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6)
용병과 흑기사
* * *
악마의 등장 이후. 가장 큰 성세를 누린 곳은 아마 용병 길드일 것이다.
세상에는 무력이 필요한 일들이 넘쳐났다. 하지만 국가의 정예병들은 전선을 유지하기도 급급한 상황.
결국, 자질구레한 일부터 촌각을 다투는 중요한 일까지 모조리 용병들이 맡게 되었다.
자연히 용병들의 사회적 지위 또한 올라갔다.
예전엔 전장을 전전하며 죽을 날만 기다리는 비루한 인생들이었다면, 이제는 잘만하면 귀족의 지위까지 얻을 수 있다.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지만 기대 보상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오늘도 다양한 인간군상이 부푼 꿈을 안고 용병 길드 사무소의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데일도 그중 하나였다.
용병 길드의 사무소는 7구역에 있었는데, 그 규모가 상당히 컸다.
옆으로 넓게 퍼진 6층 높이의 석조 건물을 올려다보던 데일은 문을 열었다.
실내는 한산했다.
웬만한 용병들은 일을 나갔을 시간이고, 일이 없는 용병들은 술을 마실 시간이다.
길드 사무소의 1층에는 용병 몇 명만이 한가하게 서성이고 있었다.
데일은 그들 사이를 지나쳐 걸어갔다.
그러다 뒷걸음질하던 한 용병과 부딪혔다.
“아이 씨발 어떤 새끼야. 처맞고 싶어…….”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뒤를 돌아본 용병의 얼굴이 굳었다.
전신을 흑색 갑주로 무장한 데일이 내려다보니 그 위압감이 장난 아니었다.
용병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흐, 흑기사가 왜 여기에?”
데일이 차갑게 내려다보았다.
“계속 말해라.”
“네?”
“처맞고 싶어 다음에 하려던 말을 계속 말하라고.”
용병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 오른손을 들고는 자기 뺨을 힘껏 때렸다.
짝!
“야, 야이 씨발 멍청한 새끼야! 감히 기사님과 부딪혀? 처맞고 싶어? 처맞아야 정신 차리지. 응?”
짝! 짝! 짝!
용병은 마치 스스로에게 화를 내듯 외친 뒤, 자기 뺨을 연거푸 때렸다.
그 우스운 촌극에 데일은 무심히 고개를 돌렸다.
“조심해라.”
“예, 옙! 조심하겠습니다!”
데일은 걸음을 옮겼다. 뒤에서 용병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사회적 지위가 올라갔다 해도 여전히 용병은 용병이다.
늘 죽음이 가까이 있는 이들답게 몹시 거칠고, 포악한 구석이 있었다.
누가 위인지는 언제나 확실히 보여주어야 한다.
이쯤 되자 실내에 있는 모두의 시선이 데일에게 쏠렸다.
데일은 어딜 가든 시선을 끄는 외형이었다.
용병들이 수군거렸다.
“흑기사잖아. 처음 봐.”
“나는 최전선에서 한 번 본 적 있는데……. 가까이 갈 생각은 안 하는게 좋아.”
“길드에는 왜 온 거지?”
그런 시선들을 무시하며 데일은 접수대로 향했다.
접수대는 세 개였는데, 접수원 셋 모두 데일을 긴장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
어느 접수대로 갈까. 데일은 고민했다.
접수원들은 하나같이 제발 자기한테만 오지 말라는 표정을 지었다.
데일은 그나마 침착해 보이는 쪽으로 향했다.
“어, 어서오세요. 용병 길드 이레네 지부에.”
바짝 긴장한 접수원이 허리를 빳빳이 세웠다.
데일이 물끄러미 쳐다보자, 접수원이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무,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용병 등록을 하고 싶다.”
“아. 음. 그렇군요.”
다짜고짜 웬 흑기사가 찾아오더니, 갑자기 용병 등록을 하겠단다.
접수원은 당황을 금치 못했다.
그도 그럴 게, 흑기사는 원래 기사다.
그리고 기사들은 하나 같이 자부심이 넘치고 오만하다.
기사들은 차라리 강도 기사가 되어 여행자들을 털어먹었으면 먹었지, 하찮은 용병 나부랭이가 될 이들이 아니다.
흑기사들은 얘기가 좀 다르지만, 이들 역시 용병에 어울리는 이들은 아니었다.
접수원은 당황했지만 자기 일을 잊지는 않았다.
데일에게 친절한 어조로 물었다.
“신원을 증명해줄 물건이 있나요?”
“없다. 하지만 보증인은 있다.”
“성함을 말씀해주시겠어요?”
“에스델. 교단의 견습 사제다.”
접수원은 눈을 찌푸렸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기도 하거니와, 교단의 사제가 흑기사의 보증인이 되어준다니?
선뜻 믿기 어려운 말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점을 지적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눈앞의 흑기사가 너무 무서웠다.
‘조, 조금이라도 거슬리면 나를 죽여서 내 영혼을 빨아먹을 거야.’
다분히 편견 섞인 생각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접수원은 떨리는 손을 부여잡으며, 입을 열었다.
“서, 성함을 알려주시겠어요?”
“데일.”
“데일 경이셨군요. 우선 용병 등급부터 설명을 드릴게요. 길드에서는 용병 분들의 공적에 따라 목패, 철패, 동패, 은패, 금패 이렇게 다섯 단계로 나누고 있어요. 이해 가시나요?”
데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혹시 데일이 알고 있는 것과 다른 게 있을까 싶어 경청했다.
“길드에서 의뢰를 수행해 실적을 쌓으면 등급을 올릴 수 있습니다. 동패 등급부터는 3구역에 들어갈 자격이 생기고, 금패가 되시면 황실에서 준남작 작위가 내려올 거예요.”
접수원은 말할수록 긴장이 덜 하는지, 긴 설명을 더듬거리는 일 없이 부드럽게 말했다.
‘상위 구역 입장 자격과 준남작 작위.’
이레네는 총 7구역으로 나뉘어 있지만, 3구역부터는 입장에 자격이 필요하다.
동패 용병이 되면 그 자격이 생긴다.
물론, 혜택이 있다는 건 그만큼 그 자리에 오르기가 쉽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상위 구역에서 이용할 수 있는 혜택을 생각하면 빨리 등급을 올려야 하는데.’
앞으로 부지런히 움직여야 할 것이다.
데일이 접수원에게 말했다.
“알았다. 목패부터 시작하면 된다는 것 아닌가? 등록하겠다.”
“저……. 그게 문제가 있습니다.”
“?”
데일이 노려보자 접수원의 말이 다시 빨라졌다.
“저, 저희 길드에는 입단 시험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믿을만한 사람인지, 최소한의 신용을 보는 절차입니다.”
“그래서?”
“보통은 간단한 의뢰를 몇 가지 맡기거든요. 약초 채집이라거나 하수구 청소라거나…….”
“짧게 말해라.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지?”
침을 꿀꺽 삼킨 접수원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희가 함부로 데일 경께 의뢰를 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 의뢰자분들이 싫어하실 수도 있어서.”
“왜지?”
“그야…….”
접수원을 말을 잇지 못하고, 데일을 위아래로 훑었다.
그 반응에서 데일은 접수원이 하려는 말을 알아차렸다.
‘흑기사니까.’
어이가 없어진 데일이 되물었다.
“흑기사가 캔 약초는 효능이 줄어들기라도 하나? 아니면 내가 하수구를 청소하면 다른 놈들이 청소하는 거랑 다른가?”
“그게. 길드와 의뢰주들간에 신뢰가 깨질 수 있는 문제인지라.”
요컨대 반 언데드에게 맡길만한 의뢰주가 없다는 건가.
데일이 만약 확실한 신분이 있었다면. 혹은 무시할 수 없는 실적이 있었으면 상황이 달랐을 거다.
하지만 데일은 이제 도시에 찾아온 참이다.
수상쩍고 낯선 반 이교도에게 의뢰를 맡길 사람은 없다.
‘허. 이래서 게임에서 흑기사는 안 한 건데.’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난관에 부딪혔다.
고민하던 데일은 전략을 바꾸기로 했다. 지금껏 너무 인간적으로 나갔으니, 흑기사답게 하기로 했다.
데일은 일부러 접수원을 흉흉한 눈빛으로 노려보며 말했다.
“그렇다면 그냥 시험 없이 목패를 발급해라.”
막무가내로 나가기.
접수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예, 예?”
“입단 시험을 준비하지 못하는 건 너희의 잘못 아닌가. 왜 내가 손해를 봐야 하지.”
“그건…….”
꽝!
“꺄악!”
데일은 책상을 세게 내리쳤다. 나무로 만들어진 책상에 균열이 쩌적 생겨났다.
소스라치게 놀란 안내원이 뒤로 물러났다.
때로는 백 마디 말보다 위협 한 번이 효과적일 때도 있는 법이다.
흑기사 특유의 싸늘한 기세가 주위에 퍼졌다.
접수원은 이제는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잔뜩 겁을 집어먹은 접수원이 어찌할 줄 몰라했다.
“아, 으.”
“해코지할 생각은 없다. 그냥 목패에 내 이름을 새겨 주면 될 뿐이다.”
“아, 알겠습니다.”
“그래. 잘하고 있다.”
공포에 질린 접수원은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접수원은 떨리는 손으로 목패에 데일의 이름을 새기려 했다.
데일은 속으로 흐뭇하게 중얼거렸다.
‘협박 작전. 성공.’
자주 쓰기는 뭣 하지만, 심약한 사람들을 상대로 써먹기 좋은 작전이다.
그때. 뒤쪽에서 중후한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 직원을 겁줘서 은근슬쩍 용병패를 받으려는 건 그만둬 주시지요.”
데일이 고개를 돌렸다.
덩치가 크고, 볼에 칼자국이 있는 중년 흑인이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데일의 기억에도 있는 얼굴이었다.
“가란드.”
은퇴한 금패 용병 가란드. 준남작 작위를 거절한 용병의 전설이자, 용병 길드 이레네 지부의 지부장. 그리고 특별한 비밀을 품고 있는 사내.
게임을 플레이할 적에도 종종 마주치던 인물이다.
데일이 자기를 알아보자 가란드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저를 아시는군요.”
“어쩌다 보니.”
“어쩌다 보니라……. 아. 자네는 가서 일 보게.”
“예, 예?”
가란드의 허락에 접수원이 화색을 띠고는 서둘러 접수대에서 물러났다.
대신 가란드가 그 빈자리에 앉았다.
“그래요. 얘기를 들어보니, 용병 등록을 하고 싶다 이 말이죠?”
“그렇소.”
“흐음. 저희야 인재는 언제든지 환영이지만 말이죠.”
가란드는 턱을 쓰다듬으며 이어 말했다.
“문제는 앞서 말했던 데일 경의 신뢰 문제입니다. 당장 데일 경에게 의뢰를 맡길 만한 의뢰자를 찾기 힘듭니다.”
앞서 나왔던 얘기를 되풀이하자, 데일은 슬슬 짜증이 났다.
‘그냥 협박을 해?’
가란드에게는 비밀이 있고, 데일은 그 비밀은 안다. 그 점을 쥐고 이용하면 용병 패 따위야 얼마든지 내줄 터.
하지만…….
‘아깝다.’
고작 이런 일에 쓰기에는 너무 아까운 패다. 게다가 첫 만남을 협박으로 시작하다니?
그러면 가란드와의 관계는 앞으로도 쭉 좋지 못할 게 뻔하다.
‘좀 더 지켜봐야겠군.’
데일은 일부러 언짢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못 받아주겠다 이거요?”
“흐음.”
데일이 흉흉한 기세를 뿌렸지만, 가란드는 조금도 신경쓰지 않았다.
오히려 흥미로운 눈으로 데일을 살폈다.
“하켄의 보고를 들었습니다. 사람들을 이곳까지 보호하면서 왔다고 하더군요. 맞습니까?”
하켄이 이미 보고서까지 작성한 것인가?
갑작스러운 주제 전환에 데일은 고개만 끄덕였다.
가란드가 이어 말했다.
“퀼과 하켄. 믿을만한 2인조이지요. 아, 이제는 2인조가 아니지만……. 어쨌건 하켄이 좋게 평가했다면 이유가 있겠죠. 의뢰를 하나 맡기겠습니다.”
“내 줄 의뢰가 있소?”
“길드에서 자체적으로 내는 의뢰입니다.”
의뢰의 주체가 길드인가?
이런 일은 골치 아플 가능성이 컸다.
가란드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의뢰자는 길드가 아니라 저이지만요. 수락하시겠습니까? 꽤 위험할 수도 있어요. 아니. 위험할 겁니다.”
위험한 의뢰?
오히려 좋다.
데일은 망설임 없이 승낙했다.
“받아들이겠소.”
* * *
가란드는 곧바로 의뢰 내용을 설명했다.
“이곳에서 이틀 거리의 마을에서 몬스터 토벌 의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어디선가 아울베어가 이동해와서 마을 근처에 정착했다는군요.”
“아울베어는 자기 영역에서 잘 벗어나지 않을텐데?”
가란드가 조금 놀란 얼굴로 말했다.
“몬스터의 생태에 대해 잘 아시는 군요! 예, 맞습니다. 어지간해서는 자기 영역 안에서 생활하는 놈이지요.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닙니다.”
의뢰를 받은 길드는 토벌대를 보냈다. ‘마일즈 팀’이라는 용병 팀이었는데, 동패 하나에 철패 다섯이 포함된 파티였다.
아울 베어를 상대하기에는 충분한 전력이었다.
“하지만 전멸했습니다. 팀을 이끌던 리더를 빼고 전부요. 보고에 따르면 변종 아울베어였다 하더군요.”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오.”
“이번에 토벌대가 새로 꾸려졌는데, 영 불안해서 말이죠. 데일 경이 함께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울 베어 퇴치.
데일은 생각했다.
‘아울 베어라. 생각보다 버거운 의뢰는 아니야.’
변종이라 하나 다른 용병들도 있다면 크게 위험한 괴물은 아니었다.
“그게 전부요?”
“예. 아, 그리고 죽은 용병들의 용병패를 회수해 주시겠습니까? 유족들에게도 알려주고, 장례를 치러주는 것도 길드의 의무인지라.”
“알았소. 가능한 한 모두 챙겨오겠소.”
“예. 이번 의뢰만 무사히 끝난다면, 용병 패를 발급해드리겠습니다.”
가란드는 분주히 서류를 작성하며 말했다. 접수원에게 시켜도 될 일이지만, 자기가 직접 하는 게 편한 듯했다.
그러다 문득, 가란드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용병들도 죽었을 정도니, 근처 마을 사람들도 이미 변을 당했겠죠. 안타까운 일입니다.”
작은 마을 하나 정도 사라져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세상이다.
가란드가 데일과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부디 데일 경께서 그들의 복수를 대신해주기 바랍니다.”
“맡겨 두시오.”
데일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가란드가 막 생각났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용병 등록을 하려면 인상착의를 그려야 하는데, 투구 좀 벗어주시죠.”
데일은 순순히 투구를 벗었다.
밖으로 드러난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던 가란드가 중얼거렸다.
“처음부터 투구를 벗었다면 접수원이 홀라당 넘어갔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