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251
◈ 251. [Side Story] 쥬피터 쥬니어 (3)
크로스로드 시내, 신전.
고깔모자를 푹 눌러쓴 채, 쥬니어는 레이나의 병실 앞에서 머뭇거리며 서 있었다.
레이나가 방금 의식을 찾았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온 참이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선뜻 들어갈 용기가 나질 않았다.
그때 병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사제장 마르헤리타가 히이이익- 소리를 내며 튀어나왔다.
“으아아! 됐어요! 무슨 감사인사야, 감사인사는! 제에발 얌전히 있다가 다 나으면 빨리 나가기나 하세요!”
“아니, 돌봐준 게 고마워서 밥 한 끼 사겠다는 게 뭐가 그리 무서워? 그러지 말고 성녀님, 성녀님! 에이, 거 참…….”
멀리 복도를 달려 도망치는 마르헤리타의 뒷모습을 보며 레이나가 쓰게 입맛을 다셨다.
그러다가 고개를 돌려 쥬니어를 향해 씩 웃었다.
“뭐야, 꼬마 마법사. 병문안 와 준 거야?”
“그런…… 셈이에요. 멀쩡해 보이시네요?”
“마취 덕이지. 배에 구멍이 났는데 멀쩡하겠어? 마법으로 얼추 아물긴 했다는데 절대 안정이래.”
방금 깨어난 것치고는 믿을 수 없이 활기차게 지껄이며 레이나가 병실 안으로 돌아섰다.
비틀거리며 침대에 엉덩이를 붙인 레이나가 침대를 손으로 팡팡 쳤다.
“거기 그렇게 뻘쭘하게 있지 말고 들어와! 나 기절해 있는 동안 무슨 일 있었나 이야기 좀 해 줘.”
그럴 셈으로 왔으므로, 쥬니어는 병실 안으로 걸음을 옮기려 했다.
하지만.
우뚝.
발이 병실 문턱에 멈췄다.
“……?”
레이나의 의아한 시선이 느껴졌다. 하지만 쥬니어는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 카밀라 왕국 출신의 마법 폭격 생존자인데, 어째서 저 여자를 감싸는 거지?
피습 당시 카뮈가 던진 질문이 뇌리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15년 전 떨어진 벼락과 폭풍의 소리가 귓가에 선했다. 쥬니어는 이 이상 레이나에게 다가갈 수가 없었다.
“……그래. 그런 건가.”
그런 쥬니어의 상태를 보고, 어렵잖게 상황을 눈치 챈 레이나가 쓰게 웃었다.
“어쩌면 이게 우리에게 맞는 거리일지도 몰라. 쥬피터 딸. 그동안 가까워졌던 게 기적 같은 거지.”
“…….”
“아무리 노력해도 메울 수 없는 골이라는 게 있는 법이거든. 그동안은 어떻게 눈을 돌려 그 골을 무시해 왔지만, 이제 한계인가보네.”
쥬니어는 양 주먹을 꼭 쥐었다. 멀쩡한 오른손과, 마법 폭격에 불타 버린 왼손이었다.
“한 가지 묻고 싶어요……. 그날의 일, 후회하시나요?”
“……정확히 어떤 일을 말하는 거지? 내가 저지른 게 좀 많아서.”
“내 나라를 멸망시키고, 내 마을을 불태운 것.”
고개를 숙인 쥬니어의 얼굴은 고깔모자의 챙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쥬니어는 억눌린 목소리로 물었다.
“후회, 하고 있어요?”
레이나는 즉답했다.
“아니.”
“……!”
“나는 내가 군인으로서 행한 일을 단 하나도 후회한 적 없어.”
레이나의 목소리는 차갑고 기능적이었다.
“내가 후회하면, 내 밑에서 내 명령을 수행한 부하들은 뭐가 되지?”
“…….”
“나는 마법병단 총대장이야. 내 명령으로 사람을 죽이고, 마을을 불태우고, 나라를 짓밟고, 그 과정에서 전사한 부하들이 있어. 내가 속 편하게 후회하고 참회하면, 그럼 내 부하들의 희생은 뭐가 되나?”
“…….”
“나는 군인이다, 쥬니어. 상부의 명령이라면 네 마을에 한 것보다 더한 짓도 할 거다. 그리고 이 숨이 끊어질 때까지 후회하지 않을 거고, 후회해서도 안 돼.”
어금니를 꽉 깨문 쥬니어가 더듬거리며 물었다.
“그렇다면, 만약, 나를 죽이라는 명령을 받는다면. 수행할 건가요?”
“……그런 명령은 내려오지 않아.”
“만약 내려온다면요?”
“…….”
레이나는 긴 한숨을 내쉬고는,
“그래.”
대답했다.
“그게 명령이라면, 그리 해야지.”
“……!”
안색이 하얗게 질리는 쥬니어에게 레이나는 차갑게 내뱉었다.
“나는 네 엄마와는 달라. 쥬피터라면 그깟 명령 씹어 버리고 불복하고 항명한 뒤에 너를 안고 도망치겠지. 실제로 그랬고.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해.”
함께 복무한 수십 년 동안, 레이나는 쥬피터를 좋아했다. 쥬피터처럼 살고 싶었다.
왜냐하면, 자신은 그렇게 살 수 없는 인간이니까.
“솔직하게 말하는 거야. 쥬니어, 나는 네 엄마처럼 살 수 없어.”
“그럼 대체 왜!”
쥬니어의 목소리가 격해졌다.
“왜…… 나한테 잘 해 준 건데요? 그날의 일을 후회하지도 않고, 사과하고 싶지도 않으면서!”
“…….”
“뭘 위해서 나와 친해지려고 하고, 뭘 위해서 내 몸을 치료해 준 건데요? 대체 왜?”
침묵하던 레이나가 눈을 내리깔았다.
“지쳤거든. 뭔가를 부수고 파괴하는 데에. 나도 네 엄마처럼 뭔가를 지키고 살리면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
쥬니어도, 레이나도, 동시에 쥬피터의 얼굴을 떠올렸다.
쾌활하게 웃던 백발의 벼락불을…….
레이나의 고개가 천천히 아래로 향했다.
“하지만, 그래…… 이제야 알겠네. 그럴 수 없다는걸. 후회도 사죄도 할 수 없는 나는, 절대로 쥬피터처럼 될 수 없다는걸.”
“…….”
“우리 사이의 거리를 이 이상 좁힐 수 없다는 것도.”
쥬니어는 여전히 병실 입구에 선 채 들어오지 못했고, 침대에 걸터앉은 레이나는 씁쓸한 시선으로 그런 쥬니어를 바라보았다.
물기 어린 목소리로 쥬니어가 중얼거렸다.
“나는 당신을 용서하고 싶었어요.”
레이나는 하하 마른 목소리로 웃었다.
“……나는 가능하다면 너의 새 엄마가 되어 주고 싶었어. 혹은 비슷한 무언가라도.”
쥬니어는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레이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안 될 일이었나 보다.”
***
크로스로드 시내. 감옥.
“…….”
쥬니어는 카뮈의 옥실 앞에 멍하니 서 있었다.
면회 허가야 애쉬에게서 받았다. 하지만 정말로 카뮈와 1대1로 대화를 나누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무엇보다, 어떤 이야기를 나눠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제국. 카밀라 왕국. 복수. 용서…….
떠오르는 화두는 많았으나 문장으로 엮이지가 않았다.
쥬니어는 카뮈에게 첫 인사를 무엇을 던져야 할지부터 알 수 없었다.
자신이 어떤 대답을 듣고 싶어서 이곳에 왔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이봐.”
그때, 옥실 안에서 잔뜩 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언제까지 가만히 서 있기만 할 거지?”
“우왓!”
기겁한 쥬니어가 앞을 보자, 옥실 창살 가까이에 와서 선 카뮈가 보였다.
잔뜩 두들겨 맞아 얼굴 곳곳이 부어 있었지만, 차갑고 음울한 눈빛은 변함없이 번뜩였다.
“계속 그러고 있으니 나도 신경 쓰이는군. 나한테 볼 일이라도 있나?”
“죄, 죄송……해요. 저는 단지…….”
머뭇거리는 쥬니어를 알아본 카뮈의 목소리 톤이 누그러졌다.
“그때의 그 마법사로군. 카밀라 왕국 출신이라고 했던…….”
“…….”
입술을 잘근잘근 뜯는 쥬니어를 가만히 보다가, 카뮈는 그대로 창살 옆 바닥에 천천히 앉았다.
“할 이야기가 있나 보군. 들어줄 테니 말해.”
“네?”
“그때 네가 말한 대로, 우리는 동향(同鄕)이잖나.”
카뮈가 어깨를 으쓱였다.
“고민이 많은 얼굴인데, 편하게 말해.”
잠시 멍하니 있던 쥬니어는 곧 두서없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신이 일곱 살 때 당했던 마법 폭격. 잃어버린 가족. 자신을 거두어 준 쥬피터. 15년간의 삶.
이곳 전선에 합류한 뒤에 일어난 일. 쥬피터의 죽음. 레이나와의 만남. 레이나와 가까워진 이야기…….
그리고 카뮈가 레이나에게 칼을 찌른 뒤, 모든 것을 알 수 없게 되었다는 것.
자신이 제국인인지 카밀라 왕국인인지, 레이나를 용서해야 하는지 복수해야 하는지…… 모르게 되었다는 것.
쏟아지는 쥬니어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던 카뮈가 천천히 물었다.
“지금 몇 살이지?”
“스물둘……이에요.”
“어리군. 내 둘째아들이 살아 있었다면 네 나이쯤 됐을 거야.”
카뮈가 피식 웃었다.
“나는 쉰 하고도 셋이다. 너와 나 사이에는 30년이 넘는 시간 차이가 있지.”
“30년…….”
“내가 나라를 잃고 아내와 자식을 잃은 것이 서른여덟 살의 일이다. 그때까지 내가 평생 일군 모든 것이 잿더미가 되었지. 내 증오는 내가 잃은 서른여덟 해의 무게만큼 깊다.”
카뮈의 눈빛이 잠시 아련해졌다.
잃은 가족이라도 생각하는 걸까. 쥬니어는 알 수 없었다.
“그 뒤의 15년은 나라를 찾기 위해 싸우다 실패했으니, 사실상 내 일생을 제국에게 빼앗겼군.”
카뮈는 쥬니어에게 턱짓했다.
“하지만 너는 다르다. 너는 7년을 카밀라 왕국인으로 살고 15년을 제국인으로 살았지.”
“…….”
“이미 제국인으로 살아온 시간이 두 배는 더 길다. 우리는 살아온 시대가 다르고, 증오의 깊이가 다르다. 네가 카밀라 왕국보다 제국에 더 친밀함을 느끼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쥬니어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카뮈는 계속했다.
“제국에 융화된 너를 힐난할 생각은 없다. 너 스스로도, 제국인으로 살아온 스스로에게 죄책감을 갖지는 마라.”
“…….”
“마찬가지로, 나라가 망하고 15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복수를 잊지 못한 나를…… 피를 피로 갚으려고 칼을 휘두른 나를, 너무 힐난하지 말아다오. 사람의 마음에는 메울 수 없는 골이라는 게 있는 거니까.”
카뮈는 레이나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쥬니어는 작게 중얼거렸다.
메울 수 없는, 골…….
“우리는 그저 살아남았을 뿐이잖나. 각자의 방식으로, 어쩔 수 없이.”
“…….”
어쩔 수 없이 살아남았다, 라.
그 표현이 너무 아프고 또 정확해서, 쥬니어는 속이 쓰려 왔다.
“저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카뮈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용서하려면 용서해라. 복수하려면 복수해라. 둘 중 이도 저도 못 고르겠으면, 그것도 상관없다. 계속 고민하도록 해. 언젠가 네가 원하는 답을 찾을 때까지.”
“…….”
“다만, 잊지 말아라. 네가 겪어 온 모든 일을.”
카뮈의 상처투성이 손이 쇠창살을 잡았다. 그가 소리 낮춰 으르렁거렸다.
“나 같은 남자도 있었다는 것을.”
“…….”
“카밀라 왕국을 잊지 말아라. 그것이 살아남은 우리가 짊어져야 할 짐이다.”
카뮈는 쇠창살을 잡은 손을 풀고는, 몸을 일으켜 감옥 안쪽으로 비척이며 돌아갔다.
“나는 곧 처형당한다. 질 나쁜 범죄자와 너무 어울리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군.”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을, 쥬니어는 멀거니 지켜보았다.
***
감옥 밖으로 나오자, 애쉬가 기다리고 있었다.
“쥬니어.”
“황자 전하.”
어색하게 인사해 보이는 쥬니어에게 빙그레 웃어준 애쉬가 자신의 저택 쪽으로 손짓했다.
“오늘 저녁에 방어전 작전 회의가 있어.”
“아…….”
“콜업이다. 쥬피터 쥬니어. 메인 파티에 복귀하도록.”
지팡이를 꽉 움켜쥔 쥬니어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몸은 좀 어때?”
“부상은 거의 다 회복했습니다. 걱정 않으셔도 돼요.”
애쉬는 감옥 안쪽을 흘긋 보더니 쓰게 웃었다.
“마음의 고민은 깨끗하게 안 풀린 모양이구나?”
“……네.”
쥬니어는 고개를 도리도리 젓더니, 스스로의 뺨을 손끝으로 짝짝 때린 다음, 애쉬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괴수 놈들이 제 고민 들어주러 오는 건 아니니까요. 고민은 잠시 접어 두고, 전선에 복귀하겠습니다.”
놀란 눈으로 그런 쥬니어를 보던 애쉬는 무어라 말하려다가, 이윽고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옆에 대기하던 마차를 향해 손짓했다.
“방어전 회의 때마다 내가 밥 맛있게 차려 주는 거 알지? 가자. 원래 기분이 저기압일땐 고기앞으로 가는 거래.”
무슨 말장난인지 잘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자신을 위해주는 애쉬의 마음은 느껴졌다.
마차에 오르며 쥬니어는 생각했다.
자신이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갈지 자신은 모른다.
레이나를 용서할지, 카뮈를 잊을지, 미래는 무엇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자신은 이곳 괴수전선에 고용된 마법사니까.
이런 고민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우선 눈앞에 들이닥친 괴수들을 물리쳐야 한다.
“전하.”
“응?”
“괴수놈들을 얼른 시원하게 날려버리고 나서…….”
쥬니어가 애쉬에게 배시시 웃었다.
“밤새 고민 이야기 서로 나눠요.”
“…….”
“전하의 고민도 듣고 싶거든요.”
애쉬가 기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얼마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