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414
◈ 414. [Side Story] 귀환 (4)
크로스로드. 연금술 공방.
벌컥!
헐레벌떡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온 나는 다급하게 이름을 불렀다.
“릴리!”
릴리의 방은 공방 입구 근처에 있었다. 다리가 불편한 그녀를 위한 배려였다.
급히 그 안으로 뛰어들며 나는 외쳤다.
“큰일이 생겼다고 들었어! 대체 무슨…… 일이…….”
나는 말끝을 흐렸다.
릴리는 자신의 공방 책상에 다소곳이 앉아서 아티팩트를 점검하는 중이었다.
“……전하?”
뜨악하게 나를 보던 릴리가 당혹스러운 목소리를 냈다.
“맙소사, 돌아오신 거예요?”
“어, 그, 그래. 돌아왔……는데.”
나는 덜덜 떨리는 손을 들어 릴리를 가리켰다.
“너…… 그 배는 대체……?”
의자에 앉은 릴리는…… 세상에. 배가 엄청나게 부풀어 있었다.
나는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릴리에게 다가갔다.
“배가…… 배가 왜 이렇게 나왔어.”
“아, 그게…….”
“아무리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도, 폭식은 적당히 했어야지! 어떻게 이렇게 극심한 복부비만에 걸린 거야!”
“그러니까 이거 뱃살 아니거든요?!”
바락 소리친 릴리는 한숨을 내쉬더니, 두 손을 자신의 배 위에 올렸다.
“임신이에요.”
“엣?”
나는 입을 떡 벌렸다.
“누, 누구 애야?!”
“……누구겠어요. 당연히 갓핸드지.”
릴리가 뭔 당연한 걸 묻냐는 듯이 나를 흘겨보았다.
나는 정말로 말문을 잃었다.
그때 공방 안쪽에서 바디백과 번아웃이 나와서 내게 인사했다. 릴리는 둘의 부축을 받아 의자에서 휠체어로 몸을 옮겼다.
“고블린 군단이 쳐들어오기 전에…… 그때 임신한 모양이에요. 날짜를 계산해보니, 벌써 임신 8개월 정도네요.”
“8개월…….”
그럼 두 달 뒤 출산인가? 아니, 혼혈이니까 기간이 다른가?
내가 릴리의 부른 배를 보며 어쩔 줄 몰라하자, 릴리가 핀잔을 주었다.
“전하. 놀라신 건 알겠지만, 부하가 임신 소식을 알리면 먼저 해 주셔야 할 말씀이 있지 않아요?”
“아차! 그, 그래. 그러니까…….”
나는 머뭇거리던 걸 멈추고, 마땅히 했어야 할 인사를 뒤늦게 건넸다.
“축하해……?!”
“감사합니다, 전하. 옆구리 찔러 절 받기 같지만.”
쓰게 웃은 릴리는 바디백과 번아웃에게 공방 내부 정리를 부탁했다. 두 엘프는 얌전히 릴리의 부탁대로 움직였다.
공방을 빠져나와 밖으로 휠체어를 몰며 릴리가 말했다.
“평소에도 움직이기 편한 건 아니었지만, 배가 이러니까 더 힘들어져서…… 둘의 도움을 받고 있어요. 흔쾌히 도와줘서 고마울 따름이죠.”
휠체어를 끄는 것도 꽤 힘들어 보여서, 내가 조심스럽게 휠체어를 뒤에서 밀어 주었다. 릴리는 감사합니다- 하며 목례했다.
“알아요, 전하. 뭘 걱정하시는지. 다들 걱정했거든요.”
공방의 뒤뜰로 나와서, 잠시 말없이 바깥 공기를 쐬던 릴리가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애 아빠는 없고, 엄마는 다리를 못 쓰는 데다, 심지어 뱃속의 아이는 인간과 엘프 사이의…… 천대받는 혼혈이기까지 하죠.”
“…….”
“알아요. 아주 힘겨울 거라는 거.”
내가 무어라 말을 더할 수 있을까.
나는 가만히 들었다. 릴리는 계속했다.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많이 고민했어요. 아이를 떼어야 하나? 낳아야 하나? 낳는다 해도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초가을의 햇살이 뒤뜰에 드리운 녹음을 뚫고 반짝이며 릴리의 얼굴 위로 떨어졌다. 릴리는 가만히 두 눈을 감았다.
“너무 막막해서, 그냥, 아이랑 같이 콱 죽어 버릴까. 그런 생각도 했어요.”
“…….”
“하지만 도저히…… 용기가 안 나더라구요.”
릴리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아이를 뗄 용기도. 같이 죽을 용기도. 없었어요. 그래서 그냥…… 낳기로 했어요.”
“…….”
“살기로 했어요.”
살기로 했어요.
이 여섯 글자짜리 결론을 내기 위해서, 그녀는 얼마나 많은 밤을 번민으로 지새웠을까.
하필이면 그녀가 번민할 때 나는 릴리의 옆에 없었다. 그래서 혼자서 결론을 내고 또 벼텨 온 릴리가 장했다.
“아니야. 너는 대단히 용기 있는 사람이야, 릴리.”
진심으로 말하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도와줄게. 아이를 낳는 것도, 키우는 것도…….”
“…….”
“여기 괴수전선이 근무환경은 좀 열악해도 복지는 괜찮다고? 영주님만 믿어.”
아이 하나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 는 말이 있다.
한 아이가 무사히 자라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나는 릴리와 그녀의 아이를 위해 줄 수 있는 도움이 있다면 기꺼이 도울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다른 이들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때 약속했잖아? 네가 도전하기로 마음먹는다면, 내가 도울 거라고.”
어쩌면 릴리는.
그동안 그녀가 해내왔던 그 모든 도전들보다 더 거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
“사양하지 않을게요, 전하.”
릴리는 제 배 위에 손을 올리고 멋쩍게 미소했다.
“그럴 형편이 아닌 것 같으니까요.”
……나는 내가 없는 동안, 어린 아이들이 몰라보게 자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 뿐만이 아니었다.
어른도 큰다.
한 뼘은 깊어진 것 같은 릴리의 눈을 마주보며 나는 코끝이 찡했다.
“자! 제 개인사는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전하께서 안 계신 동안 아티팩트와 수성 설비가 어떻게 박살이 났는지 보고를 올릴게요. 아, 오시는 길에 혹시 남쪽 성벽에 걸린 거대 해골 보셨어요? 그거 진짜 쩌는데…….”
릴리는 아티팩트 담당답게 내게 보고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귀 기울여 그녀의 보고를 들으면서도, 그녀의 배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이곳 크로스로드는 무덤 위의 도시라 불린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사람들은 사랑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리고…… 살아간다.
무덤 위에서라도. 죽음을 딛고서.
– 살기로 했어요.
릴리가 내뱉은 이 여섯 글자를 나는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그러니까 더욱 더.
이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이곳 전선을…… 세계를, 지켜 내야 한다.
나는 있는 힘껏 주먹을 움켜쥐었다.
***
연금술 공방 외에도 다른 공방들을 돌며 오랜만에 조합장들에게 인사를 돌렸다.
그 외에 다른 용병이나 병사들과 인사를 나누고.
생존신고를 얼추 끝낸 뒤, 저택으로 돌아가는 길.
“…….”
나는 마차를 신전 앞에서 멈추었다.
투구를 쓴 큰 덩치의 남자가 빗자루를 들고 신전 입구를 청소하고 있었다. 나는 마차 밖으로 내려서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토르켈.”
그는 나병척살대의 리더, 토르켈이었다.
내가 이름을 부르며 다가서자, 화들짝 놀란 토르켈이 나를 보았다.
“전하……! 돌아오셨습니까?!”
“하하. 먼 길이었지만, 그래. 이렇게 귀환했다.”
멋쩍게 웃어 보인 나는 토르켈의 행색을 살폈다.
“그 뒤로도 계속 신전에서 허드렛일을 해 온 거야?”
“예. 그렇습니다.”
토르켈은 투구 쓴 머리의 뒤통수를 손으로 긁적이며, 특유의 뭉툭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하고 있어서요…….”
“…….”
이곳 신전을 습격한 고블린 무리에 의해서.
나병척살대는 리더인 토르켈을 제외하고 전멸했고.
사제장이었던 성녀 마르헤리타는 이곳에서 토르켈을 대신해 화살에 맞아 죽었다.
그에게 이곳 신전이 어떤 의미로 남았는지는 모르나, 그가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허드렛일을 자처하면서까지 이곳을 서성이는 이유는…… 알 것도 같다.
내가 없는 반년 동안 이곳 신전이 어떻게 돌아갔는지 토르켈은 차분하게 설명해 주었고, 나는 잠자코 들었다.
그리고, 새로운 소식도.
“몇 주 내로 이곳 신전에, 새로운 사제장께서 부임하신다고 합니다.”
토르켈의 말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새 사제장? 중앙 교단에서 파견이 온다는 거야?”
“그렇습니다. 사실, 당연히 아무도 안 오고, 데미안님께서 이대로 사제장이 되시는 게 아닌가 했습니다만…… 얼마 전에 중앙 교단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곧 도착할 거라더군요.”
정말 의외인 소식이었다. 이 변방 사지에 오려는 미련한 사제가 또 있었다는 말인가.
“…….”
그게 아니면.
예전부터 교단이 해온 방식대로, 첩자로서 이곳의 동태를 감시할 자가 오는 것일까.
“그동안은 사제장 대리로 계신 데미안님이 너그럽게 허락해 주셔서, 이렇게 신전 안에 있을 수 있었지만…… 새 사제장님이 오시면, 아마도 쫓겨나겠지요.”
토르켈은 천천히 몸을 돌려 신전 쪽을 둘러보았다.
“문둥병 환자인 데다가, 전 사제장이셨던 성녀님을 죽게 만든 놈이, 바로 저니까요.”
“…….”
“아, 이거 괜히 우울한 이야기를 했군요…… 죄송합니다.”
토르켈은 내게 깍듯하게 허리를 숙여 보였다.
“제가 필요하시다면, 얼마든지 불러서 써 주십시오. 전하께서 불러주신다면, 기꺼이 전장으로 나가서 죽겠습니다.”
“…….”
“그럼…… 살펴 가십시오. 전하.”
그리고 토르켈은 다시 빗질을 마저 이어 가기 시작했다.
기계처럼 딱딱한, 하지만 능숙한 동작으로 신전 주위를 청소하는 그의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나는 마차에 올랐다.
생존신고는 얼추 끝났다.
이제 슬슬, 다음 스테이지를 준비해야 한다.
***
그날 저녁.
나의 영웅들이 속속 내 저택으로 찾아왔다. 저녁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기로 했기 때문.
영주 저택은 오랜만에 활기로 가득 찼다.
사용인들은 내 귀환이 그렇게 기뻤는지, 만면에 미소를 머금은 채 주문도 안한 온갖 요리를 한가득 내어왔다.
식사는 맛있었고, 분위기는 더없이 좋았다. 나는 마음이 푸근해졌다.
……저택의 꽃밭 인테리어만 아니었다면 모든 것이 완벽했을 텐데.
내가 없는 사이에 영주 저택은 또 다시 쁘띠쁘띠블링블링한 인테리어로 변모해 있었다. 이런 취향에, 이런 짓을 단행할 사람은 한 명 뿐.
나는 범인을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에반젤린……!”
“휘, 휘휘, 휘파람람~”
반년간 키는 컸는지 몰라도 여전히 휘파람은 못 부는 에반젤린이 딴청을 피웠다.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웃을 일이 아니라고! 왜 내가 자리만 비우면 집을 이 꼴로 만드는 건데!
아무튼 인테리어 말고는 다 좋았다.
식사를 하며, 나는 내가 겪은 일들을 간략하게 말해 주었다.
던전 심부로 떨어진 것. 두 악몽 군단장을 물리친 것.
밑바닥 마을 사람들과 메이슨의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에는 영계에서 스스로를 재정의한 것까지…….
모든 내용을 말해 준 건 아니었지만, 모두에게 말해야 할 부분은 가감 없이 밝혔다.
특히.
“그래서, 사과하고 싶다.”
이 부분은 확실하게 해야겠지.
“반년간 사라졌던 것도 사과해야겠지만, 그보다 더 사과하고 싶은 건…… 내가 사라지기 전에, 여러분에게 보였던 태도다.”
나는 괴물이 되려 했었다.
그것이 더 많은 사람들을 지키는 길이라 믿었기에.
그러기 위해서 스스로의 깃발을 꺾었다. 하지만 이때 내가 간과했던 것이 있었다.
이 깃발은 더 이상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 이곳 전선의 모두가 함께 들어 올린 기치였다는 것.
그것을 망각하고, 나는 독선적으로 행동했다.
그런 내게 나의 동료들은 항명했다. 내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나를 지키기 위해서.
우리의 깃발을 지키기 위해서.
그 덕분에 나는 더 중요한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때 여러분 덕분에 선을 넘지 않을 수 있었다. 여러분 덕분에,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나와 나의 깃발을, 이곳의 모두가 함께 지켜 주었다.
“감사하다. 모두.”
나는 모두에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저희야말로 감사합니다, 전하.”
잠깐의 침묵 뒤에, 내 옆자리에 앉아 있던 루카스가 빙그레 웃었다.
“돌아와주셔서요.”
물리적으로 돌아온 것을 감사한다는 뜻도 있겠지만.
예전의 깃발을 다시 든 나로 돌아와줘서 감사하다고…… 루카스는 말한 것이리라. 나는 마주 빙긋 웃었다.
식사가 끝나고. 모두에게 찻잔과 다과가 돌아갈 즈음.
나는 앞으로의 일을 입에 담았다.
“우선 정리하지. 우리가 당면한, 해결해야 할 과제는 세 가지다.”
나는 주먹을 쥔 뒤, 검지 하나만 펴서 흔들었다.
“첫째, 세계의 정세를 살피는 것.”
좋든 싫든 살기 위해 해야 하는 것. 바로 정치다.
“황도의 황위결전에서 페르난데스 형님이 승리했다고 하지…… 곧 그 여파가 이곳에도 몰아닥칠 것이다.”
페르난데스가 이곳 크로스로드에 뻗쳐댄 손길을 생각하면.
결코 온건한 형태로 그 여파가 몰아닥치지는 않을 것이다.
“모든 귀를 활짝 열어 두고, 황도에서부터 몰아닥칠 충격에 대비하도록 하지.”
뒤이어 나는 검지와 중지, 두 손가락을 펼쳤다.
“두번째. 던전탐사.”
던전 오펜스.
이 게임의 클리어를 위해서는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일일지도 모르는 것.
“다음 던전탐사 때에는 8구역 ‘마탑’에 가서 성배를 회수한다.”
모두가 내 말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고 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탐사해 온 어떤 던전보다 크고, 위협적인 곳이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떠나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검지와 중지, 약지 셋을 펼쳤다.
“그리고, 마지막이자 가장 코앞에 닥친 큰 일. 다음 방어전이다.”
타워 디펜스.
이 망할 게임의 본질.
“귀환하자마자 방어전이라니, 정말이지…….”
나는 히죽 웃었다.
“아주 신나는구만!”
스테이지 20.
다음 보스 스테이지가 바로 코앞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