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56)
황혼
* * *
무르하탈의 언데드 군세가 상대를 덮쳤다.
이 갑작스러운 공세에 추종자들은 크게 당황했다.
“무, 무슨!”
“피 냄새가 언데드들을 불러모은 건가?”
“언데드 무리가 이 근방에 돌아다닌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는데…….”
어쨌거나 맞서 싸워야 한다.
추종자의 우두머리 격 되는 사내가 언데드를 향해 채찍을 휘둘렀다.
쌔액!
공기를 찢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채찍 날이 달려오던 좀비의 몸을 반 토막 냈다.
무르하탈이 감탄했다.
“오호. 제법.”
그러고는 데일에게 물었다.
“주인님. 일이 끝나면 저놈을 제가 시체로 되살려도 되겠습니까?”
“마음대로 해라.”
“자비에 감사드립니다. 자 시체들아! 더욱 몰아쳐라!”
언데드의 무시무시한 점은 두려움을 모른다는 점과 그 압도적인 숫자다.
아무리 하급 언데드라도 그 수가 수백에 달하면 무시할 수 없는 위력을 발휘한다.
언데드가 쏟아져 오자 탈출을 감행하던 주민들도 절망에 빠졌다.
“신이시여 어찌 이런 일이.”
“도망친 곳에 언데드라니…… 정녕 신께서 우리를 버리셨단 말인가.”
실의에 빠진 주민들은 바닥에 주저앉았다.
저항할 힘도 없었다.
하지만 이윽고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언데드 무리가 이쪽에 다가오다가 이내 추종자들을 향해 휙 방향을 틀었다.
마치 주민들한테는 관심도 없다는 듯이.
“뭐, 뭐지?”
“글쎄.”
사람들은 어리둥절해하는 와중에도 추종자들은 하나가 되어 언데드에 맞섰다.
데일은 추종자들의 실력을 가늠하기 위해. 일부러 무르하탈에게 싸움을 맡겼다.
‘제법인데.’
대열을 이룬 황혼의 추종자들은 몰려오는 언데드들을 훌륭하게 막아내고 있었다.
개개인의 실력이 매우 뛰어난데다가 합도 잘 맞는다.
‘그리고 악마의 힘을 받은 자들 특유의 광기도 옅어.’
이성적이고 차가운 전사들.
데일의 본능이 말했다.
황혼이라는 걸 섬기는 자들은 악마 숭배자나 하수인과는 조금 결이 다르다고.
‘그보다는 밤의 신도나 빛의 신도에 더 가까운 느낌인데.’
제물을 바쳐 등급을 올리는 신도들과 비슷한 느낌이라 해야 할까.
그렇게 데일이 상대를 분석하는 사이에도 언데드들은 속절없이 스러지고 있었다.
보다 못한 데일이 한마디 했다.
“내가 도와줘야 하나? 벌써 30은 쓸려 나간 것 같은데.”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주인님. 하급 언데드는 언제든 충원할 수 있는 소모품입니다. 저들은 어디까지나 칼받이. 진짜는 이제부터죠. 클클.”
무르하탈이 사악한 웃음을 흘리며 손을 앞으로 뻗었다.
불길한 마력이 휘몰아치다, 전장으로 퍼져나갔다.
마력이 내려앉은 곳은 바닥 곳곳에 토막난 시체들이었다.
이윽고 마력을 빨아들인 시체가 빵빵하게 부풀기 시작했고…….
펑! 퍼펑!
성대하게 터져나가기 시작했다.
“크아아악!”
“어억!”
시체 폭발.
폭발과 함께 뼛조각과 살점이 휘날리며 추종자를 덮쳤다.
뼛조각이 후두둑 박혀 들었다.
뼈 자체는 따끔할 뿐이다. 칼이나 화살에 비해서는 견딜만했다.
문제는. 이게 평범한 뼈가 아니라는 점이다.
“커. 커어억!”
피부가 푸르딩딩하게 변한 추종자가 목을 부여잡고 바닥에 쓰러졌다.
뼈에 깃든 시체 독이 순식간에 퍼져나간 것이다.
무르하탈은 상대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만족스럽게 바라봤다.
“어떠십니까 주인님. 흑마법으로 증폭시킨 시체 독입니다. 제 장기입지요.”
“나쁘지 않군.”
“클클클. 감사합니다. 놈들은 죽는 그 순간까지도 고통에 몸부림칠 겁니다.”
데일은 사악한 웃음소리를 흘리는 무르하탈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거. 왠지 우리가 나쁜 놈인 것처럼 보이는데.’
어쨌든, 잘 싸우면 그만이었다.
무르하탈이 활약하는 사이.
리자드맨들도 놀고 있지만은 않았다.
카리악이 동료들을 이끌고 어둠 속에 녹아들었다.
늪지대에서 오래도록 살아온 이들은 기척을 죽이는 법을 잘 알았다.
타고난 암살자인 것이다.
리자드맨들은 수풀을 경유해 추종자들의 뒤편으로 이동했다.
마침 그곳에는 뒤로 물러난 주민들이 있었다.
그들은 갑작스러운 리자드맨의 등장에 경악했다.
“어, 언데드로도 모자라 이번엔 리자드맨이라니!”
“시, 신께서는 어찌하여 우리를……!”
하지만 이번에도 리자드맨들은 사람들에게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닥치라는 뜻으로 혀를 날름거린 리자드맨들은 사람들을 지나쳐 추종자들에게 향했다.
“어?”
이번에도 주민들은 어리둥절하게 서로를 쳐다봤다.
그렇게 추종자들에게 접근한 리자드맨들이 일제히 몸을 날렸다.
가장 바깥쪽에 있던 추종자에게 달려들었고, 그를 대열에서 낚아챘다.
“어어, 뭐 뭐야!”
그게 그의 마지막 말이었다.
추종자를 낚아챈 리자드맨들은 그를 순식간에 둘러싼 뒤 난도질했다.
추종자의 우두머리는 당황했다.
“이 도마뱀들은 또 뭐야!!”
하지만 그는 빠르게 냉정을 되찾았다.
상황이 극도로 불리했다.
‘하다못해 목책을 끼고 싸웠으면 훨씬 나았을 텐데. 마을 안에 남아 있는 다른 동지들이라도 있었으면!’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예상치 못한 적을 예상치 못한 시점에 맞닥뜨렸다.
그 불운에 대한 대가로 추종자들은 전부 죽을 위기였다.
우두머리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우선 이 상황을 이해해야만 했다.
‘갑자기 언데드 무리와 리자드맨이 덤벼들다니. 게다가 둘이 함께한다고? 부자연스러워. 분명 놈들을 하나로 묶어놓는 우두머리가 있을 거다.’
정답이었다.
‘그런 걸 할만한 놈은…… 그래! 저 리치가 이곳의 우두머리인 거야!’
오답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오해기도 하다.
언데드 군세를 조종하고, 시체를 펑펑 터트린 건 모두 저 리치였으니.
당연히 무르하탈을 이 흉측한 무리의 지도자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저놈을 친다!’
사령술사의 가장 큰 강점은 혼자서 수천의 병력을 부릴 수 있다는 것.
단점은 본신의 힘이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사령술사가 죽으면 그가 소환한 언데드는 죽음으로 돌아가던가, 제어를 잃고 날뛰게 된다.
마음을 먹은 추종자가 흉측한 기세를 터트렸다.
쐐애액!
그는 연거푸 채찍을 휘둘러 순간적으로 길을 뚫었다.
빈 공간을 향해 맹수처럼 뛰어들었고, 놀라운 움직임으로 순식간에 무르하탈에게 다다랐다.
‘힘을 숨기고 있었나!’
당황한 무르하탈이 급하게 대응하려 했다.
하지만 조금 늦은 감이 있었다.
추종자의 입가가 성공에 대한 확신으로 휘어졌다.
추종자는 채찍을 버리고. 품에서 검을 꺼내 곧장 무르하탈에게 내질렀다.
“이걸로 끝이다! 죽음으로 되돌아가라!”
혼신의 일격을 담은 찌르기.
그 검날은 분명 무르하탈의 머리를 부술 수 있을 것 같았으나…….
텁.
일격은 중간에 저지당했다.
너무나 허무하게.
“거기까지.”
데일은 추종자의 팔을 붙잡았다.
당황한 추종자가 안간힘을 쓰려했지만, 팔을 빼낼 수는 없었다.
“너희들의 수준. 적당히 알 것 같다.”
데일은 차분히 말했다.
“별거 없군.”
* * *
우두머리가 사로잡힌 순간부터는 끝이었다.
남은 추종자들은 압도적인 물량 앞에 휩쓸려버렸고, 이내 언데드로 되살아나, 무르하탈의 부하로서 함께 싸우게 되었다.
데일은 우두머리를 붙잡았다.
사지가 모두 부러진 우두머리는 저항조차 할 수 없었다.
“크윽! 흑기사? 밤의 여신을 따르는 노예가 이런 곳에 남아 있었다니.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것 같나? 내 동지들이 너를 산 채로 찢어버려, 개 먹이로…….”
“너희들은 래퍼토리를 좀 바꿀 필요가 있을 것 같군.”
“뭐?”
“일단 사람들을 불러와라.”
“예, 주인님.”
그때까지도 벌벌 떨고 있는 주민들에게 무르하탈이 다가갔다.
그리고 엄숙하게 말했다.
“하찮은 인간들아. 뭘 하고 있느냐. 너희들의 목숨을 살려주신 주인님께, 감사 인사를 올리지 않고!”
“아, 아으.”
“무고한 사람들에게 겁주지 마라. 허리를 분질러 버리기 전에.”
“죄, 죄송합니다.”
데일은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살벌한 생김새의 흑기사가 다가오자 아무리 간 큰 사람이라도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무, 무슨 생긴 게.’
‘기분 탓인가. 갑자기 추워진 듯한 기분이 들어…….’
‘투구 옆에 난 뿔 같은 건 또 뭐야. 악마. 역시 악마인가?’
사람들의 리더 격인 사내가 앞으로 나왔다.
마음속으로 신께 한번 기도한 뒤, 애써 용기를 쥐어짜 데일의 앞에 섰다.
“다, 다, 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물론. 아무리 용기를 쥐어짜도 목소리가 떨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데일은 그런 사내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은은하게 느껴지는 경건한 분위기.
“교단의 사제요?”
생각보다 정중한 어조에 사내는 간신히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네, 네. 맞습니다. 스스로 사제라고 하기에도 뭣할 정도로 말단이었지만…… 그래도 신의 말씀을 공부했었지요. 당신은…… 혹시 흑기사입니까? 밤의 여신의 기사인?”
“맞소.”
“어. 흑기사는 대부분 이성이 없어, 대화가 안 통하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내가 좀 특이한 편이긴 하지.”
그 말대로였다.
눈앞의 흑기사는 사제의 상식을 뛰어넘는 사람이었다.
‘잠깐. 대화가 통하고, 말이 통하는 흑기사?’
사제는 분명 그 비슷한 소문을 이전에 들었던 적이 있다.
잠시 머릿속 기억을 뒤집던 사제가 조심히 물었다.
“혹시 경의 성함을 알려주시겠습니까?”
“데일이오.”
“데일? 저, 정말 데일 경이 맞습니까? 수많은 업적을 세우고, 악마까지 살해한 영웅, 데일 경이요!”
“영웅은 아니고. 악마살해자라고 불리기는 했소.”
“허어!”
사제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하, 하지만 제가 듣기로, 경께서 악마와 함께 장렬히 폭사하시고 별이 되었다고 들었는데…….”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을 별로 만들어버리고 있어.’
데일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운이 좋아 목숨을 건졌소. 회복하는 데에 시간이 좀 걸렸지. 근데 내가 없는 몇 개월간, 세상이 많이 변한 것 같소.”
“예. 많은 게 변했지요…… 근데, 몇 개월이라니요?”
“왜 그러시오.”
데일이 의아해하자, 사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 경께서 사라지신 지 1년이 훌쩍 넘기셨잖아요.”
* * *
데일이 두르핀의 자폭에 휘말린 건 봄.
그리고 지금은 여름이다.
데일은 당연히 3개월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3개월이 아니라, 1년하고도 3개월이라고?’
시간은 생각보다 더 많이 흘러가 있었다.
충격에 빠져 있기에는 시간과 장소가 좋지 않았다.
사제에게 더 자세한 사정을 듣기 위해. 그리고 사로잡은 우두머리에게서 정보를 얻기 위해.
우선은 마을로 돌아가야 했다.
마을에는 여전히 추종자들이 지키고 있었다.
이제 갓 해가 떠오르고 하루를 시작한 시간.
전날 밤에 일을 떠난 동지들이 돌아오지 않자, 추종자들은 불안한 기색을 보였다.
데일은 무르하탈에게 말했다.
“정리해.”
“해가 뜨기 전에 마무리하겠습니다.”
언데드 무리가 목책을 향해 달려들었다.
땡땡땡!
비상을 알리는 종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주민들은 혼란에 빠지고, 추종자들도 우왕좌왕했다.
그런 혼란 속에 언데드와 리자드맨이 공세를 펼쳤다.
“어, 어디서 몬스터들이!”
“아아악!”
이미 우두머리도 여기에 사로잡혀 있는 마당에, 몇 안 남은 추종자는 오래 버티지 못했다.
얼추 상황이 마무리되고.
무르하탈이 고개를 숙이며 팔을 내밀었다.
“자. 가시지요 주인님.”
“수고했다.”
“이 정도는 별로 어려울 것도 없습니다.”
“그래. 어려운 상대는 아니긴 했지.”
“…….”
데일을 필두로 리자드맨과 언데드 무리, 그리고 함께 온 주민들이 마을로 들어섰다.
주민들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벌벌 떨다, 데일이 선두로 들어오자 더욱 공포에 질렸다.
하지만 뒤이어 들어오는 주민들을 보며 화색을 띠었다.
“사제님!”
“어떻게 된 거예요!”
“저분과 그 동료들이 우리를 구해주셨습니다.”
“……저 괴물들이요?”
“쉿. 말조심하세요.”
주민들이 웅성거렸지만 이런 반응은 익숙하다.
데일은 사제에게 말했다.
“우선 그 황혼이라는 놈을 보고 싶은데.”
“아. 여기로 따라오시죠.”
주민들이 매일 저녁 감사를 올려야 했던 황혼의 석상은 마을 중앙에 있었다.
석상은 마치 신전처럼 회색 석조 건물 안에 있었다. 꾀죄죄한 주민들의 모습과는 대비될 정도로 웅장한 모습이었다.
‘신을 모시는 제단 같은 느낌인데.’
채석장에서 돌을 잘라다 날랐던 건, 모두 이 건물을 짓기 위해서였다.
데일은 안으로 들어갔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석상과 눈을 마주쳤다.
‘이놈이 황혼?’
데일도 아는 얼굴이다.
아르구르의 기억을 엿봤을 때, 아르구르에게 명령을 내리던 괴인이다.
아마도 이레네의 멸망의 주범이자 기사단장을 죽음으로 이끌었을 인간.
처음 보지만, 묘하게 낯이 익은 존재.
이 웅장한 석상 아래에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우리를 굽어살피는 건 빛도 밤도 아닌, 오직 황혼뿐이다.]뒤늦게 끌려온 추종자 우두머리가 석상을 보며 황홀감에 젖었다.
“아아. 우리의 진정한 주인이시여. 언제봐도 아름답습니다.”
“이게 네 우두머리냐?”
“아니. 우리 모두의 우두머리이자 너 같은 괴물을 단죄할 분이지!”
추종자는 왜인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외쳤다.
그 모습이 조금 띠꺼웠다.
데일은 고개를 돌렸다. 주먹을 쥐었고. 그대로 석상의 목을 향해 내질렀다.
꽈릉!
아무리 단단하게 만든 석상이라도, 데일의 주먹을 버텨낼 수는 없었다.
황혼의 머리 부분이 뚝, 떨어져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
데일은 벙쪄 있는 추종자에게 석상의 머리를 내밀었다.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