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372
◈ 372. [STAGE 15] 회담 (2)
이후 사흘간, 진군하는 고블린 놈들을 우리는 사방에서 집요하게 물어뜯었다.
하루 휴식시킨 화력팀까지 대동해, 내가 판단하기에 놈들의 약점처럼 보이는 부분에 공격을 쏟아 부었다.
실제로 어느 정도 공격은 유효했다. 검은 호수에서 크로스로드까지 오는 긴 길에는 고블린들의 시체가 지천에 깔렸다.
그러나- 그것은 놈들의 핵심병력이 아니었다.
고블린 군단은 언제나 내가 어디를 공격할지 미리 예측했다는 듯 미끼 부대를 배치해 두었다.
우리 게릴라 병력은 착실하게 고블린의 수를 줄였으나, 결코 치명적 타격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마치 플레어(Flare)를 뿌리며 날아가는 항공기 같았다.
이쪽이 쏘아 낸 열추적 미사일을 열 기만체를 뿌려 피해 내는, 하늘을 수놓는 화망 속에서 아무리 추락시키려 해도 끝끝내 찰과상으로 버텨 내며 전진하는, 거대한 항공기.
게다가 그 와중에도 우리 측 텔레포트 게이트는 꼭 파괴했다.
우리의 출현 지점을 역추적해서 기병대를 파견, 텔레포트 게이트를 수색해 파괴했고, 우리는 다른 게이트까지 더 물러나서 크로스로드로 귀환해야 했다.
이뿐만이 아니라, 기병대를 선행시켜 숨겨 둔 텔레포트 게이트를 먼저 발견해 선제 파괴하기도 했다.
연이은 게이트 파괴에 우리의 공격과 퇴각은 점점 둔해졌고, 놈들은 우직하게 전진했다.
“…….”
게릴라 전투의 마지막 날.
미끼 부대 고블린 놈들의 시체밭 위에 서서, 나는 인정해야 했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고블린 신왕은, 한때 세계의 3분의 1을 불태웠다고 하는 저 적장은, 나보다 지휘관으로서 월등하다.
고작해야 게임 룰 안에서, 정해진 전투만을 치르며, 수백 번의 트라이 끝에 가까스로 엔딩에 도달한 평범한 인간인 나와는…… 격이 틀리다.
실제 전장에서, 무수한 왕국을 멸망시키고, 제 종족의 대제국을 건설하고, 끝내 신왕이라는 칭호까지 얻은 자.
칼리-알렉산드르와 나는 전술의 역량에서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었다.
마치 내 움직임이 제 손바닥 위에 있다는 듯이…… 놈은 나를 기만하며 ‘진군’이라는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 성공했다.
“……하지만.”
나는 이를 까득, 갈았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야.”
아니, 끝은커녕 시작도 않았다.
아직 이 전장은 게임의 룰 안에 있으니까.
그리고 이 게임에서만큼은, 설혹 상대가 전쟁의 신이라 해도- 내게 승산이 있으니까.
“돌아가자.”
주위에 선 영웅들에게 나는 말했다.
지난 며칠간의 강행군으로 다들 피곤한 얼굴이었지만, 눈빛만은 살벌하게 날이 서 있었다.
나는 이를 갈며 게이트를 향해 뒤돌아섰다.
“놈에게 한 방 먹여줄 수단이 남아 있으니.”
***
다음날.
크로스로드의 성벽 위.
괴수전선의 모든 영웅과 병사들은 전투 준비를 끝마치고, 성벽의 끝에 도열해 서 있었다.
그런 우리의 눈앞에, 마찬가지로 전투 준비를 끝마치고 도열한 녹색 괴수들의 군단이 보였다.
쿵- 쿵- 쿵-
2만5천의 고블린.
사흘간 게릴라로 수천이나 되는 숫자를 줄이는 데에 성공했지만- 기어코 이곳에까지 도착한 녹색 괴물의 쓰나미.
“…….”
지평선을 끝없이 메운 그 무지막지한 숫자를 노려보다가, 나는 천천히 옆을 돌아보았다.
보강할 대로 보강한 성벽의 위에는 각종 대포와 발리스타, 아티팩트, 그리고 괴수들과의 결전에서 도망치지 않는 강인한 정신력의 정예병들이 포진해 있다.
2천5백의 사람.
병력차이는 정확히 10배.
끝내, 방어전 당일까지 주위의 다른 도시나 국가에서는 지원군이 오질 않았다.
“야박하군…….”
하지만 어쩌랴.
애초에 와 주면 도움이 된다, 였지 반드시 필요하다까지는 아니었다. 전략 수립 단계부터 원군은 고려하지 않았다.
원군을 고려했다면 애초에 독자노선부터 천명하지 않았을 것이다. 황실에서부터 병력 넉넉히 빌려왔겠지.
독자노선을 천명한 시점부터, 이 전쟁은 오롯이 크로스로드의 것이었다.
그 모든 불이익을 감수하고 선언한 독자노선이었으니까.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특정 국가의 의지에 휘둘리지 않고, 오직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하지만, 그러나.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천명한 독자노선으로 인해, 원군을 받지 못해 전선이 붕괴된다면. 그래서 사람을 구하지 못하게 된다면…….
이 모든 일에, 의미가 남는 것일까?
허울 좋은 대의에, 기치에 홀려, 클리어에 실패한다면…… 그것은 어떤 미사여구를 갖다 붙여도, 결국 실패일 뿐인 것은 아닌가.
“전하.”
“음. 고마워.”
그때 다가온 쥬니어가 컵을 건넸다.
그녀가 직접 조제한 건강쥬스였다. 나는 감사하게 받아 들었다.
“쥬피터 쥬니어가 만든 쥬스…… 줄여서 쥬쥬쥬. 잘 마시겠습니다.”
“아직 농을 하실 여유가 있으신가보군요……?”
내 옆에 서서 쥬니어도 함께 쥬스를 마셨다.
오늘 아침에만 벌써 세 잔 째다. 마력 포션 및 마력 회복에 좋은 여러 재료가 듬뿍 들어가 있다.
나는 회복되는 마력을 느끼며 한숨을 길게 뱉었다.
“괜찮으세요? 피곤해 보이세요.”
“아직 버틸 만해…….”
컵을 돌려준 나는 피곤한 얼굴을 두 손으로 가볍게 짝짝! 두들겼다.
그때 고블린 군단의 선두로 낯익은 투구와 갑옷을 입은 고블린이 산양을 타고 나서는 모습이 보였다.
고블린 신왕, 칼리-알렉산드르였다.
“기다렸다…….”
숨을 들이켠 나는 쥬니어에게 눈짓했다. 쥬니어는 바람 마법을 응용해 내 목소리를 멀리 전달되게 해 주었다.
나는 힘껏 외쳤다.
“칼리-알렉산드르!”
내 목소리가 닿았는지, 고블린 신왕이 천천히 나를 올려다보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놈에게 외쳤다.
“[사령관 회담]을 신청한다!”
《…….》
사령관 회담.
일전에도 던전에서 놈과 나누었던 것.
보스 스테이지 전용 특수 기믹. 서로 사령관 캐릭터 10턴간 사용 불가. 성공률 100퍼센트.
이 기믹이 발동하면 30분간 놈과 나는 독대해야 한다.
그리고 성공률 100퍼센트답게, 칼리-알렉산드르가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보였다.
펄럭!
코트자락을 여미며 나는 성벽 아래로 내려갔다. 대기 중이던 영웅 및 병사들과 내 시선이 차례차례 맞닿았다.
“내가 없는 동안, 사전에 지시한 대로 움직이면 된다.”
상세한 작전 지시는 지난 며칠간 모두에게 공유해 두었다.
내가 직접 컨트롤하지 않아도 다들 알아서 잘 싸워 줄 것이다.
“모두의 건투를 빈다.”
그렇게 믿기에, 간단하게 내뱉고 나는 성문 앞에 섰다.
쿠궁-
살짝 열린 성문 사이로 나는 말을 타고 나섰다. 저쪽에서 칼리-알렉산드르 또한 자신의 산양에 올라서 다가오고 있었다.
고블린들의 군영과 크로스로드 사이의 중앙 지점에는 처음부터 회담장이 마련되어 있었다.
회색 테이블과 회색 의자. 그리고 그 옆에 나부끼는 흰 깃발.
각자의 탈것에서 내린 우리는 말없이 서로에게 목례한 뒤, 의자에 앉았다.
《회담을 신청해 줘서 고맙군, 애쉬.》
칼리-알렉산드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고맙다니?”
《나와 마주 앉아 대화해 준 적장은, 사실 네가 처음이거든.》
칼리-알렉산드르가 머쓱하게 답했다.
《오크들과 싸울 때에는 대화라는 선택지가 없었고, 인간들과 전쟁할 때에는…… 그들은 고블린 따위와 대화하려 하지 않았지.》
“…….”
《나의 적 중에서 나를 한 명의 인격체로, 대화가 가능한 상대로 인정해 준 것은 사실상 네가 처음이다. 어찌 고맙지 않겠나.》
고블린의 왕은 오른손을 테이블 위에 올렸다.
《그래서, 회담을 신청한 이유가 있나? 아니면 혹여 단순한 시간벌이용인가?》
“시간벌이라…… 틀린 말은 아니야.”
10턴.
30분.
이 시간이 지나면 전쟁이 시작된다. 크로스로드가 누릴 수 있는 마지막 평화로운 시간이라 할 수 있겠지.
그러니, 30분간 열심히 입을 털어 볼까.
“먼저 인정하려고 한다.”
《무엇을?》
“지휘관으로서, 칼리-알렉산드르, 너는 나보다 우월하다.”
나는 솔직하게 내뱉었다.
“지난 사흘간 너의 군대를 공격하며 느꼈다. 너는 내가 어떻게 움직일지 훤히 아는 것 같더군.”
《그런 것 치고는 네 공격에 우리 군대도 많은 피해를 입었다.》
“감당할 수 있는 피해만 입지 않았나. 결국 공성에 사용할 부대는 모두 온존한 채 이곳까지 왔고,”
칼리-알렉산드르는 부정하지 않았다. 나는 쓰게 웃었다.
“이번 전투도, 너는 이미 내 성벽을 무너뜨릴 전술을 모두 생각해 두고 왔겠지…….”
《하하. 설마 그 전술을 알려 달라는 건 아니겠지, 애쉬?》
“알려 달라고 하면 알려 줄 건가?”
《구체적인 전술에 대한 이야기는 당연히 해 줄 수 없지. 하지만…….》
잠시 망설이던 칼리-알렉산드르는 나를 지그시 보았다.
《지휘관으로서 내가 가진 기본적인 생각에 대한 이야기는 해 줄 수 있을 것 같군. 내 입으로 이런 말하긴 저어하지만, 너보다 수백 년 먼저 싸워 온 선배 지휘관으로서.》
“기꺼이 듣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칼리-알렉산드르는 마주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나의 전술은 모두 고블린이기에 쓸 수 있는 전술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고 싶군. 아군의 목숨을 아낌없이 버리고, 설혹 교환비가 끔찍하더라도, 끝내 목표를 달성하는 식이지.》
“그야말로 고블린다운 방식이군.”
《반면 애쉬, 너는 정반대지 않나.》
가면 속에서 고블린 신왕의 눈이 무겁게 번뜩였다.
《아군의 목숨 하나하나를 소중히 여기지. 불가항력으로 나오는 희생을 제하면, 단 한 명의 목숨도 허투루 낭비하지 않으려 한다.》
“…….”
《전진기지에서만 해도, 어떻게든 피해를 입지 않으려고 수성을 일찍 포기하고 퇴각했지 않나. 심지어는 낙오된 아군을 구하려고 구출부대를 파견하기까지 했지.》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인가?”
《나는 가치판단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애쉬. 효율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가치냐, 효율이냐.
사람이냐, 공략이냐…….
《그야 물론, 인간 병사 하나를 만드는 데에 들어가는 재화와 시간은 고블린의 그것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지. 내 입으로 말하긴 뭐하지만, 인간의 목숨은 고블린의 목숨보다 더 ‘비싸다’.》
“…….”
《하지만 그것을 감안해도 너는 병사들의 희생을 너무 꺼리는 감이 있다…… 너는 지휘관치고는 너무 사람이 좋다, 애쉬.》
동족의 목숨을 고작 한 발의 탄환으로 여기는 그것은, 고블린의 방식이었으며.
《모름지기 왕자(王者)란 아랫사람들의 피와 눈물, 그리고 시체 위에 태연히 앉을 수 있는 자인 법.》
또한, 지배자들의 마음가짐이기도 했다.
《너는 체스를 두면서, 체스말을 하나도 잃지 않고 승리할 셈인가?》
“필수적인 교환이 아니라면, 굳이 버릴 필요도 없지 않나?”
《그야 그렇지. 하지만 때로는 과감하게 적의 입 안으로 체스말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 네게는 그럴 용기가 없는 것 같군.》
“…….”
《지휘관은 무덤 앞에서는 눈물지을지라도, 전황을 살피면서는 냉혹하게 아군의 손실과 피해를 셈할 수 있는 자여야 한다. 하지만 너는, 전장의 한가운데에서도 마음 아파하는 것처럼 보이는군.》
칼리-알렉산드르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는 오래 싸울 수 없다, 애쉬.》
“…….”
《마음 깊은 곳까지 철인이 되어야 한다. 네가 진실로 승리를 바란다면, 진짜 전쟁을 해야 한다.》
“진짜 전쟁? 그건 어떻게 하는 건데?”
《선을 넘어라.》
테이블에 몸을 바짝 붙인 고블린 신왕이 나지막이 속삭였다.
《부하의 목숨을 기꺼이 저버릴 수 있는, 죽음으로 쌓아 올린 권좌에 죄책감 없이 앉을 수 있는- 괴물이 되어라.》
“…….”
《진짜 전쟁은 그곳에서부터 시작된다. 진정한 왕자(王者)로의 길은, 그곳에서부터 열린다.》
까마득한 선배 지휘관이자, 고대 전설 속에서 튀어나온 괴수의 왕은. 그렇게 말했다.
왕이 되고자 한다면, 먼저 괴물이 되라고.
사람의 목숨을 기꺼이 버릴 수 있는 존재가 되라고.
《네가 끝까지 사람으로 있고자 한다면…… 너는 결국 승리하지 못할 것이다.》
“…….”
《너는 보다 더 많은 사람을 지키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이곳 전선 위쪽, 세상의 모든 목숨을 지켜 내려는 것이 목적 아닌가?》
이것이 정론인가?
《그 숭고한 목적을 위해서라면 누군가는 죽어야 한다. 그렇다면 누가 죽을 것인지를 누가 정할 것인가? 누가 죽음을 명령할 것인가? 누가 그 무게를 짊어질 것인가?》
이것이 내가 깃발을 들고서 나아간 길의 끝에서 마주할, 최후의 답인가?
《세상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고블린 신왕은 천천히 손을 들어, 나를 가리켰다.
《누군가는 괴물의 거죽을 뒤집어써야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