓였다.
사람의 온기와 인기척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험지.
그곳에서 데일은 눈을 떴다.
몸을 일으켰지만 모든 게 꿈처럼 느껴졌다.
분명 조금 전까지 방 안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는데 설산이라니?
드디어 미쳐버린 걸까?
아니면 역시 꿈인 걸까?
후자 쪽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주위 배경은 눈발이 흩날리는 설산인데 자신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으니까.
추위도. 아픔도. 아무런 감각도 없다.
데일은 자기 몸을 둘러보았다.
불길한 흑색 갑옷에 차가운 피부.
게임으로만 봐오던 흑기사의 그것.
꽤 질 나쁜 악몽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처음. 데일은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자각몽 속을 열심히 탐험하기에는 데일이 너무 무기력했다.
어서 꿈이 깨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꿈에서 깨어날 수가 없었다.
해가 지고. 달이 뜨고. 다시 해가질 때까지도 데일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그때 처음 데일은 위기감을 느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상상이지만. 어쩌면 이게 꿈이 아닌 게 아닐까?
확실한 건, 이렇게 가만히 있어봤자 꿈에서는 깨어날 수 없다는 거다.
어떻게 해야 할까.
고통을 느끼면 꿈에서 깨어난다는데 몸이라도 찔러볼까?
하지만 지금은 감각이 없는데?
영화에서 본 것처럼 물속에서 뛰어들까?
하지만 이 추운 설산 어디에 물웅덩이가 있단 말인가.
혼란스러워 갈피를 못 잡던 그때.
한 무리의 사람들이 눈발을 헤치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데일은 살았다는 생각에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그리고 다가오는 이들의 생김새를 보고 굳어버렸다.
뾰족한 귀에 잿빛 머리. 아름다운 외향.
현실성이 없는 광경에 데일이 중얼거렸다.
“역시 꿈인가?”
늙은 엘프가 앞으로 다가왔다.
무리의 인솔자인 듯했다.
늙은 엘프는 자세를 낮춰 데일과 눈높이를 맞췄다.
“겨우 찾아냈군. 이런 곳에서 잠드셨을 줄이야.”
“……?”
당연히 데일이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였다. 다행이란 점은 적의가 보이지 않는다는 걸까.
늙은 엘프가 물었다.
“말을 할 수 있나? 이름은?”
“대체 뭐라는 거야.”
“이런. 아무래도 가르쳐야 할 게 많을 것 같군. 영웅께서 생각보다 큰 짐을 맡기셨다.”
늙은 엘프가 손을 휙휙 저었다. 빨리 일어나라는 뜻이었다.
“따라와라. 너를 전사로 만들어주겠다.”
데일은 여전히 늙은 엘프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저 눈빛과 몸짓이 무얼 의미하는지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데일은 잠시 고민했다.
이 엘프들을 따라가는 게 맞을까?
엘프들은 게임에서도 지랄 맞은 종족이었는데?
하지만 고민은 짧았다.
데일은 더는 이 설산에서 홀로 누워 있고 싶지 않았다.
이미 엘프들은 데일을 두고 저 멀리 걸어가고 있었다. 매정한 자들이었다.
데일도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처음에는 어색했다.
신체도 원래 몸과 달랐고, 온몸에 갑옷을 두르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데일은 엘프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다.
데일이 이 세상에서 내디딘 첫걸음이었다.
* * *
“데일.”
“…….”
“데일!”
“음? 아. 라그나. 벌써 아침인가?”
“전장에서 그렇게 곤히 잠들면 어떡하나.”
“전장은 무슨.”
늪이 어슴푸레하게 밝아지고 있다. 아침이 오는 것이다.
“리자드맨들은?”
“아직 안 왔다. 시간이 걸릴 것 같다.”
“하긴. 하루 이틀 만에 찾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 그러면 데일은 계속 이곳에 남아 있을 건가?”
“그래야지? 왜. 싫나?”
라그나는 고개를 붕붕 저은 뒤,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니. 오히려 좋다! 그동안 내가 늪을 구경시켜 주겠다.”
“별로 늪을 구경할 생각은 없는데.”
“달리 할 일이 있나?”
“없지는 않지.”
데일은 마검을 꺼내 자세를 잡았다.
오래도록 검을 휘두르지 않았으니 감이 죽지 않았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데일은 루드비히가 선보였던 동작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그리고 그 동작을 그대로 따라 했다.
검을 들어 가볍게 옆으로 휘두르는 횡베기.
부웅!
검날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기분 좋게 울렸다.
데일은 그 단순하고 평범한 동작을 한번 한번 반복하기 시작했다.
“지금 뭐 하는 건가?”
“검술 연습. 이백만 번을 채우기로 약속했거든.”
“이, 이백만 번? 뭔가, 안 어울린다.”
데일이 라그나에게 흘끗 시선을 주었다.
“안 어울린다고?”
“실력은 실전을 통해 성장한다. 목숨을 걸고 싸우다 보면 실력은 저절로 늘게 되어 있어. 그게 하이엘프의 방식이고.”
“그거 잘됐군. 난 하이엘프가 아니다.”
“하이엘프처럼 말하고 하이엘프처럼 싸우고, 하이엘프처럼 행동하면 그게 하이엘프다.”
하이엘프를 닮았다고?
설령 사실이라 해도, 그런 얘기를 듣고 싶지는 않았다.
“방해하지 말고 닥치고 있어라.”
“쯧.”
데일은 다시 검을 휘둘렀다.
끝없이 반복하되, 단 한 번도 대충 휘두르지는 않았다.
집중을 담아 제대로 휘둘러야만 의미가 있다는 걸 알았다.
데일이 진지하게 수련을 임하자, 라그나도 더 잔소리하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무더운 오후의 기온에 늪지대가 찜통이 되어가던 그쯤.
리자드맨들이 되돌아왔다.
데일이 명령을 내린 리자드맨이 땅에 엎드리며 말했다.
“카락. 카륵. 카라르.”
“뭐라는 거냐.”
“어. 망토를 찾았다는 것 같다.”
“……뭐?”
벌써?
이건 조금 예상외였다.
이렇게 단기간에 넓은 늪지대를 수색해 망토를 찾아내다니.
‘이 리자드맨들. 엄청 유능한 건가?’
데일이 말했다.
“이렇게 빨리 찾을 줄은 몰랐는데.”
“카룩. 카칵!”
“어. 마법이 깃든 물건이라, 그런 걸 좋아하는 놈을 찾아갔고, 아니나 다를까 놈이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게 누군데.”
리자드맨이 슬쩍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두려운 듯. 몸을 떨면서 말했다.
“카라람!”
“뭐?!”
라그나도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데일만이 이야기를 못 따라가 미간을 좁혔다.
“뭔데 그러나.”
“죽음의 지배자! 죽음의 지배자에게 망토가 들려 있다고 한다!”
“죽음의 지배자?”
늘 용감하던 라그나였지만, 이번만큼은 긴장한 얼굴로 말했다.
“데일. 아무래도 망토는 포기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갑자기 뭔 소리냐. 죽음의 지배자가 뭔데.”
“놈은……! 아주아주 사악한 사령술사다!”
“사령술사?”
“이 늪지대의 남부에는 오래된 사원이 하나 있다. 죽음의 지배자는 그곳을 오래도록 점거하고 있는 녀석인데, 성질이 아주아주 더럽다!”
라그나가 데일의 팔을 덥석 붙잡았다.
“놈과 맞붙으면 반드시 죽고 말 거다! 심지어 죽어서도 놈을 위해 싸우는 언데드 병사가 되겠지! 그깟 망토 따위에 목숨을 걸어서는 안 된다!”
“카룸. 카락!”
“카리움!”
라그나와 더불어 리자드맨들까지 데일을 말리기 시작했다.
이 늪지에서는 그 죽음의 지배자라는 게 어지간히도 두려운 존재인 모양이었다.
“그래?”
“그래! 나는 데일 네가 용기 있는 전사라는 걸 안다. 하지만 때로는 용기와 만용을 구분할 줄도 알아야 한다. 네가 죽는 걸 보고 싶지는 않다.”
“그렇단 말이지?”
* * *
“목숨이든 보물이든 전부 드리겠습니다! 노예가 되라면 되겠습니다! 제발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만신창이가 된 죽음의 지배자가 데일 앞에 넙죽 엎드렸다.
데일은 마검을 땅에 짓누르며 말했다.
“생각보다 별거 없는데?”
“…….”
그 모습을 보고 라그나와 리자드맨들은 말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