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34)
추격
* * *
데일이 아빠 거인에게 물었다.
“내기는 보통 수수께끼로 하지 않나? 그게 일반적이라고 알고 있는데.”
거인은 고개를 휙 돌리며 답했다.
“어떤 무서운 인간. 이곳, 여러 번 지나갔다. 그럴 때마다 우리, 수수께끼로 내기했다. 하지만 우리 모두 졌다. 우리, 이제 수수께끼 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데일처럼 거인에 대한 지식이 있는 사람이 이곳을 여러 번 지나간 듯하다.
그 사람은 수수께끼의 정답을 연거푸 맞혔고, 화가 난 거인들은 더는 수수께끼를 하지 않게 되었다.
‘대체 어떤 놈이야.’
누군지는 몰라도 꽤나 박식하고 대담한 인물인듯하다.
지금 데일에게는 짜증만 날 뿐이지만.
“그래서. 그 찰싹찰싹이라는 내기는 대체 뭐지?”
“설명, 귀찮다. 보여줘라!”
아빠 거인이 외치자, 아들과 딸 거인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그러더니 아들 거인이 팔을 든 뒤, 그대로 누이의 뺨을 올려붙였다.
짜악!
강한 힘에 뺨을 얻어맞은 거인은 그대로 날아가 땅을 뒹굴었다.
아들 거인은 한차례 포효를 내뱉었다. 하지만 딸 거인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내 차례다.”
그러고는 성큼성큼 다가가, 똑같이 형제의 뺨을 후려갈겼다.
쩌엉!
이번에는 좀 더 묵직한 소리가 퍼졌다.
거의 날아가다시피 한 아들 거인은 그대로 머리부터 땅에 처박혔다.
쓰러진 거인은 꿈틀거리다가, 이내 바닥에 널브러졌다.
딸 거인이 하늘에 포효했다.
“이겼다아!”
대견하다는 듯, 뿌듯하게 웃은 아빠 거인이 말했다.
“이런 내기다. 이해, 어렵지 않다.”
멍하니 보고 있던 하켄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이, 이 양심 없는 새끼들. 지기 싫으니까 지들 유리한 규칙을 만들어냈잖아.”
거인은 자기도 찔리는지, 시선을 살며시 돌리며 말했다.
“험. 험험. 순서. 너희가 먼저다. 그러니 불리하지 않다.”
그러더니 도리어 성을 냈다.
“빨리 골라라! 할 거냐 말 거냐! 나 배고프다! 배고픈 거 싫다!”
“허, 참. 이 새끼들은 진짜.”
데일은 하켄의 어깨에 손을 올려 입을 다물게 하고, 거인에게 물었다.
“내기에서 우리가 이긴다면, 깔끔하게 결과에 승복하고 우리를 보내준다고 약속할 건가?”
“물론이다! 거인, 인간과 다르다.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
하켄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괜찮겠습니까?”
“어차피 다른 방법도 없다. 내기를 거절하면 거인 넷이랑 싸워야 하는데, 그것보다는 낫겠지.”
“으음. 그것도 그렇긴 하군요.”
데일은 메고 있던 배낭과 무기 따위를 하켄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아빠 거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거인이 물었다.
“네가 할 거냐?”
“그래. 갑옷은 안 벗어도 괜찮나?”
“그 정도는 봐준다! 어차피 껍질, 우리한테 소용없다!”
“자신감이 넘치시는군.”
데일은 팔을 두어 차례 붕붕 휘둘렀다.
거인은 데일이 뺨을 때리기 좋게, 한쪽 무릎을 꿇어 시선을 낮춰주었다.
그래도 여전히 높았지만.
거인과 데일의 시선이 마주쳤다. 거인은 히죽 미소 지었다. 재수 없는 표정이었다.
쪼끄마한 게 때려봤자 얼마나 아프냐는 속마음이 전해졌다.
데일은 마지막으로 팔을 한 바퀴 더 돌린 뒤, 허리를 틀어 뒤쪽으로 힘껏 뻗었다.
거인은 눈조차 감지 않고, 여유롭게 그 손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다음 순간. 거인은 시선에서 데일의 팔을 놓쳤다.
순간 흐릿해졌던 데일의 손이 이미 얼굴 바로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쩌억!
거인의 정신이 아득해졌다.
육중한 몸이 기우뚱 옆으로 넘어갔다. 통증은 그 다음이다.
순간적으로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에 벙쩌있던 거인이 허겁지겁 다시 일어났다.
거인은 멍한 얼굴로 자기 뺨을 어루만졌다.
두꺼운 거죽에는 건틀릿 자국이 선명히 남아있었다.
입은 터져 피가 흐르고, 치아도 몇 개 부러졌다. 뺨을 부여잡던 거인이 고개를 돌려 가족을 보았다.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거, 검댕이 인간. 힘세다. 나 아프다. 이 내기 싫다.”
누구든 한 대 세게 얻어맞고 나면 정신을 차리는 법이다.
하지만 가족들은 짜증을 냈다.
“엄살 부리지 마라! 인간, 쬐그맣다. 힘 세 봤자다!”
“지, 진짜다. 엄살 아니다.”
“어차피 네 차례다! 때려서 이기면 된다!”
“아!”
아빠 거인은 자기가 때릴 차례임을 인지하고 나서야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상대가 강하더라도, 때리기 전에 내기를 끝내면 될 뿐이다.
그리고 거인은 자신 있었다.
지금껏 몇 번 정도 인간과 싸워봤는데, 한 대 얻어맞고 다시 일어난 놈은 없었다.
갑옷을 입었든 말든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다.
찰싹 한방이면 나약한 인간은 껍질째로 으스러질 것이다.
“내 차례다!”
완전히 기운을 되찾은 거인이 데일에게 다가왔다.
쿵쿵거리며 가까워져 오는 거인은 분명 엄청 위협적이었다.
금방이라도 휘두를 것 같은 큼직하고 두꺼운 손 역시도.
하지만 데일은 차분히 서 있었다.
그저 담담히, 어서 빨리 하라는 시선만을 주었다.
다른 도전자처럼 겁먹고 펑펑 울어 주기를 바랐던 거인은 실망했다.
하지만 이내 이 내기를 끝내고 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즐거움에 표정을 풀었다.
거인이 하늘 높이 손을 들었다.
그리고 외쳤다.
“죽어라아!”
거대한 팔이 사선으로 떨어져 내렸다. 두텁고 커다란 손바닥은 그대로 데일을 후려쳤다.
손바닥이 워낙 커 뺨이라기보다는 머리부터 어깨까지 동시에 타격하는 일격이다.
우득!
둔탁한 소리와 함께 데일의 몸이 포탄처럼 튕겨 나갔다.
못해도 3미터는 날아간 데일은 커다란 바위에 틀어박혔다. 바위가 없었다면 더 멀리 날아갔으리라.
자욱한 먼지가 피어올랐다.
거인이 포효를 내질렀다.
“우오오오오!”
“잘했다! 잘했다!”
승리의 기쁨을 잔뜩 담은 포효혔다. 가족들도 함께 기뻐했다.
하지만 빗방울에 먼지가 빠르게 가라 앉자. 거인 가족들은 거짓말처럼 입을 다물었다.
데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견갑이 찌그러지고, 왼팔이 꺾였다. 하지만 치명상은 아니었다.
데일은 오른손으로 꺾인 왼팔을 우둑, 반대로 꺾어 다시 방향을 맞춰주었다.
아빠 거인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뒤에 있던 다른 거인들이 타박했다.
“왜 살살 때렸냐!”
“실망이다!”
아빠 거인은 억울한 얼굴로 항변했다.
“나, 제대로 후려쳤다! 검둥이, 엄청 단단하다!”
“거짓말하지 마라!”
거인 가족이 시끄럽게 싸우든 말든. 데일은 거인을 향해 다가갔다.
“다시 내 차례다.”
아빠 거인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그는 겁먹은 얼굴로 말했다.
“돼, 됐다. 내가 졌다! 그냥 지나가도…….”
“무슨 소리냐! 엄살 말고 앞으로 나가라!”
“겁쟁이! 겁쟁이!”
가족들의 타박에 아빠 거인은 울상을 지으며 자세를 낮추었다.
‘가장의 무게란.’
데일이 다시 자세를 잡으려 하자, 하켄이 다가와 물었다.
“괘, 괜찮습니까 데일 경?”
데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럭저럭. 하지만 두 번 맞으면 위험할 수도 있다.”
“그러면 이번에 끝내야 하는데……. 가능할까요? 암만 봐도 저 덩치가 쉽게 쓰러질 것 같지는 않은데요.”
“해봐야지.”
데일은 앞으로 나섰다.
얼굴을 내민 거인은 이제는 아예 눈까지 꾹 감아 버렸다.
데일은 가족 거인들의 위치를 눈여겨본 뒤, 적절한 자리에 서서 팔을 뒤로 뻗었다.
‘이번으로 끝낸다.’
분명 거인이라는 종족은 튼튼한 놈들이다.
군대가 몰려와 두들기거나, 마법사의 강력한 화력이 아니면 쓰러트리기 어려웠다.
하지만 거인에게도 분명 약점은 있다.
‘인간과 신체 구조가 비슷하다는 것.’
데일은 뒤로 뻗었던 팔을 있는 힘껏 휘둘렀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빠르고 힘찬 움직임이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아까와 같은 일격이라면, 결과도 같을 뿐이다.
‘아아!’
하켄은 속으로 탄성을 삼켰다.
이대로가면 꼼짝없이 실패다. 내기에 져서 거인에게 삼켜지는 미래가 보였다.
하지만 그 다음 순간. 하켄은 보았다. 곧게 펴져 있던 데일의 다섯 손가락이 오므라들어, 주먹을 이루는걸.
주먹은 그대로 곧게 뻗어져 거인의 턱을 스치듯이 절묘하게 타격했다.
“아?”
거인은 얼빠진 소리를 낸 뒤, 좌우로 휘청이다, 그대로 바닥에 허물어졌다.
거인은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아무리 맷집 좋은 거인이라도, 뇌가 흔들리면 견뎌내기 힘든 법이니.’
아빠 거인이 쓰러지자, 다른 거인들이 다가와 몸을 마구 흔들었다.
“장난치지 마라! 고기 먹어야 한다!”
“자, 잠들었다.”
하켄은 데일에게 다가와 작게 말했다.
“이래도 됩니까?”
“뭐가.”
“그……. 마지막에 주먹을 쥐었지 않습니까.”
“걱정 마라. 놈들한테 들키지는 않았으니까.”
일부러 다른 거인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사각에서 주먹을 쥐었다.
완벽 범죄인 셈이다.
“그리고 애초에 주먹을 쥐지 말라는 규칙은 없었다.”
“아니 뭐. 그렇긴 하네요. 이제 내기 이름을 찰싹찰싹이 아니라, 퍽퍽으로 바꿔야 할 것 같지만요.”
“재미없다.”
“죄송합니다.”
다시 배낭을 메고, 허리에 칼을 찬 데일이 다른 거인들에게 말했다.
“내가 이겼다. 약속대로 이곳을 지나가겠다.”
“…….”
거인들은 인상을 팍 찌푸리고 입을 다물었다. 딱 봐도 보내주기 싫은 마음이 엿보였다.
머리를 굴리던 엄마 거인은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입을 열었다.
“아직! 아직 한번 남았다!”
“뭐?”
“내기, 원래 두 번 이겨야 한다! 그게 관습이다!”
3판 2선승이라는 뜻.
화가 난 하켄이 따져 물었다.
“잠깐! 처음에 그런 말은 없었잖아!”
“까, 깜빡하고 설명 안 했다.”
“거인은 한 번 한 약속은 꼭 지킨다며!”
“기억 안 난다.”
“……양아치 새끼들이네 이거.”
하켄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데일은 팔짱을 낀 채 거인에게 물었다.
“그래서. 두 번째 내기는 내용이 뭔데.”
“으음……. 아! 수수께끼! 수수께끼로 하겠다. 내가 문제 낸다. 너, 맞춰라. 못 맞추면 내가 이긴거다!”
데일은 말싸움도 귀찮다는 듯, 고개를 까딱였다.
“내봐.”
거인이 씨익 웃었다.
“비장의 수수께끼 내겠다. 절대 못 맞출 거다.”
“빨리하기나 해.”
“두 자매, 있다. 언니가 동생을 낳고, 동생이 언니를…….”
“낮과 밤.”
데일이 툭 말하자, 거인이 말을 멈췄다.
삐질거리는 표정을 보니 어떻게 정답을 맞췄는지 의아해하는 눈치.
눈알만 또르르 굴리던 거인이 급하게 말했다.
“마음이 바뀌었다. 다른 수수께끼 내겠다. 이번엔 진짜 못 맞출 거다.”
“빨리 내기나 하라고.”
“흐흐. 아침에는 다리가 네 개…….”
“인간.”
거인이 버럭 성을 냈다.
“적어도 문제를 끝까지 듣기라도 해라!!”
어쨌거나 정답은 정답이었다.
하켄과 데일은 거인을 지나쳤다. 하켄은 귓속말로 물었다.
“그런데 저 거인 놈, 마지막에 유창하게 말하지 않았어요?”
“화가 나면 없던 능력도 생기는 법이지.”
거인들은 그런 둘의 등을 시무룩하게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말하기도 전에 맞추는 거, 예의 아니다. 검둥이 예의 없다…….”
거인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며, 데일은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결국, 계획했던 대로 되었군.’
결과는 처음 예상했던 대로 되었다.
중간 과정은 여러모로 많이 달랐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런 건 하켄에게. 그리고 데일에게 조금도 중요하지 않았다.
* * *
홀로 떨어진 마젤은 추적을 계속했다.
다행히 여인은 예상 경로대로 도주하고 있었다.
이대로면 머지않아 하켄의 고향을 지나칠 것이다.
만약 하켄과 데일이 거인의 영역을 통과해 미리 기다리고 있다면, 충분히 막아낼 수 있다.
‘하지만 힘들겠지.’
괜히 사람들이 거인을 피하는 게 아니다. 그들은 포악하고, 변덕스러우면서, 나름 지능까지 있다.
그런 놈들을 무사히 지나친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죽었거나 운이 좋다면 도망쳤겠지.’
어느 쪽이든 지금 도움이 될 일은 없다. 마젤은 진즉에 둘을 계획에서 제외했다.
마젤은 계속 흔적을 추적했다.
그리고 한 가지 곤란한 점을 알아냈는데, 그건 바로 여인이 상처를 점점 치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폭이 더 커지고 있어.’
그리고 상처가 나은 여인은 점점 더 대담하게 행동하고 있었다.
마젤은 길가에서 습격당한 상인들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시체는 살점 하나 없이 모두 뜯어먹혀 있었다.
주위에 큼직하게 찍힌 발자국은 늑대들이 상당히 크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후우.”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쉰 마젤은 무심하게 현장을 떠났다.
마법사에게 습격받은 건 안타까운 일이나, 일일이 애도하는 것도 못 할 짓이다.
불운은 누구에게라도 찾아올 수 있는 법이니.
대처법은 두 가지뿐이다.
운 좋게 불운이 찾아오지 않게 기도하거나, 불운에게서 도망칠 수 있도록 실력을 기르거나.
마젤은 후자를 추구하는 사내였다.
다시 추적을 재개하려던 마젤은 멀찍이 찍힌 늑대 발자국을 하나 발견했다.
같은 무리라고 보이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지만, 분명 방향은 일치하는 그런 발자국이었다.
‘멀리 떨어져서 주위를 정찰하는 척후인가? 그러기엔 거리가 너무 먼데.’
마젤은 의아함을 느꼈지만 이내 그 상념을 지워버렸다.
흔적을 추적하고, 마법사를 사살해야 한다.
지금 마젤에게 주어진 일은 그것뿐이다. 그 외의 일에 대해서는 신경 쓸 생각도, 쓸 필요도 없었다.
그게 마젤이 지금까지 살아 남아온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