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57)
황혼
* * *
똑 잘린 석상의 머리를 받은 추종자는 멍하니 있다, 발작하듯이 외쳤다.
“가, 가, 가, 감히!!”
금방이라도 공격할 듯한 태세.
하지만 추종자의 사지는 이미 분질러진 상태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데일은 발광하는 추종자와 눈을 맞추며 물었다.
“이거. 그냥 평범한 석상은 아니군. 그렇지?”
그 차가운 눈빛에 추종자는 얼어붙었다.
“…….”
“밤의 신전에 있는 제단이나, 교단의 본당이랑 비슷한 느낌이라 해야 할까. 듣기로는 매일 같은 시각에 석상을 향해 기도를 올린다지?”
“기도가 아니라 그분의 은혜에 감사드리고, 마땅한 예를 표하는 것뿐이다!”
“그리고 그런 짓을 하는 건 이 마을뿐만은 아닐 테고?”
“그래! 이미 이 땅의 대부분은 우리 동지들이 점령했다! 네깟놈이 뭘 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설령 내가 여기서 무너져도, 곧 동지들이 복수하러 올 것이다!”
데일은 생각을 정리했다.
‘대륙 곳곳에 이런 식으로 석상을 만들어서 숭배하게 시킨다니. 이 황혼이라는 놈이 만약 악마라면…… 좋지 않군.’
데일은 ‘황혼’을 일단 인간의 탈을 쓴 악마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다른 악마들을 발아래에 둘 수 없다고 생각했다.
‘강력한 힘이 없으면 악마를 부릴 수 없어. 그리고 인간이 그 정도의 힘을 얻는 건 어려운 얘기지.’
다만 의문은 남는다.
데일은 왜 이 황혼의 얼굴에서 익숙함을 느끼는 걸까.
‘분명 이 전에 본 적 없는 얼굴인데.’
게다가 이 추종자들은 이제 신을 섬기는 게 아니라 인간을 섬겨야 한다고 외쳐대고 있었다.
마치 오르단처럼 말이다.
황혼을 인간이라 믿는 걸까?
아니면 사람들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전략일까?
만약 그렇다면 황혼은 대단히 교활한 악마일 것이다.
‘모르겠군.’
어쨌든.
대륙 곳곳에서 이 황혼이라는 자의 석상이 세워졌다.
그리고 사람들을 억지로 숭배하게 만들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가장 많은 숭배자를 둔 악마가 탄생할 것이었다.
‘그것만큼은 막아야 해.’
데일에게는 찰나로 느껴졌던 1년간 너무 많은 게 변해 있었다.
잃어버린 시간만큼. 데일은 더 분주히 움직여야 할 것이다.
* * *
데일은 추종자를 죽여 그 생기와 잔혼을 흡수했다.
기억을 읽어보려 했지만, 유용한 정보는 많지 않았다.
이곳 변두리 마을에서는 떵떵거리며 살았지만, 그 역시 크게 보면 말단에 불과했다.
데일의 등장에 주민들은 처음에는 두려움에 떨었다.
흉측한 언데드와 리자드맨이 마을을 배회하니, 겁을 먹을 수밖에.
하지만 사제에게 사정을 전해들은 이들은 이내 환호성을 터트렸다.
“데, 데일 경이라고? 그 흑기사 데일 경? 살아계셨어?”
“와아아아! 살았다!”
“데일 경 만세!”
오래도록 가혹한 노동과 잔인한 대우에 혹사당하던 주민들은 서로를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다.
“이럴 때가 아니지!”
“그 빌어먹을 석상을 부수자!”
“와아아!!”
그들은 황혼의 석상을 향해 한 몸처럼 몰려갔다.
그리고 채석장에서 돌을 자르던 도구를 들고 석상을 마구 두들겼다.
쿠구구구.
석상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바닥에 널브러졌다.
그러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석상이 있던 자리에 주황색 빛무리가 회오리쳤다.
주민들은 갑작스러운 현상에 주춤했다.
하지만 빛무리는 이내 하늘로 솟구치더니, 그대로 자취를 감춰버렸다.
주민들은 빛무리가 사라진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역시. 그냥 석상은 아니라 이건가.’
어쨌거나 이로써 주민들은 진정으로 자유가 되었다.
주민들은 추종자들이 머물던 숙소로 쳐들어갔다.
놈들의 숙소에는 모든 물자가 저장되어 있었다.
무기. 술. 식량.
삶에 필요한 모든 것.
주민들은 술과 식량을 꺼내 축제를 즐겼다.
오랜만에 마음껏 먹고 마시며, 자신을 황혼의 추종자들에게서 해방시켜준 데일을 칭송했다.
“쯧. 시끄럽군. 이래서 심장이 뛰는 것들이란.”
리치 무르하탈은 그런 소란이 싫다는 듯이 적당한 집으로 들어갔고.
“도마뱀 형씨도 마셔봐!”
“카룸!”
“카락! 카카!”
리자드맨들은 처음 먹어보는 맥주가 마음에 드는지, 금방 축제에 어우러졌다.
너무 과하게 마셔 사방에 토사물을 뱉어낸 건 덤이다.
한편. 데일은 사제와 둘이서 면담을 가지고 있었다.
사제가 간절한 눈으로 부탁했다.
“혹. 괜찮으시다면 이곳에 남아 저희와 함께해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황혼의 추종자들이 언제 이곳을 습격할지 모르는지라…….”
“이곳에 계속 남아 있을 생각이오?”
사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이 아니라면 어디로 가겠습니까. 이미 대부분의 지역은 황혼의 추종자나, 도적떼, 악마들이 점령했습니다. 갈 곳이 마땅치 않습니다. 그러니 경께서 함께해주신다면…….”
데일은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지만 나는 이곳에 남을 수 없소. 동료를 만나러 서쪽으로 가야 하오.”
“아아…….”
“차라리 사람들을 이끌고 나와 함께 가는 게 어떻소. 여기 남아 있는 것보다는 나을 텐데.”
잠시 고심하던 사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을 사람들에게 의견을 구해 경과 함께 가고 싶은 이들을 추려내겠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가혹한 학대에 몸이 많이 약해져 있는 상태입니다. 경과 함께 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
데일이 이들을 지키기 위해 이곳에 계속 남아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대신 데일은 한 가지 방책을 제안했다.
“여기서 남쪽으로 좀 가면 버려진 마을이 있소. 늪지 마을이라고 불리던 곳인데, 그곳으로 가는 게 어떻소?”
“늪지 마을…… 말씀이십니까?”
“오지에 있다 보니 습격에서는 좀 더 자유로울 거요. 그리고 위험이 생기면 늪으로 잠시 대피할 수도 있소.”
구미가 당기는 얘기인 듯. 심각하게 고민하던 사제가 말했다.
“나쁘지 않은 얘기군요. 근데, 늪으로 대피하는 건 어렵지 않겠습니까? 제가 알기로 남쪽의 늪에는 별별 포악한 몬스터들이 득시글거리는 걸로 들었습니다만.”
“걱정할 것 없소. 그 포악한 몬스터들을 내가 데려왔거든.”
“아. 그렇다면 저 리자드맨들이……!”
“저 리치도 마찬가지요.”
놀라워하는 사제에게 데일이 이어서 말했다.
“그리고 늪지로 들어가면 큰 소리로 ‘라그나’라고 외치시오.”
“라그나. 말씀이십니까?”
“늪에 사는 하이엘프 이름이오. 뛰어난 전사지. 내 이름을 말하고 적당히 괜찮은 검 하나 선물해주면, 흔쾌히 도와줄 거요.”
“……늪에 왜 하이엘프가?”
“뭐. 어디든 별난 사람이 있는 것 아니겠소.”
당신도 그 별난 사람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사제는 가까스로 참아냈다.
대신 그는 데일을 손을 붙잡고 깊은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경께서는 진정으로 명예로우신 분입니다! 평생을 빛을 섬겨온 몸입니다만, 지금만큼은 밤의 여신께 감사할 수밖에 없군요.”
“신경 쓰지 마시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니.”
그러자 사제는 더욱 감격한 얼굴을 했다.
하지만 이내 미안한 기색을 보였다.
“이렇게 큰 은혜를 입었는데, 정작 갚을 길이 없군요. 이거 참…….”
“바깥소식을 아는 게 있으면 좀 알려주시오. 나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사제의 표정이 흐려졌다. 그는 진심으로 미안해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희도 오래도록 이곳에 갇혀 지냈던 터라 바깥의 소식은 모릅니다. 그저 이레네가 무너지고, 황혼의 추종자라는 것들이 기승을 부리는 것밖에는…….”
데일이 아는 것과 크게 다를 것 없는 지식이었다.
사제는 생각보다 아는 게 적었다.
데일이 낭패감을 느끼던 그때.
사제가 조심히 말했다.
“하지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은 알고 있습니다.”
“오. 말해주시오.”
“사실 어디까지나 소문이라, 그 진위는 불분명한지라…….”
“그래도 일단 말해주시오. 듣고 내가 판단하겠소.”
주저하던 사제가 입을 열었다.
“이곳에서 북서쪽으로 이틀거리에 떡갈나무 숲이라고 있습니다. 그 떡갈나무 숲에서 귀를 기울이고 있노라면, 특이한 노랫가락이 귓가를 맴돈다고 합니다.”
“노랫가락?”
“예. 그 노랫소리를 따라가면 특별한 선술집이 나올 겁니다.”
데일이 미간을 좁혔다.
산중에 뜬금없이 선술집이 있다고?
동화 같은 얘기였다.
“물론 믿기 힘드시겠죠. 하지만 단순히 헛소문이라기에는 워낙 많은 사람들의 증언이 있었던 지라.”
“흠.”
“그 선술집의 주인은 음유시인이자 작가, 마법사인데, 아주 특별한 인물이라고 합니다. 대륙의 모든 일들을 훤히 꿰고 있다고 하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대륙의 소식을 듣기 위해 그곳을 찾아간다고 하니,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그곳만한 곳이 없을 겁니다.”
사제도 이번에 이 마을을 탈출해, 그 선술집으로 향할 생각이었다고 한다.
거기서 도움을 줄 사람을 찾아, 이 마을에서 추종자들을 몰아내는 게 목표였다고.
‘썩 믿기지 않는 소문인데…….’
하지만 사제는 소문이 사실이라고 반쯤 확신하고 있었다.
단순히 헛소문이라고 하기에는, 그 선술집에 가봤다고 증언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던 것이다.
데일이 보기에 이 사제는 멍청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의 판단을 어느 정도 믿어보기로 했다.
‘어차피 방향도 맞으니까, 헛소문이라도 상관없겠지. 게다가 음유시인 겸 마법사라.’
조금 흥미가 생겼다.
“한번 들러보겠소.”
* * *
데일은 상황을 솔직하게 설명하며, 주민 중에서 함께 따라올 이들을 모집했다.
“원한다면 따라와도 좋소. 하지만 미리 말하겠소. 우리를 따라오는 것보다 여기 남는 게 더 안전할 것이오. 우리는 가면서 적이 있으면 피하기보다는 싸울 것이고, 전투도 많이 치를 것이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오.”
사람들은 웅성거리다가, 대부분은 이곳에 남기로 결정했다.
다만. 개중에는 데일과 함께 하길 원하는 이들도 있었다.
“경을 따라가면, 황혼을 따르는 그 개새끼들을 죽일 수 있는 겁니까?”
“그래.”
“그럼 받아주십시오. 놈들은 제 부인과 딸을 잔해하게 살해했습니다. 복수하게 해주세요.”
“제 가족을 채찍으로 때려 죽였습니다. 어머니의 비명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황혼의 추종자들에게 강한 원한을 지닌 이들 20여 명이 합류 의사를 보였다.
데일은 그들과 일일이 악수하며, 그들을 부하로 받아들였다.
“칸입니다.”
“라빈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반갑다. 데일이다.”
그사이.
무르하탈이 데일에게 다가와 말했다.
“놈들의 거처를 털어, 무기와 식량과 금화를 챙겼습니다. 제법 두둑이 챙겨두고 있더군요.”
고개를 돌리니, 무르하탈의 언데드 군단의 무장이 이전보다 좋아진 게 눈에 보였다.
원래는 맨손으로 싸우던 스켈레톤들에게도 검이 한 자루씩 들려 있었다.
카리악이 이끄는 리자드맨 무리도 각자 단창과 투구를 하나씩 뒤집어쓰고 있었다.
신체 구조 탓에 갑옷은 못 입지만, 새로 얻은 쇳조각에 리자드맨들은 순수하게 기뻐했다.
데일이 물었다.
“전부 털어버린 건 아니겠지?”
“주인님의 말씀대로, 남은 주민들이 사용할 만큼의 물자는 남겨놓았습니다만…… 그냥 전부 챙기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굳이 그런 자비를 베풀어야 하는지 저는 여전히 이해가 안 가는군요.”
무르하탈은 몇 번이나 의문을 제기하고는 했다.
아무래도 제대로 된 설명이 필요해보였다.
데일은 무르하탈을 슬쩍 내려다본 뒤, 툭 물었다.
“무르하탈. 너는 스스로를 사람이라고 생각하나?”
재밌는 농담이라도 들은 것마냥, 무르하탈이 웃었다.
“클클. 이 뼈다귀 몸을 보십시오. 제가 어떻게 사람이겠습니까.”
“나는 내가 사람이라 생각한다.”
웃음을 뚝 그친 무르하탈이 물었다.
“……진심이십니까?”
“그래. 그리고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 정도 배려는 해야지.”
무르하탈의 안광이 당황 어린 감정으로 넘실거렸다.
처음에 언데드라 불렀을 때 화를 내길래 의아해했건만…….
‘본인을 사람이라 생각하는 반언데드라. 이 흑기사는 정말로 이상하군.’
하지만 무르하탈은 조금 회의적이었다.
‘이건 마음의 빈틈이다. 아무리 강한 존재라도, 마음에 빈틈이 있다면 언젠가 약점을 보이고 말지.’
무르하탈은 인간성이라는 것에 큰 가치를 두지 않았다.
그는 오랜 시간을 살아왔고, 많은 사람들을 보아왔다.
‘세상 착하게 굴던 놈들도, 궁지에 몰리면 결국 제 본색을 드러냈지.’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신념과 의지를 관철하는 자는 드물다.
그게 사람이다.
그렇기에 데일의 신념이 너무나 우습게 보였다.
하지만 무르하탈은 굳이 데일을 설득하려 하지 않았다.
아직 데일에게 마음 깊이 충성하는 것도 아닌데다가, 한 가지 기대감도 들었다.
‘훗날. 그 빈틈이 언젠가 너의 발목을 잡고, 뒤통수를 찌를 것이다. 그때도 네가 그 마음을 유지할 수 있을까? 아니면 인간성 따위는 내던지고, 본능에 몸을 맡길 것인가. 그 순간이 실로 기대가 되는구나. 클클클!’
텅!
데일은 사악한 미소를 짓던 무르하탈의 머리를 후려쳤다.
리치의 두개골이 바닥을 데구르르 굴렀다.
“???”
당황한 무르하탈이 물었다.
“저. 갑자기 왜 공격을?”
데일은 무심하게 말했다.
“그냥. 왠지 속으로 재수 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
무르하탈은 반박할 말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