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160
◈ 160. [STAGE 6] 지원군 (3)
공기 중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내 메인 파티원들과, 황도에서 내려온 병사들은 서로를 향해 무기를 겨누고 살벌하게 눈빛을 교환했다.
느닷없는 사태에 당황하던 성벽 위의 내 병력들도 허둥지둥 대포며 발리스타를 저쪽을 향해 겨누었다.
만약 누구 하나가 시위를 당기기라도 했다간 서로 엄청난 피해가 발생하겠지.
적막이 흐르는 가운데, 양측은 서로를 겨눈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먼저 입을 연 쪽은 레이나였다.
“이럴 필요가 없습니다, 애쉬 황자 전하.”
“……”
“저희는 안전하게 전하를 황도로 모셔가기 위해 파견된 군인일 뿐입니다. 위해를 가하려는 의도는 일체 없습니다.”
레이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만약 저희가 전하를 해코지하려는 마음이 있었다면, 비공함에 탄 채로 이곳을 불태우면 그만이었습니다.”
“…….”
“그랬다면 진작 잿더미가 되었겠지요. 이곳 요새도, 이곳 사람들도.”
레이나는 마치 아주 많이 해본 일처럼 말하고 있었다.
“우리는 같은 편입니다, 전하. 같은 에버블랙 제국의 국민이고, 같은 황제 폐하를 모십니다.”
“…….”
“부하들의 무기를 거두게 하시지요. 그리고 황명을 따라 황도로 가 주십시오.”
레이나가 가느다랗게 웃었다.
“황실의 문제는 황실에서 풀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무기를 거둬, 루카스.”
“하지만, 주군.”
“너희도 마찬가지. 다 물러나.”
루카스가 주춤거리며 검을 거두었다. 에반젤린과 데미안, 쥬니어도 천천히 전투 자세를 풀었다.
“전원 무기를 집어넣어라. 전하 앞에서 무엄하구나.”
레이나가 나지막이 명령하자, 마주 무기를 치켜세우고 있던 군인들도 정연한 동작으로 무기를 집어넣었다.
살얼음판 같은 분위기는 여전했지만 얼추 상황은 정리되었다.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네 말이 맞다, 레이나. 아바마마께서 귀여운 막내아들 보고 싶으셔서 부르셨다는데, 응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황도로 가겠다. 다만, 하루만 시간을 다오.”
눈을 가늘게 뜨는 레이나 앞에서 나는 팔짱을 꼈다.
“나는 이곳 남부전선의 사령관이다. 갑자기 내가 없어지면, 전선의 운영에 큰 차질이 생긴다.”
“…….”
“최소한의 지시와 안배는 해 두고 가고 싶은데. 어때? 아바마마께서도 이 정도는 너그러이 용인해 주실 듯한데.”
레이나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윽고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하루 정도 못 기다려드릴 것도 없지요. 내일 정오에 출발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고맙군.”
“비공함은 황도를 지키는 핵심 전력입니다. 오래 황도를 비워 둘 수 없습니다. 내일 정오 이후로는 더 이상 기다려드리지 못하는 점, 미리 양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걱정 마라. 약속 시간은 잘 지키니까.”
“흐음, 황도에서 들은 소문으로는 약속 시간을 밥 먹듯이 어기신다고 들었습니다만…….”
아니 그건 김애쉬고요. 나는 달라요.
“그럼 내일 정오에 뵙기로 하고…… 흠. 저희는 오늘 도시 안에 들어가기 힘들 것 같군요.”
레이나는 성벽 위를 올려다보았다. 여전히 레이나와 비공정들을 조준하고 있는 대포와 발리스타가 보였다.
레이나는 허리를 숙이며 뒤로 몸을 뺐다.
“차차 친해지기로 하고, 오늘밤은 도시 바깥에서 지새겠습니다.”
“편한 대로 하도록.”
내 허가가 떨어지자 레이나는 뒤돌아서서 부하들에게 외쳤다.
“오늘밤은 이곳에서 보낸다! 야영을 준비하라-!”
황도에서 온 군인들이 성벽 바깥에 야영 기지를 꾸리는 동안, 나는 내 파티원들과 함께 뒤돌아서서 성문 안으로 들어왔다.
“모든 파티원들을 소집해.”
떨리는 눈으로 나를 보는 파티원들에게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내가 없는 동안 할 일을 지시해 주마.”
***
얼마 전 통신에서 페르난데스가 ‘조만간 얼굴 보고 이야기하자’는 소리를 했을 때, 일이 이렇게 될 줄 짐작했다.
어떤 식으로든 나를 황도로 끌고 갈 것이라 예상했다. 좀 위험한 떡밥을 많이 던지긴 했으니까.
“최악의 경우 꽁꽁 묶여서 압송당할 줄 알았는데, 다행히 그 정도는 아닌 거 같네.”
영주 저택. 응접실.
모여든 사람들을 살피며 나는 태연하게 말했다.
“그래도 비공함 보내 주면서 타고 오라 해 주다니. 황족이라 취급이 나쁘지 않아?”
“…….”
태연하게 농을 던지는 나를 파티원들이 황망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다들 불안한 기색이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 레이나 말대로야. 죽일 거였으면 진작 죽였겠지. 가서 이야기만 좀 나누고 금방 돌아올 수 있을 거야.”
나도 페르난데스 얼굴 보고 물어볼 게 잔뜩 있다.
황실 쪽의 호출이 아니었어도 어차피 언젠가 한 번은 황도에 다녀와야 했다.
이참에 비행기 타고 편하게 다녀오면 좋지 뭐.
루카스가 염려 가득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전하, 정말 혼자 괜찮으시겠습니까? 역시 제가 호위로 따라가겠습니다.”
“아서라. 황도에 황자가 비공함 타고 가는데 무슨 호위가 필요하겠어.”
황도에 들어가는 시점에서 이미 내 목숨은 호위 여부와 상관이 없다.
황제가 원하면 살 것이고 황제가 원하면 죽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곳 전력을 약화시킬 수는 없어.’
내가 자리를 비운 동안 이곳에 남을 파티원 하나하나가 방어전에서 중요하다.
괜히 황도에서 나 따라다니느니 이곳에서 전선을 지켜주는 게 크로스로드를 위해서도 좋고 내 속도 편하다.
나는 메인 파티원들을 하나씩 지목하며 내가 없는 동안 맡을 일을 지시했다.
“루카스. 내가 없는 동안 사령관 대리 업무를 수행해라. 내가 하는 일을 모두 파악하고 있을 테니 믿고 맡기겠다.”
애초에 루카스는 주인공. 본래 이곳의 사령관 역할을 맡는 캐릭터다.
내가 없어도 잘 할 거다. 아니, 루카스 말고는 이 역할을 맡을 수가 없다.
“지원군으로 온 것은 저 바람 마법사 레이나를 포함한 장교 5인. 그리고 병사 50명. 수는 많지 않지만 최정예다.”
“…….”
“잘 운용하면 아주 수월하게 방어전을 수행할 수 있을 거다. 루카스 너라면 어렵잖게 해낼 거다.”
“…….”
“생산 조합에 미리 발주 넣어둔 장비, 아티팩트, 수성 설비의 생산과 배치도 꼼꼼하게 체크하고.”
“……알겠습니다, 주군. 주군께서 심려치 않으시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루카스는 예의 비 맞은 강아지 같은 얼굴이 되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 똥강아지 또 이러네.
“에반젤린.”
내가 부르자 에반젤린은 의젓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네가 더 어른 같다, 야.
“루카스를 옆에서 도와라. 너는 변경백작위 계승권자다. 크로스로드는 장차 너의 것이 될 땅이고. 너도 사령관 대리 업무를 익혀 두는 게 낫겠지.”
“알겠어요, 선배님. 믿고 맡겨 주세요. 제가 루카스 아저씨 잘 달래면서 할게요.”
악동처럼 웃어 보인 에반젤린이 손뼉을 짝 쳤다.
“아 참! 그리고요…….”
그리고? 내가 의아하게 쳐다보자 에반젤린은 배시시 미소했다.
“황도 가시면, 황실 아카데미 기숙사 옆에 작은 과자점이 있거든요! 거기 선물세트 좀 사와주세요. 졸업하고 나니까 계속 먹고 싶어서 생각이 나네요.”
“욘석이, 감히 황자님께 과자 심부름을 시키다니…….”
괘씸하다는 듯 중얼거렸지만, 에반젤린의 마음씀씀이가 고마웠다.
에반젤린은 내가 당연히 멀쩡하게 돌아올 줄 믿는다고 말해 준 것이다.
기특한 것. 배 터지게 과자 먹여 줄 테니까 딱 기다리고 있어.
“데미안. 쥬니어.”
“네, 황자님!”
“말씀하세요, 전하.”
저격수와 마법사에게 나는 주의 깊게 속삭였다.
“데미안, 너는 눈이 좋으니까…… 지원군으로 온 친구들을 항상 예의주시해. 뭔가 수상한 점을 발견하면 루카스에게 말하고.”
“넵!”
“쥬니어, 마찬가지. 특히 레이나는 강력한 마법사야. 만에 하나 그 여자가 다른 마음을 먹는다면, 막을 수 있는 건 너뿐이다.”
쥬니어가 흐릿하게 미소했다.
“안 그래도 그 여자는 제가 요주의로 지켜볼 생각이에요.”
“좋아. 믿으마.”
나는 고개를 돌려 휠체어에 앉은 릴리를 보았다.
“릴리. 내가 없는 동안 메인 파티에 합류해라. 쥬니어를 보조해 줘.”
“그렇게 할게요, 전하…….”
릴리는 저번 첩자 색출 뒤로 계속 기운이 없는 느낌이다. 힘이 쭉 빠진 목소리로 대답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점을 일일이 배려해 줄 시간 여유가 없다.
“루카스, 에반젤린, 데미안, 쥬니어, 릴리. 내가 없는 동안 너희 5인이 메인 파티다. 틈틈이 던전에 들어가서 자유탐사도 진행하도록 해. 하지만 새로운 구역에는 진입하지 말고.”
“알겠습니다, 주군.”
좋아, 메인 파티 편성은 이렇게 됐고.
“갓핸드, 바디백, 번아웃.”
내가 부르자 그림자 부대 3인은 일제히 나를 보았다. 릴리 쪽을 힐끔거리며 보던 갓핸드도 내게 집중했다.
“너희는 내가 전에 명령해 둔 그 임무를 수행하러 떠나라. 해낼 수 있겠지?”
이들에게는 혹독한 임무를 맡겨 두었다.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쉽지 않은 임무.
하지만 훗날의 포석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임무다.
셋은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목숨을 걸고 해내겠습니다.”
“좋다. 행운을 빈다.”
그리고 마지막 레귤러 영웅 캐릭터.
“성녀님.”
“…….”
구석에서 다크 써클이 낀 얼굴로 마르헤리타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끌끌 혀를 찼다.
“방어전 때마다 예비대 파티 이끌고 참전하되, 앞에는 나서지 말고 부상자만 치유해 줘요. 알겠지?”
“알겠습니다, 전하.”
대답은 똑부러지게 하는데 안색이 저러니 원. 얼른 멘탈 회복하길 바란다.
***
어쩌면 당연한 말이지만, 내 생각 이상으로 이곳 전선에서 내가 차지하는 비중은 컸다.
업무의 대부분이 내 판단과 결재 아래 이뤄지고 있었다.
밤이 늦도록 이 업무를 분담하고 앞으로의 지침을 설명하고 문서로 남겼다.
에이더는 땀을 뻘뻘 흘리며 문서를 기록했다. 이 녀석이 도시 행정 담당이다 보니 시킬 것도 무지하게 많았다.
“…….”
헥헥거리며 펜을 놀리는 에이더를 가만히 보는데, 문득 생각이 났다.
갓핸드가 페르난데스에게 받았다는 밀명.
– 영주 보좌관 에이더를, 예의주시하라고…….
“…….”
페르난데스는 에이더의 정체를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걸까?
‘……아니, 그 이전에.’
에이더 이 자식의 정체는 정확하게 뭐지?
자기 입으로는 이 세계의 신 비스무리한 존재에 디렉터라고 했지만, 애초에 디렉터라는 게 명확하게 뭘 의미하는 거야?
날더러 이 세계를 진엔딩으로 이끌어 달라고 했지.
하지만 그래놓고는 진엔딩이 뭔지, 어떻게 하면 볼 수 있는지는 일언반구도 언급이 없다.
그냥 내 공략을 옆에서 지켜볼 뿐.
나도 진엔딩이고 뭐고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매번매번 힘겹게 전투를 치르며 버텨나갈 뿐이고.
‘이놈의 진짜 목적은 대체 뭐야?’
페르난데스를 만나면, 이런 것들에 대해 조금은 더 알 수 있을까?
“하이고, 서류 작업 끝났습니다아!”
에이더가 두 팔을 위로 들어올리며 외쳤다.
“오잉?”
녀석은 고민에 빠진 내 얼굴을 보더니 히히거리며 웃었다.
“너무 걱정 마셔요오, 영주님. 무사히 돌아오실 수 있을 겁니다아.”
“…….”
그런 녀석의 얼굴을 가만히 마주보다가 나는 툭 물었다.
“야, 에이더.”
“네엡! 말씀하셔요오.”
“너는 내 편 맞지?”
에이더는 뱅글이 안경 너머로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직후 방긋 웃었다.
“그럼요, 영주님. 저는 완전히 영주님의 편입니다아. 아니, 그보다는 영주님께 제 모든 걸 올인했다고 보는 게 맞겠네요.”
“…….”
“그러니 같은 편이라기보다는, 운명공동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요오?”
“운명공동체라…….”
에이더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제 진엔딩 같은 건 아무래도 좋다.
이 세계가 어떤 결말을 맞든, 내 손이 닿는 범위 안의 사람들을 지키고 싶다.
지금 내가 바라는 건 그것뿐이다.
***
새벽이 되어서야 대강의 일들이 다 끝났다.
“후아아암.”
피곤한 몸을 이끌고 나는 침실로 향했다. 그런 나를 루카스가 묵묵히 따르며 경호했다.
복도가 끝나고 내 침실 문 앞에 도착했다.
문고리에 손을 올리고, 나는 문득 내뱉었다.
“루카스.”
“예, 주군.”
“네게 물을 것이 있다.”
“무엇이든 말씀하십시오.”
언제나 묵묵히 나를 따르는 이 기사에게 나는 기습처럼 물었다.
“사실 알고 있지?”
“예? 뭘 말씀이십니까?”
“내가 애쉬가 아니라, 다른 사람인 거.”
“…….”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나를 보는 루카스를 마주보며, 나는 힘주어 물었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 루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