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590
◈ 590. [STAGE 35] 어둠 속으로
삑- 삑- 삑- 삑- 삑-
시끄럽게 비상 알림음이 울렸다.
“……윽…….”
붉은 비상등이 점멸하는 제로니모의 선내에서, 쿠일란은 힘겹게 눈을 떴다.
세상이 거꾸로 뒤집혀 있었다.
“응……?”
쿠일란은 의아해하며 몇 번 더 눈을 깜빡인 뒤에야 현재 상황을 이해했다.
함선은 위아래가 뒤집힌 채 착륙해 있었고, 쿠일란은 뒤집힌 좌석의 칭칭 얽힌 안전끈에 거꾸로 매달린 채였다.
그의 붉은 댕기머리가 아래로 길게 늘어뜨려진 채 시계추처럼 좌우로 오갔다.
고개를 털어 정신을 차린 쿠일란은 주위를 살폈다.
“뭔, 난리도 아니구만…….”
좌석에 앉은 이들은 쿠일란처럼 안전끈에 매달린 채 허공에 거꾸로 늘어져 있었다.
나머지는 급박한 상황에 안전끈을 묶지 못하거나 묶었는데도 튕겨나가는 바람에, 모두 바닥-본래는 천장이었던-에 쓰러져 있었다.
“다들, 괜찮수……? 어우. 머리가 핑핑 도네.”
쿠일란이 겨우 쥐어짜낸 목소리로 물었지만, 선내의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
쿠일란은 어지러운 이마를 움켜쥐고 주위를 살피다가 바로 아래의 바닥에 쓰러져 있는 애쉬를 발견했다.
“대장! 무사한 거요? 정신 좀 차려보…… 대장!”
하지만 애쉬는 쓰러진 채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이마에서 피도 배어나오는 것이 부상까지 당한 모양이다.
쿠일란은 혀를 차며 자신의 몸을 묶은 안전끈을 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다들 안전끈 똑바로 하라니까…… 안전제일이라잖아…….”
막 파리대왕의 뱃속을 폭파하고 나오는, 원체 급박했던 상황이긴 했지만. 안전수칙을 철저하게 지킨 덕에 자신은 이렇게 무사하잖은가.
그러니까 앞으로는 안전하게, 이런 비공함도 좀 그만 타고…… 무서우니까…….
“그나저나 왜 이렇게 안 풀려, 아오!”
쿠일란은 낑낑거리며 안전끈을 풀기 위해 용을 썼지만, 단단하게 얽힌 탓에 꼼짝도 않았다.
줄을 끊어보려 해도 쓸데없이 튼튼한 탓에 잘 끊기지도 않았다.
그렇게 쿠일란이 묶인 끈을 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데,
쿵! 쿠직! 쿵!
닫힌 해치 바깥에서 거센 소리가 울렸다.
쿠일란은 반색하며 그쪽을 보았다.
“오, 누가 도와주러 왔…….”
말하다 말고 쿠일란은 입을 닥쳤다.
쿵! 콰직! 쿠드득!
강제로 힘으로 열어젖혀지는 해치 바깥에서, 붉게 번들거리는 파리들의 눈이 보였기 때문이다.
변종 파리 개체들이 함선 바깥에 들러붙어 강제로 해치를 열어젖히는 중이었다. 쿠일란의 등으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이런 미친.”
쿠일란은 다급하게 안전끈을 풀어헤쳤다. 제멋대로 엉켜 있던 끈들은 쿠일란이 집중하자 조금씩 풀려나기 시작했다.
‘빨리, 빨리, 빨리! 이대로는 늦어……!’
해치 가까이에는 데미안이 쓰러져 있었다. 만약 파리 놈들의 진입을 막지 못한다면, 데미안부터 가까운 사람들 순으로 죽거나 다치게 될 터였다.
쿠일란은 초인적인 집중력을 발휘해 엉킨 안전끈을 쾌속하게 풀어냈다. 하지만.
콰앙-!
파리들이 조금 더 빨랐다.
해치를 강제로 열어젖히고 파리들이 기어코 함선 안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가장 먼저 들어온 변종 파리의 눈이 데미안을 향하더니, 날카로운 앞다리를 위로 홱 치켜들었다.
“안돼-!”
떨어지는 괴수의 공격을 보며 쿠일란이 고함을 질렀다.
쿠일란은 마지막 매듭을 푸는 것을 포기하고 주먹으로 자신의 의자를 후려쳤다.
의자를 고정한 나사들이 일제히 터져나가며 쿠일란을 속박으로부터 해방시켰다.
쿠일란은 그 기세 그대로 아래로 떨어지며 파리들을 덮치려 했지만, 그러기엔 이미 늦었다.
푸확-!
다음 순간, 바깥에서 커다란 도끼가 날아와 파리의 머리를 날려버렸기 때문.
“어?”
쿠일란이 당황한 소리를 내는 것과 동시에 파리들 또한 뒤를 돌아보았고, 연이어 날아든 강맹한 도끼 공격에 모조리 목이 날아가거나 몸이 두 쪽이 나버렸다.
“후우우……으랏차!”
쿵!
뒤이어 등장해서 도끼를 회수한 뒤, 반쯤 열린 해치를 마저 활짝 연 것은…… 다름 아닌 윤이었다.
희고 뽀얗던 상아색 머리칼은 온통 검댕 투성이었고, 자잘한 부상을 입은 탓에 안색도 썩 좋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은 쿠일란을 발견하더니 씩 웃었다.
“좋은 밤, 쿠일란. 무사해요?”
바닥에 내려선 쿠일란은 뻘쭘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어, 음, 덕분에…… 윤, 그쪽은?”
“비공함대는 사실상 궤멸이에요. 전부 제각각 추락했고, 살아남은 운 좋은 사람들은 부대 재편성 중.”
윤은 멀찍이 떨어진 벌판을 가리켰다.
“저는 저쪽에 먼저 불시착해 있다가, 이 배가 추락하는 거 보고 구하러 달려온 거예요.”
“정말 고맙수. 덕분에 살았군.”
“뭘요. 세상이 망해가는데 돕고 살아야지.”
윤은 뒤이어 먼지구름이 피어오르는 크로스로드 쪽을 가리켰다.
“크로스로드 상황, 보여요? 저쪽도 지금 난리에요. 파리대왕이 도시 안으로 떨어진 모양인데. 우리도 얼른 저쪽에 가야죠.”
윤은 특유의 샛노란 눈을 가늘게 떴다.
“이러나 저러나 놈도 분명히 피해를 입었어요. 땅에 떨어진 동안 끝장을 내야 해요.”
“으음, 얼른 사람들을 치료하고 깨웁시다. 특히 우리 대장부터.”
이미 해가 진 시간이었다. 사위(四位)의 분간이 어려워지고 있었다.
윤과 함께 온 아리안 왕국의 전사들이 주위를 경계하는 동안, 함선 안으로 들어온 윤은 치유마법으로 쓰러진 부상자들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윤이 애쉬의 이마를 가볍게 훑자 피투성이였던 애쉬의 이마 상처가 빠르게 아물었다. 쿠일란이 감탄했다.
“치유마법도 쓸 수 있는 거요?”
“응급치료뿐이지만요. 사제 수준은 안 되지만, 내가 뒤로 메다꽂은 남자 부상 정도는 낫게 해줄 수 있는 정도?”
윤이 애쉬를 뒤로 메다꽂은 전적이 있음을 모르는 쿠일란은 고개만 갸웃거렸다. 피식 웃은 윤은 쿠일란의 등 쪽으로 손짓했다.
“그쪽도 좀 다친 거 같은데. 이리 와봐요. 상처 봐줄게.”
“아, 나는 괜찮수. 그보다 더 다친 사람들을…….”
“그쪽은 비교적 무사하니까 얼른 나아서 마저 계속 싸워야 할 거 아니에요. 잔말 말고 뒤로 돌아봐.”
그게 그렇게 되나?
갸우뚱하면서도 쿠일란은 얌전히 등을 윤에게 내밀었다.
쿠일란의 어깨에 피가 맺힌 찰과상이 남아 있었고 윤은 능숙하게 그 상처를 치료했다.
“이제 알겠어요? 도끼도 잘 던지고, 근육도 빵빵하고, 치유마법도 쓸 줄 알고. 내가 이렇게 다재다능한 여자에요.”
“정말로 매력적이군. 다시 봤수다, 윤.”
“하 참, 맘에도 없는 소리를…….”
잠시 무어라 망설이던 윤이 쿠일란을 향해 입을 열었다.
“……쿠일란. 저기.”
그때였다.
“아아아악!”
“저게 뭐…… 끄아아아!”
갑자기 밖에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경계를 서던 아리안 왕국 전사들이 토해낸 비명이었다.
놀란 쿠일란과 윤은 즉시 밖으로 뛰쳐나왔고, 발견했다.
푹! 푸욱! 푸확……!
아리안 왕국의 전사들을 도륙하고 있는, 처음 보는 거대한 덩치의 괴수를.
기존 변종 파리보다 몇 배는 더 거대해 보이는 괴수였다.
잠자리처럼 좌우로 뻗은 네 쌍의 날개로 하늘에 떠 있었는데, 기다란 여덟 쌍의 다리가 제각각 송곳처럼 움직이며 지상의 인간을 찍어댔다.
놈의 몸 곳곳에는 온갖 생물의 특질이 반영되어 있었다. 특히 가슴 부분에 갑옷처럼 비늘이 둘러쳐져 있었다.
윤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미 파리조차 아니잖아…….”
번아웃의 자폭으로 부화장이 폭발하면서, 이 신형 개체들 또한 모조리 터져 죽은 줄 알았는데. 어떻게든 숨이 붙은 한 마리가 따라붙은 모양이다.
푹!
괴수는 긴 다리를 뻗어 아직 숨이 붙어 있던 아리안 왕국 전사의 목숨을 끊어버렸다.
그리고 새로운 먹이를 찾듯, 고개를 빙글 돌려서- 윤과 쿠일란이 있는 쪽을 보았다.
“…….”
윤은 죽은 부하들을 보며 입술을 꽉 깨물고는, 도끼를 움켜쥔 다음.
타앗!
대뜸 옆으로 달려 나갔다.
당황한 쿠일란이 윤의 뒤를 따라붙었다.
“윤?! 지금 어디 가는 거요?!”
“비공함에서 멀어져야죠!”
“뭐요?”
“비공함 안에는 죄다 부상자에 의식 잃은 사람뿐인데, 그쪽에서 싸우다가 무슨 일 있으려고요? 괴수를 반대편으로 유인해내야 해요!”
쿠일란은 윤의 판단이 타당하다 생각했다.
문제는 괴수의 기동성이 생각보다 월등하다는 점이었다. 놈은 그 커다란 덩치에서 나왔다고는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둘을 따라잡았다.
쐐애액!
머리보다 높은 위치에서 괴수의 송곳 같은 발끝이 쭉 당겨졌다가 총알처럼 쏘아져 내려왔다.
윤과 쿠일란은 서로 교차해서 도끼와 주먹을 휘두르며 괴수의 공격을 빗겨냈다.
공격 한 번 한 번에 담긴 위력이 마치 공성추 같아서, 정면으로 받아냈다간 죽을 게 뻔했다.
“부화장을 터뜨려서 천만다행이군, 만약 이런 괴수들이 더 쏟아져 나왔다면…….”
“파리대왕을 완전히 끝장내지 못하면, 놈은 결국 이런 괴수를 떼로 생산해낼 거예요! 그 전에 끝장내야……!”
말하다 말고 윤은 멈췄다.
그동안 이 괴수는 자신의 다리를 수직으로만 찍어 내려왔다. 하지만 이 모든 공격이 실은 페이크였다.
길게 뻗은 다리 하나가, 야음을 틈타 빙 돌아서…… 수평 방향으로 찔러 들어오고 있었다.
쿠일란의 옆을 향해서.
“……!”
경고할 틈도 없었다. 윤은 본능적으로 쿠일란에게 달려들어 뒤로 밀쳐냈다.
직후 괴수의 다리 끝이 윤의 몸을 찍었다.
푸욱-!
“……아.”
등 뒤에서 앞으로, 괴수의 발 끝에 꿰인 채 윤이 피를 토해냈다.
일순 멍해졌던 그녀의 샛노란 두 눈에 분노가 차올랐다.
“이…… 괴물, 자식이……!”
윤은 남은 힘을 그러모아 도끼를 위로 집어던졌다.
강맹하게 빙글빙글 회전하며 날아간 도끼는 괴수의 가슴팍 비늘을 퍽 친 다음 힘없이 아래로 떨어졌다.
괴수는 신경도 안 쓴다는 듯이, 무신경하게 윤의 몸에서 다리를 뽑아냈다.
푸확……!
“아……아.”
윤이 제자리에 무너졌다. 상처에서 피가 폭포처럼 흘러내렸다.
“윤-!”
다급하게 달려온 쿠일란이 급히 포션을 열고 윤의 상처에 들이부었다. 윤은 쇼크로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저 자식 발끝에 마비독이 있나봐요. 몸이 아예 안 움직여.”
“더 이상 말하지 말고, 일단 지혈부터……!”
“나를 치료할 때가 아니에요, 쿠일란. 도망을…….”
쐐애액!
괴수의 발끝이 내리 찍혔다. 쿠일란은 이를 악물고 윤을 안아든 뒤, 있는 힘껏 옆으로 굴렀다.
공격을 피해낸 쿠일란이 전력을 다해 도망치자, 엄청난 속도가 나왔다. 괴수는 잠시 그런 쿠일란을 쫓다가 이윽고 천천히 제자리에 멈췄다.
“좋아, 따돌렸…….”
쿠일란이 기뻐하는 것과 동시에, 놈은 뒤로 빙글 돌아섰다.
놈이 향하는 방향은 추락한 제로니모가 있는 곳이었다.
“……!”
이를 악물고 멈춰선 쿠일란이 어쩔 줄 몰라하는데, 품에서 미약한 목소리가 울렸다.
“……쿠일란.”
“무리하지 마요, 윤. 호흡을 아끼고…….”
“저 녀석…… 가슴이 약점이에요.”
“뭐?”
“약점이니까 갑옷처럼 비늘을 둘러놓은 거고…… 아까 도끼를 던졌을 때, 파손된 비늘 사이로…… 핵 같은 게 보였어…….”
피를 토하며 윤이 웅얼거렸다.
“비늘을 뚫고 가슴을 파괴할 수 있다면…… 일격에 해치울 수 있을지도…….”
“…….”
천천히 윤을 바닥에 내려둔 쿠일란이 애써 부드럽게 웃으며 물었다.
“그런 괴수의 약점 이야기 말고. 아까 나에게 하려다 만 이야기는 뭐였수?”
“……하하.”
윤은 꺼져가는 눈빛으로 쿠일란의 얼굴을 훑은 뒤, 작게 속삭였다.
“그냥, 언제나…… 당신의 약점은 어딘지, 그게 궁금했어.”
툭.
의식을 잃은 윤의 팔이 바닥에 떨어졌다.
쿠일란은 남은 포션을 연 뒤 윤의 입안에 흘려 넣었다. 그녀가 제대로 삼키지 못하자, 자신의 입에 머금은 뒤 윤의 입에 대고 억지로 삼키게 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상의를 뜯어 윤의 상처에 단단하게 감은 뒤, 쿠일란은 벌떡 일어섰다. 이미 괴수는 제로니모의 바로 위였다.
‘일격에 가슴을 파괴해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쿠일란의 궁극기이자 오의인 [단심풍랑]은 선대의 저주를 받아야- 즉, 반인반수 상태일 때에만 사용이 가능하다.
그러나 지금 달은 그믐을 지나 삭으로 향하는 중.
하늘은 어둡다. 달빛은 없다.
현재 쿠일란은 완전한 인간인 상태. 이대로는 단심풍랑을 사용할 수 없다.
‘쓰지 못하면…….’
이곳에서 동료들은 모두 죽을 것이고. 윤 또한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비공함 안에는 애쉬도 있다. 애쉬가 없다면 결국 세상은 멸망하고, 모조리 불탈 것이다. 아직 되찾지 못한 자신의 고향 또한 마찬가지였다.
“후.”
숨을 들이쉰 쿠일란은 몸을 웅크렸다가, 앞으로 전력을 다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어깨 위에 둘러진 은적색 털의 망토를 손으로 꽉 쥐었다.
나이트메어 슬레이어, [만월광의 학살자].
지난 2년간 들은 척도 않았던 이 망할 장비의- 이 안에 깃든 선조의 유혹을 받아들일 때였다.
“빌려주시오, 일대종사.”
쿠일란이 으르렁대며 내뱉었다.
“당신의 ‘저주’를……!”
다음 순간.
번쩍!
쿠일란의 등 뒤에 만월(滿月)이 내려앉았다.
눈부신 달빛이 폭사하며, 동시에 쿠일란의 등 뒤에서 펄럭이던 은적색 망토가- 마치 본래 쿠일란의 가죽이었던 것처럼, 그의 등에 들러붙었다.
어느새 쿠일란은 사람이 아닌 형태로 변모해 있었다. 반인반수 또한 아니었다.
네 발로 달리는 짐승.
라이칸스로프, 인랑, 늑대인간-
나이트메어 슬레이어, [만월광의 학살자]가 그 주인에게 내리는 시험.
[완전수인화].일시적으로 선조의 힘을 모두 승계하고, 동시에.
-그 저주 또한, 물려받는다.
아우우우우-!
늑대처럼 울부짖은 쿠일란이 허공을 밟고 뛰쳐 올랐다.
그리고, 막 비공함을 향해 여덟 쌍의 다리를 내려찍으려는 괴수의 가슴팍을-
쩌어어억!
붉은 기운이 휘몰아치는 주먹과 발로, 깨끗하게 관통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