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371
◈ 371. [STAGE 15] 진군
다음날.
전쟁 2일차의 새벽.
둥- 둥- 둥-
북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전진기지 앞에 도열한 고블린 군단의 선두에서는 한 의식이 거행되고 있었다.
선별된 고블린 예니체리 일곱이 고블린 신왕의 앞에 무릎 꿇고 앉았고, 고블린 신왕은 그런 예니체리들의 얼굴에 손수 붉은 안료로 특수한 문양을 그려 주었다.
《이제 너희는 ‘아미르’다.》
일곱 예니체리의 얼굴에 문양을 모두 그려 준 고블린 신왕이 선포했다.
그러자,
화아악-!
일곱 예니체리의 몸에서 짙은 녹색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조금씩 근골이 커지고, 눈빛 또한 명석해졌다.
고개를 끄덕인 고블린 신왕은 그 뒤에 도열한 고블린 병사 오백에게 다가갔다.
병사 오백의 앞에는 예니체리들이 입는 갑옷이 놓여 있었다. 그동안 죽은 예니체리들의 몸에서 벗겨 낸 것이었다.
《입어라.》
그러자 고블린 병사들이 즉시 갑옷을 착용했다.
잠시 뒤, 갑옷 착용을 끝낸 오백 마리 고블린을 보며 고블린 신왕이 선포했다.
《이제 너희는 ‘예니체리’다.》
예니체리의 갑옷에 새겨져 있던 문양이 녹색 빛을 뿜어냈고, 새로이 예니체리가 된 고블린들이 일제히 포효했다.
이것이 고블린 신왕의 권능이자, 고블린 군단의 특수능력. ‘진급’이었다.
목숨을 탄환으로 갈아 넣는 군단 특성상, 장교 유닛의 소모도 극심하다. 그 소모를 버티게 해 주는 능력이었다.
고블린 신왕이 마력이 실린 문양을 그려 주는 것만으로, 해당 고블린은 다음 티어 유닛으로 강제 진급한다.
일반 병사에서 예니체리로, 예니체리에서 아미르로…….
이렇게 강제 진급한 유닛은 기존의 동급 유닛에 비해 여러 능력치에서 제약을 받는 등 확실히 약하지만, 무슨 상관이랴.
어차피 전장에서 죽을 것이고, 어차피 또 다른 놈을 진급시키면 그만인데.
이것이 고블린의 방식이었다.
《가자.》
밤새 눈이 쌓인 길을 돌아보고서, 가면 너머로 입김을 내뿜은 고블린 신왕이 내뱉었다.
《갈 길이 멀다.》
신왕이 망토를 펄럭이며 자신의 산양에 올라타자, 선두의 병사가 길게 뿔피리를 불었다.
부오오오오-
쿵- 쿵- 쿵-
고블린 군단의 진군이 재개되었다.
그리고 이제 다시는, 멈추는 일이 없을 터였다.
***
“후우-…….”
놈들의 진군을 망원경으로 살피며, 나는 길게 하얀 입김을 뱉어냈다.
겨울은 막바지 추위를 뿜어내고 있었고, 밤새 내린 눈은 아침에도 여전히 허공에 흰 가루를 뿌려 대고 있다.
그리고 이 악천후 속을 고블린 군단은 태연하게 지나고 있었다. 별달리 힘들어하는 기색도 없다.
눈에 젖은 길은 영하의 날씨에 단단히 얼어붙었다.
진창이라도 되어줬으면 진군속도가 조금은 느려졌을 텐데, 안타깝게도 그런 토양이 아니었고 놈들은 여전히 더럽게 빠르다.
‘동사(凍死)라도 해 주면 좋겠구만…….’
괴수들의 생태는 정상적인 생물체의 그것과는 거리가 있다.
날씨에 버프나 디버프 정도는 받겠지만, 눈 내리는 정도로 얼어 죽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놈들이 정상적인 생물체가 아니기에, 기존의 전쟁과는 궤를 달리하는 부분이 또 있다. 그것은 바로,
‘보급(補給)이다.’
보급은 전쟁의 기본이라 할 수 있다. 식량과 장비, 탄약의 보충은 필수적이다.
병사들은 자고, 먹고, 마시지 않으면 싸울 수 없다. 그래서 나도 병참(兵站)에 각별히 신경 쓰고 있다.
하지만 괴수들은 다르다.
놈들은 자연발생한 생명체가 아니라, 호수왕국의 어둠 아래에서 잉태된 악몽 속 존재.
식사나 수면 등의 보급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뭐 개중에는 혈족 군단처럼 특수하게, 고기나 피를 먹어야 유지되는 놈들도 있긴 하지만.
그건 놈들에게 가장 효율적인 마력 보충 수단이 식인이어서 그런 거고.
길게 말했지만…… 결국, 전쟁에서 가장 효율적인 수단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보급선 타격’ 등의 전술이 괴수들에게는 잘 먹히지 않는다는 소리다.
“하지만, 비교적 안 먹힌다는 거지…… 아예 안 먹힌다는 뜻은 아니지.”
내가 씩 웃으며 중얼거리자, 내 양옆에 선 루카스와 에반젤린도 씩 웃었다.
“푸엣취!”
내리는 눈이 추운지, 두 손으로 근육질 팔뚝을 문지르던 쿠일란이 뒤늦게 눈을 치떴다.
“어? 뭐야뭐야, 왜 웃는 거요? 나도 좀 웃읍시다!”
“저길 봐, 쿠일란.”
나는 손을 뻗어 고블린 군단의 후미를 가리켰다.
“우리 먹잇감이 오고 있잖냐.”
굽이굽이 뻗은 수만의 그린스킨 무리의 최후미에, 흰 천을 덮은 수십 대의 수레를 끄는 부대의 모습이 보였다.
보급부대.
아무리 괴수 군단이 식사도 수면도 필요 없는 존재라고 해도- 그 외의 요소들은 보급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장비.
화살부터 활, 칼, 창을 비롯해, 말에 얹을 안장부터, 하다못해 전차의 교체용 바퀴까지.
여기에 기병대가 타는 산양과, 전차병대가 운용하는 거대한 소 등등…….
그동안의 다른 괴수 군단들은 제 몸으로, 제 능력으로 싸우는 군단이었다.
그렇기에 이렇게 보급부대까지 운용하며 장비를 실어 올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고블린 군단은 다르다.
이들은 나약한 고블린의 육체를 도구를 이용해 극복하고, 신왕의 지시에 따라 전술을 운용하여 싸운다. 이들의 강함은 군대로서의 강함이다.
그렇기에 보급부대가 존재한다.
“모름지기 게릴라라 함은, 상대의 보급부대를 타격하는 것을 우선하기 마련.”
먹음직스러운 고블린 군단의 보급부대를 살피며 나는 입가를 틀어올렸다.
보급부대는 상대적으로 전투력이 약하지만, 해치웠을 때 입힐 수 있는 대미지는 크다.
최소화력으로 최대효과를 얻을 수 있다. 게릴라 콘셉트로 출진한 우리에게 가장 알맞은 먹잇감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옆을 보았다. 이번에 출진한 것은 전위 부대의 영웅들이다.
루카스 파티, 에반젤린 파티, 형벌부대, 그리고 더스크 브링어의 용혈기사단. 네 개다.
적진 안에 들어가서 신나게 헤집고 나올 수 있는, 강력한 인파이터들만 데려왔다.
여기에,
“부탁해, 쥬니어.”
간단한 바람 버프 마법을 걸어 줄 쥬니어만 대동.
어제 무리한 탓에 안색이 영 별로인 쥬니어였지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웃어 보이며 마법 지팡이를 들었다.
“이 정도는 쉽죠!”
쥬니어가 지팡이를 휘두르자, 바람의 축복이 우리가 탄 군마에게 깃들었다.
이러면 발굽이 눈밭에도 잘 빠지지 않고, 말의 속도도 올라서 히트 앤 런이 더 수월할 것이다.
“고마워, 쥬니어. 먼저 돌아가.”
“넵. 이따 봬요.”
쥬니어가 먼저 텔레포트 게이트를 통해 귀환했고, 나는 나머지 영웅들을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난장판을 만들어 줍시다.”
그동안 전위 영웅들은 제대로 싸우질 못했다.
전진기지 방어선을 맡으며 서 있기만 하거나, 어제는 미끼부대로 운용되며 역시 부대 전체의 방어에만 동원되었다.
하지만 오늘은 공격이다.
그동안 쌓인 분노를 놈들에게 뿜어낼 수 있는 시간인 것이다.
각자의 무기를 뽑아든 내 영웅들이 모두 흉악하게 미소했다.
그 선두에서 지팡이를 뽑아든 내가 앞장서 박차를 가했다.
“돌격! 놈들의 보급부대를 박살 내라-!”
***
고블린 군단의 선두.
한겨울 추위 속에서도 후끈거리는 왼팔의 부상을 잡고, 애써 멀쩡한 척하며 앞장서 산양을 모는 칼리-알렉산드르에게 고블린 아미르 하나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키릭, 위대한 칼리-알렉산드르!》
《무슨 일이냐?》
《적습입니다, 키릭! 인간 놈들이 나타났습니다!》
칼리-알렉산드르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그렇군, 왔나.》
《말에 탄 인간 이십여입니다! 키릭, 마법사는 없습니다!》
《이십이라…….》
《어찌할까요? 즉시 군의 방향을 돌려서, 놈들을 포위할까요?》
칼리-알렉산드르는 즉시 고개를 저었다.
《아니, 신경 쓰지 마라.》
《예?》
고작 이십으로 삼만에게 달려들다니.
틀림없이 인간 측 최정예- 영웅들로 이뤄진 부대일 것이다.
치고 빠지기에 자신이 있는 이들로만 구성되어 있을 터. 구태여 그들의 페이스에 휘말릴 필요가 없었다.
《북쪽으로 향하는 진군 속도를 늦추지 마라. 주위 부대는 반격하되, 깊이 쫓지 마라.》
고블린 아미르는 이해하지 못하겠는지 눈을 깜빡였다.
칼리-알렉산드르는 피식 웃었다. 자신의 동족은 눈앞의 적을 즉시 참살하지 않는 것을 이해하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우리 목적은 인간의 성벽이다. 그리고 인간의 목적 또한, 자신들의 성벽이다.》
고블린은 파괴를.
인간은 수호를.
목적을 달리 하지만, 대상은 같다.
결국 크로스로드의 성벽을 넘느냐, 막아 내느냐의 싸움.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우리가 가능한 한 많은 병력을 가지고, 가능한 한 빠르게 성벽에 도달하는 것이다.》
성벽으로 향하는 사흘간, 인간 측이 공격해 오지 않을 리 없었다.
칼리-알렉산드르는 당연히 예측했다. 그리고 그가 내놓은 답은 간단했다.
《놈들이 공격하게 내버려 둬라. 어차피 진군하는 내내 인간들은 계속해서 우리를 공격할 것이다. 피해는 감수한다. 진군을 최우선으로 두어라.》
어차피 입을 피해라면, 괜히 게릴라의 기만전술에 휘말려서 별 소득도 못 보고 시간을 지체하느니, 차라리 쾌속진군을 유지한다.
제아무리 인간측 영웅들이 날뛰어 봐야, 게릴라의 규모는 수십 단위에 불과하다.
이쪽이 입을 피해의 최대치도 한계가 있다.
칼리-알렉산드르는 제 시간에 성벽에 도달할 수만 있다면, 군단의 목숨 수천 정도는 흔쾌히 던져 줄 용의가 있었다.
고블린은 목숨을 자원으로 전쟁을 한다.
진군 속도를 유지하는 데에도 값이 든다면, 지불하지 않을 이유 또한 없었다.
《물론, 거저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지…… 기병대에 일러라. 놈들이 나타난 곳 주위를 수색하게 해. 텔레포트 게이트를 발견하면 파괴하고 다시 복귀하라 이르고.》
《예!》
그때 다른 고블린 아미르가 나타났다. 헐레벌떡 달려온 아미르가 칼리-알렉산드르에게 보고했다.
《키릭, 위대한 칼리-알렉산드르! 보고드립니다! 인간 놈들이 우리 군단의 최후미를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최후미라면…….》
《보급부대입니다, 키릭!》
《과연.》
가면 속에서, 노회(老獪)한 고블린 신왕의 입가에 흐릿한 미소가 맺혔다.
《정석대로 움직이는군, 애쉬.》
***
우리는 최후미의 보급부대를 박살 냈다.
고블린 신왕이 직접 이끄는 군단답게, 보급부대를 지키는 병력은 잘 훈련되어 있었다. 놈들은 끈덕지게 버텼다.
그래서 모두 처리하는 데에 시간이 조금 걸렸다. 하지만 놈들은 결국 내 최정예 영웅 스물의 공격 앞에 그대로 짓이겨졌다.
보급부대를 지키던 경비병 수백을 모두 해치우고 나서.
“…….”
나는 멀어지는 적의 본대를 불만스럽게 노려보았다.
최후미에서 보급부대가 산산조각이 나든 말든 고블린 군단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놈들은 뒤를 볼 줄 모르는 듯 여전히 북쪽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놈들이 우리를 영격해 오면 도망칠 생각도 하고 있던 나로서는 조금 당혹스러웠다.
‘어째서?’
아무리 진군이 중요하다 해도, 보급부대를 버리면서까지 나아갈 이유가 있단 말인가……?
“주군!”
그때 루카스가 나를 불렀다. 나는 퍼뜩 그쪽을 보았다.
루카스는 놈들이 끌던 수레 중 하나의 천을 벗겨 내고 그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 옆으로 말을 몬 나는 작게 입을 벌렸다.
“이건…….”
“……예.”
홱-
수레를 덮은 천을 완전히 벗겨낸 루카스가 이를 갈았다.
“빈 수레입니다, 주군.”
“…….”
수레는 텅 비어 있었다.
“다른 수레도 열어 봐!”
“옙.”
고블린 잔당을 처리하며 내 영웅들은 다급하게 수레를 모두 들춰보았다.
모두 비어 있거나, 실려 있다 해도 잡동사니 조금이 전부였다.
“……미끼였다고?”
나는 어지러운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우리가 게릴라를 펼칠 줄 예상하고? 그래서, 보급부대인 척 위장한 미끼 부대를, 일부러 최후미에 배치했다는 말인가……?”
“…….”
영웅들 모두 당혹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우리가 싸워 죽인 고블린 병사들 수백의 시체가 눈밭 위에 처참하게 굴러다니고 있었다.
“이 숫자가…… 전부 버림패라고?”
꼬리를 자르고 유유히 도망가는 도마뱀처럼, 태연하게 멀어지는 고블린 놈들을 보며, 나는 새삼스레 실감했다.
이번 방어전의 상대는, 정말로 만만치 않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