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47)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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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 청년은 갈색 눈에 탁한 금발 머리를 가졌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외모다.
로브와 지팡이가 아니었다면, 농부의 아들쯤으로 생각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 눈에 담긴 오만함.
자기가 남들보다 나은 존재라고 믿는 우월감은 전형적인 마법사라 할 수 있었다.
청년의 옆에는 입을 두건으로 가린 전사들이 넷 서 있었다. 하나 같이 실력이 있어 보였다.
마탑에 소속된 노예 병사일 것이다.
갑작스러운 마법사의 등장에 용병들은 당황했다.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마법사는 자기 말이 무시당했다 생각했는지,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너희들은 입이 없어? 벙어리야? 왜 물러나고 있냐고 내가 묻고 있잖아. 아니면 한 놈 정도 불태우면 고분고분해지려나?”
그제야 제온이 급하게 입을 열었다.
“죄, 죄송합니다 마법사님. 이렇게 갑자기 귀한 분을 마주치게 되어 모두 당황했습니다. 그, 마법사님은 저희에게는 귀족님들과 다를 바 없어서…….”
과연 제온은 사교적이었다.
그는 은근슬쩍 마법사를 추켜세워 화를 풀려고 했다.
마법사도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특히 귀족과 다를 바 없다는 말이 마음에 들었다.
“흐음. 그래. 귀족이나 우리나 비슷하긴 하지. 아니, 요즘 같은 시대에는 쓸모없는 귀족보다는 우리가……. 그런 거라면 용서하겠어.”
“가, 감사합니다.”
“그래서? 왜 물러나고 있었지? 이곳 조사를 벌써 끝낸 거야?”
“그게…….”
제온은 대답하기 어려운 듯. 뒤쪽으로 고개를 살짝 돌렸다.
데일이 석상처럼 조용히 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법사의 고개도 제온의 시선을 따라 이동했다. 마법사가 중얼거렸다.
“저건 또 뭐야. 흑기사? 여기가 전장도 아니고 무슨…….”
마탑의 마법사들은 상위 구역 바깥으로 나가는 일이 드물다. 소식에 어두울 수밖에 없었다.
마법사가 설명을 요구하는 시선을 보내자, 제온이 얼른 설명했다.
“그. 데일 경이라고, 요즘 한창 잘나가는 용병이십니다.”
“흑기사가 용병이라고? 아니, 그보다 용병이면 저기를 왜 막고 있는데.”
“용병이긴 한데 아무래도 이번 작전에는 참여하지 않은 게 아닐까……. 그리고 저기가 밤의 신도들이 모여 있는 곳 아니겠습니까. 신도들을 지키려고 서 있는 것 같습니다.”
마법사가 더더욱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지킨다고? 누굴 바보로 알아? 흑기사한테 내릴 수 있는 명령은 하나밖에 없어. 가서 닥치는 대로 죽이라는 거. 저 시체들한테는 뭘 지키고 어쩌고 할 정도의 이성이 없다고.”
전쟁 마법사들은 기본적으로 지휘관으로서의 전략 전술이나, 전장에서의 교리 따위를 배운다.
그중에는 각 병과를 다루는 방법도 있는데, 흑기사를 의미 있게 써먹는 방법은 하나라고 가르친다.
가서 싸우게 시키는 것.
물론, 예외적인 경우도 있다. 하지만 마법사는 그런 것까지 배우지는 못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마법사는 화를 냈다.
“그냥 일하기 싫어서 핑계 대는 거 아니야?”
“아, 아닙니다! 진짜입니다! 데일 경에 대해서는 길거리 붙잡고 아무한테나 물어보셔도 됩니다!”
여전히 미심쩍었지만, 이렇게까지 절박하게 말하면 믿어줄 수밖에 없었다.
“으음. 그렇단 말이지.”
마법사는 눈을 게슴츠레 떠서 데일을 쳐다보았다. 데일도 그 시선을 덤덤히 받아넘겼다.
마법사는 제온에게 고갯짓했다.
“가서 당장 비키라고 전해.”
“……예? 제가요?”
“그럼 내가 할까?”
제온은 검게 죽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사의 명을 거절했다가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몰랐다.
그는 무거운 걸음으로 데일에게 다가갔다.
“저……. 데일 경.”
“안 돌아오겠다고 부모까지 걸더니, 바로 깨버렸군.”
“으음.”
제온은 신음을 삼켰다.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일단 살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제온은 조심스럽게 마법사의 말을 전했다.
“그. 마법사님이 비켜달라고 하시는데요.”
“가서 전해. 싫다고.”
“그……. 직접 말하시면 안 될까요?”
데일은 그런 제온을 말없이 쳐다보았다. 깨갱한 제온은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 제가 전하겠습니다.”
그러고는 입으로 ‘중간에 껴서 무슨 지랄이야’라고 중얼거리며 올 때보다 더 느린 속도로 돌아갔다.
마법사가 제온을 노려보았다. 제온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그, 싫다는데요?”
마법사의 얼굴이 험악해졌다.
“전해. 안 비키면 험한 꼴 당할 거라고. 마지막 경고야.”
“저. 그냥 직접 전하시면…….”
마법사가 지팡이를 들어 올리자 제온은 눈물을 머금고 걸음을 옮겼다.
‘개 같은 새끼들.’
제온은 데일에게 되돌아가, 반쯤 해탈한 심정으로 말했다.
“마지막 경고랍니다.”
“그럼 어쩔 수 없지.”
데일은 검을 뽑아 들었다.
기겁한 제온이 뒤로 후다닥 물러났다. 하지만 데일의 목표는 제온이 아니다.
마법사가 지팡이를 들고 이곳을 겨누고 있었다.
“역시 언데드라 그런지 머리가 안 돌아가는구나. 감히 내 명을 거역한 대가는 톡톡히 치르게 해주겠어.”
푸른 보석이 달린 지팡이에 마력이 응축되기 시작했다. 멍하니 있던 용병들은 이윽고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지팡이가 데일을 가리키고 있으며, 그 중간에 자기들이 서 있다는 걸.
“설마.”
그 설마가 맞았다.
지팡이의 끝에 전류가 몇 번 튀더니, 이내 새하얀 번개를 방출했다.
꽈릉!
“이런 씹!”
“피해!”
용병들은 양옆으로 몸을 날렸다. 반응이 느린 용병 몇은 번개에 직격당했다.
“아가가가각!”
순식간에 검게 타버린 용병이 바닥에 풀썩 쓰러졌다. 그럼에도 번개는 멈추지 않았다.
데일을 향해 불규칙한 궤적을 그리며 쇄도했다.
데일은 옆을 향해 힘껏 굴렀다.
거센 전류가 간발의 차이로 허공을 갈랐다. 그대로 수레에 직격했다.
콰직!
번개에 직격당한 수레가 산산이 조각났다. 불이 붙은 파편이 이리저리 날았다.
‘번개 방출 주문인가.’
터무니없는 화력에 용병들은 눈만 커다랗게 떴다. 차마 자기들을 향해 마법을 사용한 걸 따질 엄두도 나지 않았다.
그만큼 마법사가 보여준 주문의 위력은 압도적이었다.
마법사는 그런 시선들이 마음에 드는지, 으스대며 말했다.
“이야, 그걸 피하다니. 운이 좋았네? 근데 다음에도 운이 따라줄까?”
마법사는 곧바로 주문 구결을 외웠다. 지팡이에 다시 마력이 모이기 시작했다.
저대로 두면 안 된다. 데일은 땅을 박찼다.
하지만 거리가 너무 멀다. 주문이 완성되는 게 한참은 더 빠르다.
지팡이가 데일을 겨냥했다.
데일은 황급히 오른손에 힘을 응축해, 검은 안개를 주위에 퍼트렸다.
사아아아!
골목에 검은 안개가 들어찼다. 데일의 모습도 어둠 속에 녹아들었다.
“어딜!”
마법사는 안개를 향해 지팡이를 겨냥했다. 그리고 주문을 시전.
꽈릉!
새하얀 번개가 다시 한번 공간을 갈랐다.
검은 안개와 마주친 번개는 그대로 안개를 불살라버렸다. 순식간에 안개가 걷혔다.
하지만 상관없다. 애초에 조준을 빗나가게 하는 게 목적이었으니.
바짝 엎드려 있던 데일은 땅을 박차 속도를 높였다.
마법사는 조금 당황했다.
“어어? 마, 막아!”
그의 외침에 지금까지 조용히 서 있던 노예 병사 넷이 일제히 앞으로 달렸다.
무기는 방패와 철퇴.
갑옷은 걸치지 않았지만, 그래서인지 움직임이 날랬다.
쇠 방패 네 개가 동시에 데일을 향해 들이밀어 졌다.
데일은 달리는 힘 그대로 방패를 향해 발을 뻗었다. 쇠장화와 방패가 부딪혔다.
그리고……. 꽝!
번개가 뿜어져 나올 때와 비슷한 소음이 울리며 호위의 몸이 뒤로 쭉 밀려났다.
호위는 당황한 표정으로 균형을 잡으려 했다. 하지만 전해지는 충격이 너무 컸다.
하체의 균형이 흐트러지고. 그대로 넘어지고 말았다.
데일은 쓰러진 호위를 그대로 마무리하려 했지만, 옆에서 동료를 지키기 위한 공격이 날아들었다.
‘쯧. 귀찮게.’
각각 다른 방향으로 날아오는 철퇴가 셋. 가슴과 견갑을 노리는 철퇴는 무시했다. 갑옷의 단단함을 믿었다.
데일은 관절을 노리는 철퇴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붙잡았다.
“어?”
과묵하던 노예 병사가 처음으로 목소리를 냈다.
철퇴가 붙잡힌 호위는 어떻게든 무기를 데일의 손아귀에서 빼내려 했다.
틀린 선택이다. 그는 곧장 철퇴를 포기하고 방패를 들었어야 했다.
그리고 싸움에서 틀린 선택은 언제나 죽음으로 이어진다. 적어도 데일을 상대로는 그렇다.
오른손의 검을 힘껏 든 데일은 그대로 검의 손잡이로 호위의 투구를 힘껏 내리찍었다.
깡!
쇠가 비명을 지르는 소리와 함께 투구의 일부가 움푹 들어갔다. 호위는 흰자위를 까뒤집었다.
코에서는 핏물인지 뇌수인지 모를 끈적한 액체가 흘러내렸다.
그대로 즉사.
하지만 다른 호위들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 잠깐의 틈을 살려 어떻게든 데일을 공격하려 했다.
그때, 마법사가 외쳤다.
“붙잡아!”
그 명령에 데일 앞에 있던 노예 병사는 방패까지 내던지며 데일을 사로잡으려 했다.
데일은 그대로 검을 내리쳐 머리를 쪼개려 했지만, 옆에 있던 다른 노예 병사가 철퇴를 내밀어 어깨를 베는 데에 그쳤다.
노예 병사는 데일을 꼭 붙잡았다. 그리고 절대 놓치 않았다. 마치 그게 인생의 목표라도 되는 양.
꽈릉!
다시 한번 번개가 발사되었다.
데일은 소음과 즉시 몸을 날리려 했다. 하지만 호위들이 데일을 단단히 붙잡고 있었다.
‘이게 무슨.’
광적일 충성심이 당황스러울 정도다. 그리고 다음 순간. 번개가 호위와 데일을 한꺼번에 덮쳤다.
치지직!
전격이 갑옷을 타고 흐르다, 이내 그 속에 든 몸뚱이를 태우기 시작했다.
늘 차갑게 유지되는 데일의 몸이 오랜만에 온기를 되찾았다. 온기라기에는 너무 뜨거웠지만.
마법사가 소리쳤다.
“하하! 언데드야 맛이 어때? 따끔하지?”
당연히 통증은 없다.
하지만 피해가 적지는 않았다. 데일은 몸 군데군데를 점검했다.
‘팔은 괜찮고. 다리는 잘 안 움직이는군.’
몸에 남은 전류가 움직임을 방해한다.
데일은 번개에 맞고 널브러진 노예 병사의 몸에 건틀릿을 박아넣었다. 바싹 타버려서 그런지, 흡수할 수 있는 생기도 적었다.
하지만 적어도 느릿하게 뛸 정도로까지 회복할 수는 있었다.
데일은 검을 들고 마법사를 향해 천천히 달렸다. 그 굼뜬 움직임에 마법사는 비웃었다.
“흐흐! 멍청한 언데드 새끼. 지금이라도 도망쳤어야지. 오냐. 원하는 대로 재로 만들어주마.”
마법사는 마지막 마법을 준비했다. 이전보다 주문을 외우는 시간이 길어졌다.
무언가 큰 걸 준비한다는 뜻이다.
데일은 아랑곳하지 않고 달렸다.
둘 간의 거리가 점점 좁아졌다. 그렇게 데일이 스무 걸음 앞까지 다가갔을 때.
주문이 완성되었다.
“이걸로 끝이다!”
파즈즈즈.
지팡이 끝에 전류가 지직거리다, 이내 번개가 뿜어져 나왔다.
번개는 허공에서 이리저리 얽히더니, 네 발 달린 야수의 형상을 이루었다. 야수는 데일을 향해 맹렬히 달려들었다.
데일이 굴러서 피하는 걸 차단하기 위해 사용한 주문이다.
데일도 마주 달렸다.
애초에 피할 생각은 없다는 듯. 검을 높이 치켜들었다.
마법사는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진짜 멍청한 놈이군. 번개를 검으로 가를 생각이라도 하는 건가?’
실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생각이다.
번개를 검으로 벤다니. 머리가 문제가 있지 않은 한 그런 바보 같은 시도는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마법사가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데일이 들고 있는 저 흑색 검은, 평범한 검이 아니라는 걸.
검을 높이 든 데일은 번개 야수가 달려드는 걸 침착히 바라보았다.
오히려 야수의 형상을 이루었기에, 속도는 이전보다 느렸다.
야수는 푸르고 흰 전류를 이리저리 튀기며 데일을 향해 달려들었다. 아가리가 쩍 벌어졌다.
그리고 그 아가리가 데일을 집어삼키려는 직전. 데일은 검을 내리쳤다.
파아아악!
“어?”
번개가, 잘렸다.
마법사는 얼빠진 표정을 했다. 방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단 말인가?
반으로 잘린 번개는 이내 다시 합쳐져 야수의 형상으로 되돌아갔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데일이 마법사의 바로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데일이 마법사를 내려다보았다. 겁에 질린 마법사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태양을 등지고 선 흑기사의 거체가 마법사의 얼굴에 긴 그림자를 드리웠다.
“아, 아아.”
마법사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뭐라도 말해야 하는데, 공포에 잠식된 머리가 말을 안 들었다.
데일은 천천히 검을 들어 올린 뒤, 아래를 향해 힘껏 내리찍었다.
“으아아악!”
마법사의 가랑이 사이 빈 공간에 검이 박혔다. 데일은 고개를 낮추고, 마법사와 눈을 맞췄다.
“나는 언데드가 아니다. 알겠나?”
마법사는 마치 고장난 기계처럼 고개를 붕붕 끄덕였다.
그 얼굴을 쳐다보던 데일은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바닥에 지린내 나는 웅덩이가 생겨났다. 마법사의 바지가 축축이 젖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