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440
◈ 440. [Side Story] 갬블 클럽 (4)
다섯 명의 도박사가 내 앞에 무릎 꿇려져 있다.
“너희가 승부사라면 대결의 결과를 순순히 받아들이겠지. 하지만 너희는 사기꾼이니까.”
그 앞에 의자를 끌어다 앉은 나는 수중의 공증 마법 계약서를 흔들었다.
“이 정도 강제 제약은 해야겠지.”
“…….”
“해서, 이제 너희의 목숨은 내 것이다.”
다섯 도박사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고개를 푹 숙이거나, 사색이 된 채 떨거나, 눈물을 글썽거렸다.
바이올렛은 입술을 깨물고 분함을 참지 못했고.
오직 소녀- 스칼렛만이 곧은 눈으로 나를 보고 있다.
나는 이들에게 턱짓했다.
“그러니 이제 들어볼까? 너희가 감히 황자를 벗겨먹으려 했던 이유. 어지간히 돈이 급했던 모양인데.”
“……살아남기 위해서에요.”
과연 눈치가 빠른지, 지금 이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내게 복종하는 게 가장 현명한 길임을 눈치 챈 듯.
스칼렛이 순순히 입을 열어 답했다.
“‘최후의 방주’에 타기 위해서.”
“최후의 방주?”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건 또 뭐야?
“황위결전이 끝난 뒤부터 소문이 파다해요. 이제 곧 세상이 멸망한다고. 그리고 이 멸망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이들은 바로…… 황도 뉴 테라의 시민뿐이라고.”
스칼렛은 또렷한 목소리로 설명을 이었다.
“페르난데스 황자 전하께서 뉴 테라의 시민들만을 데리고 탈출할 거라고. 이 시민들을 태울 신세계로의 배- ‘방주’를 건조하고 계시다고.”
“…….”
“대륙 중부는 이미 난리가 났어요. 하지만 황위결전 후 뉴 테라의 성문은 굳게 닫혔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통로는 매우 한정적이에요. 그리고 그 한정된 통로를 이용하려면, 억만금이 필요하죠.”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그런 허황된 소문을 믿고, 억만금을 바쳐가면서까지 황도 안에 들어가려 한다고?”
“황도 뉴 테라는 세계의 중심이에요. 세계 경제의 3할이 그 도시에 집약되어 있죠. 그런 도시가 갑자기 ‘외적의 침입을 대비’한다며 문을 닫았고, 전 세계의 물류와 산업이 멈췄어요. 동시에 세계 곳곳에서는 불길한 징후가 엄습해 오고 있죠.”
스칼렛이 어깨를 으쓱였다.
“사람들 모두가 불안해해요. 다들 안전한 곳으로 도망치고 싶어 하죠. 죽고 나면 억만금이 무슨 소용이겠어요?”
그러니까, 지구의 경우로 대입해 보자면.
전쟁, 기근, 역병 등이 터져서 세계가 혼란하고, 곧 지구가 멸망할 거라는 이야기가 도는 가운데.
갑자기 뉴욕(혹은 워싱턴)이 봉쇄되더니, 미국 대통령이 뉴욕 시민들만 우주선에 태우고 떠난다는 소문이 파다해지고.
불안해진 사람들은 더 늦기 전에 전재산을 털어서라도 뉴욕 안에 들어가려고 발버둥 친다…… 뭐 그런 건가?
‘재난영화 한 편 뚝딱인데.’
뭐 이곳 크로스로드는 매일매일이 재난영화지만 말이지.
“그래서, 뉴 테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급히 큰 돈이 필요했고…… 큰 건수 찾아서 여기까지 와서는, 물불 안 가리고 나한테 덤볐다 이거야?”
“……간단히 설명드리자면, 네. 그렇습니다.”
끌끌 혀를 찬 나는 여유롭게 다리를 꼬았다.
“너희들, 개평이라고 아냐?”
“……?”
“내가 예전에 살던 곳에서는, 도박에서 잃은 사람에게 약간의 돈을 떼어 주는 풍습이 있었지. 이걸 개평이라고 해.”
나는 상자를 열고, 금괴를 꺼내서 다섯 도박사들에게 하나씩 건네주었다.
“너희는 이번 판에 목숨을 걸었는데 시원하게 꼴아박았으니, 개평 받을 자격은 충분하지. 옛다.”
도박사들은 어리둥절해하면서도 넙죽넙죽 받았다.
당연하다고 할지, 이 자식들은 모두 부정특성 ‘황금광’을 보유한 상태다. 금을 마다할 이유가 없지.
“나는 너희의 목숨을 내 소유로 하고자 했을 뿐, 너희를 죽이려고 한 게 아니다. 다시 말해서…… 나는 너희를 부하로 쓰기 위해서 이렇게 승부를 벌인 거다.”
죽이지 않는다는 이야기에 거무죽죽해져 있던 도박사들의 얼굴이 조금씩 풀렸다. 나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나는 무급으로 부하를 쓸 만큼 가난하지 않아. 그 금괴는 너희 것이다.”
다섯 도박사의 품 안으로 냉큼 금괴가 사라졌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가 내 밑에서 제대로 일해 준다면, 뉴 테라에 들어갈 만큼의 억만금을 버는 건 일도 아니다. 다만.”
내 목소리가 조금 살벌해졌다.
“……그럴 필요가 없지. 방주 같은 건 헛소리니까.”
슬슬 페르난데스의 계획이 어떤 것인지, 전모가 보이고 있다.
나는 입가를 말아올려 웃었다. 반드시 막아 주겠다, 그런 정신 나간 계획 따위는.
“너희, 나랑 일 몇 개 같이 하자.”
나는 도박사들에게 손짓했다.
“나는 곧 페르난데스랑 한 판 붙을 거다.”
“……?!”
“그 기생오라비 같은 얼굴에 주먹 한 방 시원하게 갈겨주고, 방주인지 뭔지에는 구멍을 내버릴 거다. 황도도 되찾을 거고. 너희는 이 일에 함께해 줘야겠다.”
도박사들은 입을 떡 벌렸다.
하긴, 이 치들에게는 너무 큰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어쩌겠냐? 이미 너희랑 나 사이에는 계약 끝났는데.
“물론 너희 목숨은 이미 나의 것이지만, 기왕이면 너희가 자발적으로, 나의 일에 성심성의껏 동참해 주기를 바란다.”
나는 내 옆에 놓인 금괴상자를 발로 톡톡 찼다.
“섭섭하게 대접하지는 않으마. 약속하지.”
“……황도를 차지한 페르난데스 전하와, 이런 남단 오지의 작은 도시를 차지한 애쉬 전하.”
스칼렛이 작게 고개를 저었다.
“냉정히 말씀드려서, 비교가 안 되는 싸움 같은데요.”
“그러니까 배당이 아주 높지.”
나와 페르난데스가 대결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페르난데스가 이기리라 짐작할 것이다.
하지만 예상대로만 흘러가면 세상에 무슨 재미가 있겠어?
언더독(Underdog)이 승리하고, 역배가 터질 때. 이게 진짜 재미거든.
“어차피 일확천금 노리면서 사는 게 너희 도박사라는 날파리들 목숨 아니냐?”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선 나는 도박사들의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고작 황도 뒷길로 들어가려고 목숨 거는, 그런 쪼잔한 승부 말고…… 도박사로서의 삶을 선택한 이상, 판돈으로 세상의 패권 정도는 걸어 봐야지 않겠어?”
마른침을 꿀꺽 삼키는 도박사들을 내려다보며, 나는 짧게 말했다.
“나한테 걸어라.”
“……전하의 무엇을 보고요?”
“아주 많은 이유가 있지만, 너희의 피부에 닿을 만한 이유는 따로 있지.”
나는 싱긋 웃었다.
“나랑 한 판씩 승부해 봤잖아? 어땠어?”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나는 이 다섯을 때려눕혔다.
“승부사로서의 내 기량,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말씀 그대로입니다.”
입을 꾹 다물었던 스칼렛이 선선히 인정했다.
“온갖 기상천외한 수법을 사용하는 도박꾼들은 숱하게 만나 봤지만, 저희 전원을 한 번에 꺾을 정도의 승부사는 전하께서 처음이세요.”
“입 발린 소리라도 고맙군.”
나는 이들을 하나씩 둘러보았다.
“그래. 나도 너희와 어느 정도는 ‘같은 과’다. 그러니까 너희가 뭘 원하는지도 잘 알지.”
물론 나는 승부사일지언정 도박꾼은 아니다.
이들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하지만 이들의 행동원리 정도는 파악하고 있다.
“너희 도박사들은 사실, 리스크를 짊어지는 행위 자체에 쾌감을 느낀다.”
“…….”
“그리고 너희처럼 평생 도박판에 살아온 녀석들은, 이제 어지간한 낭떠러지 위가 아니면 살아 있다는 실감조차 느끼기 힘들 거야. 그렇지?”
이것이 도박의 본질이다.
언제나 벌기만 해서는, 사실 별 재미가 없다. 중독이 되지 않는다.
관자놀이에 총구가 겨눠진 듯한 위험을 무릅쓰고, 생명을 건 곡예비행 끝에 일확천금에 성공했을 때.
그때의 쾌감.
이 일발역전의 짜릿함에 중독되어, 일생 이 바닥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
그것이 이들 도박사다.
‘요컨대, 다시 말해서.’
도박사란 자신의 목숨을 거는 데에 중독된- 변태 싸이코들의 집단이라는 뜻이다.
“이 마조히스트 자식들아. 내가 제공해 주마.”
나는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너희가 목숨을 걸고 싸울 장소를. 이 세계에서 가장 큰 도박판을.”
가장 큰 리스크를.
그리고, 가장 큰 리턴을.
너희에게 제공해 주마.
“그동안의 일확천금이 애들 장난으로 느껴질 만큼, 진짜 큰 판에서 놀게 해주마.”
“…….”
“기왕 광대놀음을 할 거라면…….”
압도되어 하얗게 굳은 채, 나를 올려다보기만 하는 놈들을 내려다보며- 나는 말을 마무리했다.
“세상을 거머쥐기 위해 놀아봐야 하지 않겠나?”
***
이렇게 해서 갬블 클럽은 내 휘하 파티로 편입되었다.
물론, 당장 이들이 진심을 다해 나에게 충성한다고는 믿지 않는다.
지속적으로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사용하며 착실하게 조련시켜야겠지.
하지만 이들은 유용하다. 특히 당면한 전투에서.
‘마술대제 백야 레이드에서도, 그리고…… 페르난데스와의 결전에서도.’
이들 도박사 파티는 나의 조커 역할을 해 줄 것이다. 정말이지 시기적절하게 와주었다.
백야 레이드도 레이드지만, 페르난데스와의 싸움에서는 정말로 이들의 합류가 절실했다.
‘페르난데스는 환술의 대가다.’
그리고 그 휘하에는 비밀 작전- 블랙 옵스만을 전담 처리하는 특수부대인 아이기스 특무대가 있다.
환술, 그리고 블랙 옵스 전담 특무대.
다시 말해서 페르난데스는 더럽고 치사한 수를 쓰는 데에 최적화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내 부하들은 이런 쪽 대응이 약하다. 다들 착하고 성실해 빠진 녀석들이라.
‘그나마 그림자 부대가 있을 때에는 어느 정도 대응이 되었지만…….’
사실상 그림자 부대가 궤멸한 지금은, 어둠 속에서 이런 일들을 해결해 줄 팀이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제 갬블 클럽을 이쪽으로 숙달시킬 것이다.
요컨대, 내 휘하의 전속 암부(暗部).
직접 전투보다는, 더럽고 너저분한 일들을 대신해 줄 다재다능한 특무대.
그런 용도로 영입했다.
전원이 기만전술 및 환술에 통달해 있는 데다가, 일생 뒷골목을 전전하며 살아왔으니. 대 괴수전은 몰라도 인간을 상대로 한 첩보전은 능숙할 터.
‘공격력이나 방어력이 아닌, 유틸리티적 성능.’
이런 파티도 챙겨 둬야지. 다양하게 챙겨 둬서 손해 볼 건 없으니까.
아무튼…… 이렇게 해서.
다른 동료들이 떠나 있는 동안, 새로운 영웅들이 크로스로드에 합류했다.
첩자인가 아닌가, 의심 받는 사제장 제니스.
라르크 직속이었던 제국군 1군단 잔당과, 그들을 이끄는 중장기사단장 메탈릭.
그리고 도박사 파티, 갬블 클럽.
며칠이 지나자 이들 외에도 계속해서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왔고, 호수왕국에서 건져낸 마법 건축 기술로 새로운 병영이 빠르게 건설되었다.
동시에, 1년차부터 진행했던 관광도시 계획의 핵심- 호텔의 완공이 코앞으로 다가온 시점.
세계 곳곳으로 떠났던 나의 사자들이 하나 둘 돌아오기 시작했다.
각자가 접선하러 떠났던, ‘몰락한 왕’들을 데리고서.
***
붐비기 시작하는 크로스로드를 뒤로 하고.
번쩍!
나는 텔레포트 게이트를 타고, 베이스캠프로 왔다.
이제는 익숙해진 어둠 속을 태연히 걸어, 나는 베이스캠프의 구석으로 향했다.
그동안 매일 방문했지만 늘 허탕이었는데.
어째서인지 예감이 들었다.
오늘은 만날 수 있으리라는, 그런 예감이.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아주 오랜만에 보는 그녀는 그곳에 있었다.
“…….”
하얗게 센 머리카락을 아무렇게나 바닥에 늘어뜨리고, 넝마 같은 로브로 온몸을 휘감고.
차가운 돌바닥 위에 앉아, 무너진 돌담에 머리를 기대고.
품에는 낡은 검을 소중히 끌어안고서.
두 눈을 꼭 내리감고서, 죽은 듯이 잠든 채로.
“…….”
나는 조용히 그녀의 앞으로 와서 섰다. 그리고 찬찬히 그녀를 관찰했다.
게임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던, 그러나.
진엔딩을 위해 반드시 함께 가야 할 존재.
내 리스트의 마지막, 최후의 몰락한 왕-
“……무명.”
내가 조용히 부르자, 무명은 천천히 눈을 떴다.
호수를 담은 듯 맑게 빛나는 청록색 눈동자가 나를 응시했다. 나는 빙그레 웃었다.
“오랜만이야.”
“애쉬…….”
그녀는 서툴게 웃었다. 초췌한 입가로 쉬었지만 다정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게. 정말로, 오랜만이군.”
호수왕국의 상인 NPC이자.
호수왕국의 수호자이자.
호수왕국의 왕녀이자.
게임의 마지막 스테이지에서, 끝내 최종보스로 전락했던 존재.
무명.
이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아니, 이런 거창한 대의 때문만이 아니라.
단지, 그녀 또한 내 손이 닿는 범위 안에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그녀 또한 구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빙그레 웃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나랑 이야기 좀 나눌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