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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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자 사람들은 더욱 흥분했다.
“저 흑기사는 분명…….”
“세상에.”
기사와 기사 간의 결투.
모든 이들이 가슴을 설레할 만한 승부가 성사되었다.
마법사들이 당황한 얼굴로 크리스틴을 쳐다봤다.
“크리스틴 경.”
“하하하. 좋군. 그렇게 나오셔야지.”
크리스틴은 호탕하게 웃었다. 그는 오히려 이 상황이 몹시 마음에 들었다.
젊은 기사들은 으레 명성과 업적에 굶주리기 마련이다.
크리스틴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뛰어난 재능과 실력으로 황실 기사단에 입단이 확정되다시피 했지만, 아직 크리스틴에게는 만족할만한 업적이 없었다.
한때는 다른 기사들이 흔히 그렇듯. 강한 몬스터를 사냥하거나 토너먼트에 참여할까도 고민했었다.
‘하지만 그런 건 너무 뻔해.’
흔하고 뻔한 업적은 사람들에게 쉽게 잊히기 마련이다.
크리스틴은 그의 이름을 오래도록 밝혀줄 그런 불멸의 명성을 원했다.
그리고 최고의 기회가 왔다.
이교도 기사와의 결투!
승리했을 때 얼마만큼의 찬사를 들을까. 음유시인들은 그에 대한 일화를 노래하겠지. 귀족가의 영애들도 분명 크리스틴을 생각하며 밤잠을 설칠 것이다.
크리스틴은 이미 이겼을 때의 달콤함을 생각하며, 즐거워했다.
진다는 생각은 조금도 없다.
크리스틴은 자기 실력을 믿었다. 피를 토하며 갈고닦아온 재능을 믿었다.
이제 그의 노력이 보답받을 때였다.
‘바이만의 공주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반드시 이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의 업적이 될 중요한 결투에는 그에 걸맞은 무대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 좀 더 많은 사람이 봐야 한다.’
크리스틴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입을 다물고 있는 조피스 가주에게 말했다.
“결투 재판이 성립되었소. 하지만 지금 당장은 서로 준비가 안 된 것 같소. 그러니 이틀 후, 7구역의 광장에서 결투하는 게 어떻소? 시간은……. 그래. 적당히 해가 내려온 시간대면 공평할 것 같군. 어떻소?”
크리스틴의 제안에 가주는 데일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동의하나?”
“상관없소.”
데일이 동의하자, 가주는 엄숙히 선언했다.
“그렇다면 이번 재판의 판결은 결투의 결과에 따르는 것으로 하겠다. 장소는 7구역 광장. 시각은 이틀 후, 교단의 종이 다섯 번 울리면 결투를 진행할 것이다.”
선언과 함께 재판이 막을 내렸다.
방청객들이 웅성거리며 재판장을 빠져나갔다. 저들은 오늘 있을 희대의 사건을 소문내고 다닐 것이다.
아마 오늘 밤, 술집에서는 오로지 데일과 크리스틴의 결투에 대한 이야기만 떠들 터.
다음으로는 평의원들이 나갔다.
그들의 반응은 상반되었다.
예상치 못한 흐름에 당황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순수하게 즐거워하는 이도 있었고, 탐탁지 않아 하는 사람도 있었다.
평의원들을 둘로 나뉘어 데일과 크리스틴에게 다가갔다.
데일에게 다가온 건 가란드와 에리얼, 그리고 대장장이 길드장이었다.
나이 지긋하고 꼬장꼬장한 인상의 드워프가 데일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드워프치고도 키가 작았다.
“흐음. 네가 그 소문의 흑기사라 이거지…….”
흥미롭게 쳐다보던 그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요즘 젊은 놈들답지 않게, 제법 남자다운 놈이잖아. 그래. 사내가 검을 뽑을 때는 뽑아줘야지.”
드워프는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마르크의 아들, 바우만이다. 지금은 대장장이 길드를 이끌고 있지.”
“데일이오.”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라. 무기 한두 개는 뚝딱 만들어줄 테니.”
데일은 고개를 끄덕이고, 악수를 위해 허리를 숙였다. 그러자 바우만이 얼굴을 찌푸렸다.
“허리 굽히지 마.”
그러고는 자기가 까치발을 들어, 손을 마주 잡았다. 아무래도 바우만에게 민감한 부분인 듯하다.
바우만이 떠나간 다음에는 가란드가 다가왔다.
“결국, 이렇게 되었군요.”
“나한테 귀띔해줬을 때부터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것 아니오?”
“음. 사실 그렇긴 하죠.”
멋쩍게 웃은 가란드가 표정을 굳혔다.
“크리스틴 경은 강합니다. 황실 기사단에 입단이 예정되었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혹시 아십니까?”
데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게임에서도 황실 기사단을 몇 번 만나본 적 있다.
그들은 하나같이 비인간적인 강함을 지니고 있었다.
아군으로서 함께하면 그것보다 든든할 수가 없지만, 적으로 상대하면 악몽 같은 존재였다.
이제 데일은 그 악몽을 상대해야 한다.
물론, 아직 크리스틴은 정식으로 황실 기사단원이 아니지만.
어쨌거나 어려운 싸움이 될 것이다. 상대는 지금껏 싸워온 그 누구보다 강할 테니.
가란드가 떠나가자 마지막으로 에리얼이 다가왔다.
언제나 데일을 향해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던 입꼬리가, 지금은 굳어있었다.
안대 탓에 그 눈빛을 볼 수는 없지만, 아마 눈동자에도 비슷한 감정이 담겨 있으리라.
“……지금 제가 말린다고 해도, 그만두지는 않을 거죠?”
“그래.”
“따라오세요.”
그 말을 남긴 에리얼이 혼자 걸어나갔다. 닥치고 따라오라는 듯이.
여기서 가만히 서 있으면, 늘 미소를 꾸며내는 저 사제가 화를 내는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데일은 순순히 뒤를 따랐다.
앞서가던 에리얼이 걸음을 우뚝 멈추고 말했다.
“데일 경은 죽을 거예요.”
“……딱히 죽을 생각은 없는데.”
“데일 경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크리스틴은 위험한 작자예요. 명문 기사 가문 출신인 그는 어떻게 해서든 데일 경을 자기 업적을 위한 제물로 만들 거예요. 일부러 광장에서 결투를 벌이려는 의도도 뻔하죠. 더 많은 사람이 결투를 보게 만들려는 거예요.”
에리얼은 어딘가 화가 난 듯 보였다. 크리스틴에게? 아니면 데일에게?
에리얼이 이어 말했다.
“간단히 죽이지도 않을 거예요. 최대한 가지고 놀 듯, 천천히 요리하며 자기 실력을 과시하겠죠. 사람들 앞에서 데일 경을 망신줄 거예요. 그러고는 자기가 사악한 이교도 기사를 죽였노라, 당당히 선언하겠죠.”
에리얼과 데일의 눈이 마주쳤다. 에리얼은 안대를 했지만, 왠지 눈이 마주친 그런 기분이 들었다.
“데일 경은 신도들의 우상이에요. 우상이 형편없이 당하는 건, 사제장으로서 용납할 수 없어요.”
데일이 물었다.
“그래서?”
“신도들을 보호해달라 요청했을 때, 제가 말씀드렸죠. 하급 유물을 하나 드리겠다고. 지금 드리겠습니다. 유물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승산이 올라가겠죠.”
반가운 얘기다.
안 그래도 에리얼에게 직접 찾아가 약속했던 유물을 내놓으라 말할 참이었다.
당연하지만 데일은 크리스틴에게 죽어줄 생각이 없었고, 이기기 위해 무엇이든 할 생각이었다.
말을 마친 에리얼은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목적지는 밤의 신전이다.
계단을 내려간 에리얼은 여느 때와 같이 목검을 휘두르는 스켈레톤을 지나쳐, 기도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복도로 들어섰다.
그러고는 근처에 있는 기도실의 문을 열었다.
“들어가요.”
“?”
“어서요.”
데일은 기도실 안으로 들어갔고, 에리얼도 뒤이어 들어왔다
넓지 않은 기도실은 두 사람이 들어서기에는 조금 좁았다.
에리얼은 양손을 그러모아 조용히 기도를 읊었다. 그리고 다시 기도실의 문을 열었다.
그러자 요상한 일이 일어났다.
“여긴…….”
“밤의 신성으로 만들어낸 특별한 공간입니다. 지금은 유물 창고로 쓰고 있죠.”
원래라면 기도실로 통하는 복도가 보여야 한다. 하지만 펼쳐진 풍경은 복도와는 거리가 멀었다.
끝없이 펼쳐진 어두운 공간. 그 공간에 용도를 알 수 없는 각양각색의 물건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깊은 바다를 연상케 하는 곳이었다.
데일이 물었다.
“이것들은 다 유물인가?”
“예. 긴 세월 간 신도들이 모아놓은 유물들입니다.”
“이 중에서 하나를 고르면 되는 건가?”
“아뇨. 잘못 생각하고 계시는군요.”
에리얼이 조금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데일 경이 유물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유물이 데일 경을 선택하는 겁니다. 시험 삼아 아무 유물에나 손을 뻗어보세요.”
데일은 그리했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접시처럼 생긴 유물에 손을 뻗었다.
그러자 유물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처럼 데일에게서 빠르게 멀어졌다.
에리얼이 어깨를 으쓱했다.
“보셨죠?”
데일은 조금 어이없어하며 물었다.
“만약 나를 선택하는 유물이 없다면 어떻게 하지?”
“그러면, 안타깝지만 유물을 얻지 못하는 거겠죠?”
“…….”
잠시 떨떠름한 얼굴로 에리얼을 쳐다본 데일이 다시 고개를 돌렸다.
“일단 어떤 유물이 무슨 효과가 있는지, 설명을 좀 해줄 수 있겠나?”
“원하시다면야.”
데일과 에리얼은 창고 안을 거닐었다.
처음에는 물속을 거니는 듯한 감각에 어색했지만, 금방 익숙해질 수 있었다.
에리얼은 데일이 가리키는 유물마다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저 방패는 뭐지?”
“아가라드론의 방패네요. 웬만한 공격은 전부 막아낼 수 있는 방패죠. 주기적으로 고기를 먹이지 않으면 주인을 잡아먹을 수 있지만요.”
“저 팔찌는?”
“가르타스의 타락이라는 물건이에요. 착용하면 엄청난 힘을 주지만, 일주일에 하루는 완전히 미쳐버리게 돼요. 죽을 때까지 벗을 수 없는 것도 사소한 단점 중 하나죠.”
아무래도 밤의 신전에 잠들어 있는 유물들이다 보니, 하나같이 흉악한 물건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둘러보던 중.
데일의 시선을 강렬하게 사로잡는 물건 하나가 눈에 띄었다.
짝이 없는 장갑이다. 색깔은 회색. 마치 그물이 얽힌 것처럼, 각 손가락을 이루는 부분에 하얀선이 그어져 있다.
데일이 물었다.
“저건 어떤 물건이지?”
“아. 죽음의 손아귀라는 이름의 유물입니다. 효과는 간단하죠. 저 손바닥 부분에서 강력한 충격파를 방출할 수 있어요. 다만, 그에 대한 대가로 생기를 바쳐야 하지만요.”
생기를 바쳐서 순간적으로 강한 충격을 낼 수 있는 유물.
분명, 이번 상대는 단단한 갑옷으로 무장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강하다 해도 결국에는 사람.
머릿쪽에 순간적으로 강한 충격을 줄 수 있다면…….
‘해볼 만하다.’
데일이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좀 더 고민했을 거다.
유물을 사용하기 위한 대가로 생기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데일은 생기가 부족하면 다시 흡수하면 된다.
부작용이 데일에게만큼은 미미하다는 것.
“이걸로 하겠다.”
결정을 내린 데일은 장갑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장갑이 쑥, 뒤로 밀려났다.
에리얼이 말했다.
“말씀드렸잖아요. 데일 경이 유물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유물이 데일 경을 선택하는 거라고.”
“…….”
데일은 다시 한번 손을 뻗었다.
장갑은 이번에도 옆으로 쑥 이동했다. 손에서 아슬아슬하게 떨어진 거리에서 벗어나는 게, 마치 놀리는 것 같이 보이기도 했다.
데일은 가라앉은 눈으로 잠시 고심에 빠졌다. 감히 물건 따위가 자신을 가지고 놀다니.
참을 수 없다.
에리얼에게 물었다.
“혹시 유물이 저렇게 뒤로 물러나는 건, 이 공간의 힘인가?”
“예. 이곳에는 밤의 신성이 진하게 퍼져 있거든요. 그 신성이 유물의 의지를 일깨워……. 아무튼 설명하기는 복잡하지만. 이 공간이 특별해서라고만 알면 됩니다.”
“그래. 신성이 없으면 유물도 도망치지 못한다는 거군.”
“?”
그게 무슨 말이냐고 되물으려는 에리얼은 굳어버렸다.
데일이 검에 손을 가져다 대고 있었다.
“자, 잠깐. 그 마검을 이곳에 들고 들어왔다고요?”
“들고 오지 말라는 말은 못 들었다.”
“아니, 상식적으로…….”
데일은 에리얼의 말을 끊듯. 검을 뽑았다.
그러고는 허공을 향해 벼락처럼 휘둘렀다. 신성 거부자가 밤의 신성을 베었다.
화아아악!
그저 어둡고, 잔잔하던 공간에 긴 상처가 생겼다.
이윽고. 마치 밑바닥에 뚫린 구멍으로 물이 빨려들 듯. 온 공간에 펼쳐진 신성이 그 안으로 밀려들기 시작했다.
에리얼이 비명을 내질렀다.
“미쳤어요?!”
늘 차분한 그녀가 실로 오랜만에 뱉었을 욕설. 하지만 데일은 신경 쓰지 않았다.
신성이 빨려들면서. 유물들도 파도에 휩쓸린 물고기 떼처럼 이쪽을 향해 쇄도해 왔다.
데일은 그 모습을 차분히 살피다, 그 안에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 순간. 흐름이 멈췄다.
“정말! 일을 벌일 거면 제발 말을 먼저 해주시면 안 될까요?”
황급히 공간에 난 상처를 신성으로 덧댄 에리얼이 툴툴거렸다.
“왜 대답이 없…….”
데일에게 고개를 돌린 에리얼이 입을 다물었다.
데일은 주먹을 꼭 쥐고 있었다. 주먹에는 낯익은 장갑이 하나 붙들려 있었다.
데일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내가 선택받는 게 아니라, 내가 선택하는 거다.”
에리얼은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해봤자 아무 의미도 없다는 걸 알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