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532
◈ 532. [Side Story] 균열 (3)
다음날 오전. 전진기지.
지난 석달간 복구 공사와 동시에 연이은 전투를 치러 온 이곳은, 직전에 치른 전투의 여파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외곽 성벽 곳곳이 무너졌고 나무 뿌리에 침식된 상태.
전진기지 코앞까지 몰아닥친 나무 괴수들은 그 상태로 움직임을 정지했고, 그대로 제자리에 뿌리를 내리고 다시 평범한 나무로 돌아갔다.
나는 전진기지 남쪽 벌판에 빼곡히 들어선 나무들을 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베어내야겠지?”
전진기지 복구를 위해 나와 함께 움직이던 목수 조합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목재로서는 채산성이 좋지 못하지만,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영 못써먹겠나?”
“다들 썩거나 불탄 나무들입니다. 한떄 귀신이 들리기도 했었고요. 목재로 쓰는 건 힘들 것 같습니다.”
하긴 바로 어제까지 살아서 사람을 죽이려던 나무로 뭘 만들면 좀 찝찝하긴 하겠군.
“시야를 확보할 만큼만 베어서 쓰러뜨려 둬. 자연스러운 바리케이드를 형성하도록 하지.”
“그렇게 하겠습니다, 전하.”
도시에서 데려온 인부와 기술자들이 전진기지 정비를 시작했다.
깡- 깡- 망치 소리가 울리는 성벽을 지켜보다 돌아서자, 뒷짐을 진 흰수염의 노인이 보였다.
상아탑의 주인. 현재 세계수호전선의 마법사 총대장을 역임 중인 대마법사. 디어뮈딘이었다.
“전선이 위태위태하구료, 애쉬 황자.”
수염을 쓸며 디어뮈딘이 말했다. 나는 쓰게 웃었다.
“어제는 대단한 활약이셨습니다, 디어뮈딘님.”
“활약은 무슨. 늘 하던 대로 한 거지. 핏덩이들이 어설프게 허튼짓하는 것보다야 내 솜씨가 나은 건 당연한 거고.”
이 할아버지, 세계수호전선에 가맹할 때만 해도 앞장서서 구시렁구시렁대더니, 막상 전선에 참가한 뒤로는 아주 열심히 나서주고 있었다.
뭐랄까, 뉴비들이 삽질하는 걸 지켜보고만 있지 못하는 올드비 타입이랄까?
‘아 내정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 ‘아 마법 그렇게 쓰는 거 아닌데’ ‘아 인생 그렇게 사는 거 아닌데’ 하면서 온 사방에 꼰대스러운 잔소리를 쏟아내며, 또 전투마다 앞장서서 마법을 펑펑 쏴대주는 중이다.
그럴 때마다 잔소리 군소리 찡얼찡얼 늘어놓아서 별로 인망은 못 얻고 있지만…… 슬슬 어떤 성격인지 알 것 같다.
“앞으로도 이런 전투를 수십 번은 더 치러야 한단 말이지?”
그런 디어뮈딘의 이번 잔소리 타깃은 나인 모양이었다. 나는 가만히 들었다.
“내 장담하지. 이대로라면 이곳 전선은 무너질 거요.”
“…….”
“다른 전선이라면 몇 년에 한 번 막아내야 할 수준의 대공세를 며칠에 한번씩 물리치고 있지 않소. 물자야 전세계에서 공급되고 있으니 괜찮다 쳐도, 사람에게 쌓이는 피로는 대체 어찌 감당할 거요?”
디어뮈딘의 말대로였다.
피로.
그동안의 괴수 침공보다 평균 두 배의 빈도로 닥쳐오는 3년차의 괴수 웨이브는 착실하게 우리 쪽에 피로를 누적시키고 있었다.
심지어, 앞으로는 점점 더 주기가 짧아진다. 한동안은 2주에 한 번 방어전이 닥쳐올 것이고 3년차 후반부에는 열흘에 한 번 꼴로 괴수 웨이브가 몰려올 것이다.
주기가 짧아지는 만큼, 이쪽도 로테이션을 짜서 교대로 전투에 내보내는 것이 이상적이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다.
정예 영웅 및 베테랑 없이는 방어전 수행이 불가능한 수준이기에.
일반 병사들은 로테이션을 돌리더라도, 결국 최정예는 계속해서 전투에 나서야 한다.
그리고 깎여나간다.
“그 창공기사 미하일 버밀리온이 잘못된 판단을 내리고, 간발의 차로 실패하여 제 기사단을 전멸시킨 것은 우연이 아니오.”
디어뮈딘이 쉬지 않고 쏘아붙였다.
“모든 것은 필연이오. 삼라만상 모두가 원인이 있고 결과가 있는 법.”
“…….”
“지난 석달간 창공기사단은 혹사당했고, 착실하게 파멸을 향해 걸음을 내딛은 거요.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 치명적 판단 실수를 하게 된 거지.”
나는 디어뮈딘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결국, 창공기사단이 전멸한 것은…… 그들을 가혹하게 운용한 제 잘못이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럼 아니라고 부정할 셈이오?”
나와 상아탑주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부딪혔다.
맹렬하게 시선이 충돌했지만, 이윽고 나는 한숨을 내쉬며 시선을 거두었다.
“……맞는 말씀입니다. 디어뮈딘님.”
이 전선의 총사령관은 나다. 모든 죽음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 있다.
뿐만 아니라, 구조적 관점에서 거시적으로 전황을 살피는 디어뮈딘의 견해 또한 일리가 있다.
가까이서 보면 미하일의 실수와 만용 때문에 창공기사단이 괜한 전멸을 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러나 멀리서 보면, 전선 전체의 운용 상황이 한계에 내몰렸기에 피로와 무리가 쌓였고, 창공기사단의 전멸은 이 상황이 불러온 결과 중 하나일 뿐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또한, 시작일 뿐일지도 모른다.’
누적된 피로로 인해 다른 영웅들 또한 평소에 않던 실수를 저지르기 시작하고, 그 작은 나비 날갯짓이 끝내는 전선의 파멸로 이어지는 도화선이 될 수도 있다.
디어뮈딘이 지적한 점은 바로 이것이다.
괴수전선이 구조적으로 위기에 봉착했다는.
“모두가 소모되어가고 있소. 그리고 애쉬 황자. 그 소모는 당신 또한 마찬가지요.”
“……제가 소모되고 있다고요?”
“그럼 아니란 말인가? 사망자 숫자가 늘어갈 때마다 수심에 잠기는 모습이 훤히 보이는데.”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디어뮈딘은 나를 향해 손가락을 가리켰다.
“계속 이런 식으로 싸워가다간, 남은 긴 경주를 버티지 못하고 결승점 전에 쓰러질 수밖에 없을 거요. 먼저 쓰러진 미하일과 창공기사단처럼.”
“……제가.”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제가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지혜를 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내가 줄 수 있는 충고가 뭔지는 이미 알고 있지 않소?”
디어뮈딘이 어깨를 으쓱였다.
“목숨을 갈아넣으시오.”
“……!”
“정예의 출진 빈도를 줄여 피로를 감소시키는 대신, 남는 빈 자리를 값싼 목숨들로 채우시오. 병력 교환비가 곤두박질치고, 흙 아래 묻힐 무덤의 수가 늘어날지언정, 전선은 유지할 수 있소.”
엘리트 중의 엘리트, 마법사.
그 마법사들로만 이뤄진 소국가, 상아탑.
그 상아탑의 군주인 디어뮈딘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엘리트들의 전력 온존을 위해, 비(非) 엘리트들의 목숨을 갈아 넣으라고.
“하지만 그대는 그러지 않겠지. 그러지 않기 위해서 싸우는 것일 테니까.”
노왕의 눈썹이 슥 꺾였다.
“그대는 모순투성이 사령관이오, 애쉬 황자. 바로 그 모순에 끌려서 그대에게 충성하는 이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
“어려운 길을 걷기로 결심한 이상, 끊임없이 시련이 닥쳐오는 것도 당연한 일 아니겠소?”
디어뮈딘이 혀를 쯧쯧 찼다.
“하지만 명심하시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좋은 타협점을 찾을 줄 아는 지도자를, 세상은 명군(名君)이라 부르는 법이오.”
“……찾지 못한다면?”
“둘 중 하나겠지. 머저리 암군(暗君)이거나, 아니면.”
아니면- 하고 뒷말은 내뱉지 않은 채, 디어뮈딘은 나를 향해 의미심장하게 눈짓하더니 뒤로 홱 돌아서버렸다. 그리고는 휑하니 가버렸다.
나는 괜히 투덜거렸다.
“……역시 고까운 영감님이라니까.”
하지만, 고까울지라도 틀린 말은 하나도 없었다.
이대로라면 전선은 버티지 못하고 무너질 것이다.
게임에서도 그랬다. 1,2년차와는 달리 3년차는 전투가 더욱 많이 발생하기에, 영웅과 병사들의 피로도가 거의 늘 한계에 달해 있었다.
게임에서는 피로 상태에 따라오는 스탯 디버프를 안고 그냥 악으로 깡으로 진행하면 그만이었지만.
이곳 현실에서는 그럴 수 없다. 피로는 단순히 수치만 깎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사람의 마음을 꺾게 된다.
문득 프로스포츠, 그중에서도 프로야구의 선수 운용이 생각났다.
리그제 프로야구 경기에서 패배는 전략적 선택이다.
버릴 경기는 버리고, 확실히 이길 수 있는 경기에서 승수를 쌓는다.
그리고 이 승부처에서 최정예를- 믿음직한 선발투수와 확실한 마무리투수를 기용한다.
선수는 사람이니까.
좋은 선수라고 해서 모든 경기를 뛰게 했다간 결국 마모된 끝에 망가져버릴 테니까. 이길 수 있는 포인트에서 내보내는 것이 이상적이다.
‘문제는, 괴수 방어는 야구 경기가 아니라는 점이지…….’
괴수전선은 무너지면 끝장이다.
단 1패라도 하면 곧 세계 멸망이다. 매번 매번의 전투가 목숨을 건 총력전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선발을, 중계를, 마무리를, 불펜을…… 정예 멤버들을 아낄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래서 지금껏 모든 것을 내던지며 싸워왔고, 어떻게든 버텨왔지만.
3년차는 녹록치 않았다. 변화가 필요한 시기였다.
그래서- 어떻게?
‘험난하구나.’
욱신거리는 이마를 쓸며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뼈아프고, 험난해…….’
***
신전.
미하일의 병실 앞에 선 나는 숨을 가다듬은 다음,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섰다.
끼이익-
열린 병실 안에서 미하일은 몸을 쪼그린 채 미동도 않고 있었다.
침대 구석에서 벽에 기댄 채, 세운 두 다리 사이에 얼굴을 묻고서. 가만히.
“……미하일.”
가까이 다가간 나는 의자를 끌고 그 앞에 앉았다.
“물 한 모금도 안 마시고 있다고 들었어. 그러면 안 되지.”
“…….”
“치료도 거부하고 있다며? 이대로라면 상처가 덧나서 더 큰 병이 날지도 몰라. 그러기 전에 치료를 받아야지.”
“…….”
“미하일.”
옴짝달싹 안 하는 미하일에게, 나는 내키지 않지만 다음 말을 뱉었다.
“너를 구하려다 쓰러진 네 동료들을 생각해야지. 이러다 네가 쓰러지기라도 하면…….”
홱!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그림자에 잠긴 미하일의 얼굴에서 주홍색 안광이 번뜩이더니- 소년기사의 주먹이 내 멱살을 움켜쥐었다.
피눈물이 말라붙은 초췌하기 짝이 없는 얼굴로 미하일이 소리쳤다.
“쉽게 말하지 마!”
“…….”
“쉽게 말하지 말라고! 눈앞에서 평생 함께한 동료들이 모두, 나 때문에 죽어버렸는데……! 그런데 내가 어떻게……!”
“쉽게 말하는 거 아니야. 나도 눈앞에서 잔뜩 잃어봤어.”
새된 목소리로 덜덜 떨며 외치는 미하일을 나는 부드럽게 타일렀다.
“하지만 네가 이끌어야 할 남은 사람들이 있잖아.”
“……!”
종자들. 병사들. 그리고 예비용 그리폰까지.
버밀리온 왕국군과 창공기사단의 잔여 병력은 여전히 이곳 크로스로드에 남아 있다. 그리고 왕세자의 쾌유만을 바라고 있다.
그뿐인가. 머나먼 대륙 서북부에서 그의 고국 또한 그의 안전한 귀환을 기다리고 있을 터인데.
패전의 충격이야 이루 말할 수 없이 크겠지만…… 식음도 전폐하고 치료마저 거부하는 것은, 왕세자로서 해도 되는 일이 아니다.
자신이 책임져야 할 남은 사람들을 떠올리자 조금 진정되었는지, 미하일은 천천히 내 멱살에서 손을 풀었다.
미하일은 고개를 푹 숙인 채 힘 빠진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동료도, 그리폰도, 무기도, 모두 잃었어. 이제 나는…… 더 싸울 수 없는 건가?”
“창공기사단은, 그리고 버밀리온 왕국은 세계수호전선에 충분히 기여해주었어. 나와 이 전선의 모두가 그 사실을 잘 알아.”
“그러니까, 뭐야. 이제 돌아가도 된다, 그런 거야?”
“……그래.”
버밀리온 왕국은 주전력인 창공기사단이 전멸했을 뿐만 아니라 왕세자까지 부상을 입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더 참전을 요구한단 말인가.
하지만 내 말을 어떻게 받아들인 것인지, 초췌해진 미하일의 입가가 살벌하게 말려 올라갔다.
“……웃기지 마, 이대로는 못 돌아가.”
“미하일.”
“소중한 동료들을 모두 잃고…… 이런 처참한 실패만을 안은 채로, 어떻게 고국으로 돌아가느냔 말이야.”
미하일의 창백한 손에 핏대가 서며, 침대 위를 꽉 움켜쥐었다.
“웃기지 마, 웃기지 말라고. 나는, 우리는, 증명할 거야. 증명해야만 해. 내가, 우리가, 창공이, 세계에서 가장 높이 나는 기사단이라는 것을…….”
“…….”
고개를 푹 숙인 채 미하일은 계속 혼잣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정신적 충격이 클 만하지. 바로 눈앞에서 모든 동료를 잃었으니.
나는 마지막으로 미하일의 어깨를 두들겨준 뒤 자리에서 일어섰다.
“네게 남은 사람들을 생각해서라도, 치료 잘 받고 식사도 잘 해야 해. 알겠지?”
“…….”
“또 올게, 미하일. 마음 편히 먹고 쉬고 있어. 아무 생각 말고…….”
신신당부한 나는 미하일의 병실을 나섰다.
내가 방문을 나서는 그 순간까지도, 조명 없이 어두운 병실 안에서, 침대 위에 웅크린 채 미하일은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 돼…… 인정 못해…… 증명할 거야…… 내가, 우리가…….”
불안하게 일렁이는 주홍색 눈동자로, 허공을 노려보면서.
“세상을 구할 수 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