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God of Magic RAW novel - Chapter 220
220
“…테오의 아버지…….”
“그래, 네 아버지 이름이?”
“테오의 아버지!”
테오가 소리쳤다.
“테오의 아버지!”
“테오의 아들…….”
소년이 중얼거렸다.
그러자, 땅바닥에 쓰러져 눈물 흘리던 노인의 고개가 번쩍 들렸다.
그렇구나… 결국 사람은 누군가의 자식, 나아가 누군가의 부모, 누군가의 배우자라는 이름 또한 얻는다. 이름이 바뀐들, 네 발로 기다가 두 발로 서고, 세 다리로 걷게 된들, 변하지 않는 진실.
“테오의 아들의 할아버지!”
소년이 외쳤다. 아이가 너무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노인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의 식구들이 내는 소리의 방향으로.
기어서, 어차피 굴러가 버린 지팡이를 포기하고서.
아, 저러면 되는구나. 더는 한 발짝도 갈 수 없다고 느꼈었지만… 저렇게 하면 되는 거였어.
왜 신인들 기어가지 못할까.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사람처럼 하지 못할 이유가 없는데. 다시 사람에게서 배우는구나. 사람이 신을 가르쳐 주는구나.
적들과 손을 잡으려던 나를 테오가 가르쳤을 때처럼.
나는 기었다. 두 부자의 무게를 감당하며, 개처럼 기었다. 나중에는 손톱, 발톱이 모두 빠져 버려 손목과 발목으로 기었다. 손과 발에 흐르는 피 때문에 미끄러워, 내가 흘린 피 속에 몸부림치며 뱀처럼 기어갔다.
그렇게, 나와 노인의 손이 만났다. 기어가려고 뻗었던 손이.
손이 맞닿은 순간, 삼부자는 서로 끌어안았다. 내가 그들을 끌어안았다. 그렇게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고 거스른 끝에, 마침내 정지시키면서.
시간의 흐름이 밀려와 우리를 덮쳤다. 우리를 하잘 것 없는 모래알처럼 쓸어 버리려고.
하지만 나는 버텼다. 그들을, 내게 믿음을 주는 이들을 끌어안고서.
휩쓸리지 않고, 영점으로 끌려가지 않고 버티고 버텼다.
그러나 영점은 우리를 끌어당겼다. 영점이 극점이고 우리가 자석인 듯, 불가항력인 힘으로.
하지만 영점이건 시간의 흐름이건, 심지어 이 시간의 덫조차 원이었고, 그 원이라면 내게 넘치도록 있었다!
가라, 내 원들아!
나는 그동안 피땀 흘려 모은 열 개의 원을 모두 방출했다. 시간의 흐름으로 던져 넣었다. 내 귀중한 원들 하나하나가 강물 속에 던져지는 조약돌 같았다. 그대로 휩쓸려 사라지는.
그러나 조약돌이건 뭐건, 흐름에 휩쓸린 순간, 흐름의 좌표가 되었다.
나는 내 원들이 저항하지 않고, 본래의 흐름, 본래의 원형에 스며들게 했다. 따라 흐르고, 따라서 원을 이루도록. 그렇게 원들이 저항하지 않고 스며들자, 내게 가해지는 압박도 조금 줄어들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서, 나는 원들에 내 의지를 불어넣었다.
열 개의 원이, 열 개의 숫자가 되도록.
하지만 모자랐다. 총 열 둘의 숫자니까.
나는 원들끼리 서로 갈아서 돌아가게 했다. 맷돌처럼 갈아서 그 파편으로 하나를 더 만들게 했다.
스태프가 손을 델 정도로 뜨거워지더니, 담금질을 견뎌 내지 못한 금속처럼 소리도 없이 부서졌다. 그대로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레오파라의 선물이었는데…….
스태프뿐 아니라 원까지 하나 잃을 위험을 감수하면서, 기어이 열한 개의 원을 만들어 냈다.
그렇게 깎여 나간 원들도, 만들어진 원도 모두 작고 기운을 잃어 약했다. 마지막 하나의 원, 열두 번째 원을 만들어 내기는 불가능했다.
하지만, 멸망의 시계에서 마지막 하나의 숫자는, 영이었다. 시간의 덫이 친절하게도 바꾸어 놓은 대로. 12가 아니라.
“하하하하!”
전신에서 피를 흘리며 나는 웃었다. 피를 토하면서도 웃었다. 내 원을 모두 그 영점으로 날려 버리면서.
그 영점을 영영 터뜨려 버리면서.
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우리가 있는 거대한 시계가 산산조각 났다. 그 파멸의 한가운데서 우리 넷은 서로를 끌어안았다.
소멸한다.
하지만 빠져 나왔다. 함께 탈출했다. 자유로운 존재로서 같이 죽는다.
그 환희 속에서 눈부신 빛이 터져 나왔다.
거대한 원, 시계보다도 더 큰 원이 나를 덮치듯, 내 위로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일어섰다. 내 사람들을 지키고자.
그들 위로 떨어지는 원을 막으려고.
내 피 흐르는 두 손이 닿는 순간, 나는 벌레처럼 으깨졌다.
그 무게라니.
세상의 무게일까. 시간의 무게일까.
그 둘 다일까.
어쩌면, 결국 그 두 가지가 다르지 않았을까.
그 원이 나를 짓누르고, 신조차도 모자라다는 듯 나를 삼켰다.
그러나 나는 기꺼이 그 원에 나를 던져 넣었다. 그 원에 휩쓸려 간 내 원들을 따라가듯.
세상은 멸망하지 않으리라.
나를 던져 넣은 이 원에 나의 의지를 심을 테니까. 그래서 이 원에 봉인되더라도, 멸망을 막아 낼 테니까.
그리운 얼굴들이 스쳐 갔다.
다들 괜찮을까… 얼마나 슬퍼할까…….
그 짧은 삶에 내가 행복이 아니라 슬픔을 가져다주고 말았다.
또한 내 형제자매들, 숙부님과 고모님, 나의 어머니… 아버지… 그 신들이 영원 내내 나 때문에 슬퍼하리라 생각하면… 그렇다. 그들은 나를 사랑한다. 나는 안다. 내가 그들을 사랑하니까.
결국 나는 행복과 기쁨의 신은 되지 못하고 말았구나.
하지만 그 꿈이 있어서 행복했다. 예지의 꿈 이후에, 내 스스로 품은 좋은 꿈이 있어서, 행복할 수 있었다.
세상이 멸망하지만 않는다면, 누구나 자신의 행복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언젠가는. 살아만 있으면.
사람이 그렇게 믿지 못하면, 신이 사람을 믿어 주면 된다.
사람이 행복을 발견할 때까지, 세상을 지키면서.
마침내 내가 휩쓸려 사라지는 순간, 온몸이 그대로 분해되는 느낌 속에서, 나는― 나는― 레오파라! 마리우스! 아타울프! 렉스! 파비안! 프라비타! 레미! 일디케 누나! 아민타스 형! 엘라디안 누나! 라프트레이 형! 라스카라사 누나! 발트라하 누나! 스카텔란 형! 숙부님! 고모님! 어머니……! 아버지!
* * *
테오는 테오라는 이름을 가지기 전, 가난한 농노였다. 그때의 이름은 잊었다.
전쟁이 나자, 그는 아내와 어린 아들, 눈 먼 아버지를 데리고 도망쳤다.
숲속에 숨었지만 식량이 떨어지자, 그는 혼자 식량을 구하러 마을에 내려왔다. 그러나 점령된 마을에서 잡힐 뻔했고, 간신히 도망쳤다.
식구들이 숨어 있던 곳으로 돌아와 보니, 열매를 따러 갔던 아내는 사냥 나온 용병들에게 붙잡혀, 식구들이 보는 앞에서 잔인하게 살해당한 뒤였다.
그는 아내의 시신을 묻으며 울었다. 아버지와 아들도 울었다.
그때, 괴물이 나타났다. 이상하게도 괴물의 말이 세 사람의 마음속에 들려왔다.
괴물은, 그들 저마다에게 아내를, 엄마를, 며느리를 죽인 자들을 죽여 주겠다고 했다.
세 사람 모두 즉시 응했다.
괴물은 그러려면 길을 떠나야 한다고 했다.
사자의 명복을 비는 순례를 떠나, 세상을 한 바퀴 돌고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면 된다고.
세 사람은 바로 응했다. 세 사람 모두 죽은 여인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터였다.
무엇보다, 세 사람 모두 그 자신 하나만 그렇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나 하나만 고생하면 된다고. 다른 둘은 괜찮으리라고.
괴물은 용병들을 잡아 와 죽였다. 막상 살인을 목도하자, 셋은 정신을 잃고 말았다.
괴물은 테오 아내의 무덤을 오두막으로 바꾼 후, 사라졌다.
잠시 후, 소년이 제일 먼저 깨어났다. 소년은 괴물에게 한 약속대로 길을 떠났다.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깨어나기 전에.
잠시 후, 테오가 깨어났다. 테오는 아들이 사라진 것을 발견하고 겁이 덜컥 났다. 만일 아들도 같은 약속을 했다면?
테오는 미친 듯이 노인을 깨웠다. 아버지가 깨어나자, 자신이 아들을 찾아 돌아올 때까지 꼼짝 말고 여기 있으라고 했다. 세 식구 모두 뿔뿔이 흩어져서 헤어지면 안 되니까.
그런 후, 테오는 정신없이 아들을 찾아 나섰다.
노인은 오두막에서 아들과 손자를 기다렸다. 세월이 흘러 전쟁이 끝나고, 새로운 나라가 세워지고, 또 전쟁이 일어나고 새로운 나라가 세워지는 동안.
그러나 어느 순간, 그 오두막을 떠나게 되자, 더는 순례를 미뤄서는 안 된다고, 모든 게 운명이라고 여겼다.
당사자들이 그들의 이름조차, 서로의 이름조차 잊어버렸을 정도로 오랜 세월이었다. 그들의 지난한 여정, 끝없이 이어지는 발자취마다 세상의 모든 흔적이, 모든 변화가 아로새겨지도록.
테오는 죽지 않았다. 그의 시간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 자신의 시간은 정지한 채로, 그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걷고 또 걸었다. 그의 시간은 멎었지만, 그는 멎을 수 없었다.
가끔 아들과 똑 닮은 뒷모습을 보고, 걸음을 빨리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코 뒤따라 잡을 수 없었다.
그 작은 뒷모습은 그렇게 테오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고, 다시 홀연히 나타났다. 그럼 역시 잡을 수 없으리라 생각하면서도, 무작정 뒤쫓지 않을 수 없었다.
작은 뒷모습 말고도, 구부정한 뒷모습도 간간이 보였다. 역시 똑같은 결과였다.
테오는 자신이 언제부터 걷고 있는지, 얼마나 오래 걷고 있는지, 언제까지 걸어야 할지 몰랐다.
아내의 무덤은 본래부터 그가 걷는 궤도에 없었다는 사실도 몰랐다. 그러니 아무리 걸어도 평생 도달할 수 없다는 사실도.
왜 걷고 있는지, 왜 멈추지 못하는지도 몰랐다.
어느 날, 그의 신을 만날 때까지도.
그 신이 그를 붙들었을 때, 그 신의 사람들이 그를 붙들었을 때, 그는 겨우 멈출 수 있었다. 혼자서는 멈추지 못하는 그를, 누군가 잡아 줘야 했었기에.
그는 너무나 오랜만에 타인의 말을 듣고, 자신의 말도 하였다. 자신의 이야기도 하였다. 제대로 말할 수는 없었지만.
그런들 짧은 휴식은 오래 가지 못하고, 어느새 다시 홀로 걷고 있었다. 잠시라도 쉬면서 사람들과 소통했던 기억은 그저 꿈만 같았다. 지친 눈에 보이는 환각.
그럼에도 그 헛된 꿈마저 그리워, 그만 길을 이탈할 때도 있었다. 그리로 가고 싶어서. 그들이 그리워서.
그런들, 결국 꿈이었을 뿐이고, 다시 걸어가야 했지만.
그러나 그의 신은, 그가 그렇게 홀로 떠나게 두지 않았다.
그 신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를 멈추게 했고, 그를 쫓아왔다. 그를 업고 그의 아들에게 갔고, 그와 그의 아들을 업고, 그의 아버지에게 갔다. 마침내 신의 품속에서 다시 만난 식구들을 끌어안으며, 그는 행복했다.
신의 빛이 그들을 감쌌다.
-테오… 테오파노 신…….
그는 다시 이름을 되찾았다. 자아를 잃은 시계 바늘에서, 이름을 지닌 정지점이 되어.
그의 신이 그를 사랑했기에. 테오파노 신이 테오를 흔들림 없이 지탱했기에.
그래서 테오는 더는 걷지 않아도 되었다. 아버지도, 아이도.
테오는 마침내, 눈을 감을 수 있었다. 그의 아버지와, 아이와 함께, 신의 품속에서 영원한 휴식을 취하며.
세 사람이 걸어온 시간만큼 무한한 절망을 이겨 낸 무한한 행복이, 고스란히 믿음이 되었다.
그 끝없는 시간을 모두 합한, 그 이상의 믿음이.
* * *
정신이 들었을 때, 따뜻한 느낌이었다.
이번에야말로 돌아왔구나 싶었다.
사도들에게로. 내 사람들의 품으로.
서로서로 힘껏 끌어안은 이들의 온기가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미소 지으며, 눈을 떴다.
눈에 들어온 건, 테오 삼부자의 얼굴이었다. 나처럼 미소 띤 채, 평화롭게 잠들어 있는.
나는 웃으며 그들을 더 꼭 끌어안았다.
…그리고 그제야 깨달았다. 그들은 이미… 그냥 더는 살 수가 없었다는 사실을… 생명력이… 이미 고갈되어 몸 안은 텅 비다시피 했다… 이미 그들은 오래 전에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은 몸으로 걷고 또 걷고…….
그런데도 아직 온기가 남은 몸으로 나를 끌어안은 채, 저렇게 웃으면서 죽어 갔다니…….
그들의 믿음으로 나를 구하고도.
나는 그들을 끌어안은 채, 넋 놓고 하늘만 바라보았다.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늘과 땅뿐이었다. 있어도 모조리 사라져 버린 듯.
헤르스탈은 아니겠지. 아트리타스와 다른 괴물들도 시계가 무너지기 전에 몸을 피했을 테고.
적은 남아 있었다. 그래서 기뻤다. 내 손으로 해치울 수 있어서.
테오 삼부자가 남겨 준 힘으로.
나는 일어났다. 그리고 테오 삼부자를 반듯이 눕혔다. 서로 손을 겹쳐 놓으며, 그들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이들을 묻어야 했지만, 그러기 싫었다. 합장한다고 해도 싫었다.
나는 이들의 시신과 함께, 그 오두막으로, 아내의 무덤으로 갔다.
스태프는 없었지만, 마법이 온몸에서 넘쳐 났다. 내면의 원은 사라졌지만, 이 세상 자체가 내 원이었다.
오두막은 레오파라가 보고했었듯, 노인이 떠난 이래 사라졌지만, 아내의 무덤은 마법으로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유골을 꺼내어, 네 사람의 시신을 나란히 놓았다.
그리고 힘을 발휘했다.
신들이 사랑했던 사람들, 역사상 위업을 달성했던 영웅들이 죽었을 때, 그들을 하늘로 올려 보내 별자리로 만든다.
그리하여 영원히 사는 신들뿐 아니라 죽어야 하는 사람들 또한 그들을 잊지 않도록.
테오네 식구 역시.
그들을 하늘의 별자리로 만들려면 본래는 주신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그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어느 신이건 혼자 해낼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더는 내면의 원과 바깥 세상을 합일할 필요가 없었다. 내 안에서 둘은 완전히 하나였으니까.
지상에서 사라진 시신들은,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자리로 나타났다. 가장 가까이 붙어 있는 테오 부부의 별, 그 위로 테오 아버지의 별, 그 아래로 테오 아이의 별. 네 별로 이루어진 별자리.
은하수가 새로운 별들을 맞이하며 더 빛났다.
테오네의 별자리가 내가 가야 할 곳을 가리켜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