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519
◈ 519. [STAGE 25] Dancing With The Devil (3)
《정말로 동맹이 되어달라는 게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는데.》
백야가 차분하게 답했다.
《너랑 동맹 맺으려고 내가 직접 온 거잖아. 지금 네 진의를 의심하는 걸까?》
“거짓말인 거 알아. 나도, 마왕도, 너에게는 거쳐가는 수단일 뿐이라는 것도.”
애쉬가 거침없이 지르자, 백야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네 진짜 목적을 위해서 모두 이용할 만큼 이용하다가 버릴 셈이겠지. 그렇잖아?”
《……네 말이 사실이라고 치자. 그럼 그걸 내게 말하면 안 되는 거 아니야?》
백야가 코웃음 쳤다.
《내 진의가 결국 너를 이용하다 버리는 것이라면, 그걸 알고 있는 너는 조용히 대책을 세워야 맞는 거 아니야? 왜 그걸 내게 말하는 거지?》
“말했잖아. 너와 정말로 동맹이 되고 싶다고.”
두번째 곡이 끝나고, 세번째 곡이 시작된다.
인간 사령관과 언데드 군단장은 쉬지 않고 춤을 이어갔다.
“네가 속에 품은 뜻이 무엇이든, 너는 지금껏 우리를 도왔어. 대화도 잘 통하고. 이렇게 춤까지 추고 있지.”
《…….》
“나는 너와 적이 되고 싶지 않아. 마지막까지 같은 편이고 싶어.”
백야는 실소를 멈추지 못했다.
하지만 애쉬의 눈빛은 굳건하고, 흔들리지 않는다. 백야는 솔직히 조금 당황했다.
‘뭐야 지금. 이 프로포즈라도 하는 듯한 분위기는.’
이 인간, 정말 미인계라도 쓰는 건가?
‘하지만…… 기분 나쁘지 않아.’
이 지옥 같은 세계에서, 자신에게 이토록 솔직하게 다가온 상대가 몇이나 되었나.
복사되어 붙여넣어진 가짜인 자신에게, 이토록 진심을 앞세우고 다가온 이가…….
그래서 백야는, 조금 립서비스를 해주기로 했다.
《좋아, 약속할게.》
빙글, 스텝을 밟으며 애쉬에게 몸을 조금 더 붙인 백야가 은밀하게 속삭였다.
《진정으로 네 편이 되겠어.》
“정말로?”
《마왕을 물리치고, 세계를 멸망의 위기에서 구해내는 그 순간까지…… 결코 너를 배신하지 않겠어. 이 정도면 될까?》
이 정도 약속이야 못 해줄 이유도 없다. 어느 정도는 진심이기도 하고.
‘마왕을 물리치고, 세계를 멸망의 위기에서 구해내는 그 순간까지’는. 그의 편일 테니.
붉은 화장을 먹인 눈으로 백야가 찡긋 눈웃음을 쳤다. 애쉬의 얼굴에도 안도의 빛이 서렸다.
“좋아, 백야.”
세 번째 곡이 끝나고.
세 번의 춤을 끝낸 두 수장은 서로를 향해 예를 차렸다. 천천히 몸을 바로 세운 애쉬가 연회장 안쪽으로 손짓했다.
“그럼 따라와.”
백야가 고개를 갸웃했다.
《어디로 가는데?》
“혈맹의 의식을 치르러.”
애쉬의 호위들이 다급하게 따라 붙으려 했지만, 애쉬는 손을 휘저어 제지했다.
“따라오지 마. 나와 백야 둘이 해결할 일이니까.”
《너희도.》
백야는 자신의 뒤를 우르르 쫓는 강시들에게 마찬가지로 손짓했다.
《여기 있어. 나와 이곳 사령관 둘이서 할 일이니까.》
대기하고 있던 어린 여자 웨이터 하나가 둘을 안쪽으로 안내했다. 여자 웨이터의 목에는 붉은 스카프가 걸려 있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연회장 가장 안쪽에는 작은 특실이 마련되어 있었다.
특실의 테이블 위에는 빈 접시가 둘, 빈 술잔이 둘, 맑은 술이 든 입구가 넓은 술병 하나, 그리고 단검이 두 자루 놓여 있었다.
둘은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테이블에 차려진 식기를 살피며 백야가 고개를 갸웃했다.
《혈맹의 의식이라는 게, 설마 그 오래된 전통?》
“그래. 이 세계의 왕자(王者)들이 서로 혈맹을 맺을 때 하는 그 의식.”
애쉬는 자신의 왼팔뚝을 걷더니, 테이블에 놓인 단검을 집었다.
“서로의 피와 살점을 교환해 먹고 마시는 거야. 이것으로 혈맹이 결속되지.”
《이 고리타분한 의식을 꺼내다니…… 너 진심이구나?》
“먼저 한다.”
애쉬는 거침없이 단검으로 자신의 왼팔을 그었다.
조금 잘려나간 살점이 접시 위에 떨어졌고, 왼팔뚝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애쉬는 인상 한 번 찌푸리지 않고 그 피를 술병 안으로 떨어뜨렸다.
“지혈하겠습니다.”
웨이터가 자신의 스카프를 풀더니 애쉬의 팔을 묶어 지혈했다. 애쉬는 태연하게 백야에게 턱짓했다.
“네 차례야.”
《…….》
백야는 혹시나 이 의식에 어떤 주술적 원리가 담겨 있는지 경계했지만, 무엇도 감지되지 않았다.
“혹시 칼이 무서워? 이제 와서 뺄 생각은 아니지?”
《……그럴 리가 있나.》
자신의 앞에 놓인 단검을 쥔 백야는 애쉬를 향해 한 번 쓰게 웃어보인 뒤, 마력을 담아 단검을 휘둘렀다.
단단한 강시의 살점 조금이 접시 위로 떨어졌다. 백야는 자신의 팔에서 흘러내리는 차가운 검은 피를 마찬가지로 술병 안으로 떨어뜨렸다.
《그렇게 안 봤는데, 꽤 와일드하네?》
“조금 야만적일 수도 있지만, 이런 일에서는 전통을 지키는 게 좋으니까.”
백야는 스스로 지혈했다. 준비를 끝낸 둘은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웨이터가 술병을 들어 흔들어 섞더니, 서로의 잔에 따라주었다.
“먼저 서로의 피를 섞은 술을 마셔 주십시오.”
애쉬는 망설임 없이 들이켰다. 백야는 이 술에 특수한 주술이라도 걸려 있나 싶어서 슬쩍 살폈지만, 무엇도 감지되지 않았다.
‘진짜 그냥 순수한 의식이네……?’
술잔을 쭉 들이키고 나자, 웨이터가 긴 핀셋을 가져와 접시 위의 살점을 집었다.
“다음으로, 서로의 살점을 삼켜 주십시오.”
《나야 젊은 생자(生者)의 살점을 기꺼이 삼키겠지만, 애쉬 너는 괜찮겠어? 시체 맛이 날 텐데.》
웨이터가 먼저 백야의 살점을 집어 애쉬의 입으로 가져갔다. 애쉬는 빙긋 웃으며 입을 벌렸다.
“맹우(盟友)의 살점인데, 기꺼이 삼켜야지.”
그리고는 정말로, 인상 한 번 찌푸리지 않고 꿀꺽 삼켰다.
다음으로 웨이터가 애쉬의 살점을 핀셋으로 집어 백야에게 가져갔다.
백야는 마지막까지 경계했지만, 살점에서도, 젓가락에서도, 그리고 웨이터에게서도, 무엇도 감지되지 않았다.
꿀꺽.
백야는 애쉬의 살점을 삼켰다.
자신의 살을 삼키는 적장을 지그시 보던 애쉬가 선언했다.
“서로의 살과 피를 나누었으니, 이제 우리는 혈맹이다.”
《…….》
“우리는 한 몸과 같으니, 서로를 위해 힘을 합쳐 싸울 것이다. 또한 서로를 배신하는 것은 천륜을 어긴 것이니, 배신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응징할 것이다.”
애쉬의 입가에 악동 같은 미소가 맺혔다.
“그렇게 됐으니 앞으로 잘 부탁해, 백야.”
애쉬가 손을 앞으로 내밀었고, 백야는 천천히 손을 내밀어 그 손을 맞잡았다.
《…….》
이런 번거롭고 피냄새 나는 과정을 거친 것 때문인가.
정말로 상대가 각별한 존재처럼 느껴졌다.
“자, 이런 피 맛 나는 맛없는 술이랑 안주는 치우고! 진짜 맛있는 술과 안주를 가져와! 오늘은 코 삐뚤어지게 마셔보자!”
백야의 옆자리에 와서 앉은 애쉬가 스스럼없이 백야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파티를 불태워보자고, 맹우!”
《…….》
그런 애쉬를 멍하니 보던 백야는 마주 애쉬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좋아! 이 세상의 끝까지, 함께 어울려주지!》
***
파티가 끝나고, 동맹이 결속되고.
백야와 리치 군단은 크로스로드의 우군으로 함께 싸우기 시작했다.
공식적으로 마왕에게 반역을 선포하고, 괴수전선에서 함께 다른 괴수들을 짓이겼다.
괴수전선의 3년차 싸움은 끔찍하고 혹독했다. 하지만 백야라는 막강한 우군을 얻었기에, 크로스로드는 힘겨운 싸움을 이어갈 수 있었다.
처음에는 모두가 괴수인 백야를 경계했지만, 그녀가 함께 목숨을 걸고 싸우자, 오래지 않아 모두 그녀를 동료로 인정했다.
백야는 크로스로드의 사람들과 친해졌다. 서로 등을 맞대고 목숨을 맡기며, 전선의 일원이 되어 치열한 싸움을 이어갔다.
…….
전투는 끝없이 이어졌고, 죽음은 언덕을 이루어 쌓였다. 무수한 슬픔과 눈물 또한 강처럼 흘렀다.
크로스로드는 기어이 3년차의 전투를 버텨냈다.
파도처럼 끝없이 몰아닥치는 악몽 군단들을 물리치고.
악마 수호병단을 물리치고, 흑룡 무리를 박멸하고…….
마침내 최후의 결사대는 호수왕국 최심부에서 마왕과 대면했다.
그리고 인세 측 최정예가 모인 이 결사대에는, 백야 또한 당당히 일원으로 함께하고 있었다.
콰직-!
거대한 눈이 허공에 떠올랐다가, 깜빡였다.
백야의 즉사기- 외신의 시선을 통한 직접 개입은 저 마왕에게까지 타격을 줄 수 있었다.
《하하, 이거. 고양이라 생각하고 품에 들인 건데.》
백야의 공격에 치명타를 입은 마왕은 피를 토하며 웃었다.
《언제고 호랑이가 되리라 짐작은 했지만, 설마 내 목까지 물어뜯을 줄이야…….》
콰직-!
한 방 더.
완전히 마왕을 참살한 뒤, 백야는 본래의 계획대로 마왕의 권좌를 빼앗는 데에 성공했다.
마왕의 시체에서 신격을 찬탈하고, 게걸스레 먹어치운 백야에게-
그동안 그녀에게 힘을 빌려준 외신이 직접 의사를 전달해왔다.
『축하한다. 반란에 성공했구나, 개미.』
《…….》
『이제 네가 새로운 마왕이다.』
백야의 온몸에 이계의 어둠이 돋아났다. 전신이 새카만 그림자로 덮여가는 그녀의 뇌리에 외신의 외침이 계속해서 들려왔다.
『자, 그럼 어서……! 이 세계의 진짜 멸망을 보여다오!』
《…….》
『네 전임 마왕 녀석은 대체 무엇이 목적인지, 이 지긋지긋한 세계를 수도 없이 반복했지! 지켜보기에 얼마나 지루했는지 아느냐!』
그동안 지긋지긋하게 해온 말을, 외신은 다시 반복하고 있었다.
『관객인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어야 할 녀석이! 건방지게도! 제 목적을 위해서, 멸망유희를 수단으로 사용했단 말이다!』
《…….》
『자, 단숨에 멸망시켜라! 물을 퍼붓고, 불을 태워라! 이 세계에 영구한 끝을 선포해라!』
외신이 포효했다.
『그리하면 너의 승천은 완성된다! 우리와 함께 상천(上天)에 올라, 온갖 세계의 멸망을 함께 관조하자꾸나!』
백야의 온몸이 완전히 그림자에 뒤덮였고, 얼굴이 있던 자리에는 하얀 공백이 입 대신 긴 호선을 그렸다.
“백야…….”
허공에 둥실 떠오른 새로운 마왕을 올려다보며, 애쉬가 치를 떨었다.
“우리는, 동료가 아니었어? 처음부터 이럴 셈이었던 건가?”
《미안해, 애쉬.》
백야는 쓰게 웃으며, 한때 진심을 나누었던 동료를 내려다보았다.
《너와 나눈 혈맹의 의식도, 그동안 쌓은 우정도…… 결국 모두 하계의 일일 뿐.》
개미들 사이에서 깊은 관계를 나눈들, 결국 개미들 사이의 일일 뿐.
이제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니, 모두 어찌나 작고 하찮은지.
백야는 손을 까닥였다.
콰아아아아!
검은 호수의 가장 밑바닥에서, 셀 수 없이 많은 괴수들이 새로이 만들어지며 솟구쳤다. 그리고 애쉬를 향해 달려들었다.
인세 최후의 결사대는 필사적으로 싸웠지만, 몰아닥치는 파도 앞에서 결국 하나 하나 목숨을 잃었다.
콰직…….
마침내 크로스로드의 깃발이 꺾이고, 끝내 애쉬마저 무릎을 꿇었다.
푹! 푸확……!
달려든 수십 마리 괴수들이 제각각의 이빨을 놀려 애쉬의 온몸에 박아 넣었다. 사방으로 핏방울이 비산했다.
백야는 자신이 리치로 부활하고 처음 사귀었던 친구의 죽음에서 눈을 돌리지 않았다.
그리고.
“……안타깝네. 백야.”
당장에라도 꺼질 듯한 목소리로, 애쉬가 느릿하게 중얼거렸다.
“마지막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다니.”
《……뭐?》
“정말로, 너와 동료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여겼는데…….”
애쉬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피투성이인 그 얼굴에는 전에 없이 차가운 빛이 서려 있었다.
“결국 이렇게 되는군.”
우뚝.
갑자기 세계가 멈췄다.
백야가 새로이 소환한 괴수들은 물론이고, 백야의 온몸도, 심지어 저 하늘에 뜬 외신의 눈동자까지…….
세계 전체가 미동도 않았다. 마치, 누군가가 ‘정지’를 명령한 것처럼.
《뭐……?》
“자, 그럼.”
괴수들에게 잡아 뜯겨 먹히던 애쉬는 가뿐하게 몸을 털었다. 그러자 주위를 둘러싼 괴수들이 먼지처럼 흩어졌다.
피투성이였던 온몸은 이미 깨끗했다.
백야는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멍하니 애쉬를 보았다.
“꿈에서 깰 시간이다, 배신자.”
그런 백야의 눈앞에서, 애쉬가 손가락을 튕겼다.
따악!
***
《……허억?!》
백야는 화들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
흐릿한 시야를 겨우 바로하자, 이곳은…… 혈맹의 의식을 치른 연회장의 그 특실이었다.
백야는 자신의 온몸이 옴짝달싹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의 바로 앞에, 차가운 눈을 한 애쉬가 한쪽 다리를 꼬고 앉아 있다는 것도.
“나와 혈맹이 되겠다고 했잖아.”
애쉬는 손에 들린 위스키를 잔에 따랐다. 얼음이 든 잔이 차륵, 소리를 내며 차올랐다.
“그런데 망설이지 않고 배신하다니. 실망이 커, 백야.”
《이건, 대체…… 내가 방금 본 건…….》
“환상이다.”
《환상……?》
백야가 떨리는 목소리로 더듬거렸다.
《내가 본 게, 그 1년이…… 전부 환상이었다고?》
“그래. 네 본심을 확인하기 위해서, 내가 네게 보여준 환상.”
애쉬는 어깨를 으쓱였다.
“뭐, 나는 환상의 ‘방향’만 지시했고, 자세한 상황과 결과는 네가 그려냈지. 계획 열심히 짜뒀더라? 덕분에 네 속을 잘 알 수 있었어. 그동안 내가 알 수 없었던 여러 정보도.”
어안이 벙벙해진 채 멍하니 있던 백야가 발악하듯 소리쳤다.
《말도 안 돼! 나는 마술대제다! 이 내가, 필멸자의 환술 따위에 이렇게 완벽하게 속아 넘어갈 리가……!》
“그래서 준비하는 게 쉽지 않았지.”
애쉬는 자신의 뒤에 선 다섯 명의 영웅들을 돌아보았다.
오렌지, 라임, 코발트, 바이올렛, 스칼렛.
이번 작전을 진행한 핵심 요원 다섯이었다. 이들의 면면을 살피며 애쉬가 히죽 웃었다.
“그런데 그 어려운 설계를 해내서 호구를 벗겨 먹는 게, 사기꾼이 하는 일이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