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320
◈ 320. [Side Story] 화양연화(花樣年華) (2)
티타임이 끝나고, 루카스가 지낼 숙소를 안내할 시간.
더스티아 제2황후가 손수 루카스를 안내했다. 루카스가 지낼 방은 별궁의 1층에 있었다.
“앞으로 이 방을 쓰면 된단다.”
루카스의 짐은 이미 알베르토가 방 안에 깔끔하게 정리해 둔 상태였다.
루카스는 작게 입을 벌리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오히려 가문에서 사용하던 방보다 훨씬 좋은 것 같았다.
“안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황후마마.”
“……루카스.”
루카스의 앞에 쪼그려 앉아 눈높이를 맞추고, 더스티아가 따뜻하게 미소했다.
“네게 있었던 안 좋은 일들에 대해서는 다 전해 들었단다. 많이 힘들었지?”
“…….”
“앞으로 이곳을 집처럼 여기라는 말은 않겠지만……. 그래도 네가 네 집처럼 편히 지낼 수 있도록, 나도 최선을 다할게. 애쉬와 세레나데도 도울 거고.”
“……감사합니다. 황후마마.”
루카스는 고개를 꾸벅 숙여 보였다.
“저도 노력하겠습니다.”
“그래. 우리 다 같이 노력하자.”
더스티아는 소탈하게 웃었다.
어쩐지, 그 자상한 미소가 정말로 어머니의 그것 같아서.
부끄러워진 루카스는 급하게 몸을 뒤로 물렸고, 실수로 책상 위의 촛대를 탁 쳤다.
“아……?!”
당황한 루카스가 촛대를 잡아채기도 전에, 속절없이 떨어진 초가 바닥에 떨어졌고, 그대로 바닥의 카펫에 불길이-
찰칵.
-번지지 않았다.
더스티아가 앞으로 손을 뻗어 손가락을 튕기자, 시간이 거꾸로 흐르듯 촛대가 허공으로 도로 솟구쳐 오르더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얌전히 책상 위에 놓였다.
“어……?”
놀란 루카스가 더스티아를 보자, 그녀의 주위에서 반짝이는 회색 마력이 보였다.
마치 시계태엽이 휘감기는 것처럼, 나선형으로 휘몰아친 마력이 다시 그녀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콜록, 콜록!”
정체불명의 기적을 일으킨 더스티아는 직후 거칠게 기침했다. 겨우 기침이 멎은 뒤에야 더스티아는 루카스에게 찡긋 윙크했다.
“에구, 마법 쓴 거 걸리면 혼나는데…….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밀이다, 루카스? 알겠지?”
더스티아는 앞으로 새끼손가락을 내밀었고, 루카스는 자신도 모르게 마주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더스티아의 길고 가느다란 약지와 루카스의 조그마한 약지가 얽힌 채 위아래로 흔들렸다.
비밀을 지킨다는 약속이었다.
싱긋 웃은 더스티아는 루카스의 금빛 머리칼을 부드럽게 쓰다듬더니, 손을 흔들며 밖으로 나갔다.
“좋은 밤 되렴, 루카스. 무슨 일 있으면 알베르토를 부르고.”
“네, 넵……! 안녕히 주무세요!”
예절바르게 허리를 숙여 보이는 루카스를 귀엽다는 듯 바라본 더스티아는 손을 흔들며 문을 닫았다.
멍하니 닫힌 문을 보던 루카스는 휘청거리며 짧은 걸음을 옮겨,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모든 것이 어색했다.
부모님을 잃고 갑자기 이곳에 오게 된 경위도, 낯선 사람들이 베푸는 다정함도, 겨울 공기에 차게 식은 침대 이불과 베개도…….
그리고 방금 목격한, 더스티아가 펼친 정체불명의 마법도.
루카스는 짧은 한숨과 함께 옆으로 고개를 돌렸고.
창문 밖에 하얀 숨을 뱉으며 들러붙은 애쉬를 발견했다.
“……?”
뭘 잘못 봤나 싶어서 눈을 비볐지만, 아니었다. 진짜 애쉬였다.
여덟 살의 황자는 루카스의 방 창문에 달라붙은 채 덜덜 떨고 있었다. 입모양으로 ‘이거 좀 열어 줘’라고 말하며…….
“?!”
기겁한 루카스는 거의 바닥을 구르다시피 달려가 창문을 열어 주었다.
애쉬는 조그만 몸을 데구루루 둘러 방 안으로 쏙 들어오더니, 추위에 발갛게 달아오른 뺨을 치켜 웃었다.
“안녕, 루카스!”
“아, 안녕하세요…… 황자 전하.”
무슨 상황인지 감도 안 잡혔다. 루카스는 어리둥절하게 물었다.
“이 시간에 여기는 어쩐 일로……?”
그러자 애쉬는 악동같은 얼굴로 헤실헤실 웃더니,
“놀자!”
그런 소리를 했다.
루카스의 파란 눈이 의아하게 치켜뜨였다.
“예?”
“나! 친구랑 밤에 노는 게 꿈이었거든! 세레나데 누나도 밤에는 집에 가 버리고, 혼자서 엄청 심심했단 말이야!”
그러고는 영차영차 다시 창틀에 몸을 올리더니, 바깥으로 손짓했다.
“따라와! 내 비밀기지로 안내해 줄게!”
황자의 작은 몸이 바깥으로 쏙 사라졌다. 당황한 루카스는 허둥지둥 따라서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나섰다.
눈은 내리지 않았지만 바깥은 추웠다.
애쉬는 하얀 입김을 흩뿌리며 별궁의 좁은 돌담 위를 타고, 외벽의 계단을 타고, 기어코 지붕 위까지 답파한 끝에-
별궁 꼭대기 바로 아래의 다락방 안으로, 창문을 통해 들어섰다.
헥헥거리며 겨우 따라 온 루카스가 기진맥진해하는데, 애쉬는 다락방 안을 가리키며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여기가 내 비밀기지야!”
비밀기지……라고 하기에는 그냥 평범한 다락방이었다.
동화책과 장난감, 체스판 따위가 어질러져 있고, 담요와 램프등, 그리고 절인 과일이 든 유리통 같은 것들이 보였다.
눈을 깜빡이며 주위를 둘러보는 루카스에게 애쉬가 의기양양하게 콧대를 세우며 말했다.
“특별히 너는 여기 들어올 수 있게 해 줄게!”
“가, 감사합니다……?”
“아! 암호는 이거야! 외워 둬?”
애쉬는 작은 손을 들어 창문을 톡톡 두들겼다.
똑. 똑똑. 똑.
“우리의 비밀기지에 들어올 때에는 이 암호를 두들기면 돼. 알겠지?”
“네, 넵…….”
저걸 암호라고 할 수 있는지조차 모르겠지만, 아무튼 루카스는 외웠다. 노크 한 번, 두 번, 한 번…….
이를 드러내며 히히- 하고 웃은 애쉬는 담요를 집어 루카스의 머리 위에 씌워 주고, 자신도 담요를 뒤집어썼다.
램프등을 끌고 와 불을 밝히고, 그 앞에 쪼그려 엎드린 채 어린 황자가 물었다.
“좋아! 그럼 뭐하고 놀래?”
그래서, 두 소년은 밤새 놀았다.
어설픈 실력으로 체스를 두기도 하고, 유리통에서 절인 과일을 꺼내 먹기도 하고, 설탕에 진득해진 손을 핥으며 동화책을 읽었다.
밤이 깊자, 좋아하는 이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루카스는 아직 없다고 말했고, 애쉬는 ‘나도 아직 없긴 한데’ 라더니 세레나데 이야기를 계속 꺼냈다. 그 누나가 언제 이 별궁에 놀러오기 시작했고 자신과 놀아 주었는지…….
‘아하, 그런 거군.’
세레나데 이야기가 나오자 애쉬는 몸을 배배 꼬아 댔다. 젖살이 남은 얼굴이 헤벌레 풀려 있다.
바보라도 이 황자가 누구를 좋아하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루카스는 피식 웃었다.
그렇게 늦도록 이야기가 오가고.
금세 밤이 지나고 새벽이 밝았다. 담요 속에 너부러진 채 두 소년은 꾸벅꾸벅 졸았다.
그때였다.
벌컥!
다락방 문이 활짝 열리더니, 시종장 알베르토가 무섭게 미간을 찌푸린 채 안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황자 전하……. 또 여기 계셨군요! 게다가 루카스까지 끌어들이셔서……!”
늘어지게 하품하며 일어난 애쉬가 칭얼거렸다.
“알베르토…… 너는 여기 출입 허가 안 내줬잖아…… 후아암.”
“이 별궁에서 늙은이가 가지 못할 곳은 없습니다, 전하!”
“우아아앗, 들어오지 마! 여기 비밀기지란 말이야!”
“제가 아는 시점에서 비밀이고 자시고…… 어휴. 마마께서 눈치 채시기 전에 얼른 씻고 방에 들어가십시오!”
알베르토는 양쪽 옆구리에 두 소년을 끼워들고 강제로 연행했다.
이런 일이 익숙한지 알베르토의 손에 들린 채로도 태연하게 하품하던 애쉬가 옆을 보고 말했다.
“또 놀자, 루카스!”
멍하니 그런 애쉬를 마주보던 루카스가 흐릿하게 웃었다.
“……네, 전하.”
알베르토가 두 소년을 각자의 방 안에 집어넣었다.
밤새 논 탓에 두 소년은 낮 내내 곯아떨어졌다. 그런 둘을 살피며 더스티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세레나데는 입을 가리고 웃었다.
그런 매일이 흘러갔다.
애쉬는 얌전한 얼굴로 매일 장난을 꾸미는 악동이었고, 루카스는 언제나 그런 애쉬와 어울려야 했다.
부정적인 생각을 할 틈도 없었다. 루카스는 금세 이 별궁에 적응했고, 함께 웃고 함께 혼나며 한 식구가 되었다.
그렇게 쏜살같이 시간이 흘러-
***
5년 뒤.
똑. 똑똑. 똑.
애쉬의 방 앞에서 노크한 루카스는 거침없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저 왔습니다, 전하. 준비는 다 끝나셨어요?”
“으으으으…….”
전신거울 앞에 선 애쉬가 괴상한 소리를 냈다.
애쉬는 그럴싸한 흑백의 연미복을 차려입은 상태였다.
열세 살의 황자는 5년 전에 비하면 몰라보게 커졌지만, 여전히 조그마한 소년이었다. 연미복 차림은 멋지다기보다는 귀여워 보였다.
“야, 루카스!”
끙끙거리며 나비넥타이를 만지던 애쉬가 꽥 소리쳤다.
“나 안 이상해?!”
“몇 번을 말씀드립니까, 전하…….”
뒤에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루카스가 한숨을 폭 뱉었다.
“제가 여기 오고 나서 뵌 모든 모습 중에서, 오늘이 제일 멀쩡…… 아니, 잘 생기셨다니까요.”
열두 살의 루카스도 오늘은 정장을 빼입고 있었다. 연갈색 정장은 소년의 몸에는 조금 컸지만, 급하게 맞춘 것치고는 그럭저럭 어울렸다.
두 소년이 오늘 차려입은 이유는, 바로 오늘이 애쉬와 세레나데의 약혼식이기 때문이었다.
애쉬는 깔창에 굽이 있는 구두까지 신고도 작은 자신의 키를 살핀 뒤, 울상이 되어 내뱉었다.
“세레나데 누나가 이런 나를 좋아할까?!”
“하아…….”
루카스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뱉었다.
이 어린 커플이 서로 좋아한다는 사실은 5년 전 이 별궁에 오자마자 알아챘다.
그런데 정작 둘만 서로 그 사실을 몰라서, 서로 눈치만 보느라 다가서지 못하고 있었다.
옆에서 보기엔 그 끔찍한 순정 염장질에 환장할 노릇이었다.
사이에서 러브레터를 전달하는 사랑의 전령사 역할까지 맡아야 했으니…….
‘그 기나긴 핍박과 모멸의 시간도 끝이다.’
5년의 삽질 끝에! 드디어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고! 양가 부모의 허락도 떨어졌고! 오늘 약혼까지 한다!
‘뭔 약혼이야, 확 그냥 바로 결혼부터 해 버리지.’
한 단계 전진한 건 다행이지만, 이제 또 결혼까지 이 장대한 삽질이 이어질 것을 생각하자 루카스는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손잡는 것도 부끄러워하는데, 대체 어느 세월에 진도를 나갈 건가…… 게다가 이 느려터진 커플이 한 단계씩 꼬물거리며 진도를 밟는 꼬락서니를 바로 뒤에서 현장 직관해야 한다…….
생각만 해도 벌써 답답했다. 루카스는 이마를 짚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확 그냥 뽀뽀해! 진도도 팍팍 밟고! 아주 그냥 살림 차려! 아이도 잔뜩 낳고! 한 다섯 명쯤!
‘헉! 아이?’
애쉬와 세레나데 사이에 태어날 아이들의 모습을 상상하자 루카스는 자신도 모르게 흠칫 어깨를 떨었다.
‘무지 귀엽겠다.’
자신은 애쉬의 호위니까, 그 아기들을 바로 옆에서 지키는 것도 자신의 일일 터.
아니, 아무에게도 일을 안 나눠 줘야지. 유모도 필요 없다. 자신이 분유 타서 아기들 먹이고 요람을 흔들어 줄 것이다.
‘그런 날이 오기 전에 미리 아기 돌보는 법을 배워 둬야겠군.’
궁내의 늙은 하녀들에게 예습을 요청하리라 다짐하며 루카스는 음음 고개를 끄덕였다.
호위기사의 그런 음흉한 속내도 모르고, 까치발을 선 애쉬는 울상이 된 채 한숨을 폭폭 뱉었다.
“내 키가 조금만 더 컸다면 좋았을 텐데…….”
현재 애쉬는 세레나데보다 키가 작았다.
좋아하는 여자가 자신보다 키가 크다는 현실이 애쉬에게는 영 달갑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런 시기도 지금뿐이고, 곧 애쉬가 쑥쑥 커서 세레나데보다 커지리라고 루카스는 생각했지만.
지금은 위로하는 것보다 놀리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밤에 안 주무시고 노시니까 키가 안 크신 거 아닐까요?”
“같이 논 너는 왜 그렇게 큰데!”
“키는 원래 유전이랍니다. 그리고 저는 매일 검술 수련을…….”
“으아아아! 그러지 말고 키 좀 나눠 줘, 인마!”
절규하던 애쉬는 에휴, 하더니 옷장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자, 루카스! 받아.”
루카스는 의아해하며 그것을 받았다.
“이건……?”
“검이야.”
그것은 철검이었다.
칼날의 길이는 50cm 정도. 루카스가 평소에 쓰던 목검보다 짧았다. 아마도 황궁 안에 들일 수 있도록 길이를 조절해서 주조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덕분에 아직 어린 루카스가 사용하기에는 적당했다.
루카스는 작게 입을 벌리고 칼날의 빛을 살폈다. 손잡이부터 칼날, 칼집에 이르기까지, 눈부시게 근사했다.
애쉬가 머쓱해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슬슬 너도 목검이 아니라 진검을 써야 하지 않나 싶어서. 알베르토한테 허락 맡고, 황도의 대장간에 주문 넣었던 물건이야. 어때, 마음에 들어?”
“전하…….”
감동한 얼굴의 루카스에게 애쉬가 덧붙였다.
“약혼식인데 내 호위기사인 네가 찬 검이 구리면 나까지 쪽팔리잖아…… 목검은 좀, 비주얼이 안 산다고 해야 하나? 동의하지?”
“……제 감동 돌려주십시오. 아오.”
루카스는 구시렁대며 혁대에 장검을 비껴 찼다. 길이는 짧아도 모양새는 그럴싸했다.
“좋다, 나의 호위!”
그런 루카스의 모양새를 만족스레 살핀 애쉬가 결연한 얼굴로 어깨를 두들겼다.
“오늘 내 들러리 잘 부탁한다!”
“예이예이. 여부가 있겠습니까.”
“좋아! 가 볼까-!”
숨을 후! 들이쉰 애쉬는 의기양양하게 밖으로 나섰다. 루카스는 그 뒤에 바짝 따라붙었다.
약혼식 손님을 맞느라 복도를 분주하게 오가던 하인과 하녀들이 애쉬의 모습을 발견하고 박수와 환호를 날렸다.
애쉬는 부끄러워하면서도 당당하게 걸었다. 루카스는 웃음을 참으며 그런 애쉬를 따라 걸었다.
그리고, 복도의 끝, 별궁 안뜰 정원에 차려진 연회식장에 다다르자-
“아.”
녹음이 우거진 여름의 정원 가운데에서.
눈부시게 아름다운 열다섯 살의 세레나데가 기다리고 있었다.
물빛 머리칼의 소녀는 베이지색 드레스 차림이었는데, 흔히들 머메이드(Mermaid) 라인이라 불리는 형태의 드레스였다.
그야말로, 인어 같았다.
“아…….”
애쉬와 눈이 마주친 세레나데가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숙였다. 커다란 은빛 눈 위로 기다란 속눈썹이 그림자를 드리웠다.
“…….”
애쉬는 입을 떡 벌린 채, 더 걷지 못하고 그 자리에 굳어 버렸다.
‘턱 빠지겠다.’
그런 애쉬의 턱을 잡아 다물리도록 원위치시켜 준 뒤, 루카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는,
‘에라이.’
홱!
애쉬의 등을 밀어 버렸다.
“어? 어어? 우와아앗!”
애쉬는 휘청거리며 정원 가운데로 떠밀렸다.
비틀거리며 중심을 잡지 못하던 애쉬를 붙잡아 준 것은 세레나데였다. 두 사람은 함께 휘청거리다가, 겨우 바로섰다.
그리고 서로 마주보더니,
푸훕, 하고- 약속이라도 한 듯 웃음을 터뜨렸다.
약혼식에 참석한 손님들 사이로도 웃음이 번졌다.
상석에 앉아 있던 더스티아 제2황후와, 윈터실버 백작과 백작부인, 그리고 온갖 귀족들이 웃음과 함께 박수를 쳤다.
딱 한 명만이 울고 있었는데, 알베르토였다…….
알베르토는 감정을 억제하는 듯 딱딱하게 굳은 얼굴을 눈물로 줄줄 적시고 있었다.
자랑으로 여기던 콧수염 양쪽 끝이 축축해져 가라앉은 채였다. 주책이야, 생각하면서도 루카스도 어째 콧등이 시큰거렸다.
‘행복하세요. 전하.’
박수와 환호 속에서 어린 소년소녀가 서로 이마를 붙인 채 행복하게 무어라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 귀엽고 벅찬 광경을 보다가 루카스는 별 생각 없이 객석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하객석에 선 페르난데스가 보였다.
5년 만에 보는 열일곱 살의 페르난데스는 몰라보게 성장해 있었지만, 저 검붉은 머리칼과 눈, 그리고 분위기를 몰라볼 리가 없었다.
“……!”
눈을 부릅뜨고 어깨를 떠는 루카스에게, 페르난데스가 검지를 들어 자신의 입술 위에 올리는 모습이 보였다.
쉿-.
페르난데스의 안경 속 검붉은 두 눈이 가느다란 웃음을 흘렸다. 루카스는 자신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다.
소규모 악단이 음악 연주를 시작했다. 어린 커플은 멋쩍어하며 서로 끌어안고는 춤을 추기 시작했다.
따사롭고 눈부신 햇살 속에서 약혼식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루카스는 페르난데스의 손짓을 따라, 우거진 그림자 속으로 걸음을 옮겨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