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155
◈ 155. [Side Story] 색출 (3)
브링어 공국(公國).
공국이라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브링어 공작가에서 다스리는 땅이다.
수백 년 전, 대륙 마지막 화룡(火龍)이었던 더스크브링어와 당시 황제는 사이에 자손을 보았다고 한다.
대체 사람이랑 용이 어떻게 결혼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용과 황제 사이에서 태어난 이 반인반룡이 바로 초대 브링어 공작.
제국은 브링어 공작가에 영토를 떼어 준 대신 제국의 수호를 부탁했고, 용의 피를 이은 강력한 전사인 브링어 공작가는 수백 년간 제국에 충성했다.
이렇게 서로서로 잘 지내왔지만, 문제는 제국이 대륙 1짱을 먹어 버린 지금 상황.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삶는다고 했던가.
세계의 패권을 틀어쥔 지금, 제국의 눈에는 더 이상 공국이 곱게 보이지 않게 되었다.
제국의 영토 안에 버젓이 자치령을 보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제국의 외적을 함께 치던 나라답게 군사력도 꽤 갖췄다.
그뿐인가, 용의 피도 황제의 피도 옅어지긴 했지만 엄연히 황실의 방계이기까지 하다.
내버려두면 언젠가 제국에 위협이 되고, 황실을 집어삼킬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 끝에 전쟁을 시작한 것이겠지.
사전 작업에만 몇 년을 썼고, 지금은 가용 가능한 모든 병력을 들이붓고 있는 상황이다.
이제 수도까지 함락시켰고,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할 텐데.
이때 갑자기 외부세력이 공국을 지원한다면?
트롤링도 이런 트롤링이 없겠지?
“지금 여왕 색출 작전 중이지?”
페르난데스가 무어라 하기 전에 나는 재빠르게 몰아붙였다.
“다 알아, 형. 그 드래곤 레이디가 함락된 수도에서 빠져나가 버린 거. 지금 공국 전역에 천라지망 펼치고 찾고 있다는 거.”
브링어 공작은 대대로 여성이었고, 이번의 공작 또한 여성.
용의 피를 지닌 이 캐릭터에게는 별명이 참으로 많다.
공식명칭인 브링어 대공(大公)부터 해서, 용혈의 공왕(公王), 드래곤 레이디…….
하지만 플레이어들을 보통 이렇게 짧게 불렀다.
여왕.
생긴 것도 하는 짓도 그야말로 퀸(Queen)이어서, 엄밀하게는 공작이라 불러야 하지만 다들 심플하게 여왕이라 부르곤 했지.
아무튼 여왕은 현재 휘하 친위기사들을 이끌고 수도를 무사히 탈출한 상황이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안 거냐……!」
어떻게 아냐고?
그야 이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첫 번째 분기가 여왕을 아군으로 맞느냐/아니냐니까.
시기는 대략 1년차 후반부.
제국과의 전쟁에서 패퇴한 여왕은 끝까지 게릴라군을 이끌며 저항을 이어 가다가, 더 이상 전투를 수행할 수 없게 되자 남부로 탈출. 괴수전선에 다다른다.
여왕과 휘하 기사들은 전원이 SSR등급 영웅에, SSR등급 장비로 몸을 둘둘 감은 무지막지한 파티다.
초회차 유저들은 이 파티의 자태에 홀려서 아군으로 받아 버리곤 한다.
근데 존나 함정이다.
얘네를 휘하에 들이는 순간, 황실과의 사이가 최악이 되어 버리기 때문.
수도에서 오는 지원 일체가 끊기는데다가, 마석 판매 루트도 극단적으로 제한 당한다.
그뿐인가? 여왕 잡겠다고 본국에서 군대까지 보내기 시작한다.
하지만 여왕과 기사들의 능력은 그야말로 일기당천. 이 파티 하나로 엔딩 보는 변태 플레이어들도 있긴 했다.
아무튼 게임에서는 이랬고.
‘이들의 영입 시기를 앞당긴다.’
지원군 안 보내 주면, 별 수 있나.
당장 이해관계 맞아떨어지는 불쌍한 친구들끼리 편먹어야지.
여왕과 친위기사들을 남부전선에 숨겨 주고, 세력을 재건할 수 있도록 협조한다.
대신에 이들은 내게 힘을 빌려 주고 함께 괴수들을 막는다.
완전 윈윈이잖아!
“제국에게 나라를 잃고 변변한 영토도 없이 떠도는 난민과 패잔병, 그들의 왕족, 그들의 기사단. 이런 이들이 대륙 전체에 한둘이 아니야, 형.”
「…….」
“그들을 모두 이곳 남부전선에 수용하겠다.”
공포의 외인구단 한 번 꾸려 보지, 뭐.
제국에 증오를 품은 자들을, 황도에서 쫓겨난 막내황자가 한데 모은다. 이거 썩 그림이 아름다워?
「제정신이냐, 애쉬?」
페르난데스는 어처구니없어했다.
「그게 바로 사실상의 반역 행위가 아니냐!」
“아니지. 엄연히, 완전히, 다르지.”
눈 가리고 아웅인 건 나도 동의한다만. 이건 엄밀히 이야기해서 역모가 아니다.
괴수는 엄연한 재해(災害)이기 때문이다.
“중앙 황실에서는 이곳에 지원군을 파견하지 않았다. 사실상 지배권한을 포기했다고 보아도 되겠지. 그러니 재해에 맞서, 자력생존을 위해 주변과 힘을 합치는 것뿐이다.”
「그게 말이 되는 소리-」
“말이 되는 소리를 하게 할 거였으면, 말이 되는 상황부터 만들어 줬어야지.”
나는 이죽거렸다.
“국가가 충성을 요구하려면, 국가 역시 최소한의 도의를 지켰어야 하는 거 아닌가?”
「…….」
“국가에서 그 이름으로 지켜 주지도 않고. 지원군 하나 없이, 사실상 옥쇄 명령을 내려 놓고, 살기 위해 발버둥 치니 반역이라고? 지랄도 정도껏 떨어.”
「…….」
“선택이나 해. 형.”
침묵하는 페르난데스에게 나는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선포했다.
“공국의 여왕이 남쪽으로 빠져나올 활로를 열어 줄 테냐? 그게 아니면, 이곳 남부전선에 지원군 한 움큼을 보내 줄 테냐.”
「…….」
“서부와 남부, 두 마리 토끼 다 잃지 말고, 현명하게 선택해.”
페르난데스의 침묵은 짧았지만 억겁처럼 느껴졌다.
이윽고 그의 미성이 여신상에서 흘러나왔다.
「……요구하는 지원군의 규모는?」
나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먹혔다. 내 도박이.
“이번에 침공해 오는 괴수는 와이번 1천여 마리다. 이 괴물들을 여유롭게 잡을 수 있어야겠지.”
「지원 기간은?」
“앞으로 방어전 다섯 번.”
스테이지6부터 스테이지10까지.
알뜰살뜰하게 부려먹을 생각이었다.
「좋다.」
페르난데스는 시원하게 대답했다.
진작 이럴 것이지. 망할 형 같으니.
「서부전선의 1군단은 보내 줄 수 없다. 포위망이 비어 버리니까. 대신 지원군은 중앙에서…… 내 직할 부대를 보내 주마.」
“정말이야?”
「나는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뭣보다, 보낸다고 해 놓고 안 보냈다간 네가 진짜로 반역 선언이라도 해 버릴 것 같으니까.」
통신 너머로 뭔가 슥슥 쓰는 소리가 들렸다. 공문이라도 작성하고 있는 건가.
「시간에 맞출 수 있을지는 너무 걱정하지 마라. 내 직할 부대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니. 바로 준비시키겠다.」
“그렇다면 다행이군.”
결론이 난 덕일까. 페르난데스의 목소리가 살짝 부드러워졌다.
「이것으로 만족하니, 동생?」
“그냥 바로바로 보내 줬으면 서로 이렇게 얼굴 붉힐 일도 없었을 테지만, 뭐 지원군만 보내 준다면야 만족하지.”
사실상 협박이나 다름없이 뜯어낸 지원군이었다.
당연히 보내 줘야 할 지원군을 이렇게 받아내야 한다는 사실이 빡치기도 하지만, 좋은 게 좋은 거지.
이러면 한동안은 안심이다.
「하지만, 애쉬.」
페르난데스가 목소리를 낮췄다.
「건방진 소리를 한 대가는 치러야 할 거다. 아무리 지원군을 위해서라지만, 너는 이번에 황자로서 입에 담아서는 안 될 말들을 너무 많이 했어.」
“…….”
「조만간 얼굴 보고 이야기하자, 동생아.」
얼굴 보고 이야기하자고?
화상 통신을 하자는 이야기는 아닐 테고, 그렇다면…….
「통신 종료한다. 무운을 빈다, 남단.」
통화 끊는다기에 나도 마지막으로 쏘아주었다.
“꺼져 버려, 중앙.”
뚝.
통신마법이 끊겼다.
“후우…….”
나는 길게 숨을 들이쉬었다.
꽤 긴장했었는지 손바닥에 땀이 흥건하다. 대충 바지에 손바닥을 문지르며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루카스와 마르헤리타가 마찬가지로 바짝 긴장한 채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박수를 짝짝 쳤다.
“지원군 문제는 해결했고. 역도가 될 필요도 없어졌고. 만사형통이로군.”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지만 말이지.
괜히 허세를 담아 저렇게 말한 다음, 나는 다시 여신상을 돌아보았다.
“아참, 신성모독 소리는 듣기 싫지만…… 이건 어쩔 수 없지.”
나는 품에서 지팡이를 꺼내 앞으로 휘둘렀다.
핑그르르 솟아오른 마법의 칼날 세 자루가 여신상에 파고들었다. 마르헤리타가 짧은 비명을 질렀다.
파칙, 파치치칙…….
석고로 이뤄진 외피가 벗겨지자, 여신상 안에 숨겨져 있던 마법적이고 연금술적인 기계장치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무심하게 지팡이를 몇 번 더 휘둘렀다.
펑! 파치치칙! 콰광-!
통신장치는 산산조각 났다. 솔직히 좀 아깝긴 했지만, 이건 내게 이로운 장치가 아니다.
지팡이를 품에 집어넣은 나는 루카스에게 손짓했다.
“루카스, 여신님을 믿나?”
“꽤 독실한 편이라 자부합니다.”
“그럼 내가 이 신전의 모든 여신상과 종교 상징을 샅샅이 조사하라고 하면, 그리고 필요에 따라 파괴하라고 하면, 나를 미워할 거냐?”
“아니요, 그럴 리가. 제게 주군의 명령보다 위에 있는 것은 없습니다.”
“고맙다.”
내게 고개를 숙여 보이는 루카스에게 나는 명령했다.
“사흘 주마. 이곳 신전에 다른 뭔가가 숨겨져 있는지 샅샅이 뒤지도록.”
“존명.”
“마르헤리타? 당연히 협조하겠지?”
내 말에 벌벌 떨던 마르헤리타는 눈물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하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여신님께서도 자신의 외양을 본뜬 이런 장치로 음모를 꾸미는 것보다야, 차라리 건실한 신심으로 허공에 기도드리는 것을 더욱 기뻐하실 거다.”
내가 이곳 세계의 종교 교리는 잘 모르지만. 그러지 않으려나.
***
저택으로 돌아왔다.
그림자 부대는 여전히 응접실에 무릎 꿇려진 채였고, 나머지 메인 파티원들이 그들을 감시하고 있었다.
이들의 처우를 결정할 때였다.
“에반젤린, 데미안, 쥬니어. 잠시 나가 있도록. 밖에 릴리도 있던데 같이 모여 있어.”
“하지만, 선배님…….”
에반젤린이 동그란 눈을 굴려 나와 갓핸드 사이를 살폈다.
“첩자…… 였잖아요. 만에 하나 위험하실수도…….”
“그런 걱정은 말고.”
“……알겠어요. 하지만,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부르셔야 해요?”
메인 파티원들은 조심스럽게 응접실을 나섰고, 나는 그림자 부대원들의 앞에 의자를 끌고 와 앉았다.
“긴 말할 필요 없겠지.”
나는 품에서 지팡이를 뽑아들었다. 등 뒤로 마력의 칼날이 세 자루 솟아올랐다.
바디백과 번아웃이 숨을 삼켰고, 갓핸드는 묵묵히 그런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망설임 없이 지팡이를 앞으로 홱 뻗었다.
마력의 칼날 세 자루는 세 명 각자에게 날아들어서…… 셋의 몸을 묶은 끈을 정교하게 끊었다.
나는 다시 지팡이를 품에 집어넣었다. 포박이 풀려 자유롭게 풀린 셋은 얼떨떨해하며 나를 보았다.
“내가 여러분을 판단하는 기준은 여러분의 출신도, 속에 품은 비밀도 아니다.”
나는 무뚝뚝하게 말했다.
“여러분이 그동안 보여 온 행동이다.”
그림자 부대는 그동안 목숨을 걸고 내 명령을 따랐다.
그리고 실제로, 올드걸과 스컬은 나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쳤다.
나를 대신해 피를 빨리며 손을 흔들던 올드걸의 웃음을 기억한다.
단검을 뽑아들고 흡혈왕의 앞을 막아서던 스컬의 용기를 기억한다.
그 행위에 거짓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너희를 신뢰하기로 했다.”
나는 다시 한 번 이들을 믿기로 했다.
그렇게 해야만, 이들도 마지막 한 점까지 완전히 내 사람이 되어 줄 테니.
“전하……!”
셋은 감격한 얼굴로 내 앞에 엎드렸다. 어허, 아직 감동의 눈물 흘릴 때 아니야.
“갓핸드. 먼저 이실직고해라.”
나는 엄한 목소리로 물었다.
“네가 위에서 받은 ‘밀명’이 무엇이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