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54)
결투
* * *
데일은 ‘죽음의 손아귀’를 왼손에 착용했다.
다행히 유물 장갑은 신축성이 뛰어나, 건틀렛 위에 덧씌워도 별문제가 없었다.
데일은 왼손을 쥐었다 폈다 반복했다. 움직임에는 어떤 불편함도 없었다.
데일이 물었다.
“시험해보고 싶은데. 어떻게 사용하면 되지?”
“원하는 대상에게 손을 접촉한 뒤, 머릿속으로 발동하라고 명령을 내리면 될 거예요. 아니면 무언가 터트리는 상상을 하거나.”
데일은 품을 뒤져 단검을 하나 꺼냈다. 검날부터 손잡이까지 모두 쇠로 만들어 적당히 단단한 녀석이었다.
데일은 왼손으로 단검을 쥐고, 머릿속으로 명령을 내렸다.
‘터져.’
쿵!
강력한 충격파가 손바닥에서 뿜어졌다. 주먹을 쥐고 있었기에 충격은 고스란히 단검과 주먹으로 전해졌다.
단검이 순식간에 찌그러졌다. 문제는 찌그러진 게 단검뿐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데일 경. 주먹이 찌그러졌는데요?”
“아무래도 주먹을 쥐고 사용하면 안 되나 보군.”
“당연한 것도 직접 몸으로 체험해야 직성이 풀리시나 보군요.”
충격파는 손바닥에서 나가기 때문에 주먹을 쥐면 그 충격이 손에 전해진다.
‘무언가 단단한 물건을 깨트릴 필요가 있으면, 주먹을 쥐면 되겠군.’
데일은 오른손으로 찌그러진 왼손을 억지로 폈다. 이미 그 형체를 잃은 단검이 아래로 툭 떨어졌다.
어쨌거나 위력이 과할 정도로 훌륭하다는 건 알았다.
‘다만, 생기를 제법 잡아먹는군.’
모든 건 등가교환이다.
강력한 마법에 막대한 마력이 필요하듯, 이 유물을 사용하는 데에도 상당히 많은 생기가 요구되었다.
데일은 생기 부족으로 인한 미약한 갈증을 느끼며, 에리얼에게 말했다.
“어쨌든. 잘 쓰도록 하겠다.”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정당한 거래에 대한 대가로 당연히 받아야 했을 물건이니.
에리얼도 고개를 끄덕였다.
“부디 그 유물이 데일 경을 승리로 이끌길 바랄게요.”
용건을 마친 둘은 다시 기도실 안으로 들어갔다. 기도실 문을 닫은 뒤, 다시 문을 여니 바깥은 이전과 같은 복도였다.
에리얼이 복도로 나가며 물었다.
“기도를 드리고 가실 거죠?”
“그래.”
기왕 온 거, 기도를 안 할 이유는 없다.
바깥으로 나간 에리얼은 기도실의 문을 닫아주었다.
허리에 찬 검을 바깥에 놓은 데일은 투구를 벗고, 한쪽 무릎을 꿇었다.
“왔습니다.”
은 촛대에 놓인 양초에서 연기가 피어올랐고, 연기는 이내 형상을 이루었다.
데일은 고개를 숙였다.
아름다운 하얀 발과 바닥에 흘러내린 검은 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어서오거라 데일. 내 아들. 기다렸단다.]밤의 여신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차분했다. 여신 역시 데일이 지금 어떤 싸움을 앞두고 있는지 알았다.
[어려운 싸움을 앞두고 있구나.]“예.”
[두렵지 않느냐? 아들, 너도 알고 있지 않느냐. 상대가 얼마나 강한지.]크리스틴이 데일보다 몇 수 위라는 건 명확하다.
그 사실은 데일도 알고, 여신도 안다.
하지만 데일은 고개를 저었다.
“겁이 나지는 않습니다. 그런 걸 느낄 수 있는 몸은 아닌지라.”
[데일. 지금이라도 도망치는 게 어떻겠느냐.]“이제 와서 도망치기에는 늦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단순히 제가 욕먹는 게 아니라, 교 전체의 명예가 실추되겠죠. 이교도들은 역시 겁쟁이라는 말을 들어야 할 겁니다.”
데일의 설명에 밤의 여신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단호하게 말했다.
[상관없다. 여신은 그 어느 것보다 아들의 목숨이 중요하다. 겁쟁이라고 조롱당한다 한들, 아들의 목숨만 하겠느냐. 그러니…….]더 설득하려던 여신은 입을 다물었다.
한 점 흔들림 없는 눈동자에서 데일이 결정을 번복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
[그래. 이미 결심을 굳혔구나.]“예.”
이건 다른 누군가를 위한 싸움이 아니다. 오로지 자기를 증명하기 위한 싸움.
그렇기에 데일은 여기서 물러날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그렇다면 믿어줄 수밖에. 제물을 바치겠느냐?]데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간 모은 잔혼이 몸속에서 빠져나갔다.
보르단과 마법사가 부리던 노예병 등에게서 얻은 잔혼이었다.
언제나처럼 세 가지 선택지가 떠올랐다.
《근력 상승》
《갑옷 강화》
《영혼 강화》
평소였다면 길게 고민했을 거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고민의 여지가 없었다.
“전부 근력에 투자하겠습니다.”
자신보다 명백히 강력한 상대에게 내구도 따위는 무의미하다.
아무리 튼튼해봤자, 조금 더 천천히 패배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승산을 높이기 위해서는 더 강력한 힘이 필요하다.
데일이 선택하자, 여신이 힘을 내려주었다.
몸속을 파고든 힘은 이내 데일의 근육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었다.
데일은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했다.
[데일]등급: 3
직업: 흑기사
근력: 62
내구: 34
마력: 10
체력: ―
정신력: 10
[보유 기술 목록]생기 흡수
검은 안개
[특성]반인 반언데드
부정한 감각
밤의 여신의 축복
[칭호]악마 하수인 살해자
등급에 비해 월등히 높은 능력치. 이곳에 적힌 숫자야말로 지금 데일이 믿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자신의 상태를 꼼꼼히 눈에 담은 데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데일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여신의 형상이 안개처럼 흩어졌다. 데일은 기도실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빈 기도실에 여신의 목소리가 울렸다.
[반드시 이기거라. 반드시.]* * *
바쁘게 돌아다니는 데일과 달리, 크리스틴은 한껏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그는 거울 앞에 서서 승리했을 때의 동작을 연습했다.
“이겼노라! 흠. 이건 아니야. 사악한 이교도야, 흙으로 돌아가라! 음. 너무 거창한데.”
그런 크리스틴을 보며 마탑의 마법사는 표정을 찡그렸다.
“경. 조사해보니 상대는 제법 강하다고 해야 할지, 특별하다 해야할지. 어쨌거나 방심해서는 안 될 상대입니다. 이렇게 여유를 부리셔도 되는지…….”
크리스틴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걱정하지 마시오. 강하다 해봤자 흑기사는 언데드요. 반쯤 본능에 의지하는 놈들의 싸움 방식은 제법 호쾌한 편이나, 반대로 너무 단순하지. 내 몸에 검이 닿을 일은 없을 것이오. 그것보다 함께 고민해주시오. 어떤 식으로 연출해야 결투를 더 극적이게 보일 수 있겠소?”
마법사가 더더욱 인상을 찌푸렸다.
“연출이라니……. 그건 연극에나 쓰는 단어 아닙니까?”
“정확히 봤소. 나는 지켜보는 이들에게 최대한의 즐거움을 선사해줄 것이오. 내가 일격으로 놈의 목을 베어버리면 재미없지 않겠소?”
참다못한 마법사가 외쳤다.
“맙소사! 경, 이건 굉장히 중요한 결투입니다! 마탑에서 경께 거금을 드린 건, 장난이나 치라고 그런 게 아닙니다!”
그렇게 내뱉은 마법사는 아차 싶었다.
크리스틴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장난? 주문쟁이가 좋게 봐줬더니 주제를 넘는구나.”
“…….”
크리스틴에게서 살기가 진득하게 퍼져 나왔다. 마법사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기사는 마법사의 천적이다.
아무리 강력한 마법사라도, 가까이서 날아오는 칼에는 당해낼 도리가 없다.
옛이야기 속에 사악한 마법사를 물리친 기사의 일화가 많은 건, 다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였다.
마법사가 겁에 질려 부들거렸다. 그제야 크리스틴은 그제야 표정을 풀며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이미 내 승리는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소. 그대들도 그렇게 생각하니 내게 부탁한 것 아니오?”
“그, 그렇죠.”
“어디까지나 조금, 여흥을 돋을 뿐이오. 그대들은 갈채를 보낼 준비나 하시오. 나에게 걸맞은 힘찬 갈채를 말이오. 아. 마법으로 폭죽 같은 걸 위로 쏴주는 것도 괜찮겠군.”
“……고민해보겠습니다.”
“음!”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 크리스틴은 중얼거렸다.
“자. 이제 그놈을 어떻게 요리해야 좋을까……. 아! 그러고 보니 이 언데드 놈이 어쭙잖게 인간 흉내를 낸다고 하던가? 그렇다면…….”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크리스틴은 차근차근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 * *
공주의 판결을 가르는 두 기사 간의 결투.
이 사건은 단순히 외곽 구역을 넘어 상위 구역, 그리고 성벽 밖 빈민가에까지 커다란 화제가 되었다.
사람들은 누가 이길지에 대해 입방아를 찧었다.
마탑이 죄 없는 공주에게 누명을 씌웠다거나 하는 얘기는 이제 사람들의 관심 밖이었다.
전부 마탑의 의도대로였다.
크리스틴의 가문에서도 이번 결투를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이교도 기사와의 결투. 아마도 모든 젊을 기사들이 원할만한 명성이 아닌가.
들리는 말에 의하면 이 결투에 대한 소문이 어찌나 화제가 되었는지, 심지어 공사다망한 황제까지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그런 시끌벅적함 속에서 마침내 결투 당일이 되었다.
7구역의 광장.
결투 장소로 선택된 이곳에는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렸다. 그 숫자가 못해도 1만 명 이상이었다.
곳곳에는 특수를 맞아 한몫 잡으려는 상인들이 음식을 팔았고, 결투의 승패에 따라 도박을 하는 이도 있었다.
배당은 20배.
즉, 크리스틴이 이길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만큼 황실 기사단이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는 무거웠다.
하켄은 그런 숫자를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고는 결심을 내린 뒤, 돈주머니를 내밀었다.
“데일 경이 이긴다에 전부.”
“오오. 용기 있는 분이시군요.”
“흥. 난 데일 경을 믿으니까.”
자신만만하게 말한 하켄이 잠시 눈치를 살피다, 조심히 물었다.
“호, 혹시 무를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전 재산을 건 좀 아닌 것 같아서.”
“하하하. 안 됩니다.”
하켄은 축 늘어졌다가, 이내 고개를 바짝 세우고. 데일이 있는 곳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데일은 조용히 앉아 검을 닦고 있었고, 카일라와 에스델, 하티가 주위에 있었다.
하나같이 걱정 어린 표정.
오직 데일만이 덤덤했다. 마치 남의 일이라도 되는 듯한 태도였다.
하켄은 데일에게 다가가 말했다.
“데일 경! 꼭 이기셔야 합니다! 저 하켄, 한평생 데일 경을 돕기로 한 몸. 데일 경만 믿고 있습니다.”
“호들갑 떨지 마라.”
“으음. 알겠습니다.”
데일의 차분한 태도에 하켄마저 진정했다. 이 기사에게는 주위 분위기를 휘어잡는 힘이 있었다.
잠시 뒤. 아이렉과 프라우, 그리고 엘레나가 다가왔다.
아이렉은 굳은 얼굴로 말했다.
“미안하네. 우리 때문에.
“딱히 당신들 때문이 아니오. 내 의지로, 증명하기로 결정했을 뿐이오.”
“증명?”
되물으려던 아이렉의 말은 프라우에게 가로막혔다.
“최고의 싸움을 보여주게나! 저 재수 없는 기사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주게!”
데일은 프라우의 말을 깔끔히 무시했다.
그리고 뒤쪽에서 머뭇거리던 엘레나가 앞으로 다가왔다.
엘레나의 얼굴은 복잡했다.
두려움. 긴장. 그리고 죄책감.
일이 이렇게 된 건 어쩌면 자기 탓이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엿보인다.
엘레나는 일방적인 피해자인데도 말이다.
데일은 그런 엘레나를 보며 생각했다.
‘그래. 그러고 보니 카를이랑 약속도 했었지.’
데일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저 겁먹은 채 손을 떨고 있는 엘레나에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라.”
엘레나의 눈이 크게 뜨였다. 입을 열어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마침 약속된 시간이 되었다.
크리스틴이 광장으로 들어섰다.
“와아아아!”
“크리스틴! 크리스틴!”
“힘내세요!”
반응이 뜨겁다. 잘생긴 기사는 사람들을 향해 미소지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데일도 광장의 중앙으로 나아갔다. 사람들의 반응은 딴판이었다.
“저게 그…….”
“으음.”
데일에 대한 소문이 많이 퍼졌다 하나, 그는 여전히 흑기사였다.
사악하고 두려운 이교도 기사.
사람들은 꺼림칙해하는 시선을 보냈다.
그것만으로도 이 자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그리고 악역은 누구인지가 명확히 갈렸다.
사람들은 크리스틴의 승리를 바랐다.
물론. 데일은 그러한 기대에 부응해줘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남들이 데일에게 무엇을 바라든. 무얼 기대하든.
데일은 할 일을 할 뿐이다.
마침내 두 기사가 광장의 중앙에서 마주 섰다.
크리스틴이 히죽 웃었다. 그 찰랑이는 금발을 한 손으로 넘기며, 거드름을 피웠다.
“너에게는 개인적으로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이렇게 내 명성을 퍼트릴 기회를 줘서 말이야. 내 살아생전 언데드 덕을 다 볼 줄은 꿈에도 몰랐어.”
싸움 전 트래쉬 토크는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싸움은 주둥이로 하는 게 아님을, 데일은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넘어갈 수 없는 말에 데일이 대꾸했다.
“나는 언데드가 아니다.”
그러자 크리스틴이 비웃는 듯, 한쪽 입꼬리를 비뚜름하게 올렸다.
“그래. 네가 인간 흉내를 낸다는 말은 들었다. 참 가증스러운 일이지. 하지만 언제까지 그 흉내를 낼 수 있을지, 오늘 한번 확인해보자고.”
그렇게 말하는 크리스틴을 보며 데일은 생각했다.
저놈의 머리 뚜껑을 열어보고 싶다고.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진짜로.
마침 날카롭게 벼려진 검을 잘 닦아놓았다.
곧, 데일의 생각대로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