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325
◈ 325. [Side Story] 뵐 낯이 없다
“으으음~”
나는 신음을 흘렸다.
“으으으으음~”
계속 신음을 하며 몸을 뒤틀고 있자, 나와 함께 영주 저택 식당에 앉아서 늦은 저녁 식사를 하던 에반젤린이 눈썹을 꼬았다.
“왜 그러세요, 선배님? 배 아파요? 화장실 다녀오실래요?”
“아니, 그런 거 아니거든…….”
“부끄러워하실 필요 없어요. 제 눈치 안 보고 다녀오셔도 돼요. 우리 그 정도 친분은 쌓았잖아요? 자자, 시원~하게 볼일 보고 오세요.”
“아니 진짜, 아니라고!”
무슨 학교에서 배 아픈데 친구들한테 놀림당할까 봐 화장실 못 가는 학생처럼 보이냐, 내가?
그러자 에반젤린이 으적으적 파이를 씹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왜 그러고 계신데요? 시원~하게 이유라도 말해 주든가.”
“하아아…….”
이마를 감싸쥔 나는 결국 털어놓았다. 에반젤린 정도면 그래도 좀 속을 열어 놔도 되니까.
“루카스랑 나 사이에 있었던 옛날 일을 잘 모르겠거든…….”
조금 전에 감옥에서, 첩자로 잡은 메이슨을 취조했지만.
별다른 소득을 얻을 수 없었다.
메이슨은 ‘루카스 도련님은 일곱 살 때부터 애쉬 황자 전하 당신을 모셨습니다-’ 같은 이야기만 반복할 뿐이라.
그러자 에반젤린이 고개를 갸웃했다.
“두 분 사이 일인데 왜 기억을 못해요? 아, 뭐 그런 건가? 때린 쪽은 기억 못하는? 그런 류 사건?”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아니, 그런 건가……?”
내가 진짜 애쉬가 아니라, 그 몸에 깃든 빙의자라는 말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이것 참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일세.
그래서 결국 적당히 둘러댔다.
“내가 망나니 시절에 좀 술에 쩔어서 살았잖냐. 그래서 그, 기억이…… 좀 왔다갔다 하거든.”
“선배님, 올해로 스물셋 아니세요?”
“어, 맞는데…… 왜?”
“그런데 벌써 치매가 오시는 거예요? 와, 20대도 만만히 볼 게 아니구만?”
에반젤린이 헹, 소리를 내며 코웃음 쳤다.
이 건방진 10대 뇨속! 또 나를 놀리네! 김애쉬도 나도 아직 팔팔하거든?!
“선배님이 기억이 안 나시면, 루카스 아저씨한테 묻는 게 제일 빠른 거 아니에요?”
“…….”
에반젤린이 느닷없이 정론을 들이밀었다.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저번에 싸우셨을 때에도 그러더니, 이번에도 이상하게 빙빙 돌아가려고 하시네요. 그냥 당사자끼리 쾅! 부딪혀서 시원하게 승부 보세요! 제가 심판 봐드릴게!”
“아니, 이번에는 싸운 건 아니니까…….”
내가 아니라 김애쉬와 루카스 사이의 어떤 부채(負債)가 문제인 상황이다.
루카스는 뭔가를 죄송스러워 하는데 정작 나는 그게 뭔지도 모른다.
이쪽은 사과를 바라지도 않는데 혼자 저기서 의기소침해 있다고.
며칠 놔두면 유야무야 지나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만큼 루카스에게는 그 일이 큰 마음의 짐이라는 거겠지.’
가능하면 이번 기회에 해결해 주고 싶다. 부하의 마음 속 미혹을 지워 주는 것도 지휘관의 일일 테니까.
“……좋아.”
고개를 끄덕인 나는 비장하게 외쳤다.
“그냥 시원하게 본인에게 물어보겠다! 고맙다, 에반젤린! 몰랐는데 너 제법 똑똑하구나!”
“칭찬 감사합니다, 선배님! 저도 가끔 놀라곤 합니다! 아마 이 천재성은 선배님께 배운 게 아닐까요!”
“아하하하! 말도 참 예쁘게 하는구나, 후배야!”
“이것도 선배님께 배웠습니다! 음하하하!”
우리는 와하하하 웃으며 건배했다.
어째 바보 듀오가 되어 가는 것 같지만 기분 탓이길 빈다…….
“시원하게 웃으시는 모습이 보기 좋네요오~ 요리 좀 더 갖다드릴까요오?”
그때 영주보좌관 에이더 놈이 방실방실 웃으며 식사 시중을 나왔다.
에반젤린이 즉시 텅 빈 미트파이 접시를 위로 치켜들며 ‘리필! 리필!’ 하고 외쳤다.
너 점점 더 배가 동그래지고 있지 않니? 적당히 먹어.
미트파이를 썰어서 에반젤린의 접시에 놓아준 에이더가 내 앞으로 왔다. 물컵을 내밀자 새로 물을 따라주며 에이더가 눈짓했다.
“그나저나, 루카스 님과의 과거에 대해 궁금하신 겁니까아~?”
“그래…… 김애쉬 이놈의 과거는 내가 잘 모르니까.”
내가 턱을 괴고 끙, 소리를 내자 에이더는 뭔가 잔뜩 신난 얼굴로 입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별 신경 쓰지 않고 내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제3자 탐문은 이제 됐어. 그냥 루카스에게 직접 물어보려고. 그게 서로의 소통을 위해서 더 나은 길일 테니.”
“아, 그렇군요오…….”
어째 에이더의 어깨가 축 쳐졌다. 하지만 이 디렉터 놈의 기분 따위 살펴줄 이유가 없지.
“그보다 에이더, 하나 의논할 것이 있다.”
“네?”
두꺼운 뱅글이 안경 속에서 회색 눈을 크게 치켜뜨는 에이더에게, 나는 무거운 한숨과 함께 말했다.
“다크 이벤트 관련이다.”
***
이번 방어전은 스테이지14.
그리고 이번에도, 시스템 창에 이런 안내문구가 떴다.
[???의 ??가 턴을 넘깁니다.] [이번 스테이지에서는 다크 이벤트가 발동하지 않습니다.]스테이지11부터 이번 스테이지14까지.
자그마치 네 번의 스테이지 동안, 연속해서 다크 이벤트 스킵이 발생했다.
“놈들은 대체 뭘 꾸미고 있는 거지? 왜 굳이 자신들의 어드밴티지를 사용하지 않고 넘겨버리는 거야?”
저녁 식사 후. 영주 집무실.
에이더와 단 둘이 되자 내가 따져 물었다.
다크 이벤트 발동 안하면, 그야 물론 편하다. 저놈들이 헛짓거리 안 하고 편하게 방어전 깨게 도와주는데 당연히 좋지.
하지만 이 거지발싸개 같은 끔찍한 게임에서, 나의 적들이 순순히 내가 편하고 즐겁게 게임하게 해 주려고 배려해 줄 리가 없잖은가?
뭔가 꿍꿍이가 있다.
더럽고 음습한 냄새가 난다. 사악한 음모의 냄새가……!
아니나 다를까, 에이더는 꽤 심각한 얼굴이 되더니 천천히 설명했다.
“다크 이벤트는 축적(蓄積)이 가능합니다.”
“축적?”
“적립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번 스테이지에 쓰지 않는 대신, 다음 스테이지로 이월이 가능합니다아.”
“아니 무슨 카드사 포인트 이월 적립도 아니고 그딴 기능을 왜 지원해, 시발!”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에이더의 멱살을 잡아채자, 에이더가 다급하게 팔을 휘저었다.
“우와아아, 진정! 진정하세요오! 저쪽도 엄청 손해를 감수하면서 하는 일이니까요오!”
“뭐? 손해를 감수한다고?”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예를 들어, 한 스테이지의 다크 이벤트에서 사용할 수 있는 포인트가 100이라고 치면. 스킵시켜서 이월시킬 수 있는 포인트는 25가 한계입니다아!”
나는 눈살을 찌푸리고 계산에 들어갔다.
“그러니까, 그 말은…….”
“지금까지 4개 스테이지 동안 이월시켰으니, 총합 100포인트를 더해서…… 스테이지15에서는 200포인트의 다크 이벤트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이지요오!”
일반 다크 이벤트가 100포인트어치니까.
평소보다 두 배 강력한 다크 이벤트가 오는 것이다.
“4개 스테이지 동안 다크 이벤트가 없는 대신, 1개 스테이지에서는 2배로 강한 다크 이벤트를 맞는 식입니다아!”
“으음…….”
“그야 물론 위험부담이 있긴 하지만…… 방어전 입장에서 보면 또 그렇게까지 나쁜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 말대로다.
쉽게 말하자면 상대는 500포인트 중에서 300포인트를 내다버린 것이다. 200포인트짜리 한 방을 위해서.
평균값으로 치자면 저쪽이 말도 안 되는 손해를 감수한 것이다.
매번 스테이지마다 저놈의 다크 이벤트가 우리를 얼마나 괴롭히는지 생각해 보면, 4개 스테이지를 꽁으로 넘긴 것은 솔직히 말해서 그렇게까지 나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래서 스테이지15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데?’
이게 문제다.
그래서 그 두 배 강한 다크 이벤트가, 대체 어떤 형태로 오는가?
게다가 스테이지15는 5의 배수 스테이지. 다시 말해서 보스 스테이지다.
그동안은 항상 막강한 악몽 군단이 몰려와서 최대 난이도 상태라 다크 이벤트가 애초에 적용되지 않았다.
다크 이벤트를 사용하려면, 최대 난이도가 되지 않는 선의 어느 정도 약한 군단을 내보내야 할 터인데.
‘이번에는 어떤 괴수 군단을, 어떤 다크 이벤트를 두르고 내보낼 셈인 거지?’
나의 적수가 계산된 한 방을 준비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방식으로 놈을 막아야 하는가?
고민하는 내 손아귀 안에서 에이더가 슬금슬금 몸을 뒤로 뺐다.
나는 눈을 희번덕이며 재차 디렉터놈의 멱살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야! 옆 동네 카드사는 포인트 이월 적립도 해 주는데! 우리 카드사는 혜택 뭐 없어?! 어?!”
“아니아니! 그렇게 말씀하셔도! 저쪽은 몇 백 년 동안 실적 꽉꽉 채운 우량회원이라고 해야 할지! 혜택이 많을 수밖에 없단 말입니다아!”
“이 새끼야, 나는? 나는 우량회원 아니야? 이 똥망겜 전 지구 최초로 지옥철인 클리어했다고! 주머니 두둑이 챙겨 줘야 할 거 아니야! 눈치 챙겨 인마! 1주년도 코앞인데! 확 카드사 옮겨 버린다?!”
나 좀 언해피한데?! 이적한다?! 이적해 버린다고?! 어!
다크 이벤트 깔끔하고 아름답게 카운터칠 수단 하나 달란 말이다, 짜샤!
그러자 울상이 된 에이더가 소리쳤다.
“안 그래도 열심히 힘써서, 다크 이벤트의 반대 개념으로…… [가디스 블레싱(Goddess Blessing)]이라는 것을 준비 중입니다아!”
“오오……? 그건 또 뭐야.”
즉시 온순해진 나는 에이더의 멱살을 풀어 주었다. 전부는 아니고, 반쯤만.
“이름 그대로 여신의 축복인데요오…… 스테이지당 한 번 아군에게 버프를 걸 수 있는 기능입니다아. 업적점수를 사용해서 쓰실 수 있고요오…….”
“드디어 이 장식 같던 업적점수를 소비할 수 있게 되는 거구나.”
“여기에 업적상점 개편도 막바지니까, 곧 이런저런 추가 기능들을 사용하실 수 있을 겁니다아…….”
그래도 아주 놀고만 있지는 않았구나, 디렉터!
나는 기쁜 마음으로 방긋 웃었다.
“그래서, 패치 날짜는?”
“아…… 그게, 당장은 무리고, 가능하면 2년차 시작 즈음에……?”
덥석!
나는 에이더의 멱살을 다시 거세게 붙잡았다. 켁켁거리는 디렉터놈에게 사납게 으르렁댔다.
“스테이지15 시작 전에 완료해. 아니, 이번 스테이지 시작 전에 쓸 수 있으면 좋겠는데.”
“케헤헥, 그, 그건 조금, 이 아니라 확실하게 무리인데요오…….”
“그럼 베타 기능이라도 넣으란 말이다! 내가 테스트해보고 QA(Quality Assurance)해 줄게! 공짜 테스터라니, 너도 좋고 나도 좋고, 이거 완전 윈윈 아니냐?!”
“아니, 여기는 게임이 아니라 현실이고, 그렇게 뚝딱뚝딱 추가가 되는 게 아닌…….”
“아 말이 많어! 할겨, 말겨?!”
결국 나의 진중하고 온건한 제안(권총 아가테를 뽑아서 목에 겨눔)에 에이더는 기쁘게 고개를 끄덕여 수락해야만 했다.
얼마나 기쁜지 눈가에 눈물마저 맺혀 있다.
아 진작 이럴 것이지! 서로 얼마나 좋아!
“다른 게임들 보면 2.0 타이틀 달고 리런칭 이쁘게 하던데, 기대할게! 우리도 갓겜 한 번 되어 보자!”
내가 으쌰으쌰! 하면서 에이더의 팔을 붙잡고 위아래로 흔들자, 눈가를 훔친 에이더가 쓰게 웃어 보였다.
“……네. 저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아.”
바람이 불면 날아가 버릴 것만 같은, 모래로 만들어진 조각상 같은 미소였다.
“이번이 마지막 도전이라는 마음으로요.”
나는 의아하게 눈을 깜빡였다. 당연히 언제나 마지막 아닌가.
인생은 한 번. 라이프 코인은 하나.
그것이 철인모드고, 그것이 이 세계인데.
***
다음날.
나는 크로스로드의 대장간에 방문했다.
당장 던전에 방문해서 나의 궁극기 [제국령선포]를 테스트해 볼 생각이었는데, 그러려면 특수장비 ‘깃발’이 필요하다.
현재 켈리베이는 루카스의 전용장비를 업그레이드 중이라 바쁘니까. 일단 크로스로드의 대장간에서 임시용 깃발을 하나 장만해 볼 생각이었다.
그래서 점심이 되기 전 오전 즈음 대장간에 들어섰는데,
“어?”
선객이 있었다.
키가 커다란 기사가 대장장이 조합장에게 무언가를 받고 있었다.
익숙한 검은 갑옷과, 허리춤에 차인 장검…….
“루카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아, 아니! 이 속담이 아닌가?
아무튼 찾고 있었는데 잘 됐다. 나는 쾌활하게 웃으며 루카스의 등을 손으로 짝 쳤다.
“얌마! 휴가 잘 보냈어? 어제는 뭐하고 놀았냐, 응?”
최대한 자연스럽고 가벼운 분위기로, 루카스가 복귀하기 편하도록 만들어 줄 셈으로. 그렇게 말했는데…….
“……?”
천천히 돌아보는 루카스의 얼굴을 마주본 나는 굳었다.
루카스는…… 그러니까, 방금 주문제작한 듯한 투구를 쓰고 있었다.
얼굴이 완전히 가리는 형태의, 고철로 만든 듯한, 투박하게 생긴 통짜 원통형 투구…….
“…….”
“…….”
잠깐 침묵이 흘렀다.
안 어울린다.
더럽게 안 어울린다.
목 아래로는 SSR등급 갑옷 번쩍번쩍하게 차려입어놓고선, 머리 위에는 웬 N등급도 안 되어 보이는 고철 깡통을 쓰고 있으니 언밸런스가 장난 아니다.
잠깐 입을 떡 벌리고 그런 루카스를 마주보다가, 나는 떨리는 손을 녀석의 머리로 가리켰다.
“그…… 그건 왜 쓰고 있는 거야?”
그러자 루카스가 깡통…… 아니, 머리를 옆으로 슬쩍 젖히더니,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없어서요.”
“뭐?”
“주군을 뵐 낯이 없어서요…….”
“…….”
“그래서, 그…….”
루카스는 자신의 깡통을 손으로 통통 두들겨 보였다.
“낯을 가리기로 했습니다…….”
“그게 뭔 개소리야, 이 새끼야-!”
나는 참지 못하고 루카스의 깡통 뒤통수를 손으로 후려치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