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48)
마법사
* * *
“사, 살려주세요. 뭐든. 뭐든 하겠습니다.”
마법사는 지금 본인이 얼마나 한심한 꼴인지도 모른 체, 손을 싹싹 빌며 말했다.
데일이 무심하게 말했다.
“내가 왜 널 살려줘야 하는지, 이유를 말해봐라.”
데일은 고민하고 있었다. 죽일까 말까.
처음부터 확실히 죽일 생각이었다면, 진즉에 무기를 투척하거나 하는 식으로 싸웠을 것이다.
‘죽이면 골치가 아프다.’
애송이 마법사를 죽이는 거야 쉬운 일이다. 문제는 저 마법사 뒷배에 있는 마탑이다.
노예 병사를 죽이는 건 마탑의 ‘재산’을 훼손한 것으로, 다소 넘어갈 여지는 있다.
마탑은 지금 외곽구역까지 내려와서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지 않나. 굳이 애송이 마법사의 일까지 신경 쓰지는 않을 것이다.
애초에 선제공격을 한 건 마법사이기도 하고.
하지만 마법사를 죽이게 되면 마탑은 체면 때문이라도 데일을 가만 놔두지 않을 거다.
그게 아무리 수준 낮은 애송이 마법사라도.
‘좀 더 깔끔히 해결해야겠어. 지금은 혼자가 아니니까.’
혼자였다면 얼마든지 복수의 대상이 되어도 상관없다.
오히려 바라는 바다. 마법사들과의 끝없는 싸움은 가파른 성장을 보장해줄 테니.
하지만 지금 데일은 암흑가를 지키는 몸. 아무리 데일이라도 주민들을 지키며 마법사들과 싸우는 건 어려운 일이다.
애꿎은 주민들에게 불똥이 튀는 건 막아야 한다. 적어도 이번 수색이 끝나기까지는 말이다.
그게 에리얼과의 약속이었고, 그게 데일의 책임감이다.
그런 속내를 모르는 마법사는 눈치를 살피다 말했다.
“가, 가진 돈을 전부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어……. 무, 뭔가 원하시는 게 있나요?”
원하는 것.
그러고 보니 물어보고 싶은 게 하나 있다.
데일은 마법사와 시선을 맞췄다.
투구의 눈구멍 속에 있는 데일의 무기질적인 눈을 마주한 마법사가 바짝 얼어붙었다.
“히, 히익.”
“이제부터 질문을 할 테니, 성실하게 답해라.”
마법사는 고개를 붕붕 끄덕였다.
“우선 이름부터 말해라.”
“한스. 한스입니다. 부모님 이름은 모릅니다.”
한스. 생긴 것과 마찬가지로 흔한 이름이었다.
데일은 이어 물었다.
“마탑에서 빈민가를 수색하는 이유를 말해.”
“도, 도시에 위협이 되는 위험 분자들을 제거하기 위해…….”
데일은 땅에 박아 넣은 검에 손을 올렸다.
“나는 거짓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한스는 침을 꿀꺽 삼켰다. 또르르 눈알을 굴려 주위 눈치를 살핀 한스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사실, 차, 찾고 있는 사람이 한 명 있습니다.”
“그게 누군데.”
“저도 말단이라 정확히는 모르지만……. 멸망한 왕국의 마지막 후계자라고 들었습니다.”
왕국의 마지막 후계자? 예상치 못한 대답이다.
대체 마탑의 마법사들이 왜 망국의 왕족을 찾는단 말인가.
그런 의문에 한스가 대답했다.
“그게, 그냥 평범한 왕국이 아닙니다. 바이만 왕국이라고, 검과 마법을 숭상하는 국가인데……. 아십니까?”
데일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바이만. 안다. 알 수밖에 없는 이름이다.
그야, 데일의 게임으로 이 세상을 접할 때.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몇 년 전.
근근이 버텨오던 바이만 왕국은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으니까.
그리고 그 최후에 데일도 함께 했었다.
설마 그 이름을 다시 들을 줄이야.
데일이 갑자기 말이 없자, 한스는 다시 눈치를 살피며 끙끙 앓았다. 데일이 물었다.
“그래서?”
“아, 예. 그. 바이만 왕국에는 왕족에게만 대대로 내려오는 마법이 있어서…….”
“그래서. 그 후계자가 이곳 어딘가에 숨어 있고, 그 마법을 얻기 위해 들쑤시고 다닌다?”
“그, 겸사겸사 위험분자도 찾으면 여러모로 좋으니까…….”
말을 하던 한스는 입을 꾹 다물었다.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궁색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생각보다 더 한심한 이윤데.’
속으로 한숨을 흘린 데일이 말했다.
“그런 거라면 더더욱 여기를 들쑤실 필요 없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라. 네가 왕족이라면 여기 숨어 살겠나?”
대부분의 국가가 그렇듯, 바이만 왕국 역시 빛의 여신을 따르는 곳이었다.
그런 왕국의 후계자가 밤의 신도들 사이에 섞여 살 일은 없지 않겠는가.
“마, 맞습니다. 생각해보니 경의 말이 맞는 것 같아요.”
한스는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붕붕 끄덕였다.
진짜 동의하는지, 아니면 살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들을 수 있는 건 이게 전부인가.’
애송이에 그렇다고 뒷배가 있는 것 같지도 않은 놈이다. 더 물어볼 봤자 들을 것도 없어 보였다.
데일은 바닥에 박아 넣었던 검을 다시 뽑았다. 한스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데일이 물었다.
“그래. 여기서 너를 보내주면 다시 되돌아올 건가?”
“아, 아닙니다. 살려만 주신다면 절대 경께 해가 되는 일은 하지 않겠습니다.”
데일은 한스와 다시 눈을 맞췄다.
“너는 이곳에서 성공적으로 수색을 마친 거다. 왕족은 없었고, 노예 병사는 네가 실수로 날린 마법에 죽은 거야. 그렇게 보고해야 할 거다. 알겠나?”
“다, 당연히 오늘 일은 비밀로 해야지요. 명예를 걸고 맹세합니다.”
데일은 뒤쪽에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는 용병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놈들은 부모를 걸고는 곧바로 돌아오던데? 명예보다 좀 더 중요한 걸 걸어야 하지 않겠나?”
한스가 표정을 굳혔다.
“설마.”
“주문에 걸고 맹세해라.”
“!”
주문에 건 맹세.
마법사들에게 약속을 받아내기 가장 확실한 방법.
한스는 경악했다.
대체 데일이 그걸 어떻게 아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마, 마법사들만 아는 걸 어떻게.”
“하기 싫은가?”
갈등하던 한스는 고개를 푹 숙였다. 목숨보다 소중한 건 없는 법이다.
“그, 그럼 제 주문에 걸고 맹세하겠습니다…….”
‘이 정도면 되겠지.’
한스는 이제 맹세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마탑에 오늘 일을 필사적으로 숨길 거다.
적어도 암흑가의 주민들이 보복하러 온 마법사들에게 해코지를 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한스가 눈치를 살폈다.
“저……. 이제 가도 되나요?”
“그래.”
데일의 허가가 떨어지자 한스는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그 등에 대고 말했다.
“잠깐.”
“예에?”
“그거. 내려놓고 가라.”
데일은 한스의 지팡이를 가리켰다. 한스가 지팡이를 쥔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 이거 상당히 비싼 건데요.”
“그러니까 놓고 가라고. 싫나?”
데일이 검에 손을 가져다 대자, 한스는 부들거리면서 지팡이를 내려놓았다.
그는 속으로 눈물을 삼키며 말했다.
“그럼 이만…….”
“잠깐.”
데일은 한스가 걸친 로브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로브도 좀 비싸 보이는데.”
“……벗겠습니다.”
한스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 * *
한스는 반쯤 나체가 되고 나서야 자리를 뜰 수 있었다.
마법사가 사라지자 숨죽이고 있던 용병들도 그 뒤를 뒤따랐다.
그들은 데일을 경악한 눈으로 쳐다보며, 생각했다.
‘무슨 번개를 얻어맞고도 버텨.’
‘그 지독한 마법사들을 벗겨 먹다니. 미친놈이야.’
‘앞으로도 건드리지 말자.’
용병들마저 사라졌다.
골목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데일은 전투가 남긴 흔적을 눈에 담았다.
‘위력 하나는 굉장하군.’
기껏 쌓아놓은 수레와 모래주머니가 마법 한방에 박살이 났다. 허름한 집들 이곳저곳이 무너졌고, 타버린 시체가 바닥을 굴렀다.
고작 마법사 하나가 만들어낸 참상이다.
심지어 한스는 마탑에서 별로 지위가 높지도 않아 보였고, 어딜 어떻게 봐도 애송이였다.
그렇다면 한스보다 윗선의 마법사들은 대체 얼마나 강력한 힘을 발휘할까.
‘역시, 마법사가 최고긴 한데.’
데일도 한때 마법사 캐릭터를 키워봐서 안다.
조합에 마법사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마법사 하나만 추가되면, 적어도 화력이 부족할 일은 없는 것이다.
하지만 데일에게는 꿈같은 얘기다.
데일은 처음 이 몸으로 깨어났을 때부터 마법사를 영입하는 건 반쯤 포기했다.
굳이 먹지도 못할 음식을 넘보며 군침을 흘리는 건 미련한 짓이다.
데일은 박살 난 수레 위에 걸터앉았다.
그때까지 멀찍이서 지켜보고 있던 주민들이 다가왔다. 촌장이 데일의 안부를 물었다.
“그……. 끝난 겁니까?”
“용병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오. 마법사도 마찬가지고.”
그제야 촌장은 안심했다. 깊은 한숨을 내쉰 촌장이 물었다.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번개에 맞으셨는데.”
“음.”
썩 괜찮지 않았다. 데일이 물었다.
“돼지나 소가 있다면 잡아주겠소?”
“돼지랑 소는 없고. 닭은 좀 있습니다.”
“그러면 그거라도. 돈은 나중에 주겠소.”
“아닙니다. 이미 과할 정도로 많이 받았는데, 이 정도는 대접하게 해주십시오.”
그리 말한 촌장은 얼른 주민들에게 손짓했다.
주민들은 서둘러 닭을 잡아 대령했고, 데일은 생기를 흡수해 신체를 회복했다.
이제 데일의 몸은 워낙 맷집이 튼튼해 웬만한 공격은 그냥 몸으로 받아내도 끄떡없다.
반대로 말하면, 체급이 커졌기 때문에 신체를 회복하려면 흡수해야 하는 생기도 많아졌다.
그 때문에 주민들은 닭을 많이도 잡아야 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이렇게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은혜를 갚아야 한다.’
강력한 적들에게 홀로 맞서 이겨내는 그들의 기사에게, 이 정도는 기꺼이 내어줄 수 있다.
아니. 오히려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게 영광이었다.
그렇게 주민들이 기쁨을 느끼거나 말거나.
데일은 수레 위에 조용히 앉아 헝겊으로 검을 닦았다.
어서 이 폭풍이 지나가길 바랄 뿐이었다.
* * *
수색 작전은 며칠이나 계속되었다.
마탑의 마법사들의 지원을 받은 용병들과 경비대는 빈민가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다녔다.
놀랍게도, 수색은 나름대로의 성과를 거두었다.
도둑이나 범죄자의 근거지를 소탕했고, 불온한 일을 계획하던 위험분자도 다수 사로잡았다.
물론, 계획이 순조롭게만 진행된 건 아니었다. 저항은 거셌고, 많은 피가 흘렀다.
게다가 가장 큰 문제가 남아 있었다.
빈민가의 서쪽 구역.
골목길이 구불구불 얽혀 있는 그곳은 섣불리 말을 들일 수 없는 미로였다.
괜히 검은 뱀 형제단같은 조직이 자리 잡은 게 아니다.
오고 가도 못하는 상황 속에서 수색 작전은 질질 끌리고 있었다.
날씨는 푹푹 찌고, 저항은 거세며, 사람들의 불쾌감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무언가 일이 벌어져도 단단히 벌어질 듯한 조짐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암흑가는 평화로웠다. 마법사를 쫓아낸 날 이후, 예상대로 더 귀찮게 하는 이들은 없었다.
데일은 묵묵히 수레에 앉아 검을 닦았다.
이곳으로 쳐들어오지만 않는다면, 그 외의 다른 건 관심 없었다.
머릿속에는 일전의 일로 자꾸 후회가 들었다.
‘그냥 한스 그 녀석을 필요할 때마다 써먹을 걸 그랬나. 마력의 맹세까지 했으니, 가끔 부르는 건 괜찮았을 것 같은데.’
데일은 주위에 여전히 남은 마법의 흔적을 쳐다보며 생각했다.
마법사를 부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예 가능성이 없었다면 생각도 안 했겠지만, 얼마 전 일이 생각나 자꾸 미련이 생겼다.
데일은 그런 상념을 지워내듯. 습관적으로 헝겊으로 검을 닦았다.
하도 닦다 보니 이미 헝겊은 넝마가 되었다.
조만간 새 헝겊을 사야 할 성싶었다.
그때. 옆에서 얌전히 앉아 더위를 달래던 하티가 데일을 꼬리로 툭 쳤다.
데일도 고개를 들었다.
누군가 다가오고 있었다.
‘발소리는 다섯. 제법 나쁘지 않게 무장했어.’
용병일까? 그렇다면 마침 잘 됐다. 검을 깨끗이 닦아놨으니 시험해보기 제격 아니겠는가.
하지만 예상이 빗나갔다.
다가오는 이는 아는 얼굴이었다.
토모 상회의 주인, 아이렉이 부하들을 이끌고 다가오고 있었다.
아이렉은 잔뜩 지친 얼굴이었다.
이번 수색 동안 적지 않은 고초를 겪은 모양이다.
아이렉은 평소보다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반갑네 데일 경. 다행히 이쪽은 평화로워 보이는군. 데일 경 덕분인가?”
아이렉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 미소를 흘긋 살핀 데일이 물었다.
“많이 어려운 모양이오.”
“어렵지. 설마 주문쟁이들을 불러 올 줄 누가 알았겠나. 이럴 줄 알았으면 암살자라도 모아둘 걸 그랬어. 날고 기는 마법사들도 뒤에서 칼이 날아오면 끝이거든.”
아이렉은 엄지로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던 데일이 툭 물었다.
“항복한다는 선택지는 없소? 딱히 뭘 숨겨두고 있지 않다면, 적당히 뒷돈을 먹이면 당신은 부드럽게 넘어갈 수 있을 텐데.”
데일은 아이렉과 대화를 떠올렸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그가 이득에 몹시 민감하다는 건 알았다.
패색이 짙어진 지금. 저항을 이어나가는 건 무익한 일이다.
그답지 않다고 해야 할까.
그러한 질문에 아이렉이 빙그레 웃었다.
“데일 경은 날카로운 구석이 있군. 정말이지, 놀라울 정도야.”
잠시 멈칫한 데일이 물었다.
“……뭔가 숨기는 게 있소?”
쓴웃음을 지은 아이렉이 딴소리를 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소문이 들리더군. 지금 마탑에서 찾으려는 이가 멸망한 왕국의 후계자라고.”
갑작스러운 주제 전환에 데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마음속에 무언가가 턱 걸리는 기분을 느꼈다.
‘음?’
불현듯 이전 기억이 떠올랐다.
이전, 아이렉과 나누었던 대화의 한 자락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빈민가에는 생각보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산다네. 노예부터 몰락한 왕국의 왕족까지 가지각색이지.
데일은 잠시 눈을 감고 생각을 정리했다. 머릿속에 이런저런 가설이 떠올랐다.
그중에서 정답으로 보이는 걸 찾아내고 말았다.
데일이 물었다.
“아이렉. 그러고 보니 그대는 제국 귀족이 아닌 것 같은데, 어디 출신이오.”
아이렉의 미소가 짙어졌다. 그 안에는 데일에 대한 감탄이 섞여 있었다.
자그마한 정보로 순식간에 정보에 이르는 예리함. 아무나 가지지 못한 능력이었다.
빤히 쳐다보는 데일에게, 아이렉은 또박또박 힘을 주어 말했다.
“바이만 왕국이라 하네. 검과 마법을 숭상하던, 자랑스러운 조국이지.”
한 호흡 뒤.
데일은 한숨을 삼키며 말했다.
“왕국의 후계자를 당신이 보호하고 있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