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33)
추격
* * *
거인.
인간과 생김새는 비슷하나 그 신장이 족히 두 배는 큰 괴물들.
타고난 괴력은 물론이고 나름대로 지능도 있어 상대하기 까다로운 놈들이다.
하지만 괴력과 지능은 거인의 가장 큰 무서운 점이 아니다.
이 세상에 똑똑하고 강한 괴물은 널리고 널렸다.
거인들이 골치 아픈 점은 따로 있다.
절대 원한을 잊지 않는다는 것.
어찌어찌 거인을 사냥한다 해도, 그 동료나 가족들은 대를 이어 원한을 기억하며, 복수에 성공할 때까지 잊지 않는다.
망나니 왕자가 거인을 잘못 건드렸다가, 몇 세대 뒤에 왕국이 멸망한 이야기는 이 세계에서 너무나 유명하다.
그렇기에 거인의 영역이 있으면 그냥 피해 가는 게 상책이다.
맞닥뜨렸다가 싸우는 것도 골치 아프고, 싸우다 죽여버리면 더욱 큰 문제이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무감정하던 마젤의 눈이 더욱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그곳에 거인이 있다는 걸 먼저 말했어야 하지 않소.”
“그, 하, 하하. 음. 면목이 없습니다.”
하켄은 변명도 못 하고, 그저 눈알만 또르르 굴렸다. 이제 와 데일이 결정을 번복할까 걱정되는 탓이다.
데일은 생각에 잠겼다.
‘도시에서 남쪽 산에 있는 거인 가족. 그래. 게임에서도 몇 번 마주쳤었지.’
사전 정보 없이 잘못 들렀다가는 끔찍하게 살해당할 수 있는 지역이라 기억에 남는다.
다만, 거인은 소문처럼 그렇게 흉악하기만 한 이들은 아니다.
“거인의 영역을 무사히 지나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 그게 뭡니까.”
하켄이 화색을 띠며 물었다.
마젤도 꽤나 궁금한지, 시선을 이쪽으로 향했다.
데일이 설명했다.
“첫 번째 방법은 통행세를 내는 거다.”
“토, 통행세 말입니까? 돈 같은 걸 내면 됩니까?”
“아니. 거인에게는 소나 양 같은 가축을 통째로 바쳐야 한다.”
거인은 식성이 좋다. 그리고 고기를 좋아한다.
그들은 직접 가축을 기르기도 하지만, 고기는 언제나 부족하다.
하켄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나 양이라……. 가격이 꽤 나가겠지만 그 정도 돈은 얼마든지 낼 수 있습니다!”
“그 가축을 지금 어떻게 구할 생각이오.”
마젤의 지적에 하켄은 머리를 긁적였다.
“음. 근처 마을에서…….”
“그러면 또 시간이 끌릴 것인데, 그건 마법사를 앞지른다는 목표에서 벗어나는 것 아니오?”
마젤의 말이 옳았다.
어느 세월에 통행료로 사용할 가축을 구하겠는가. 심지어 그 가축을 데리고 이동하는 것도 일이었다.
하켄이 다시 데일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
“있다. 거인과 내기를 하는 거다.”
“내기. 말입니까?”
“거인과 승부를 걸어 이기면, 무사히 통과할 수 있다.”
“내기라니…….”
잠시 내기에 대해 생각하던 하켄이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그 내기에서 패하면 어떻게 됩니까?”
데일은 곧바로 답했다.
“죽는다. 바로 잡아먹히거나, 노예로 부려지다가 잡아먹히거나.”
“엑.”
하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거인들과 내기를 벌여 이기는 건 현실적으로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데일은 거인을 상대로 승리할 자신이 있었다.
“걱정하지 마라. 난 이미 몇 번이고 거인과 내기를 이긴 적이 있다.”
“그, 그게 진짜입니까?”
“그래.”
그제야 하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반면에 마젤은 내색하지는 않을 뿐, 속으로 감탄했다.
‘놀랍군. 거인에 대한 정보는 나도 잘 모르는데.’
특기는 추적이라 하나, 그 역시 업계에서 잔뼈 굵은 용병이다.
그런 자신도 모르는 정보를 데일이 알고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신이 난 하켄이 말했다.
“그러면 정해졌네요. 거인의 영역으로 마법사를 앞지릅시다.”
“그러면 나는 이대로 계속 추적하겠소. 마법사가 중간에 경로를 틀 수도 있으니 말이오.”
“혼자서 괜찮겠나?”
데일이 묻자 마젤은 한쪽 입꼬리만 올려 웃었다. 마치 난생처음 웃어보는 사람처럼 어색한 미소였다.
“나는 원래 혼자 일하오. 카달이나 가란드의 권유가 아니었다면 이번에도 혼자 일했을 거요.”
“싸움에 자신 있나 보군. 마법사를 상대하는 게 쉽지 않을 텐데.”
“싸움엔 자신 없소. 하지만 이건 싸움이 아니라 사냥이지 않소?”
대단한 자신감이다.
하지만 이 사냥꾼에게는 그 자신감에 걸맞은 실력이 있을 것이다.
마젤이 이어 말했다.
“그리고 이번 일은 가란드에게 모두 보고할 것이오.”
“알았다. 만약 너 혼자서 마법사를 사냥한다면, 우리 몫의 의뢰비까지 다 네게 주겠다.”
“사양하지 않겠소.”
지금 하켄과 데일의 행동은 분명 문제가 있었다.
같은 팀원인 마젤의 의사를 무시했으며, 자칫 의뢰를 실패할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한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마젤은 둘이 무슨 일을 하든 묵묵히 자기 역할을 했다.
질질 짜는 하켄을 보면서도 늘 이성적이게 판단했고, 옳은 건 옳다. 아닌 건 아니다라고 주저 없이 말했다.
자칫 남들에게 미움받을 수도 있지만, 마젤은 그런 걸 신경 쓰지 않았다.
데일은 그 점을 높이 샀다.
‘나중에 같이 일해도 나쁘지 않겠군.’
계획이 정해지자 다시 적막이 찾아왔다.
하켄은 조금이라도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 눈을 감았고, 마젤과 데일은 무기를 손질했다.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아까처럼 숨 막히는 침묵은 아니었다.
* * *
하켄과 마젤은 짧게 잠을 잔 뒤, 곧바로 일어났다.
하켄은 피로가 다 가시지 않은 얼굴로 창밖을 보았다.
“지독하게도 쏟아지네요.”
여전히 밖은 장마가 한창이었다.
어두컴컴한 하늘에는 빗방울이 하염없이 쏟아졌다.
데일이 마젤에게 물었다.
“흔적이 지워지지는 않았나?”
“아직 희미하게나마 남아있소. 충분히 따라갈 수 있소.”
셋은 다시 추적을 시작했다.
마젤은 이동하다 사냥감이 흔적을 살피고, 다시 이동하기를 반복했다.
하켄은 그런 마젤이 흔적을 살필 때마다 그의 주위에 방패를 들고 빈틈없이 경계했다.
마젤이 조금이라도 작업에 집중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그렇게 반나절을 걸어가자 초목이 우거진 산이 나타났다.
원래는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었으나, 이제는 ‘거인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곳이었다.
산의 초입에서 마젤이 말했다.
“놈이 여기서 잠시 머뭇거렸소. 산을 넘을까 고민했을 것이오.”
“하지만 거인 때문에 결국 포기했고 말이죠?”
“그렇소. 놈이 그래도 제정신이 박혀있다는 증거요. 정상적인 생각을 가진 인간이면 거인의 영역을 지나치지는 않을 테니.”
데일과 하켄이 정상이 아니라고 비꼬는 말이기도 했다.
마젤은 둘에게 다시 한번 물었다.
“지금이라도 마음을 바꾸는 게 어떻겠소. 거인은 너무 위험하오.”
하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무사히 통과할 방법도 있고요. 그렇죠 데일 경?”
“그래.”
“후우. 그렇다면야.”
나직이 한숨을 내쉰 마젤이 말했다.
“시간이 되어도 안 돌아온다면 길드에는 사망했다고 보고하겠소. 괜히 조사대를 꾸려서 애꿎은 이들이 죽게 둘 수는 없으니.”
“그래.”
“오히려 마젤이 서두르는 게 좋을 겁니다. 안 그러면 우리 둘이서 마법사 놈을 죽여 버릴 테니.”
하켄의 농담 아닌 농담에 마젤은 웃지 않았다. 오히려 데일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래. 그럴 수도 있겠군. 그럼 이만 가보겠소.”
마젤은 짐을 챙겨 들고 마법사의 흔적을 쫓아 사라졌다. 이런 곳에서 혼자 움직인다면 겁이 들 법도 하건만.
마젤의 등에서는 그런 기색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무거운 짐을 벗어 던진 여행자처럼, 홀가분하게까지 느껴졌다.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데일이 말했다.
“우리도 가지.”
“예.”
둘은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빛에 잔뜩 젖은 흙과 나뭇잎은 자칫 잘못 발을 디디면 넘어지기 십상이었다.
바닥을 구를 뻔한 하켄이 욕지거리를 내뱉으려다, 그래도 억지로 긍정적으로 말했다.
“그래도 지랄 맞은 날씨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뭐가.”
“거인의 영역을 지난다고 꼭 거인을 마주치는 건 아니잖아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거인의 산은 넓다. 운이 좋으면 거인을 마주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날씨에는 거인도 자기 동굴에 틀어박혀 있을 거 아니에요? 비 맞는 걸 좋아하는 머저리는 없으니까요.”
“그건 일리가 있군.”
어디까지나 희망 사항일 뿐이지만, 나름 근거는 있는 희망이다.
둘은 그 이후부터는 입을 열지 않았다. 거인은 특히 귀가 좋으니, 굳이 소리를 내서 좋을 게 없었다.
산의 중턱으로 올라서자 점점 초목이 뜸해졌다.
그 대신 황토색 바위와 흙으로 이루어진 지대가 나타났는데, 하켄이 남쪽을 가리키며 소곤댔다.
“저기 협곡을 건너서 내려가고, 거기서 좀 더 가면 마을이 멀지 않습니다. 바로 갑시다.”
“그래.”
하켄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걸음을 옮겼다.
몸을 가려줄 수목이 없으니, 거인 눈에라도 띌까 두려웠다.
하지만 한참을 걸어도 거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벌벌 떨던 하켄도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자신감을 되찾아갔다.
그는 자기 예측이 맞아떨어졌다고 확신했다.
‘그래. 누가 이런 날에 밖으로 나오겠어.’
최고의 결과다.
거인을 마주치지 않고 산을 지나갈 수 있다니.
‘역시 신은 용기 있는 자의 편이지!’
하켄은 웃으며 모퉁이를 돌았다. 이제 모퉁이에 있는 길을 따라 협곡을 건너가기만 하면 되었다.
하켄은 저도 모르게 속도를 내려 했고……. 데일이 그 뒷덜미를 붙잡았다.
“데일 경?”
데일은 하켄을 뒤로 끌어 모퉁이에서 거리를 벌렸다. 그러자 협곡으로 이어지는 길이 조금이지만 보였다.
무언가 거대한 게 그 길을 막고 있다는 것도.
족히 3미터는 넘는, 흉측한 생김새의 거인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하늘을 향해 입을 벌리고 있었다.
빗방울이 큼직한 입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아―.”
“비, 기분 좋다. 비 맞으면 씻을 필요 없다. 냄새 안 난다.”
있었다. 비 맞는 걸 좋아하는 머저리들이.
하켄은 손으로 입을 텁 가렸다.
입을 조심하라는 데일의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하켄이 굳어 있자니, 거인 중 하나가 코를 벌름거렸다. 그러다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인이 놀란 얼굴로 말했다.
“인간? 인간이다!”
“인간은 맛있다!”
거인 가족이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오랜만의 별식에 잔뜩 흥분했다.
“저놈. 저놈은 살이 많아 보인다.”
“오른쪽 검둥이는 껍질에 둘러싸여 있다.”
“껍질째 씹어먹으면 된다.”
아무래도 검둥이는 데일, 껍질은 갑옷을 의미하는 듯하다.
데일은 거인 가족이 더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전에 앞으로 나섰다.
“우리는 너희에게 잡아먹히러 온 게 아니다. 이 길을 지나가고 싶다.”
아빠 거인이 미간을 좁혔다. 그는 어눌한 말투로 말했다.
“여기, 우리 영역이다. 영역을 지나가면 통행세 내야 한다. 하지만 너희한테는 통행세 없다. 그러니 우리한테 먹혀야 한다.”
“……거인치고는 제법 논리적인데요?”
데일이 한 발자국 더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너희에게 내기를 제안한다. 내기에서 이기면 우리를 그냥 보내줘라.”
거인들은 서로 눈치만 살폈다. 아무래도 내기를 하는 게 썩 내키지 않는 듯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내가 아는 거인들은 내기라면 환장하는데.’
거인 가족은 자기들끼리 쑥덕거렸다.
“내기하고 싶지 않다. 또 지는 건 싫다. 고기 먹고 싶다.”
“하지만 저 인간. 그 무서운 인간이 아니다.”
“그냥 무시하고 먹어치우자.”
“으음.”
어째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갔다. 하켄이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데, 데일 경. 뭔가 이상한데요? 내기 좋아하는 놈들 아니었어요?”
투구를 긁적이던 데일이 하켄의 어깨를 잡았다. 이럴 때 쓸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었다.
“도발해.”
“예? 아…….”
알아들은 하켄이 거인을 향해 크게 외쳤다.
“설마 겁먹었냐 이 새끼들아!? 너희 같은 놈들이 우리같이 작은 인간들한테 겁먹었다니. 이거, 겁쟁이 새끼들이었군! 덩치가 아깝다!”
자존심이 긁힌 아빠 거인이 즉각 고함을 질렀다.
“누가 겁쟁이냐! 우리, 겁쟁이 아니다! 겁쟁이라 말하면 너, 입 찢어버린다!”
“그래. 너희는 겁쟁이는 아니지. 그렇다면 내기도 받아들이겠지?”
“물론이다!”
거인은 가슴을 쿵쿵 두드리고 앞으로 나섰다. 뭔가 속은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상관없었다.
이미 다른 가족들도 겁쟁이라는 말에 잔뜩 흥분하고 있었으니까.
이쯤 되면 이제 데일이 계획은 얼추 성공한 것과 다름없다.
하켄이 식은땀을 닦아내며 말했다.
“휴, 휴우. 이제 됐네요. 분명 거인들이 즐겨하는 내기는…….”
“수수께끼.”
“좋네요. 저 멍청한 거인들한테 수수께끼로 질 일은 없으니까요.”
사실, 거인들은 수수께끼의 달인들이다.
밥 먹고 하는 게 그것밖에 없으니, 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데일은 이미 거인들이 내는 대부분의 수수께끼를 경험해보았고, 그 답도 모두 알았다.
즉. 이미 이 승부는 끝난 것과 다름없다는 말이다.
아빠 거인이 외쳤다.
“내기 종목, 내가 정한다. 그게 규칙이다!”
“그래.”
“종목은 바로……. 찰싹찰싹이다!”
하켄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거인 놈들은 멍청해서 수수께끼란 단어도 모르나 보죠?”
“……아니. 쟤들도 그 정도 단어는 안다. 생각보다 똑똑하거든.”
잠시 데일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머리카락을 벅벅 긁은 하켄이 물었다.
“아니 뭔. 그럼 저 찰싹찰싹이 뭡니까.”
데일은 하켄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모르겠는데.”
진짜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