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360
◈ 360. [Side Story] 위대한 도전
나는 내가 준비해 둔 함정들을 영웅들에게 설명했다.
잘만 먹히면, 고블린 군단을 단숨에 끝장낼 수 있는 함정들을.
설명이 끝나자, 영웅들 모두 황당하다는 얼굴로 입을 쩍 벌리고 듣고 있었다. 나는 히죽 웃었다.
‘나는 게임의 룰 위에 서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니까, 활용할 수 있는 건 전부 활용한다. 꼼수를 쥐어짜낸다.
한 개가 안 되면 두 개, 두 개가 안 되면 세 개, 먹힐 때까지 계속……!
“하지만, 이런 함정들만 믿고 방어전 준비를 소홀히 해선 안 되겠지.”
전장이란 예측 불가능한 것.
그렇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훈련과 경험으로 다져진 정석적 전술이다.
“돌발적 함정으로 변수를 이끌어내는 것은 내 역할. 그리고 여러분의 역할은, 이 함정들이 먹히지 않을 경우 정석적으로 방어전을 수행하는 것이다.”
나는 이번 방어전에서 영웅 파티들이 각자 해 줘야 할 역할에 대해 세세하게 지정해 주었다.
이번 방어전은 길어질 가능성이 높다.
호수 앞 전진기지에서부터, 놈들이 크로스로드에 닿기까지의 3일, 그리고 크로스로드 본성에서의 방어전까지.
길고 난잡하고 끔찍한 전투를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병사들에게 필요한 것은 명확하고 핵심적인 행동원칙이다.
혼란스러운 전황 속에서도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잊지 않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각 파티마다 심어 주려 노력했다.
“다음은 고블린 군단에 대한 정보다.”
나는 우리가 상대해야 할 적들에 대해 브리핑해 주었다.
고블린 신왕, 칼리-알렉산드르.
그리고 그 신왕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현장 지휘관이라 할 수 있는 고블린 아미르.
신왕의 수족처럼 움직이는 최정예 친위대, 고블린 예니체리.
그리고 일반 고블린 병사들…….
도합 5만에 달하는, 여지껏 마주한 적 없는 거대한 규모의 괴수 웨이브. 아니, 웨이브보다는 해일이라는 편이 맞겠군.
“놈들을 평범한 고블린이라 생각하지 마라. 좋은 장비를 갖추고, 명석한 지휘관의 지휘를 받는 엄연한 ‘군대’다.”
나는 게임에서 만났던 놈들이 사용하던 장비를 알려 주었다.
놈들은 고블린 주제에 기병대를 운용하고, 전문적 궁병대를 보유했고, 심지어 전차병단까지 갖추고 있다.
“내가 준비한 함정으로 치명타를 먹일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야겠지.”
이제 이번 전투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정석 공략을 말해 줄 차례였다.
나는 응접실 벽에 걸린 지도의 전진기지를 손으로 짚고, 말했다.
“먼저, 전진기지는 버린다.”
너무 쉽게 전진기지를 포기한다는 이야기가 나와서일까. 이번에도 영웅들이 화들짝 놀랐다.
하지만 이것만은 확실하게 장담할 수 있다. 고블린 군단과 맞붙게 되면 전진기지는 지킬 수 없다. 무조건 함락 당한다.
전진기지는 검은 호수의 바로 앞에 위치해 있다. 고블린 군단이 전력을 온존한 채 공격해 오면, 그 숫자 앞에 버틸 재간이 없다.
아무리 얼마나 잘 싸우든 전진기지는 함락될 것이다.
“하지만 공짜로 전진기지를 내어줄 수는 없지.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고생해서 다시 지어둔둔 곳인데.”
전진기지 재건하는 데에 들어간 돈과 인력을 생각하자 피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그뿐인가, 전진기지에 설치해 둔 아티팩트도 한둘이 아니다. 게다가 이번에 추가 석벽을 공사하느라 또 다들 고생 무지하게 했다.
이런 곳을 거저 내줄 순 없지.
“그러니까, 우선 전진기지에서 수성하며 최대한 놈들에게 피해를 누적시킨 뒤-”
타악!
나는 전진기지에 그려진 소용돌이 모양의 그림 셋을 손으로 튕겼다.
“튄다. 텔레포트 게이트로.”
본래 게임에서는 전진기지가 함락되면 그곳을 지키던 병력은 얄짤없이 전멸이었다.
하지만 이곳 현실에서는 텔레포트 게이트라는 개사기 건축물을 지을 수 있다.
덕분에 안전한 퇴각이 보장된다. 그러니까, 끝까지 싸울 수 있다.
‘……예전에, 텔레포트 게이트를 만들어 주는 절단의 코코 할멈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있지.’
그때 코코 할멈은 이렇게 말했다.
–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일 자체는 어려운 게 아니야. 문제는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일이지.
– ‘자신’이라고 하는 등대의 빛을 확실하게 지니고 있어야, 다시 이곳 현실로 부상할 수 있는 게야.
– 그래서, 간혹 스스로가 누구인지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 자들은, 텔레포트 마법 중에 종종 실종되어 버리곤 한단다. 등대의 불빛을 잃고 표류해 버리는 게지.
– 이런 연유에서인지, 악몽에서 비롯된 존재들은 텔레포트 마법을 이용하지 못해. 놈들이 텔레포트 게이트 안에 들어갔다간 죄다 피안의 저편으로 휩쓸려 가 버리거든.
뭐 복잡한 이유야 모르겠고, 아무튼 괴수들은 텔레포트 게이트를 사용하지 못한다고. 대신 놈들은 게이트를 파괴할 순 있다고.
적들은 사용하지 못하는 안전한 통로라니!
이 개사기 설비를 끝까지 효율적으로 뽑아먹어야 한다.
“현재 전진기지에 텔레포트 게이트를 세 개까지 확충해 두었다. 소규모 정예 병력이 전진기지에 준비된 아티팩트와 수성병기로 최대한 놈들을 해치운 뒤, 텔레포트 게이트로 탈출하는 것이다.”
전진기지가 아깝긴 하지만, 병사들의 목숨보다야 아깝진 않다.
“이후 놈들이 북상하는 동안, 마찬가지로 소규모 영웅 파티로 지속적으로 게릴라를 쏟아 붓는다.”
검은 호수에서 크로스로드까지, 통상적으로 3일이 걸리는 이 길.
이곳에도 예전에 설치해둔 텔레포트 게이트가 곳곳에 있다.
이 게이트를 이용해 지속적으로 화력을 쏟아붓고 이탈, 최대한 피해를 누적시킨다.
“이후 놈들이 크로스로드 앞까지 오면…… 남은 놈들을, 최선을 다해서, 우리가 그동안 쌓아 온 노하우를 총동원해, 해치운다.”
킬존.
데스루프.
십자포화.
성벽과 아티팩트.
나의 영웅과 병사들.
놈들의 개떼 같은 숫자에 맞서, 이쪽도 총력전. 토탈 워(Total War)다. 쓸 수 있는 건 모조리 사용한다.
‘본래 디펜스 게임의 묘미는 말도 안 되는 숫자의 적군을 이쪽의 배치와 전술로 갈아 마시는 데에 있다.’
……준비해 둔 함정이 잘 먹히면, 여기까지 갈 일도 없겠지만.
어쨌든 쏠 수 있는 모든 탄환을 장전한다. 준비는 아무리 과해도 부족하지 않으니까.
이렇게 내가 파둔 함정과, 함정이 먹히지 않을 경우 취해야 할 정석적인 전술에 대한 강의가 끝났고.
이후 각 파티 리더들과 상세한 전술에 대한 토론, 그리고 회의가 이어졌다.
***
긴 회의가 끝난 것은 거의 저녁이 다 되어서였다.
영웅들을 해산시키고 밖으로 나오는데, 응접실 앞 의자에 멍하니 앉아 기다리는 붉은 머리의 마법사가 보였다.
릴리였다. 나는 그녀에게 손을 휘저으며 다가갔다.
“릴리! 안 그래도 너랑 회의할 게 있어서 연금술 공방에 들리려고 했는데. 먼저 와줬네?”
“…….”
“아, 참고로 너는 이번 전투 안 나선다. 성벽의 아티팩트 관리에 집중해.”
이번 방어전을 대비해서, 크로스로드가 보유한 거의 모든 아티팩트를 성벽에 설치했다.
이 아티팩트들의 사용을 총괄하는 릴리는 현실적으로 전투에 나설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약간의 배려도 있었다.
‘릴리는 어릴 때 고블린의 습격을 받았다.’
마을이 고블린의 습격을 받았다고 했지. 그때 가족을 모두 잃었고, 고블린의 창칼에 다치지 않기 위해 릴리는 특성 [불꽃 피부]를 각성했다.
마력을 소모하는 대신 모든 물리 공격을 흘려내는 특성. 스테이지0을 깰 때 아주 요긴했지.
……아무튼 이런 릴리에게 고블린을 상대하라는 것은 너무 잔혹한 명령이다. 해서 처음부터 이번 방어전은 투입할 생각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그때 마을이 습격당하도록 마을의 방벽을 열어 준 게, 릴리 가족이 돌봐주던 엘프 노예였다고 했던가…….’
꽤 오래 전에 들은 이야기지만 얼추 기억이 났다.
릴리가 갓핸드와 처음 만났을 때 해 줬던 이야기니까. 그래서 릴리가 엘프를 싫어하게 된 거였고.
그런데 지금은 둘이서 사귀네.
아침에 또 싸운 거 같지만…….
“…….”
어두운 얼굴로 앉아 있는 릴리에게서 스윽 시선을 돌리자, 어느새 다가와 굳은 얼굴로 그 앞에 선 갓핸드가 보였다.
“…….”
두 사람 사이에서는 어둡고 어색한 공기가 감돌았다.
괜히 나까지 어색해져서 나는 급하게 헛기침을 하며 뒤로 물러섰다. 스읍.
‘내가 이래서 연애를 안 해요…….’
진짜로. 못 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복잡하고 신경 쓸 거 많고 마음 아플 일 잦으니까 안 하는 것뿐이다.
진짜로.
아니, 진짜로!
“……릴리님.”
무언가 마음을 먹은 갓핸드가 앞으로 나섰다.
“우리 이야기를 더…….”
“이따가 해요, 갓핸드.”
쓰게 웃어 보인 릴리가 갓핸드의 눈을 피했다.
“아티팩트 설치 관련해서 전하랑 의논을 해야 해서요.”
“…….”
갓핸드는 입을 다물고 물러섰고, 릴리가 내게 눈짓했다.
“가시죠, 전하. 시일이 촉박하니 얼른 설치를 끝내야죠.”
“그, 그래…….”
릴리가 자기 손으로 휠체어 바퀴를 밀며 앞으로 가 버렸다.
갓핸드는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고.
그 사이에서 나는 어쩔 줄 모르다가 릴리의 뒤로 얼른 따라붙었다.
‘이래서 사내연애…… 아니, 전선내연애가 문제라니까!’
내 전선에서 연애하는 영웅들아, 제발 부탁하는데! 사귈 거면 결혼까지 해서 백년해로해라! 괜히 깨지면 분위기 끔찍해진다고!
***
전진기지.
릴리와 함께 이곳에 도착하자, 해가 지기 직전인데도 열심히 석벽을 공사하는 인부들이 보였다. 연금술사들도 열심히 아티팩트를 설치 중이다.
릴리는 기운이 빠져 있었지만 자기가 맡은 일은 철저하게 해냈다.
우리는 전진기지에 설치된 아티팩트를 점검하고 작동 순서나 조합 효율 등을 의논했다.
전진기지 아티팩트 점검이 끝날 무렵, 한숨을 내쉰 릴리가 말했다.
“전하께서는 정말 대단하세요.”
“응?”
나는 당황했다. 갑자기 왜 나를 칭찬?
“……예전에 이곳에서 검은 거미 군단을 맞닥뜨렸을 때부터. 전하께서는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포기하지 않고, 기어코 승리를 거머쥐셨잖아요.”
“…….”
“만약 저였다면…… 진작 포기했을 거예요.”
릴리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그렇잖아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높은 벽이 눈앞에 나타나면, 보통은 좌절하고 포기한다고요.”
그녀의 손이 움직이지 못하는 다리에 꾹 파고들었다.
“전하처럼 그 벽을 넘을 궁리를 하고, 또 실천에 옮겨서, 기어코 넘어서는 사람이…… 세상을 바꾸는 위대한 영웅이겠죠. 저는 그럴 용기도 의지도 없어요.”
“릴리.”
“저는…… 평범한 인간이니까요. 그러니까…….”
“릴리!”
릴리의 말을 끊은 나는 빙그레 웃어 보였다.
“너는 내가 그동안 벽들을 한 번에 넘는 것처럼 보였어?”
“……네. 실제로 그러셨잖아요. 한 번도 실패하지 않으시고…….”
“아니야.”
릴리의 앞에 가서 선 나는 싱긋 웃었다.
“그 벽 하나를 넘는 데에, 나는 741번을 실패했어.”
“……네?”
“아니,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이. 아주 박살이 났지.”
게임 회차만 해서 741번이고.
실제로 그 회차 안에서, 대체 몇 번의 패배를 겪었는지.
내가 이 게임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대체 얼마나 많은 패전을 치렀는지.
“여기까지 오는 동안 내가 진 전투가 몇 번이고, 잃은 부하의 수가 몇인지, 너는 모를 거야.”
“…….”
릴리는 잘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지만, 그래도 나는 말을 이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몇 번을 실패했느냐가 아니니까. 그녀의 앞에 있을지 모르는 한 번의 실패일 테니까.
그 실패에 대한 두려움일 테니까.
“나도 너처럼 평범한 인간이야, 릴리. 실패가 무섭고, 지금도 포기하고 도망치고 싶은.”
“…….”
“하지만 내가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는 게 있지. 그래, 나는 포기하지 않았어.”
742회차.
나는 기어코 게임의 끝에 도달했다.
그리고 그 승리의 기억을 믿고, 지금 또 다시 도전하고 있다.
“이 세상에 위대한 사람은 없어, 릴리. 다만, 평범한 사람들이 일어나 맞서는 위대한 도전이 있을 뿐.”
……내가 만든 문장이 아니라, 지구에서 어느 유명한 군인이 한 말을 인용한 것일 뿐이지만.
좋아하는 어구다.
나 또한, 진실로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삶에서 벽을 마주해. 그리고 그 벽이 높든 낮든, 넘어서기를 도전하는 행위 자체가, 나는 위대하다고 생각해.”
그것이 눈앞의 괴수든,
장애에 대한 편견이든,
이종족과의 결혼이든, 그 무엇이든 간에-
벽에 맞서는 모든 도전은 위대하다.
“릴리. 너는 이미 위대한 도전들을 이겨 냈어. 나와 함께 검은 거미 여왕을 물리쳤고, 다리를 쓰지 못하는 몸으로도 이곳 괴수전선의 선임마법사로서 부족함 없이 일하고 있지.”
나는 다시 릴리의 뒤로 가서, 그녀의 휠체어 손잡이를 잡았다.
“이제 와서 벽 하나쯤 더 넘지 않고 포기한다고 해도. 모두가 너를 이해할 거야.”
“…….”
“하지만 네가 눈앞의 그 벽을 또 넘겠다고 한다면…… 전력을 다해 도울게. 네 옆의 평범한 사람 중 하나로서.”
“…….”
“너는 어떡하고 싶어?”
고개를 푹 숙인 릴리는 한참 뒤에 울먹이는 목소리로 내뱉었다.
“……좋아해요, 갓핸드를.”
나는 피식 웃었다.
릴리는 주먹을 꼭 쥐고는, 다짐하듯 내뱉었다.
“그 사람과 평생 함께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