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59)
음유시인
* * *
갑작스럽게 바람이 선술집안을 휘몰아치더니, 음유시인의 몸이 두둥실 떠올랐다.
그렇게 공중제비를 돈 음유시인은 사뿐히 바닥에 착지했다.
그러고는 곧바로 문을 열고 도망치려 했다.
“어딜!”
데일은 곧장 맥주잔을 집어 들어 음유시인을 향해 투척했다.
쐐액!
위기를 감지한 음유시인은 재빨리 옆으로 굴렀다.
쾅!
맹렬히 날아간 맥주잔과 나무로 된 문이 부딪혔고, 둘 다 산산이 조각났다.
그 말도 안 되는 위력에 음유시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만약 피하는 게 조금만 늦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부서지는 건 자기 머리통이 아니었을까?
음유시인이 악에 받쳐 소리쳤다.
“사람을 죽일 작정인가요!!”
“그럼 도망치지를 말던가.”
음유시인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달음박질했다.
데일은 성큼성큼 달렸다.
음유시인이 외쳤다.
“모두 달려드세요! 데일 경이 팬미팅을 한다잖아요!”
“와아아!”
“싸인해주세요!”
눈이 반쯤 풀린 취객들이 데일에게 몸을 돌렸다.
주먹을 휘두르려던 데일은 멈칫했다.
죄 없는 취객들을 불구로 만들어버릴 수는 없다.
고민하는 사이.
취객들이 데일에게 몸을 던져 깔아뭉갰다. 그렇게 취객들이 차곡차곡 쌓여 인간의 산을 이루었다.
음유시인은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잘했어요! 이제…… 어?”
쿵!
데일이 번쩍 일으키며, 자신을 깔아뭉개던 십수 명을 동시에 날려버렸다.
입가에 미소를 지운 음유시인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무슨 사람 힘이.”
이럴 때가 아니었다.
음유시인은 짧은 다리를 도도도 놀렸다.
마법사답지 않게 속도가 상당히 빨랐다.
‘이, 이 정도면 따돌렸겠지?’
열심히 달리던 음유시인은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경악했다.
흑기사가 성큼성큼 거리를 좁혀오고 있는 게 아닌가!
“으아악!! 왜 따라오는 거예요!”
“그러는 너는 왜 도망가는 거지?”
“저를 잡으면 죽일 거잖아요!”
“스스로도 켕기는 게 있나 보지?”
“……생각보다 입담이 좋으시네요.”
어쨌거나 음유시인은 계속 달렸다.
이 숲은 자신의 집과도 다름없다. 지리를 훤히 꿰고 있었다.
얼마든지 도망칠 자신이 있었다.
데일의 차가운 선언을 듣기 전까지.
“마지막 기회를 주겠다. 안 멈추면 더는 안 봐준다.”
음유시인이 우뚝 멈췄다.
데일에게서 피어오르는 진한 살기를 느낀 것이다.
그의 본능이 외쳤다.
안 멈추면 여기서 죽는다고.
“머, 멈췄습니다.”
“다행히 눈치는 빠른 편이군.”
데일은 음유시인의 목덜미 부위의 옷을 들어올렸다.
데롱데롱 매달린 음유시인과 눈이 마주쳤다.
‘역시 노움이군.’
자색 머리에 똑같은 색깔의 눈동자. 노움이라 나이는 짐작하기 어렵지만, 깊은 눈빛을 보면 아주 어리지는 않은 모양이다.
“음. 안녕하세요?”
노움이 어색하게 인사했다.
데일은 그런 노움을 데롱데롱 들고 다시 선술집을 돌아왔다.
데일에게 던져졌던 취객들은 머리를 부여잡고 중얼거렸다.
“어, 음. 여기가 어디지?”
“머리가 아픈데. 술을 너무 많이 마셨나봐.”
데일은 음유시인에게 시선을 주었다.
눈치 빠른 음유시인이 재빨리 말했다.
“자! 자! 오늘 영업은 끝입니다! 모두 2층으로 올라가서 숙면을 취해주시길 바랍니다!”
“어우. 좀 자야겠어.”
“졸리네…….”
취객들이 좀비처럼 비척비척 계단을 올라갔다.
시끌벅적하던 선술집 내부가 놀랍도록 고요해졌다.
노움은 적당히 테이블과 의자를 끌어왔다. 그는 의자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자. 앉으세요. 귀한 손님이 오셨는데 대접해드릴 게 없어서 민망하네요. 그럼 우리, 통성명부터 할까요?”
“그전에. 숨어 있는 동료나 부르지?”
또르르 눈알을 굴린 음유시인이 머쓱하게 말했다.
“이미 다 들킨 건가요?”
“목소리로 상대를 홀리는 마법은 네가 쓰는 거고. 바람 마법은 다른 마법사가 사용한 것 아닌가?”
“허…… 굉장히 예리하시네요. 이번에는 정말로 놀랐습니다.”
음유시인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감탄했다. 그러고는 선술집 구석을 향해 말했다.
“리마. 얼른 나와.”
그러자 의자와 테이블이 켜켜이 쌓인 곳에서 자그마한 노움이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앞의 음유시인과 외모가 판박이처럼 닮았으나, 머리카락이 좀 더 길었다.
“가족?”
“아, 네. 여동생입니다.”
여동생 쪽은 머뭇거리며 다가오다가, 데일을 향해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음유시인의 등 뒤로 숨어버렸다.
“하하…… 낯을 좀 가리는지라. 어쨌건 통성명부터 하죠. 저는 아랄의 아들. 소마입니다.”
여동생 쪽이 고개를 빼꼼 내밀며 말했다.
“……리마.”
“저희 남매는 둘 다 마법사고, 힘을 합쳐 이곳 선술집을 꾸려나가고 있지요.”
“그래. 그럼 우선. 이것부터 해명해 보지?”
데일은 소마가 팔던 소설책을 툭툭 두드렸다.
“내 이야기를 멋대로 각색해서, 그걸 팔아먹어서 돈까지 번다라. 문제가 좀 있다고 생각하는데?”
“하하. 무언가 오해가 있나 보군요. 저희는 절대 사사로운 탐욕 때문에 이 책을 판 게 아닙니다.”
“그럼?”
소마가 의자를 밟고 벌떡 일어났다.
목을 한차례 가다듬고는, 마치 노래하듯이 말했다.
“이 기나긴 이야기를 설명하려면, 먼 과거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때는 재작년이었지요. 저희 남매는 마법사로서 마탑에 소속되어 있었지만, 노움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은 어디든 존재했습니다. 아아! 신께서는 참으로 비정하시지. 우리 남매에게 뛰어난 재능은 주셨지만, 어찌하여 노움으로 태어나게 했단 말입니까!!”
“짧게. 그리고 앉아.”
“흠흠.”
소마가 헛기침하며 자리에 다시 앉았다.
“어쨌든. 그렇게 모진 대우에 시달리던 중. 저희는 한 소식을 듣고 말았습니다. 억울한 죽음을 당한 노움 부부를 위해, 빈민가를 뒤집어엎은 어느 흑기사의 이야기지요! 그건. 정말이지 저희에게 구원과도 같았습니다.”
소마가 데일의 오른손을 덥석 붙잡았다. 숨어 있던 리마도 데일의 반대편 손을 붙잡았다.
“세상 그 누가 노움을 위해 그리 행동해줄 수 있겠습니까! 모진 차별에 힘든 삶을 살던 저희들도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경께서는 그때부터 이미 저희의 영웅이셨던 겁니다. 그리고 결심하게 되었지요. 음유시인으로서, 데일 경의 업적을 노래와 책으로 만들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퍼트려야 한다고!”
“그래서 그 어처구니없는 소설을 썼나? 일부 내용 빼고는 순 거짓말인 엉터리를?”
“참고로 책은 리마가 적었습니다. 노래를 지은 건 저고요. 리마? 경께서 궁금하신 게 있다나 봐.”
“……적당한 각색은 이야기를 더 풍요롭게 해줘요.”
“이름하여, 소설적 허용이라는 녀석이지요.”
데일은 머리를 부여잡았다.
여느 노움답게 이 음유시인은 말이 참 많았다.
시끄럽게 뱉어낸 말들이 투구 안을 웅웅 울렸다. 음유시인답게 목소리가 미성인 게 오히려 더 짜증 났다.
“그게 남의 이야기를 소설로 팔아 돈을 버는 이유는 안 되는 것 같은데.”
“하하…… 하. 뭔가 소설에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었던 것 같군요.”
“……죄송해요. 다음에는 더 잘할게요.”
리마가 침울하게 고개를 숙였다.
데일은 속으로 한숨을 머금었다.
저런 표정으로 말하니, 더 화를 내기도 뭐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데일은 아이 같은 외양을 한 이 노움들한테 약했다.
“다음에는 사실만 적어라. 이상한 거짓말을 부풀리지 말고.”
“아하. 고증을 신경 쓰는 타입이군요. 마스터 안드레이와 비슷한 느낌?”
아는 이름의 등장에 데일이 물었다.
“안드레이를 아나?”
“알다마다요. 도서관의 기록관을 맡으신 분이니, 저희같이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어찌 연이 없겠습니까.”
“안드레이는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지?”
“글쎄요. 황제가 이레네를 하늘로 띄워 올릴 때 같이 있었으니, 여전히 저 공중 어딘가에 떠다니지 않을까요?”
“……성이 여전히 하늘을 날고 있다고?”
데일이 되묻자, 소마의 눈이 반달처럼 휘어졌다.
“아하. 여기를 왜 찾아왔는지 알겠군요. 저희가 이곳에서 책을 팔고 있어 찾아온 게 아니라, 정보가 필요해서 온 거죠?”
데일은 순순히 인정했다.
“그래.”
“하지만 이를 어쩌죠? 저희는 아무에게나 함부로 정보를 팔지 않습니다. 그에 상응하는 정보료를 주시거나, 저희가 알지 못하는 정보를 주시는 게 원칙…….”
“멋대로 내 책을 팔아 번 돈. 돌려줬으면 좋겠는데.”
“……원칙이지만. 저희 사이에 그런 걸 따지는 것도 그렇죠. 안 그래요?”
황급히 말을 돌린 음유시인이 방긋방긋 웃었다.
데일도 굳이 더 얘기를 꺼내진 않았다. 당장 알고 싶은 것들이 있었다.
“우선 내 동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좀 듣고 싶은데.”
“동료들이라면 함께 모험을 다녔던?”
“하켄. 에스델. 엘레나. 그 밖에 여러 명.”
“아하. 혹시 악마와의 싸움 이후에 어딘가에 숨어 지내셨습니까?”
“놈이 자폭하면서 의식이 날아갔었다. 다시 정신을 차리니 1년이 지나 있더군.”
데일은 늪에서 있었던 일을 간단히 설명했다.
옆에서는 리마가 데일의 말을 분주히 말을 받아적었다.
흥미 어린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린 소마가 감탄하며 말했다.
“허. 그러니까, 늪지대에서 굴복시킨 리자드맨과 리치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이겁니까? 그 병력을 이끌고 황혼의 추종자들이 지키는 마을을 쳤고요. 정말이지. 이전에도 느꼈지만, 경의 행보는 참…….”
“……좋은 이야기가 될 것 같아.”
“나도 동의한다 동생아.”
데일은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책상을 쿵쿵 두드렸다.
“그래서. 이제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흐음. 오래도록 잠들어 계셨으니 처음부터 설명해야겠군요. 미리 숨을 힘껏 들이켜세요. 기나긴 노래가 될 테니. 아. 숨을 안 쉬어도 되는 몸이었던가요?”
“기왕이면 짧게 부탁하지.”
소마는 자리에서 힘껏 뛰어 공중제비를 돌았다. 그러고는 책상 위에 멋들어지게 착석했다.
리마는 그런 소마를 향해 마도구로 만들어낸 푸른 빛을 쏘아 보냈다.
그것만으로도 공연을 위한 무대가 되었다.
“악마를 이끌어 난공불락의 이레네를 무너트린 정복자! 단신으로 검성과 맞붙어 싸워 이긴 실력자! 그 이름은 황혼이었노라! 못난이 황제는 성을 들어 꽁지 빠지게 도망치고, 대륙의 질서는 무너져 내리니. 이는 곧 혼란의 시작이 되었도다!”
소마는 손가락을 겹쳐서 괴물의 형상을 만들어냈다.
빛이 손가락을 훑고 지나가자, 벽에 그림자로 된 괴물이 경박하게 움직여 댔다.
“황혼의 추종자는 온 대륙으로 퍼져나가 사람들을 개종시켰으니, 세상은 순식간에 혼란에 빠지고, 힘없는 백성들은 비탄에 빠졌구나! 휘! 휘! 하지만 난세에는 영웅이 등장하기 마련이니! 늑대왕 하켄이 용병과 난민들을 이끌고 서쪽을 지키고 있노라!”
“늑대…… 뭐?”
“북쪽의 엘드리엄에는 새로운 성녀 에스델이! 동쪽의 카엘름에는 에리얼 사제장이 거뜬히 버텨주니. 여전히 이 대륙에는 희망이 남아 있도다!”
“……?”
소마가 자기만 아는 얘기를 와다다 쏟아내자, 데일은 설명을 요구하는 눈으로 리마를 봤다.
리마는 갑작스러운 시선에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푹 숙이고는, 천천히 설명해주었다.
“하켄 님은 거대한 늑대와 함께 용병들을 이끌고 있어요. 그래서 늑대왕이라 부르죠.”
‘거대한 늑대면 하티 말하는 건가.’
“그 뛰어난 실력과 모두를 사로잡는 강철 같은 카리스마에 수많은 용병들이 따르고, 지금은 서부의 수호자로서 활약하고 있어요.”
“뭐?”
뛰어난 실력. 강철 같은 카리스마. 수호자.
그 어떤 단어도 하켄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사람이 갑자기 변하는 것에도 정도가 있지.’
데일이 물었다.
“혹시 소문이 잘못된 거 아닌가?”
“아뇨. 용병들이 늑대왕에게 절대적으로 충성하는 건 확실해요. 황혼의 추종자들의 공세도 몇 번이나 격퇴했고요.”
“…….”
데일은 일단 이 이야기를 믿어보기로 했다.
하켄은 서쪽으로 간다고 쪽지를 남겼으니, 어느 정도 행적도 일치하고 말이다.
‘에스델은 성녀의 지위를 가지게 되었나. 뭐. 교단의 성물을 팔에 떡하니 차고 다니는데, 당연한 거지.’
에스델의 실력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오르단 탓에 고위 인력을 대부분 잃은 교단이다. 에스델 외에 그 누가 교단을 이끌 수 있을까.
‘에리얼은 카엘름으로 갔나. 확실히. 카엘름에는 밤의 신도들이 많은 편이니까.’
카엘름은 데일이 직접 가니아고스를 사냥한 곳인지라, 다른 곳보다 밤의 여신에게 우호적인 이들이 많았다.
에리얼이 그곳으로 떠난 것도 이해는 갔다.
‘근데 왜 전부 흩어진 거지?’
데일은 비록 자신이 없어도, 동료들이 함께 힘을 합쳐 어려움을 극복하길 원했다.
그편이 더 안전할 것이고.
하지만 동료들은 왜인지 뿔뿔이 흩어져 버렸다.
그리고 데일은 아직 듣지 못한 이름이 하나 남아 있다는 걸 알아챘다.
“잠깐. 아직 한 명 못 들었는데.”
“예?”
“엘레나. 너희들이 소설로 팔아먹었던 바이만의 공주 말이다.”
“아아…….”
고개를 끄덕인 리마가 미묘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격노의 마녀를 말하시는 거군요.”
“……뭐?”
데일은 그 별명에 멈칫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리마는 설명을 계속했다.
“격노의 마녀는 황혼의 추종자들이 있는 마을과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모조리 불태워버리고 있어요.”
데일은 말을 잃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1년.
엘레나는 마녀라 불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