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God of Magic RAW novel - Chapter 92
92
“그, 그렇기도 합니다만…….”
파비안은 긴장했는지 말을 더듬었다.
“신도로도 충분해. 꼭 사도까지 될 필요는 없다.”
“…무, 물론, 저는 아직 사도가 되기 많이 부족하지만, 여,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제, 이, 있는 힘껏―”
“그게 아니다, 파비안.”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나와 사도들은 괴물과 싸우고 있다. 그러고자 마법을 쓰지.”
물론 생활에 편리한 마법도 쓰고, 언젠가는 그런 마법을 더 많이 쓰는 날이 오길 바라지만.
“내 사도가 된다는 것은, 나와 함께 괴물과 싸운다는 뜻이다. 마법을 쓸 수 있다는 것만 뜻하지 않아.”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파비안을 바라보며 나는 서둘러 말했다.
“너는 앞으로 공부도 하고 실험도 해서 좋은 약을 많이 만들어라. 그게 너한테 어울리는 삶이고, 네가 바라는 삶이니까. 그렇게만 해도 너는 내 자랑스러운 신도다.”
그렇게 말한 내가 덧붙였다.
“꼭 위험을 무릅쓰며 사도가 되어 괴물과 싸우지 않아도 된다.”
그러자, 내가 입을 연 이래 조용했던 사도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파비안은 잠시 말이 없었다. 하지만 자주 붉혔던 얼굴은 오히려 창백해졌다.
더 위로해 주려고 할 때, 파비안이 입을 열었다.
“제 부모님은 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산골 마을에서 전염병이 돌았었거든요. 약초가 도움이 되긴 했지만, 병을 치유할 수는 없었지요.”
그래서 어린 파비안은 고아가 되어 도시로 왔다.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서기도 했지만, 의술을 배우고 싶어서였다.
“약초를 먹고 살아난 사람도 있고… 끝내 살아나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그저… 그 차이를 알고 싶었습니다. 왜 저는 살아남고, 우리 부모님은 살아남지 못했는지 말입니다.”
파비안의 목이 메자, 그는 잠시 말을 끊었다. 다들 귀만 기울이는 침묵 속에서, 아타울프가 불쑥 말했다.
“이유는 하나뿐이야. 운이 나빴던 거지.”
레오파라가 아타울프에게 눈살을 찌푸렸지만, 파비안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그렇게 말했죠. 하지만 전 끊임없이 생각했어요. 약초를 다른 방식으로 썼어야 했나, 다른 약초와 함께 썼어야 했나, 혹은 아예 쓰지 말았어야 했나, 부모님과 저는 뭐가 다른지, 별생각을 다 했죠.”
“그렇게 생각하면 도움이 돼? 계속 부모님 생각에만 매달릴 뿐이잖아.”
아타울프는 답답하다는 듯 말했지만 파비안은 도리어 희미하게 웃었다.
“다들 그렇게 말하더군요. 제가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약초를 어떻게 썼는지, 병에서 회복해 가는 동안 어떤 증상을 보였는지, 물을 때마다요.”
“그런데 왜 그만두지 않았어?”
“왜 그만둬야 하는데요?”
“그런다고 바뀌는 건 없으니까. 부모님이 살아 돌아오진 않아.”
만일 내가 아타울프 역시 어려서 부모를 잃었다는 사실을 몰랐다면, 말렸을 터였다…….
“적어도 이유는 알 수 있잖아요. 부모님이 왜 돌아가셨는지.”
“이유를 알게 되면 더 속상하지. 살릴 수도 있었는데 죽었다고 생각하면!”
아타울프의 목소리가 높아졌지만, 파비안은 물러서지 않았다.
“아뇨, 아무것도 모르는 게 더 속상해요. 부모가 죽었는데, 이유조차 모르는 것보다는 나아요.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참기만 하기보단 나아요. 무엇보다 내가 그분들의 자식으로서, 알고 싶다면 알고 싶은 거예요. 부모님의 죽음도 받아들이기 힘든데, 그 이유를 알고 싶은 마음까지 억눌러야 하나요.”
아타울프가 파비안을 노려보았지만, 파비안은 그가 물약을 끓인 솥만 보았다.
“네 부모님은 네가 네 삶을 바쳐 그 의문에 매달리길 바라실까? 다 잊어버리는 것보다?”
아타울프가 끈질기게 물었지만 파비안은 다소 냉담하게 대답했다.
“그거야말로 절대 알 수 없는 거죠. 부모님은 돌아가셨으니까. 산 사람은 살고 싶은 대로 살아야죠. 알고 싶고, 알 수 있는 걸 알아내면서.”
아타울프는 이제 입을 다물었다. 파비안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그리고, 부모님은 몰라도, 다른 사람은 살릴 수도 있을지 모르잖아요?”
그 말에서 무언가를 느끼자마자, 나는 무심코 물었다.
“그런 적이 있니? 사람을 구한 적이?”
“네.”
파비안은 고향 마을의 약초를 기본으로 여러 약초를 혼합해서 물약을 제조했다. 그러나 그가 만든 물약들을 제 이름으로 팔곤 했던 아트리타스는 그 물약만은 금지했다. 팔지도 만들지도 못하게 하면서.
“너무 돈이 많이 들어가고 너무 맛이 쓰고, 또 오래 복용해야 효과가 있었거든요. 그는 최음 성분 외에도 진통이나 마비 효과가 빨리 나타나는 물약을 바랐어요. 그런 약이 사람들이 연금술사에게 큰돈을 주고 사는 약이기도 했고요.”
하지만 파비안은 나르본에서 다시 만난 고향 사람이 딸이 아프다고 하자, 그 물약을 몰래 주었다. 도둑이라고 아트리타스에게 매를 맞아도 후회하지 않았다.
“나중에 그 사람을 다시 만났을 때, 제게 약값을 줬어요. 늦게 줘서 미안하다고요. 그 약이 자기 딸을 살렸다면서 고마워했죠.”
“그 약값을 왜 늦게 줬는데?”
아타울프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대신 대답하는 레오파라의 목소리가 차가웠다.
“약을 가져갈 때만 해도 돈이 없었겠지.”
파비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그랬어요. 돈이 없어서 나중에 갚겠다며 미안하다고 말했었고요. 솔직히 저는 기대하지 않았는데, 나중에 찾아와서 돈을 주고 갔어요. 전 그 돈을 아트리타스에게 갖다주며 약값이라고 했지만, 그는 기억도 못 하더군요.”
이야기를 듣던 우리 셋이 서로 눈을 마주쳤을 때, 파비안이 다시 말을 이었다.
“나중에야 다른 고향 사람을 만나서 사실을 알았어요. 그 사람의 딸은 그 약을 먹고 병이 나았지만, 괴물에게 죽었어요. 그 사람은 돌림병 때 가족을 잃고 딸과 둘만 살아남았었는데, 겨우 건강을 회복했던 딸마저 잃었죠. 그는 남은 재산을 모두 팔아서 딸의 장례를 치르고 제게 왔어요. 떠나기 전에 약값을 치르려고요.”
“…어디로 떠났는데?”
“다른 곳으로, 괴물이 나왔다는 곳으로 갔대요. 원수를 갚겠다고요. 그리고 역시 괴물에게 죽었죠.”
긴 이야기를 하느라 목이 말랐는지, 파비안은 물약을 한 모금 삼켰다. 우리는 말없이 기다렸다.
“병과 싸우는 일도 힘든 싸움이에요. 하지만 테오파노 님이 도와주시면 더 잘 싸울 수 있어요.”
“아까도 말했듯, 난 널 도울 거다. 네가 내 사도가 아니어도.”
“…그 괴물이 고향 마을을 없애 버렸어요. 병에서 살아남았는데, 괴물에게 죽은 사람은 그 소녀만이 아니에요. 그래도 돌림병을 이겨 낸 마을이었는데, 이젠 살아남은 이들마저 모두 뿔뿔이 흩어졌죠.”
파비안이 조용히 말했다.
“저는 테오파노 님을 만나서 정말 기뻐요. 저 같이, 두 사도님처럼 강하지 못한 사람도, 싸울 수 있게 해 주시니까요. 괴물이건 병이건, 테오파노 님의 마법이 제가 맞서 싸울 힘이 될 테니까요.”
나는 그 젊은이를 바라보았다. 슬픔이 가득하지만 의연한 눈동자를.
“하지만 마법보다도 테오파노 님을 믿어요. 그 놀라운 힘을 사람을 구하고자, 괴물을 물리치고자, 쓰시는 테오파노 님을요.”
미소 지으며, 파비안이 덧붙였다.
“아까, 괴물을 물리치려고 마법을 쓰신다고 하셨을 때, 정말 멋있으셨어요. 제 부모님도 살아 계셨다면, 꼭 테오파노 님을 믿으셨을 거예요.”
그 맑고 환한 미소 앞에서 나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그 모든 일을 겪고도, 굴하지 않고 맞서는 네 마음이야말로 괴물을 물리치는 마법이다.”
그렇게 나는 네 번째 사도를 얻었다.
* * *
-세상에, 정령왕이 있다는 사실도 신기한데, 이렇게 귀엽기까지 하다니요!
파비안은 렉스의 존재를 알고 놀라면서도 좋아했다.
-애해해! 파비안 너는 나 다음 사도야. 네가 이제 막내 사도니까 나한테 뭐든 물어봐.
-네, 렉스.
드라콘도 파비안을 잘 따랐다. 소통이나 계약의 존재를 아는 것도 아닐 텐데, 이전에는 우리보다 파비안에게 데면데면했다면, 지금은 다른 사도들하고처럼 친해졌다. 그 사도들이 비록 맨날 놀려 먹는다고 해도.
“테오파노 님, 이놈은 아무리 돌연변이라고 해도 도마뱀이 아닙니다. 돼지 새끼입니다. 엠마란 이름이 아깝습니다.”
“모르는 소리 마라. 돼지가 얼마나 부지런한데? 아침부터 저녁까지 먹을 걸 찾아 돌아다닌다고. 이놈처럼 잠만 자다 입만 벌리면 저절로 먹을 게 들어오는 줄 아는 놈과는 천지 차이다.”
“제가 오기 전부터 있었으니까, 아무리 동면이라고 해도 그동안 굶주렸겠죠…….”
“그럼 새끼 맞아? 귀여운 척해 봤자 할배 아니야?”
정말 잠만 잔다 싶기는 했지만, 두 날개로 몸을 감싸고, 꼬리를 동그랗게 말고 자는 모습이 귀여우니까. 자는 놈을 품에 넣고 가면 뜨셔서 좋았다. 도마뱀 같지 않게 체온이 높아서 신기했다. 아트리타스의 실험 때문이겠지만.
두 사도들의 마법도 점점 늘었고, 파비안은 내가 일으켜 주는 마법으로 이런 저런 물약을 만들었다. 내가 내린 가호만으로는 작은 상처만 낫게 했는데, 내가 불어넣어 준 마법으로 만든 물약은 훨씬 효과가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는 심상치 않은 전조와 마주쳤다.
-이상한데? 여긴 샘이 없어.
렉스가 놀라서 말했다. 렉스는 처음에는 물을 직접 주곤 했지만, 나중에는 스스로 샘을 찾았다. 이곳저곳의 다양한 물의 정령과 만나려고.
샘마다 물의 정령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했지만, 있으면 부하로 삼고, 없으면 하나 두고 가기도 했다. 그런 식으로 호수를 떠나서도 점점 영향력을 키워 가는 렉스였다.
-너는 신들처럼 영역 다툼 할 필요도 없이 날로 먹는구나, 렉스, 장하다.
아타울프가 감탄했다.
-해해, 어차피 아무도 정령을 원하지 않잖아. 그렇지만 이제 정령에게도 왕이 생겼으니까, 모두에게 소식을 널리 알려서 내 백성이 되게 해야지.
-잘했어, 렉스. 잊지 말아야 할 건 네 왕국의 수호신은 테오파노 신이고, 국교는 테오파노 교라는 진리다. 네 백성들에게 분명히 일러둬.
-응, 응! 그러고 있어, 레오파라!
권력 지향적인 두 사도들과 달리 파비안은 다른 목적으로 렉스의 샘물 편력을 좋아했다.
-세상에는 다양한 물이 있지요! 물마다 맛도 달라요. 어떤 물은 효능이 있고요!
-어, 석회질이 많은 물의 정령은 고집도 세! 정령들도 곳곳마다 성향이 달라서 재미있어!
렉스와 파비안은 샘마다 물맛을 평가하며, 그들만 아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렉스의 샘물 편력기가 난관에 부딪친 터였다.
“가끔은 샘이 없을 수도 있지.”
-아니야, 있다가 말라 버렸어. 난 그걸 느낄 수 있어.
레오파라가 달래듯 말했지만, 렉스는 앵돌아서 뾰로통하게 말했다.
“샘이야 마르기도 하잖아.”
-아니야, 갑자기 말라 버렸다고!
그러면서 렉스는 그 말라 버린 샘을 찾아냈다.
샘의 바닥은 말라붙어서 물기라곤 없이 붉은 모래가 드러났다. 하지만 샘 주변에는 초록 이끼가 남아 있었다. 근처의 나무들도 가뭄에 시달린 낌새는 없었다.
“확실히 이상하군요. 갑자기 이렇게 샘이 마를 일이 없을 텐데요.”
아타울프가 말했을 때, 파비안이 손가락을 내밀어 모래 표면에 살짝 갖다 댔다.
“악!”
그러자마자 소스라쳐 손을 거두는 파비안이었다. 레오파라가 물었다.
“왜 그래?”
“모래가 뜨거워요.”
“손이라도 뎄어? 내가 고쳐 줄게.”
내가 묻자, 파비안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 정도는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하지만 제 고향 마을에서도 이와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고 들었습니다…….”
파비안이 말끝을 흐리는데, 레오파라가 손을 쑥 모래에 집어넣었다.
“정말 뜨겁군요.”
“뭐 하는 거예요, 레오파라! 뜨겁다고 했잖아요!”
“어느 정돈지 궁금했을 뿐이야.”
레오파라는 그답지 않게 성내는 파비안의 고함에 어깨만 으쓱했다.
“조심해야죠! 이 붉은 모래는 괴물이 나오기 전에 있었던 현상이에요!”
파비안은 이마를 찡그리며 말했다. 모두 그를 주목했다.
“샘이 마르고 우물이 마르고, 이렇게 바닥에 붉은 모래가 깔리죠. 그리고…….”
“그리고?”
아타울프가 재촉했지만 파비안은 한숨만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