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136
◈ 136. [STAGE 5] 얼음과 시체의 길
산산조각 난 구울의 시체가 들판에 잡초처럼 뿌려져 있다.
포격에 휩쓸린 땅 곳곳에는 불이 붙은 채, 상공으로 매캐한 연기를 피워 올린다.
이 초토화된 전쟁터의 길 위로.
흡혈귀 10인은 산책이라도 나온 양 가볍게 걸어오고 있다.
아직 멀지만, 육안으로도 선명히 보인다.
‘웃고 있다.’
이 괴물 새끼들, 사방에 뿌려진 아군의 시체 사이로 걸어오면서, 쳐웃고 있어.
놈들에게 일반 포격과 저격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배웠으므로, 나는 사격 지시를 하지 않았다.
흡혈귀들은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서로 목소리가 닿을 정도의 거리까지 놈들이 왔을 때, 내가 소리쳤다.
“하나 물어도 되겠나, 흡혈왕?”
그러자 흡혈귀들이 일제히 멈췄다.
가마 위에 앉은 채 나를 올려다본 셀렌디온이 빙긋 웃었다.
순진한 소년 같은 얼굴의 미소에서는 피비린내가 풍겼다.
《얼마든지. 애쉬.》
“왜 구울들을 먼저 보내서 죽게 내버려뒀지?”
내 말에 셀렌디온이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
“네 구울과 폴른 블러드 부하들이 전멸할 동안, 왜 너희 흡혈귀들은 뒤에서 구경만 하고 있었느냐는 말이다.”
보스인 셀렌디온과 알파 베타는 그렇다 쳐도.
일반 흡혈귀 정도는 웨이브에 섞어 보낼 만하지 않았나.
도저히 전술적으로 이해가 안 가서 물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상한 소리를 하는군. 인간.》
내 질문에 대한 놈의 답은, 정말로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너희는 기르는 개와 겸상하느냐?》
“뭐……?”
이게 무슨 소리야.
《앞서 전멸한 내 구울 부하들은, 우리 흡혈귀에게 있어서는…… 기르는 사냥개와 비슷한 것이다.》
셀렌디온은 차분하게 설명해 주었다.
《물론 아끼고 사랑하지. 내 목숨까지 떼어 줄 정도로. 함께 적과 싸우는 충성스럽고 용맹한 나의 군대다. 하지만, 개다.》
“…….”
《같은 식탁에서 함께 식사를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나?》
까득!
나의 이가 맞물렸다.
“……네놈이 말하는 ‘식사’라는 것은.”
《알고 있지 않나.》
셀렌디온은 손을 뻗어, 우리를 향해 가리켰다.
《너희다.》
“…….”
《너희 인간이 우리의 식사다. 애쉬.》
나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런 나에게 셀렌디온은 계속해서 지껄였다.
《사냥개를 먼저 푼다. 개에게 죽을 만큼 나약한 인간은 개먹이다. 하지만 나의 개들에게서 살아남으면, 비로소 최소한의 자격을 입증했다고 할 수 있다.》
“자격……이라고?”
《그렇다. 우리 뱀파이어에게 먹힐 자격을 말이다.》
셀렌디온은 부드럽게 웃으며 성벽 위의 우리를 살폈다.
《개먹잇감인 인간은 딱히 먹고 싶지 않거든. 그래서 개를 먼저 풀어서 ‘선별’하는 거지.》
“…….”
《너희도 마찬가지 아닌가? 질 좋은 가축에게서 보다 맛있는 고깃덩이를 골라 먹지. 남은 찌꺼기는? 개와 돼지에게 주지 않나. 같은 이치다.》
헛소리를, 당당하게.
이 흡혈귀 새끼는 내뱉고 있었다.
《나는 뱀파이어다. 강인하고, 의지가 있는. 투쟁할 줄 아는. 고귀한 인간의 피를 원한다. 그 편이 훨씬 맛있으니까.》
“…….”
《내 개들의 공격을 버텨 낸 너희 또한, 그 자격을 입증했다.》
셀렌디온의 양쪽 입꼬리가 섬뜩하게 말려 올라갔다.
나머지 흡혈귀 놈들도, 똑같이 끔찍한 미소를 머금었다.
《자아- 기뻐하도록 하라. 인간들이여.》
정육점에 진열된 고깃덩이라도 보듯, 먹음직스러워하는 시선으로 우리를 훑고는.
《너희는 모두, 우리의 양식이 될 기회를 얻었으니.》
셀렌디온은 그렇게 말했다.
“큭…….”
“미친 새끼…….”
안색이 창백해진 병사들이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셀렌디온을 제외한 흡혈귀 놈들이 킥킥거리는 웃음을 흘렸다.
명백한 포식자의 시선으로 우리를 응시하면서.
“……데미안.”
이를 부득부득 갈던 나는 옆을 보았다.
“저 망할 새끼들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지게 해 줘라.”
“네, 황자님.”
데미안은 석궁을 가슴팍 앞으로 치켜들었다.
“분부대로.”
데미안은 앞에 놓인 화살통에서 성은 화살을 하나 뽑아 석궁에 장전했다.
숨을 들이쉬고, 조준을 하고는-
푸슛!
가볍게, 쏘았다.
***
쐐애액-!
성벽에서 화살 하나가 쏘아져 날아든다.
화살은 순식간에 창공을 꿰뚫고 흡혈귀들을 향해 육박해 왔다.
《이런, 이런.》
조금 전에 수백 발의 은화살을 막아 내고, 성벽 위로 되돌려준 알파는 비웃었다.
《또 먹히지도 않을 짓을 하는군.》
인간이란 어찌 이리도 어리석은지.
어차피 거미줄에 걸린 먹이의 신세.
제아무리 몸을 흔들어 저항해 봐야 빠져나갈 수 없는데. 왜 그것을 최후의 순간까지 깨닫지 못하는지.
《이런 버러지 같은 저항도 이제 슬슬 그만둬 줬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말하며 알파는 손을 휘저었다.
그의 몸 속 혈류를 따라 막대한 마력이 휘몰아쳤다. 알파는 손을 뻗어 그 마력으로 화살을 움켜쥐려 했다.
《……?》
하지만.
《어?》
뭔가 이상했다.
마력으로 낚아채려 해도, 그때마다 화살이 기묘하게 궤도를 틀어냈다. 마치 자아라도 가진 것처럼.
‘이게 무슨……?’
당황하던 알파는 결국 마력을 모아 방어막을 펼쳤지만,
챙그랑-!
돌파.
화살은 단숨에 방어막을 꿰뚫고 알파의 목과 가슴 사이로 쇄도했다.
알파는 자신이 이 공격을 막지 못할 것임을 깨달았다.
《크흑?!》
그 순간,
콰직-!
달려든 베타가 도끼를 휘둘러 화살대의 중앙을 내리쳤다. 화살은 알파에게 닿기 직전 산산조각 났다.
그 순간 화살에 실려 있던 기묘한 힘은 사라졌고, 화살은 평범하게 박살 나서 바닥을 나뒹굴었다.
《허억, 허억…….》
등골이 섬짓해진 알파는 바닥을 구르는 화살촉을 내려다보았다.
붉은 기운이 서린 은이 섬뜩한 빛을 발했다.
《무엇을 하느냐, 알파.》
셀렌디온이 웃음기를 머금고 물었다.
《그깟 화살 한 대 막지 못하고.》
힐난이 아니라, 알파의 당황한 모습을 보고 즐기는 듯했다. 하지만 알파는 심각했다.
《아니요, 그것이, 로드. 이것은…… 다릅니다!》
《호오, 무엇이 다른고?》
《이 화살…… 평범한 은화살이 아닙니다.》
자신의 혈마법이 단숨에 파훼당했다. 알파는 직감했다.
《이 화살은, 위험합니다!》
알파가 경고하는 것과 동시에,
푸슛! 푸슛! 푸슛-!
성벽에서 연속해서 화살이 쏘아졌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든 장거리 저격은 일반 흡혈귀들을 노리고 있었다.
《뭐야, 화살?》
《저열하군…….》
《이까짓!》
흡혈귀들은 알파와 마찬가지로 저격을 비웃으며 가볍게 막으려 했다.
하지만.
푹! 푸확! 푸칵!
《컥?!》
《케흑?!》
《무슨-》
막지 못했다.
첫 번째 흡혈귀는 화살을 막으려던 방패가 부서진 뒤 목이 꿰뚫렸다.
두 번째 흡혈귀는 손에 마력을 모아 막으려다가 손바닥과 목이 함께 꿰뚫렸다.
세 번째 흡혈귀는 안개로 변해 피하려고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살이 목을 관통했다.
목에 화살이 박힌 세 흡혈귀가 울컥울컥 피를 토해 냈다. 셀렌디온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평범한 은화살이 아니군. 설마 이것은…… 이계의 은인가?》
바닥에 떨어진 화살 파편을 살핀 알파가 식은땀을 흘렸다.
《예. 성은입니다. 한데 그뿐만이 아닙니다. 악마의 겨우살이로 연금까지 한 모양입니다.》
《그 귀한 성은에 겨우살이까지 써서, 화살을 만들어? 제법이잖나. 우리를 죽이려고 열심히 준비한 모양이야.》
셀렌디온은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
그 순간.
투쾅-!
성벽 위에서 발포음이 들렸다.
어째서일까.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천하의 흡혈왕 셀렌디온의 목덜미에…… 소름이 돋았다.
《뭐지?》
셀렌디온의 핏빛 두 눈이 성벽에서 쏘아진 투사체의 궤적을 쫓았다. 셀렌디온은 곧 그것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마탄?》
쐐애애액!
날아든 마탄은 처음 목이 꿰뚫린 흡혈귀의 머리에 정확히 꽂혔고,
퍼억……!
그대로 머리를 터뜨렸다.
피보라를 일으킨 흡혈귀의 몸이 힘없이 바닥에 너부러졌다. 그리고 다시는 재생하지도, 부활하지도 못했다.
영핵을 파괴당한 것이다.
하지만 셀렌디온은 부하의 죽음 따위 신경 쓰지 않았다.
《……이것은.》
터진 부하의 머리를 내려다보던 셀렌디온은 다급히 고개를 들었다.
투쾅-!
두 발 째.
목과 손이 함께 화살에 꿰인 채 꺽꺽거리던 흡혈귀에게 마탄이 날아들었다. 역시 피하지 못했다.
퍼억-!
즉사.
터져나가는 부하의 머리통을 보며, 하지만 셀렌디온은 웃었다.
《이 마탄은……!》
투콰앙!
세 발 째.
다시 안개로 변해서 피하려던 세 번째 흡혈귀는 회피가 불가능함을 깨달았다.
그는 죽음을 직감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타악-!
치이이익……!
하지만, 죽지 않았다.
가마를 박차고 날아든 셀렌디온이 손을 뻗어 마탄을 움켜쥔 것이다.
무지막지한 위력의 마탄을 받아 내느라 셀렌디온의 손아귀가 찢어져 핏물을 사방으로 튀겼다.
하지만 개의치 않고 셀렌디온은 피범벅인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이 마탄의 마력…… 올롭의 것인가!》
그렇다면 이 마탄을 쏘아 낸 마총은, 올롭의 마력핵으로 주조했을 터.
《악몽 군단장의 정수로 만든 무기- 나이트메어 슬레이어(Nightmare Slayer)라니.》
셀렌디온의 얼굴에 환희가 들어찼다.
《정말로 나를 죽일 수 있는 무기잖나!》
***
은으로 타격하고, 마법으로 마무리한다.
우리가 정립한 대 혈족 전술의 기본이다.
그것을 데미안은 흡혈귀를 상대로 혼자서 해내고 있었다. 성은 화살을 박아 넣고, 마총으로 저격하는 것이다.
순식간에 흡혈귀 둘을 저승으로 보냈고, 세 번째를 마무리하려는 순간 셀렌디온이 방해했다.
하지만 둘이나 잡은 게 어디야.
“하아, 하아, 후우!”
성은 화살과 블랙퀸을 연사한 데미안이 거칠게 숨을 헐떡였다.
영핵을 노려야 하기에 평소보다 더 집중해서 쏘더니, 체력 소모가 보통이 아닌 모양이다.
그런데도 한 발 더 쏘려고 하기에 나는 급히 데미안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멈춰, 데미안!”
“네? 하아, 하아, 하지만! 아직!”
“충분히 잘해 줬어. 기고만장하던 저 놈들의 콧대를 제대로 꺾어 줬다고.”
나도 마음 같아서는 계속 쏘게 하고 싶지만.
이미 셀렌디온이 막기 시작한 상황이다. 더 쏴 봐야 탄낭비 체력낭비다.
“조금 쉬면서 회복해. 할 일이 남아 있잖아.”
“넵…….”
데미안은 성벽에 기대어 앉아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나는 남쪽을 보았다.
이쪽의 공격이 멎자 흡혈귀들은 다시 진군을 시작했다.
죽은 동료의 시체도 뒤에 내던져두고, 여전히 가벼운 걸음으로.
이제 놈들은 정말 가까웠다. 얼굴의 잔주름까지 잘 보일 지경이었다.
그리고, 셀렌디온은 웃고 있었다.
《자아, 자아, 자아! 투쟁하라, 인간이여! 너희의 가치를 입증하라!》
지금까지의 어떤 얼굴보다도 더 흉악한 미소를 머금고서. 즐거워 죽겠다는 듯이.
《가축의 먹이가 될지, 우리 흡혈귀의 식사가 될지, 그도 아니면- 나를 죽이고 살아남을지! 자아! 투쟁하라! 투쟁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