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52)
늪
* * *
이 ‘죽음의 지배자’라는 분에 넘치는 별명을 지닌 사령술사는 리치였다.
죽음을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 언데드가 된 흑마법사.
죽음의 지배자는 리치답게 상당한 수준의 사령술사였다.
낡은 사원에는 그가 만들어낸 다종다양한 언데드가 우글거렸다.
개중에는 거대한 몬스터의 시체로 만든 언데드도 있었으니, 리자드맨과 라그나가 두려움에 벌벌 떤 것도 이해는 되었다.
하지만 상대를 잘못 만났다.
언데드에도 격의 차이는 있는 법.
웬만한 언데드는 데일의 갑옷에 흠집조차 내지 못했다.
게다가 데일은 영혼 지배로 언데드의 제어권을 빼앗을 수도 있다.
데일은 수많은 언데드 사이를 거침없이 뚫고 지나갔고.
리치가 흑마법을 시전하려 하면 가차 없이 마검으로 베어냈다.
그리하여, 데일은 채 10분이 지나지 않아 이 뼈다귀 마법사를 무릎 꿇리는 데에 성공했다.
리치는 바닥에 바짝 엎드리며 비굴하게 말했다.
“평생을 주인님으로 섬기겠습니다! 제발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정말이지 엄청난 굴욕이다!
이 늪지대에는 적수가 없어 왕처럼 군림하던 리치가 이렇게 초라하게 엎드려 절해야 하다니.
뼈다귀로 이루어진 몸만 아니었더라면 이미 눈물을 한 바가지 쏟았을 거다.
하지만 체면 따위야 아무래도 좋다.
어떻게든 살아남을 수만 있으면 상관없다.
애초에 삶에 대한 집착 때문에 죽음을 거부한 리치다. 목숨보다 소중한 건 없다.
그런 리치에게 데일이 무심하게 물었다.
“리치라고? 사령술사고? 그럼 밤의 신도인가?”
“예, 예. 물론입니다. 경처럼 밤의 여신을 따르는 자입니다. 같은 신앙의 형제로서, 부디 자비를 베풀어주시길!”
리치는 이때다 싶어 종교를 들먹였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조아렸다.
하지만 그 마음속에는 시커먼 음모가 도사리고 있었다.
‘그래. 나를 노예로 부려라. 기회를 봐서 네놈에게 복수하겠다! 아니. 네놈을 지배해 내 수족으로 부리는 것도 좋겠지. 지금 마음껏 승리에 취해 있어라! 그게 네 마지막 기쁨일 테니!’
리치는 데일이 자기를 받아들일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야 당연했다.
이런 유능한 사령술사를 수족으로 부릴 수 있는데, 그 누가 마다할까!
하지만 리치를 흘낏 살핀 데일은 냉정히 말했다.
“싫어.”
“……예?”
“왠지 밤에 기습할 것 같은데.”
“데일. 나도 동의한다. 이 음흉한 뼈다귀는 반드시 널 배신할 거다. 주문쟁이는 절대 믿어서 안 돼.”
‘이 빌어먹을 귀쟁이가!!’
평소에도 가끔 활을 들고 찾아와 귀찮게 하던 하이엘프가, 중요한 순간에 초를 치려 하고 있었다.
게다가 데일의 반응도 생각보다 더 심드렁하다.
아니. 은은한 적의마저 엿보였다.
‘대체 왜지? 내가 무언가 잘못한 게 있나?’
데일은 사령술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리치는 그 사실을 몰랐다.
리치는 다시 땅에 엎드려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
“제발! 제가 경을 위해 봉사하게 해주십시오! 경 같은 강력한 언데드의 아래에서 일할 수 있다면, 무한한 영광일 것입니다!”
“언데드?”
순간 데일의 안광이 거세게 타올랐다. 데일은 그대로 리치의 오른팔을 가볍게 밟았다.
뼈다귀는 허무하리만치 간단히 부러졌다.
“……저, 저기. 제가 무슨 말실수라도.”
“나를 언데드라 부르지 마라.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고 싶다면.”
“명심. 또 명심하겠습니다!!”
리치는 절절히 외쳤다.
나올 리 없는 식은땀이 두개골을 타고 흐르는 느낌이다.
대체 언데드라 부른 게 무엇이 문제인지,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목숨을 쥐고 있는 건 데일이다.
까라면 까야 했다.
데일은 고민에 잠겼다.
‘부하라.’
데일이 없는 사이. 세상이 어떻게 변했을지는 미지수다.
확실한 건 이전보다 훨씬 혼란스러운 상황일 것이다.
데일은 분명 강하다.
하지만 악마들 역시 강하다.
그리고 악마는 항상 하수인들을 대동하고 다닌다.
‘내가 악마를 상대할 동안, 다른 하수인들을 상대할 놈들이 있으면 나쁘지 않을지도.’
데일은 이 늪을 벗어나면 적당히 리자드맨들을 돌려보낼 생각이었다.
굳이 뒤꽁무니에 몬스터를 달고 다닐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굳이 그래야 할까?
자신을 추종한다는데 쳐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눈앞의 리치도 마찬가지다.
알아서 노예가 되겠단다.
그럼 적당히 잘 써먹으면 그만 아닐까?
물론. 데일도 바보는 아니다.
이 리치가 순수한 의도를 품고 있을 거라고는 절대 믿지 않았다.
“좋다. 너를 하인으로 받아들이지.”
“감사합니다!”
“그전에 맹세를 했으면 좋겠는데.”
“맹세. 말씀이십니까?”
“절대 배신하지 않겠다고 주문에 걸고 맹세하고. 밤의 여신한테도 맹세해라.”
주문에 걸고 하는 맹세는 마법사들에게 의미가 깊었고, 신에게 하는 맹세는 신자로서 의미가 있었다.
물론.
리치의 신앙심이 그리 깊지 않을 수도 있다.
데일처럼 그저 대가를 바치고 힘을 주고받는 계약 관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신이 실존하는 세계에서, 대놓고 신에게 한 맹세를 어기는 건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그…… 음.”
어느 쪽 맹세가 마음에 걸렸는지 모르겠지만, 리치가 갈등했다.
그것만으로도 리치가 맹세를 가볍지 않게 여긴다는 증거였다.
“왜 그러지? 맹세하기 싫나? 싫으면 안 해도 된다.”
데일이 마검에 손을 가져가자, 리치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목이 타, 잠시 침을 삼키고 있었을 뿐입니다.”
“……너, 뼈다귀잖아.”
리치는 급하게 말을 돌렸다.
“큼큼. 절대 주인님을 배신하지 않겠다고, 주문에 걸고 맹세하며, 밤의 신께 맹세하겠습니다. 저 역시 어둠을 따르는 자. 이 맹세는 제 생이 다할 때까지 지켜질 것입니다.”
“생이 다할 때까지가 아니라, 생이 다하고 나서도. 겠지?”
데일은 리치의 말장난을 예리하게 지적했다.
은근슬쩍 수작을 부리려던 리치는 거듭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이놈의 흑기사는 무슨 눈치가 이리 빨라! 다른 멍청한 흑기사랑은 전혀 다르잖아.’
리치가 급하게 입을 열었다.
“아, 흠흠. 제가 실수했습니다. 예. 맞습니다. 생이 다하고 나서도 맹세는 지켜질 것입니다.”
데일은 손을 뻗어 리치의 남은 한팔을 가볍게 쥐었다.
뼈는 똑!하는 소리와 함께 깔끔히 부러졌다.
“……”
“이제부터 한 번이라도 더 실수하면 그때는 끝이다. 알겠나?”
“무, 물론입니다.”
“리치. 이름이 뭐지?”
“무르하탈입니다. 아울로의 아들 무르하탈.”
“나는 데일이다. 열심히 하도록. 무르하탈.”
“섬기게 되어 영광입니다, 주인님.”
늪지대를 호령하던 사악한 리치가 데일을 따르자, 지켜보고 있던 이들은 당황스러운 감정을 드러냈다.
“리자드맨도 모자라. 리치까지. 데일 대체 그대는…… 지옥의 군대라도 만들 생각인가?”
라그나는 혼란스러워했고.
“카락! 카룸!”
““카룸!””
리자드맨들은 자신들의 우두머리가 보여준 놀라운 무위에 환호성을 내질렀다.
안광을 불태우며 불안스레 주위를 살펴본 무르하탈이 물었다.
“저 실례지만 주인님. 저 멍청한 도마뱀 놈들도 함께 다니는 겁니까?”
“그래. 네 선배니까, 깍듯하게 대하도록.”
“서, 선배?”
불과 하루 차이지만, 엄연히 선배는 선배였다.
데일은 망연자실하게 앉아 있는 무르하탈에게서 마법 반사 망토 마저 빼앗았다.
앙상한 갈비뼈가 훤히 드러나 더 처량하게 보였다.
물론. 데일은 신경 쓰지 않았다.
망토를 툭툭 턴 뒤. 어깨에 걸쳤다.
‘음. 이제야 좀 괜찮군.’
설마 잃었던 유물들을 이리 빨리 되찾을 줄이야.
다른 기타 잡다한 무구들은 잃어버렸지만, 이 정도만 해도 꼭 필요한 건 모두 얻은 셈이다.
목표를 모두 이룬 데일은 그제야 주위를 둘러보았다.
무르하탈이 점거하고 있던 낡은 사원은 곳곳이 무너져 음산한 분위기를 풍겼다.
이곳이 단순히 폐허라서 그런 분위기가 흐르는 건 아니었다.
데일은 이 사원에서 낯익은 기운이 풍긴다는 걸 알아챘다.
“여긴 뭘 섬기는 사원이었지? 늪의 몬스터들이 우상을 숭배하는 곳이라기에는 묘하게 익숙한 느낌이 나는데.”
“알아보시는군요. 이곳은 밤의 여신을 모시는 사원입니다.”
“뭐?”
무르하탈의 말에 데일이 미간을 좁혔다.
확실히. 듣고 보니 이레네에 있던 밤의 신전과도 비슷한 느낌이 났다.
건축 양식은 전혀 달랐지만 말이다.
“이런 곳에 사람들이 살았다고?”
“밤의 신도들은 모진 박해를 받아왔습니다. 이런 위험한 곳까지 도망쳐야 했지요. 그렇게 숨어 사는 와중에도 신앙을 잃지 않았으니,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런가…….”
데일은 사원을 둘러보았다. 사람들이 여신을 숭배하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데일은 눈을 서늘하게 빛내며 무르하탈을 쳐다봤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어디 갔지? 설마 네가 전부 죽였나?”
데일이 금방이라도 검을 뽑아 들려 하자, 무르하탈이 황급히 부인했다.
“아, 아닙니다! 어찌 신앙의 형제를 해코지하겠습니까. 제가 왔을 때는 이미 폐허가 된 지 오래였습니다. 가장 상태가 좋은 시체도 죽은 지 백 년은 지났더군요. 언데드로 되살리지도 못했습니다.”
“마치 시도해봤다는 듯한 말투군.”
“그, 그럴 리가요.”
움찔대는 리치에게서 시선을 돌린 데일은 생각했다.
‘가만. 이곳이 밤의 신전이라면 밤의 여신을 만나는 것도 가능한가?’
그렇다면 뜻밖의 행운이다.
바깥의 상황도 들을 수 있고, 제물도 바칠 수 있을 테니.
“여기 기도실은 어디 있지?”
“아. 저기 무너진 잔해 옆에 나 있는 구멍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기둥이 무너져 잔해에 파묻힌 기도실 쪽에 사람 하나가 드나들 구멍이 하나 나 있었다.
“쯧. 좀 치우고 살아라.”
“……예.”
무르하탈에게 핀잔을 준 데일은 구멍을 비집고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니 익숙한 구조의 복도가 보였다.
데일은 복도를 지나쳐 적당한 기도실 하나를 열고 들어갔다.
기도실 안은 이레네의 그것과 다를 게 없었다.
‘이 부분은 똑같군.’
제단과 은 촛대. 그리고 양초 세 개.
데일이 땅에 한쪽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
“왔습니다.”
“…….”
아무런 대답이 없다.
제대로 못 들은 것일까?
데일은 좀 더 크게 말했다.
“왔습니다!”
그제야 양초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하지만 평소랑은 다르다.
연기는 매우 흐릿해 금방이라도 흩어져 버릴 것 같다.
데일의 고개를 절로 숙이게 했던 위압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본래라면 여신의 형상을 이루어야 했던 연기는 대신, 허공에 글자를 만들었다.
[살아. 다행. 반갑. 기쁨.]데일은 인상을 찌푸리며 글자에 집중한 뒤, 물었다.
“살아있어서 다행이라는 겁니까?”
[긍정.]“대체 왜 이런 식으로 소통해야 하는지…… 무슨 일이 생긴 거군요.”
[힘. 감소. 권능. 부족.]데일은 산발적으로 떠오르는 글자들을 해석했다.
“힘이 약해져서 목소리도 제대로 못 들려준다는 거군요.”
[비통.]생각보다 상황이 좋지 않는 눈치였다.
“혹시 지금 어떤 상황인지 알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불가. 제약. 힘. 부족.]아무래도 여신에게 무언가 정보를 얻는 건 힘들어 보였다.
‘결국은 직접 확인할 수밖에 없다…… 이건가?’
다행히 데일이 공물을 바치면 힘을 내려주는 건 여전히 가능한 듯했다.
아니. 어쩌면 그걸 위해 다른 권능들은 포기했을지도.
데일은 생기와 잔혼을 바쳤다.
두르핀에게서 산 채로 흡수했었던 잔혼이 여전히 조금 남아 있었다.
“능력치는 골고루 투자하겠습니다.”
두르핀에게서 온전히 생기와 잔혼을 흡수해 바쳤다면 곧바로 등급 상승도 노려볼 만했으련만.
지금은 아쉽게도 그 정도의 생기와 잔혼이 없었다.
하지만 적은 양이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검은 이빨을 비롯해 이것저것 사냥하고 다녔으니.
여신이 데일에게 힘을 내려주었다.
데일은 자신의 상태를 확인했다.
[데일]등급: 5
직업: 암흑기사
근력: 114
내구: 70
마력: 64
체력: ―
정신력: 54
[보유 기술 목록]생기 강탈
새벽의 안개
영혼 지배
해골마 소환
[특성]반인 반언데드
어둠의 감각
밤의 여신의 축복
[칭호]별이 되어버린 숭고한 영웅
‘음?’
상승한 능력치를 흡족하게 확인하던 데일의 시선이, 마지막 칭호 부분에 멈췄다.
그곳에는 ‘별이 되어버린 숭고한 영웅’이라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
‘이건 또 뭐야.’
악마 살해자란 훌륭한 별명은 어디 가고, 웬 해괴한 별명이 생겨난 것일까.
‘설마.’
사람들은 데일이 모두를 위해 희색하고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빨리 돌아가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군.’
데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상황을 어떻게든 해결해보겠습니다. 조금만 참고 계십시오.”
[아들. 신뢰.]“그럼 이만.”
그때. 고개를 돌리려는 데일의 눈앞에 단어들이 다급히 떠올랐다.
[사원. 중앙. 바닥.]“예?”
[사원. 중앙. 바닥.]“이곳 사원의 바닥을 파보시라는 말씀이신가요?”
숨겨진 유물이라도 있는 것일까?
데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한번 파보겠습니다.”
[아들. 데일. 사랑. 사랑. 사랑.]마지막의 부담스러운 애정 표현은 무시하며. 데일은 다시 사원으로 나왔다.
무르하탈과 리자드맨. 그리고 라그나는 서로 어색하게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데일은 주위를 둘러본 뒤, 여신이 말한 중앙 부분을 찾았다.
찾는 게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유난히 단단한 판석으로 이루어진 곳이 있었으니까.
데일은 바닥 위에서 힘껏 발을 굴렀다.
쩌저적.
단단한 바닥이 쉽게도 깨져나갔다. 무르하탈이 당황해 물었다.
“대, 대체 왜 그러시는지.”
“이 아래에 뭔가 있다고 여신이 말하더군.”
“예, 예? 여신께서 직접 목소리를 들려주신 겁니까?”
강한 건 알았지만, 그 정도로 대단한 흑기사였다고?
무르하탈이 놀라거나 말거나.
데일은 깨진 판석을 집어서 치웠다.
머지않아 바닥 아래 숨겨져 있던 금고가 드러났다.
무르하탈이 끼어들었다.
“굉장히 단단해보이는 금고군요. 제가 열 방법을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우드득.
데일은 금고를 힘으로 뜯어냈다. 그리고 무르하탈에게 말했다.
“뭐라고 했나?”
“……아무것도 아닙니다.”
금고 문을 뜯어낸 데일은 안쪽을 살폈다.
제법 큼지막한 금고였지만, 그 안에 든 건 자그마한 물건 하나였다.
창백한 빛을 내는 초승달 모양의 펜던트.
‘이건…… 성물?’
펜던트에서는 심상치 않은 힘이 느껴졌다.
그냥 성물이 아니다.
굉장히 강력한 성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