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156
◈ 156. [Side Story] 나이트메어 슬레이어
“네가 위에서 받은 ‘밀명’이 무엇이었지?”
갓핸드는 이곳에 파견받기 전에 밀명을 받았다고 말했었다.
그 밀명이 무엇이고, 누가 내린 것인가.
이것을 확인해야 한다.
“예, 전하. 모든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갓핸드는 사형수로 갇혀 있던 자신이 이곳 남부전선으로 보내지기 직전, 상부에서 전달받은 밀명의 내용을 내게 전해 주었다.
“……과연.”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남부전선 안에 녹아들 것. 전선의 동태를 살피고 이상을 보고할 것. 사제장과 협력하여 긴밀하게 첩보할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 명령이 더 있었습니다.”
“그게 뭐지?”
“그…… 저도 잘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이었습니다만.”
갓핸드는 내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내뱉었다.
“영주 보좌관 에이더를, 예의주시하라고…….”
“……?”
갑자기 너무 뜻밖의 이야기가 나와서 나는 몸이 굳었다.
나도 아니고 에이더를? 어째서? 왜?
‘설마…….’
에이더가 이 세계의 시스템과 관련이 있는 인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건가?
나는 다급히 더 물었다.
“명령을 내린 사람은?”
“2황자 페르난데스 전하이십니다.”
역시 잘나신 그분이군.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 형의 말마따나, 조만간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나눠야 할 것 같다. 서로 할 말이 아주 많을 것 같네.
“먼저 말씀드리지 못한 점, 송구합니다. 그저 송구할 뿐입니다, 전하…….”
갓핸드가 바닥에 머리를 박다시피한 채 웅얼거렸다. 나는 나지막이 혀를 찼다.
“송구하면 괜히 머리 찍는 거 관두고, 앞으로의 행동으로 보여 줘.”
“물론입니다. 전하! 제가, 저희가 뭘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절실하게 묻는 갓핸드에게 나는 심플하게 말했다.
“내 첩자가 되어라.”
“……!”
흠칫 몸을 떠는 갓핸드에게 나는 씩 웃어 보였다.
“무슨 뜻인지 알고 있지? 너는 앞으로 나를 위해, 이중첩자가 되어 줘야겠다.”
조금 전 마르헤리타는 중앙과의 통신에서 이렇게 말했다.
– ‘저는’ 적발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달리 말하면 자신 말고는 걸리지 않았다는 뜻.
다시 말해서 갓핸드는 적발되지 않았다는 말을 슬쩍 흘린 것이다. 물론 이건 내가 시킨 것이다.
중앙은 ‘마르헤리타는 적발됐지만 갓핸드는 아직 들키지 않았다’고 판단할 것이다.
그리고 이곳 남부전선에 단 하나 남은 첩보 라인인 갓핸드를 어떻게든 활용하려 할 터.
이 점을 이용해서 갓핸드를 이중첩자로 활용하는 것이다.
“네가 가진 연락망으로 중앙에 따로 연락을 취해. 너는 아직 애쉬 황자에게 정체를 들키지 않았다고.”
“…….”
“이후 중앙이 네게 시키는 모든 일을 내게 보고하고, 내가 시키는 대로 중앙을 기만해 줘야겠다. 할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전하.”
갓핸드는 망설이지 않았다.
“해내겠습니다. 저희 종족의 명예에 걸고.”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는 갓핸드를 마주보며 나는 빙긋 웃었다.
‘뭐, 그렇게 만만하지는 않겠지만.’
상대는 명색이 제국 황실 직할 암부. 그것도 행정대신이 진두지휘하는 첩보부대다.
마르헤리타가 적발된 이상, 갓핸드 쪽 첩보 라인이 살아 있다는 사실도 의심할 것이 당연지사.
앞으로 갓핸드는 황실로부터도, 이쪽 전선으로부터도, 배신자인지 아닌지 끊임없이 추궁당할 것이다.
당장 나도 에이더의 감시를 다시 갓핸드에게 옮겨 놓을 생각이다.
그리고 만에 하나 나를 배신하고 남부전선에 해를 끼칠 기색이 보일 경우, 처음에 받았던 ‘목줄’을 사용해 이들을 제거할 생각이었다.
‘어쩌겠어. 이것이 언더커버의 운명인 것을.’
나는 그 외에도 갓핸드에게 아이기스 특무대의 첩보 시스템이나, 중앙에 대한 정보를 잔뜩 캐낼 수 있었다.
갓핸드는 완전히 내 편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기라도 한 듯 자신이 아는 모든 정보를 묻지 않은 것까지 죄다 털어놓았다.
정보를 캐낼 만큼 캐낸 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림자 부대원 셋을 둘러보았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너희에게 시킬 일이 있다.”
집중하는 얼굴로 나를 보는 셋에게 나는 무겁게 읊조렸다
“너희 셋만이 할 수 있지만, 너희 셋 모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다.”
***
한 시간 정도 뒤, 나는 응접실 밖으로 나왔다.
“선배님.”
문 밖에는 에반젤린과 데미안, 쥬니어, 그리고 릴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하나 하나 눈을 맞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갑작스러운 일들로 다들 머릿속이 복잡하리라 생각한다.”
다들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내 말 그대로인 모양이다. 모두 머쓱해하며 시선을 내리깔았다.
특히 릴리의 낯빛이 어두웠다. 갓핸드가 자신을 속였다는 사실이 꽤 충격인 모양이다.
“우선 결론부터 말해 주마.”
나는 중앙에서 지원군이 오기로 한 점. 그리고 마르헤리타와 갓핸드를 내치지 않고 포용하기로 한 점을 이야기했다.
“우리를 속인 건 사실이지만, 저 친구들도…… 황실의 명령을 따른 거니까.”
어쨌든 저들도 제국에 충성했다. 중앙과 변경 사이에서 중앙의 편이었을 뿐.
하지만 이곳은 변경이고, 지금 나와 눈을 맞추는 파티원들 또한 변경의 사람들이다.
우리 모두가 궁극적으로는 제국을 위해 움직인다고 해도, 그 제국을 바라보는 입장의 차이는 있을 수밖에 없다.
“당장 다시 저들을 신뢰하라고는 하지 않겠다. 여러분 모두가 두 눈 똑바로 뜨고 저들을 지켜보도록.”
“…….”
“다시 우리의 동료가 될 수 있을지는 저들 스스로가 증명할 테니까.”
파티원들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거워진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나는 박수를 짝짝 쳤다.
“자자, 다들 기운 빠진 건 이해하지만, 그래도 해야 할 일을 하자.”
앞으로 일주일 뒤, 방어전이 시작된다.
설마 내 협박을 듣고도 페르난데스가 지원군을 안 보내리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거니까.
‘지원군만 믿고 가만히 있을 순 없다. 지원군이 오지 않거나 늦을 경우를 대비해서, 이쪽도 방어 준비를 해 둬야 해.’
우리만으로 방어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한 모든 방비를 갖춘다.
나는 파티원들에게 다음 방어전에서 수행할 역할을 분배하고, 준비해야 할 것들을 알려주었다.
간단한 회의가 끝난 뒤.
지친 모두를 해산시키기 전 내가 물었다.
“아 그리고, 각자 갖고 싶은 장비의 종류를 하나씩 말해 봐.”
모두 동그래진 눈으로 나를 보았다. 나는 씩 웃었다.
“내가 다 만들어 줄 테니.”
이번 스테이지5는 손실이 컸던 만큼 얻은 것도 많다.
보상 상자를 열고, 대장장이에게 가서 장비 제작 의뢰를 할 시간이었다.
***
파밍 효율을 생각하면 상자부터 열고나서 대장장이에게 장비 제작 의뢰를 하는 게 맞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있어서 대장장이를 먼저 방문하기로 했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이날 밤 바로 마법 대장장이에게 찾아갔다.
호수왕국 던전. 안전거점 베이스캠프.
이번에는 혼자 왔다.
번쩍!
짐을 실은 수레를 끌고 텔레포트 게이트를 통해 이곳에 도착하자, 헐레벌떡 달려온 켈리베이가 수염을 쭈뼛쭈뼛 세우고는 꽥 소리쳤다.
“야! 너네 다 뒈진 줄 알았잖아, 이눔아! 소식이 너무 없어서!”
나는 쓰게 웃었다.
“죄송해요. 정신도 없고 힘도 들어서 찾아오는 게 늦었네.”
“이 망할 자식! 걱정하는 사람도 생각해야지! 잘 해냈다고 연락 하나 보내는 게 그리 힘드냐?!”
“알았어요, 알았어. 다음부터는 바로바로 연락드릴게요.”
침을 튀기며 화를 내는 켈리베이에게 나는 얼른 가져 온 물건을 수레째 내밀었다.
“좀 늦긴 했지만, 선물을 가져왔어요.”
“뭐 얼마나 대단한 걸 가져왔길래 이리 뻔뻔한 게야?”
투덜거리던 켈리베이는 수레 위에 실린 것을 눈으로 보자 몸이 뻣뻣이 굳었다.
그것은 관(棺)이었다.
시체를 담은 길쭉한 목제 상자가 하나.
“이건……!”
굳은 채 움직이지 못하는 켈리베이에게 나는 씩 웃어 주었다.
“흡혈귀를 죽일 무기를 만들어 주시는 대신, 놈들 군주의 목을 가져다 드리기로 했었죠.”
“…….”
“약속 지켰습니다.”
숨을 후, 들이쉰 켈리베이는 조심스럽게 수레로 다가서서 관을 열었다.
두 말할 것도 없이 안에 든 것은 셀렌디온의 시체.
본래 괴수들의 시체는 마석과 전리품을 회수한 후 그 자리에서 소각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셀렌디온의 목은 켈리베이에게 주기로 약속했으니까.
“…….”
한참 말없이 원수의 얼굴을 들여다보던 켈리베이가 조금 겁먹은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근데 이 새끼, 죽은 건 맞지?”
“네. 확실해요.”
“시펄, 흡혈귀 새끼가 관 안에 누워 있다 보니 뒈진 건지 자는 건지 구별도 못하겠네.”
쾅!
관뚜껑을 닫은 켈리베이가 영차, 하고 관을 째로 들어올렸다. 나는 순전히 궁금해서 물었다.
“그거 어쩌실 겁니까?”
“어쩌고 자시고 할 게 있나. 나한테 시체 갖고 노는 무서운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흡혈귀 몸에서 캐낼 수 있는 쓸 만한 재료가 있는 것도 아니고.”
켈리베이는 관을 들고 커다란 화로 앞으로 다가갔다.
“태워야지.”
풀무로 바람을 불어넣자 화로의 불길이 거세어졌다. 화로 안에서 넘실거리던 마법적인 푸른 불꽃이 후끈한 열기를 뿜어냈다.
켈리베이는 셀렌디온의 관을 화로 앞에 내려두고, 관 위에 반짝이는 은가루를 뿌렸다.
아마도 성은 무기를 만들고 남은 파편과 가루인 모양이었다.
“으랏차!”
은가루를 뿌리는 일이 끝나자, 켈리베이는 두 팔로 힘껏 관을 밀어 화로 안으로 집어넣었다.
화르륵-!
불길 속으로 빨려 들어간 관은 순식간에 타올랐다.
“보십쇼, 형님들. 형님들 목숨을 빨아먹은 이 빌어먹을 흡혈귀 군주가 뒈졌수다.”
켈리베이는 말라붙은 목소리로 뇌까렸다.
“이제 놈의 저주에서 벗어나서, 마음 놓고 훨훨 날아가소, 멀리멀리 훨훨…….”
나는 대장장이가 형제들의 진혼을 하는 장면을 멀찍이 떨어진 채 지켜보았다.
“후! 좀 속이 시원하네.”
관이 전소(全燒)된 후에야 켈리베이는 돌아섰다. 수건으로 얼굴을 닦는 그에게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우는 거 아니죠?”
“에라이! 더워서 그래, 썩을 놈아. 저 불이 얼마나 뜨거운데.”
짜증스레 수건을 구석으로 던진 켈리베이가 큰 손으로 앞의 테이블을 쾅쾅 쳤다. 여전히 할배의 눈시울은 붉은 채였다.
“아 노친네 그만 놀리고! 이번에 얻은 전리품이나 꺼내 봐. 구경이나 하자.”
안 그래도 그걸로 장비 제작을 맡기려고 찾아온 참이다.
나는 품에서 붉은 빛무리를 뿜어내는 마력핵 세 개를 차례대로 테이블 위에 올렸다.
셋 다 무섭게 선명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지만, 특히 하나가 범상치 않은 핏빛으로 일렁이고 있었다.
지난 전투 결과, SR등급 마력핵 7개와 SSR등급 마력핵 3개를 얻을 수 있었다.
그중 SSR등급 셋이었다. 알파, 베타에게서 나온 ‘흡혈귀 장군 마력핵’과, 셀렌디온에게서 나온 ‘흡혈귀 군주 마력핵’이다.
“괴물 새끼들. 수백 년 처먹은 요물 아니랄까봐 마력핵도 무시무시한 걸 토해 놓고 갔구만.”
세 마력핵을 차례로 살핀 켈리베이는 특히 무시무시한 핏빛을 내뿜는 ‘흡혈귀 군주 마력핵’을 살피고는 혀를 내둘렀다.
“셀렌디온의 정수로구만. 이거면 나이트메어 슬레이어를 만들 수 있겠군!”
“나이트메어 슬레이어?”
그러고 보니 셀렌디온도 그런 소리를 했었지.
“나이트메어 슬레이어라는 게 정확하게 뭡니까?”
내 질문에 켈리베이가 수염을 치켜올리며 씩 웃었다.
“용을 죽이는 무기, 혹은 용을 죽인 사람을 뭐라고 하냐?”
“음, 드래곤 슬레이어……죠?”
“그렇지. 그럼 드래곤이 아니라 악몽 군단장으로 대상을 바꾸면?”
아하, 과연.
“군단장급 괴수에게서 나온 마력핵으로 무기를 만들면, 그게 바로 나이트메어 슬레이어로군요.”
“그래. 그리고 이것들은 여타 장비와는 상궤를 달리하는 위력을 품고 있지.”
게임에서는 그냥 좀 좋은 보스 장비 정도였는데. 이곳에서는 저런 거창한 이름까지 붙일 만큼 차별화되는 건가.
확실히 마총 ‘블랙 퀸’은 좀 미친 성능을 갖고 있긴 하다만.
‘블랙 퀸 정도의 장비를 하나 더 마련할 수 있는 건가? 이건 정말 개꿀인걸.’
생각하는데 켈리베이가 한 마디 덧붙였다.
“그 위력에 걸맞은 어둠도 품고 있고 말이야.”
“어둠……이라뇨?”
내 질문에 켈리베이가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저격수 친구가 나이트메어 슬레이어 한 자루 들고 있더니, 그동안 모르고 쓴 거야?”
“예?”
“나이트메어 슬레이어로 무언가를 죽이면 죽일수록, 그 무기 속에 잠든 악몽이 점점 깨어나.”
등골이 섬뜩해졌다.
나는 더듬거리며 물었다.
“깨어나면, 어떻게 되는데요?”
“뭐, 그 악몽 마음이지. 얌전히 힘을 빌려줄 수도, 아니면…….”
켈리베이는 익살스럽게 어깨를 으쓱였다.
“사용자를 잡아먹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