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58)
음유시인
* * *
보급을 마치고, 새로 지원병을 추가로 얻은 데일 군단은(무르하탈이 지은 이름이다.) 다시금 진군을 시작했다.
선두에서 걷는 데일을 향해 무르하탈이 손을 비벼대며 보고했다.
“주인님. 이번에 무기를 얻으면서 군의 전력이 크게 늘었습니다. 리자드맨과 인간 병사들이 먹을 일주일 치 식량도 따로 얻었고 말이지요.”
“나쁘지 않은 소득이군.”
“예. 저희 군단은 안정적으로 보급을 얻을 기반이 없습니다. 결국. 마주치는 적들을 습격해, 이번처럼…….”
“약탈을 해야 한다는 건가?”
“클클. 이왕이면 현지 보급이라는 표현을 사용해주시죠.”
무르하탈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아무래도 사령술사들은 직업의 특성상 한 곳에 둥지를 틀어 세력을 키워나가는 걸 좋아하고, 병력을 지휘하는 쪽에 빠삭하기도 했다.
무르하탈도 데일의 군단을 키워나가는 것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나야 귀찮은 일을 대신해주니. 나쁠 게 없지.’
경험이 풍부한 무르하탈에게 일을 맡기고, 그가 자신의 능력을 힘껏 발휘하게 만들어주면 데일 군단은 저절로 크게 성장할 것이다.
물론, 일반적인 지휘관이라면 데일처럼 할 수 없다.
언제 무르하탈이 자신만의 세력을 키워 배신할 줄 누가 알겠는가?
당장 황제도 자기 병사들을 믿지 못해 군단을 버리지 않았던가.
하지만 데일은 다르다.
그에게는 절대적인 자신이 있었다.
‘이상한 낌새만 보이면 바로 처리하지 뭐.’
설령 무르하탈이 어떤 치명적인 계략을 꾸며 배신을 시도하더라도, 혼자서 막아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당장 이곳에 있는 병력 전부가 데일에게 덤벼도 데일에게 타격이나 제대로 입힐 수 있을까?
무르하탈도 그 사실을 잘 알았다.
그는 딱히 데일에게 진심으로 충성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배신을 준비하지도 않았다.
목숨은 소중하니까!
물론 기회와 가능성이 생긴다면 그때는 또 다른 문제지만…….
어쨌건 지금은 데일의 충실한 종복으로서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새로 합류한 인간 병사 중에서 쓸만한 이가 몇 있더군요. 대장장이의 아들이 하나. 견습 재봉사하나. 요리사가 하나. 그들에게는 병사 대신 다른 일을 맡기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래. 그게 좋겠군. 그들의 의사를 물어보고, 원하는 곳에서 일할 수 있게 해라.”
“지당하신 선택입니다.”
데일과 무르하탈이 긴밀한 대화를 나누자, 위기감을 느낀 리자드맨 카리악이 끼어들었다.
“카르! 카단!”
“이놈! 감히 주인님과 내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끼어들다니……!”
“됐고. 카리악이 뭐라고 하는 거냐.”
무르하탈이 앙상한 손가락으로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음. 이 도마뱀은 자기들이 신병에게 싸우는 법을 교육시키겠다 합니다. 새로 합류한 병사들은 도저히 써먹지 못할 상태인지라.”
“리자드맨들이 제대로 가르칠 수 있겠나?”
“종족은 달라도, 싸우는 법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교육이 불가능하지는 않은데…….”
“그럼 앞으로 신병들의 교육은 카리악에게 맡기겠다.”
“카락! 카룸!”
“……믿고 맡겨달라는군요.”
의욕적인 부하들 덕에 골치 아픈 문제점들이 빠르게 해결되었다.
세부적인 사항을 정한 데일은 다시금 이동을 시작했다.
목적지는 사제가 말한 떡갈나무 숲이다.
‘소문이 사실일까?’
숲속의 특별한 선술집과 마법사 음유시인에 대한 소문.
데일은 소문이 사실일 확률은 반반 정도라고 생각했다.
‘삶이 힘들 때는 희망이 필요한 법이니까.’
그런 식으로 부풀려진 희망이 때로는 엉뚱한 소문을 만들어내곤 한다. 이번 역시 그럴지도 모르고.
어쨌든. 밑져야 본전이다.
데일 군단은 자그마한 개울을 따라 이동했다.
햇빛도 없는 야심한 밤에 이동하는 건 평범한 군대에는 위험한 일이지만, 데일 군단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언데드들은 도리어 밤에 더 활기찼고, 리자드맨 역시 밝은 밤눈을 지녔으니.
이번에 새로 합류한 신병들만이 곤란해했을 뿐이다.
그렇게 밤에 이동하고 낮에는 적당한 그늘에서 쉬기를 이틀째의 저녁.
사제가 말한 대로 떡갈나무가 울창하게 자라 있는 숲을 맞닥뜨렸다.
무르하탈이 미심쩍은 눈으로 숲을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이 어딘가에 선술집이 있다는 건가요?”
“사제 말로는 그렇지.”
의심 많은 언데드 리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주인님. 교단의 사제들은 아무렇지 않게 헛소리를 늘어놓는 작자들입니다. 그들의 말은 믿을 게 못 됩니다. 애초에 숲 바깥으로 노랫소리가 들린다면, 적들도 끌어들이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건 그렇지만.”
데일은 울창한 숲을 휙휙 둘러보았다.
무르하탈의 말마따나, 이런 곳에 선술집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딱히 노랫소리가 들리지도 않는데.’
사제는 떡갈나무 숲에 가면 노랫가락이 들려올 거고, 그 가락을 따라 가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노랫소리 같은 건 들리지 않았다.
‘허탕인가.’
데일이 이 숲을 그냥 우회해야 하나 고민하던 그때였다.
돌연. 숲에서 강한 바람이 불어왔다.
휘이이이!
갑작스러운 바람에 무르하탈이 로브를 여몄다.
“이 무슨. 평범한 바람은 아닌 것 같은데…….”
“어? 이 소리 뭐야?”
“응? 그러게.”
그렇게 말한 건 이번에 새로 합류한 신병이었다.
그들은 귀에 손바닥을 대는 시늉을 했다. 무언가 들리는 모양.
데일이 물었다.
“들리다니. 무슨 말이지?”
“아. 경. 이 휘파람 소리가 들리지 않으십니까?”
“휘파람?”
“휘! 휘! 하는 휘파람인데…… 그치?”
“예. 저도 들리는 것 같은데요. 안 들리시나요?”
무르하탈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아무 소리도 안 나는데, 대체 무슨 소리가 들린다는 거냐! 만약 나와 주인님을 우롱하는 거라면…….”
“좀 닥쳐봐.”
“넵.”
데일은 다시 주위에 흐르는 바람에 다시 귀를 기울였다. 그 역시 이게 평범한 바람이 아니라는 걸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있자, 바람이 얼굴을 부드럽게 쓸며 미약한 소리를 냈다.
휘휘, 하는 휘파람 비슷한 소리.
너무 작은 소리라 집중을 잃으면 금방이라도 놓쳐버릴 것 같지만, 절대 착각은 아니었다.
‘노랫가락……인가?’
데일은 고개를 들었다.
무르하탈은 여전히 아무것도 듣지 못하는지, 두개골만 긁적이고 있었다.
반대로 신병들은 뭔가 감미로운 노래라도 듣는 듯. 머리를 까딱이며 박자를 타고 있었다.
‘과연.’
아무한테나 들리는 소리는 아니라는 건가?
“아무래도 소문이 사실인 것 같다. 이 숲에는 뭔가 있다.”
“으음. 그렇습니까? 확실히, 지금 보니 이 숲 전체에 무언가 기묘한 분위기가 흘러나오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들어가 보시죠.”
데일은 앞장서서 숲 안으로 들어갔다.
나무가 빽빽한 숲길을 거침없이 나아가, 노래가 들려오는 쪽을 향했다.
그렇게 숲 안을 돌아다니길 한참.
돌연. 나무 위에서 작은 새가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사뿐히 바닥에 내려앉았다.
깃털이 새카만 까마귀였다.
“까악! 반갑습니다 신사분.”
데일은 얼간이처럼, ‘까마귀가 말을 하다니?’ 따위의 반응은 하지 않았다.
대신 인사를 받아주었다.
“그래. 반갑다.”
“혹시 신사분께서는 이곳에 손님으로서 온 겁니까, 아니면 침략자로서 오신 겁니까.”
잠시 질문의 의도를 고심하던 데일이 답했다.
“손님으로 온 거다.”
“그렇다면 무기를 모두 내려놓고 와주시길 바랍니다. 뒤편의 용맹한 병사분들도요.”
“나 혼자 가라는 건가?”
“그렇습니다.”
무르하탈이 곧장 화를 냈다.
“건방진 것! 자기 얼굴을 내비치지도 않으면서, 감히 누구보고 무기를 버리라 마라 명령을 내리느냐!”
“원하시지 않는다면 마음대로 하셔도 좋습니다. 다만.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은 감수하셔야 합니다.”
까마귀는 뻣뻣하게 나왔다.
정말 자신이 있거나, 믿는 구석이 있는 모양이었다.
데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나 혼자 무기를 버리고 들어가지.”
“하, 하지만.”
“애초에 싸우러 온 것도 아니고, 궁한 건 우리다. 숙이고 들어가는 수밖에.”
“……언제든 신호하십시오. 곧바로 군을 이끌고 가겠습니다.”
“까악! 따라오시죠.”
까마귀가 훌훌 날아 어디론가로 향했다.
데일은 바닥에 마검을 내려놓은 뒤. 까마귀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그리 머지않아 까마귀가 멈춰 섰다.
“까악. 도착했습니다.”
신비로운 광경이 데일을 기다리고 있었다.
투명한 물이 찰랑이는 자그마한 연못. 그 연못 옆에 서 있는 전형적인 선술집 모양의 건물.
선술집에서는 촛불 빛과 흥겨운 노랫소리가 새어 나왔다.
동화 같은 광경에, 데일은 생각했다.
‘좀 뜬금없군.’
이곳을 만든 게 누군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가 괴짜인 건 확실했다.
“여기로 들어가면 되나?”
“까악! 까악! 까악!”
데일의 질문에 대답 대신 요란하게 운 까마귀가 푸드득 날아가버렸다.
어깨를 으쓱인 데일은 선술집 문을 열었다.
마침 키가 작은 음유시인이 선술집의 한가운데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흑기사 데일은 악마 두르핀과 용감히 맞섰으니! 악마조차 그 힘을 당해내지 못하는구나! 간악하고 비열한 두르핀이 동귀어진을 노리니, 명예로운 흑기사는 스스로의 몸을 던져 사람들을 지켜냈노라!”
한껏 격앙된 어조로 노래하던 음유시인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휘! 휘!”
그는 발을 구르며 요란하게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선술집의 취객들이 맥주잔으로 테이블을 두드린 뒤, 모두 따라서 휘파람 소리를 내었다.
“휘! 휘!!”
“그리하여 흑기사 데일 경은 별이 되어, 저 밤의 여신의 오른편에 앉아 지상을 굽어보시니. 휘! 휘! 이것으로 위대한 흑기사의 모험은 막을 내리노라!”
“와아아아!”
“흑, 너무 슬프고도 감동적인 이야기야.”
취객은 환호성을 터트렸고, 몇몇은 눈물까지 훔쳤다.
분위기가 힘껏 달아오른 걸 눈치챈 음유시인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말했다.
“이것으로 제 신곡 ‘위대한 흑기사의 사랑과 모험, 그리고 승천’은 끝입니다. 하지만 노래에 미처 담지 못한 그분의 이야기는 여전히 많습니다. 데일 경의 이야기를 더 읽고 싶다면, 여기 책이 있으니 구매해주세요! 지금 구매하면 단돈 은화 한 닢! 수익의 일부분은 밤의 신전으로 기부되어, 별이 되어버린 데일 경께도 도움이 될 겁니다.”
“당장 사겠소!”
“나도! 나도 사겠습니다! 3권. 아니. 5권 주세요!”
“닥치고 내 돈을 받아가!”
취객들은 홀린 듯이 책을 사서 챙겨들었다.
이상할 정도로 열렬한 분위기다.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데일은 생각했다.
‘이 노랫소리. 그냥 노래가 아니군. 사람을 홀리는 힘이 깃들어 있어.’
마치 선원들을 노래로 홀려 바다로 끌어들이는 세이렌처럼, 이 음유시인의 노래에는 무언가 있다.
‘아니. 그것보다.’
사람들이 사가는 저 책.
왜인지 낯이 익다.
데일은 성큼 걸어 근처에 있는 취객의 책을 빼앗아 들었다.
“으잉? 넌 뭐야 이 새끼…… 어?”
“잠시만 보겠소.”
“아. 예.”
데일은 책을 휙휙 둘러봤다.
데일에 관한 묘하게 왜곡된 이야기가 적힌 소설책. 한때 상위구역의 베스트셀러였던가?
‘감히 누가 내 이름으로 책을 팔아먹나 얼굴이나 한번 보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그 범인을 오늘 찾은 것 같다.
데일은 열심히 책을 팔아대는 음유시인에게 성큼 다가갔다.
그림자가 드리워지자 음유시인이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데일과 눈이 마주쳤다.
“…….”
“…….”
잠깐의 침묵 사이에, 음유시인의 표정이 휙휙 변했다.
당황. 놀라움. 반가움.
그리고 ‘큰일났다!’하는 감정이 드러난 얼굴.
공연으로 먹고사는 이답게 표정이 참으로 풍부했다.
데일이 물었다.
“내가 누군지 알겠지?
“아. 음. 하하. 그. 살아계셨네요?”
“내가 살아있어 불만인가 보군.”
음유시인은 또르르 눈동자를 굴리더니, 이내 큰 소리로 휘파람을 불었다.
“휘! 휘!”
““휘! 휘!!””
그러자 취객들이 호응하며 일제히 이곳으로 시선이 몰렸다.
음유시인은 데일에게 양손을 펼치며 외쳤다.
“보십쇼! 여기 있는 이가 누구인지!!”
“누구?”
“어. 살벌한데…….”
“검은 갑주의 기사…… 설마 흑기사?”
음유시인이 활짝 웃으며 외쳤다.
“맞습니다! 별이 되셨던 경께서 여러분들의 열띤 성원에 직접 지상으로 내려오셨습니다! 바로 팬 미팅을 위해서 말이죠!”
“……뭐?”
“모두 구입하신 책을 들고 와, 싸인을 받으세요! 분명 나중에 비싼 값으로 되팔 수 있을 거예요!”
“와아아아!”
“흠모하고 있었습니다!”
“싸인 한 번만 해주십시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취객들이 홀린 듯이 데일에게 달려들었다.
그와 동시에 음유시인은 테이블 위로 올라가더니…….
공중제비를 돌고서는 맹렬히 도망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