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589
◈ 589. [STAGE 35] 파리대왕 (5)
쿵, 쿠구궁…….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거센 진동을 일으키며 파리대왕의 몸이 도시 안으로 빨려 들어왔다.
막대한 질량의 거구가 뒤집어엎은 흙모래가 자욱한 먼지구름을 일으켰다.
마치 안개처럼 퍼져나가는 그 회갈색 먼지구름 속에서, 곳곳에 주저앉은 사람들은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멍하니 주위를 살폈다.
그리고,
쿵! 쿵! 쿵……!
그 먼지구름 속에서 파리대왕의 다리 수백 개가 일제히 땅을 짚으며, 무너져 있던 거구를 천천히 일으켰다.
“우와아악!”
“히이익……!”
“놈이 움직인다! 도망쳐!”
겁에 질린 사람들이 개미떼처럼 흩어졌다.
안 그래도 거대한 파리대왕의 몸은 먼지구름 속에서 실루엣만 비치는 터라 더욱 거대해 보였다.
그 실루엣을 이루는 다리 수백 개가 일시에 움직이자 더더욱 기괴해 보였다.
촤륵! 촤르르륵!
수백 개의 다리가 제각각 제멋대로 움직이며, 다리의 가동 범위 안에 들어온 불운한 사람들을 낚아챘다.
사로잡혀 끌려가며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아아!”
“살려줘, 살려줘! 죽고싶지 않아!”
“치, 침착해! 파리대왕은 납치만 하지 바로 죽이지는 않는다고 들었어!”
그동안 들은 정보를 토대로 한 병사가 소리쳤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의 얼굴에 일순 흐릿한 희망이 스쳤다.
“저, 정말이야?!”
“그래! 실제로 황자님께서 벌써 몇 명이나 구출해내셨대! 그러니까 우리도 침착하자고. 왜, 호랑이굴에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잖…….”
하지만,
꽈드드득-
“어? 어어? 어어어어?”
파리의 다리에 힘이 불끈 실리더니, 그 정보를 말한 병사의 몸을 높이 들었다가- 그대로 바닥에 패대기쳤다.
푸확-!
피떡이 된 병사가 즉사했다.
사로잡힌 다른 사람들의 얼굴에서 일제히 핏기가 가셨다.
“뭐, 뭐야…….”
“납치, 납치한다며…… 바로 죽이지 않는다며…… 이게 무슨……?”
그동안 파리대왕이 희생양들을 바로 죽이지 않고 납치한 이유는 간단하다.
악마종인 임프와 합쳐지면서 얻은 능력, ‘제물(Sacrifice)’.
희생양의 힘을 빼앗는 이 능력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산제물’로 사로잡힌 희생양을 ‘제단’에 공양하는 일련의 의식이 필요하다.
그래서 번거롭게 희생양들을 죽이지 않고 마비시켜서, 제단으로 기능하던 부화장 안으로 납치한 뒤 그곳에서 잡아먹은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부화장도 파괴당했고, 희생양을 먹어치울 구더기도 부족한 상황이니.
‘제물’로서 흡수할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인간들을 어렵게 살려둘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그저 찢어 죽이면 그만일 뿐……!
부오오오오-!
푹! 푸확! 콰드드득-!
파리대왕은 포효하며 다리의 가동 범위 안에 들어온 사람들을 단숨에 참살했다.
크로스로드 남쪽 성벽이 통째로 붕괴된 초유의 상황. 제아무리 베테랑인 영웅이나 병사도 제정신을 차리기 힘든 상황이었고, 피해는 삽시간에 불어났다.
“물러나-!”
“파리대왕의 공격 범위에서 후퇴해!”
가까스로 병사들이 파리대왕으로부터 물러났을 때에는, 이미 백 단위는 우습게 넘는 시체들이 주위에 잔뜩 쌓인 뒤였다.
그렇게 인간의 군대가 뒤로 물러나자,
쿠궁, 쿠구구궁…….
파리대왕은 수백 개의 다리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먼지구름 속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켜…… 마치 사람처럼 ‘앉았다’.
이 일련의 모습이 마치 자리에 앉기 전에 의자 위의 파리를 손을 흔들어 치워내는 인간 같다고, 병사들은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다.
척-
파리대왕은 참선이라도 하듯 가부좌를 틀고 앉고서는, 나머지 다리들은 가슴 앞에서 합장하듯 모으고서.
뒤이어 포효.
부오오오오오오……!
포효에 따라 먼지구름이 넓고 둥글게 퍼져나갔다. 그 울음소리는 크로스로드를 넘어, 대륙 남부 일대 전체로 퍼져나갈 만큼 깊고 웅혼했다.
그리고 그 울음소리가 닿은 모든 곳에서.
부우우웅!
부우우우웅!
조그마한 파리들부터, 야생에서 살아가던 거대 파리까지. 현세를 살아가던 파리라는 종족 모두가.
떼를 지어 날아들어 파리대왕을 향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 이건…….”
“이게 대체 무슨……?!”
병사들이 당혹한 신음을 흘렸다.
파리는 세상 어느 곳에나 있다.
게다가 때마침 계절은 늦여름. 파리가 들끓는 무더운 날씨.
도시뿐만 아니라, 일대의 산천초목 모든 곳에서…… 대왕의 부름을 받은 파리와 구더기들이 우글거리며 쏟아져 나와, 파리대왕을 향해 날고 기어 도달하기 시작했다.
인간 병사들은 하늘을 메우며 쏟아지는 파리들의 이 기괴한 모습을 어쩔 줄 모르고 지켜볼 뿐이었다.
***
《…….》
파리들의 집합의식 정신세계 속에서, 늙은 파리는 차분하게 명상에 잠겨 있었다.
‘전황은 좋지 않다.’
늙은 파리는 냉정하게 상황을 보았다.
알들은 대부분 파괴당했고, 부화장은 망가졌다. 날개는 불타 소실되었으며 파리대왕 자신에게 남은 마력도 그렇게 많지 않다.
인간의 기술을 빼앗은 것은 좋았으나, 인간의 기술은 인간의 체계 안에서 효율을 발휘하는 것.
계속해서 파리의 몸으로 인간의 배리어를 사용하고 인간의 마법을 쏟아내는 바람에 마력 소모가 격심했다.
하지만, 괜찮다.
그의 부품으로 사용할 수 있는 동족은 어디에나 있으니까.
‘징집한다.’
그는 가능한 넓게, 가능한 또렷하게, 동족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집결하라, 나의 동족이여.’
부오오오오오-!
한 번 이 목소리를 들은 모든 파리들은 강제로 집합의식에 귀속되었다.
파리대왕은 고대에서부터 되살아난 위대한 선조였으며 파리들의 종족신이었다. 이 징집령을 거절할 수 있는 자는 파리 중에서 존재하지 않았다.
‘현세를 살아가는 모든 동족의 영(靈)과 육(肉)을 징발한다.’
명령은 강제적이었고 무자비했으며 또한 가차 없었다.
부우우우우웅!
징집된 파리들은 제 영혼과 육신을 파리대왕의 상처를 복구하는 데에 사용하고, 또한 텅 빈 부화장에 알들을 차곡차곡 쌓기 시작했다.
군집과는 거리가 먼 제각각의 삶을 살아가던 파리들이, 마치 처음부터 그래왔다는 것처럼 질서정연하게 파리대왕이라는 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제 목숨을 던졌다.
물론, 모든 파리들이 말을 듣는 것은 아니었다. 늘 그렇듯 반항하는 이들은 존재했다.
그리고 그런 파리들은 모조리,
콰득!
정신세계 안에서 늙은 파리에게 영혼이 붙들린 뒤, 머리째 뜯어먹혔다.
《두 번 실수하지 않는다.》
동족의 머리를 뜯어 삼키며 늙은 파리가 으르렁댔다.
전생에, 파리대왕은 자신을 이루는 모든 구성원과 모든 지혜를 나누었다. 함께 사고하고, 함께 나아가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 결과, 부하 파리들은 역모를 일으켰다.
진화를 거듭한 끝에 지나치게 지능이 고도화된 파리들은 더 이상 공동체를 위해 움직이지 않았고, 각자의 이해타산을 따지며 갈라섰다.
파리대왕의 제국은 갈기갈기 찢겼고, 파리들은 지리멸렬한 내분을 반복하다 결국 자멸하고 말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바꾸었다.
두 번째 삶을 부여받자마자, 늙은 파리는 자신에게 반발하는 파리들을 모두 숙청했다.
모조리 머리를 뜯어 삼키고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빈 껍질만 남겼다.
지혜를 독점하고, 진화를 선별했다. 파리라는 종족 자체를 자신의 손아귀 아래 두고 쥐고 흔들었다.
‘우리 종족을 위해 죽어라.’
이제 그 산하의 모든 파리들은 그가 내리는 명령에 어떤 반항도 없이 움직이게 되었다.
‘나를 위해, 죽어라!’
탁-
늙은 파리는 바닥을 굴러다니던 왕홀을 짚고 바닥을 쳤다.
파리라는 종(種)의 미래를 열기 위해서.
이 세계를 진정한 낙원으로 만들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희생을 안고 가는 것뿐이다. 자신도, 파리라는 종족도…….
《내 종족을 구원할 수 있다면, 이 한 몸 기꺼이 지옥에 떨어지리라.》
추락 과정에서 박살 난 파리대왕의 온몸이 점차 회복되기 시작했다.
새로이 공급된 파리들이 차곡차곡 부서진 골격을 메우고 부상을 치유했다. 불타버린 날개도 천천히 재생되기 시작했다.
인간들의 대응은, 아직도 늦다.
성벽이 무너지면서 일어난 부연 먼지를 온몸에 뒤집어쓴 채로 다급하게 병사들이 달려와 다시금 파리대왕을 포위했다.
그러나 그 군진은 얕았고, 장비 수준은 성벽 위의 그것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늙은 파리는 여유롭게 웃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제법 노력이 가상하게도 잘 싸웠지만, 결국 인간들은 아무리 잘 뭉쳐도 자유의지를 지닌 개인들의 집합일 뿐.
그 의지는 온전히 하나가 될 수 없다.
단 한 존재의 의지 아래 모든 종족이 완벽하게 단결한 자신의 종족, 파리를 이겨낼 수는 없는 노릇인 것이다.
《……?》
그때였다.
《뭐야, 또…….》
틀림없이, 모든 분란종자들을 깨끗하게 소화시켰을 뱃속에서,
괴수는 흐릿한 이물감을 느꼈다.
늙은 파리는 의아하게 자신의 배를 내려다보았다.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 감각은?
이 일말의 불안은……?
***
“저게 뭐야, 미친…….”
파리대왕의 본체로부터 조금 떨어진 도심. 영주 저택 뜰 앞.
루카스의 지시로, 백야를 복제한 파리 강시들을 준비한 채 대기중이던 마법사들은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부우웅-
부우우우우웅-
세계의 모든 곳에서 파리들이 쏟아져 오는 것만 같다.
파리대왕의 부름에 응한 현세의 파리들이 하늘을 시커멓게 메우며 파리대왕을 향해 몰려들었다.
이 흉악하고도 세기말적인 광경 앞에서 마법사들은 어쩔 줄 모르고 멍하니 주위만 둘러보았다.
그때였다.
지잉!
지이잉!
영주 저택의 뜰에 누워 있던, 죽은 듯 대기 중이던 강시 파리들의 눈에 일제히 빛이 들어오더니, 모두가 일제히 날개를 움직여 허공으로 떠올랐다.
마법사들이 기겁했다.
“뭐야?! 누가 강시 주술 마무리했어?!”
“아, 아무도 안 그랬습니다! 강시들이 제멋대로……!”
“막아! 당장 멈춰야 해! 모든 작업 강제 중지시켜!”
“아, 안 됩니다! 막을 수 없습니다! 이미 저희 명령을 듣지 않습니다……!”
부우우웅-
날아오른 강시 파리 수십 마리는 허공에서 편대를 이루더니, 마법사들을 향해 홱 쏘아졌다.
“으아아악!”
“사람 살려!”
마법사들은 바닥을 구르며 비명을 질렀지만, 처음부터 강시 파리들의 공격 대상은 이들이 아니었다.
원본 백야가 들어 있는 마법 기계 장치였다.
파치치칙-
펑!
파리들에게 난도질 당한 기계 장치가 박살이 나 터졌다.
자신들의 원본이라 할 수 있는 존재를 터뜨려 죽인 뒤, 강시 파리 수십 체는 허공으로 둥실 떠올랐다.
그리고 다른 파리들과 마찬가지로 질서정연하게 하늘을 건너 파리대왕을 향해 날아갔다.
“…….”
멀어지는 그 모습을 마법사들은 멍하니 바라보았다.
***
파리대왕의 집합의식 정신세계. 그 속 어딘가.
《나를 소화했다고……? 하하, 웃기지 마,》
상반신과 팔 한쪽, 머리 절반만 남은 몰골로, 백야는 비척거리며 바닥을 기었다.
《나 마술대제야, 마술대제…… 고작 파리 따위에게 당할 것 같냐고…….》
그 늙은 파리에 의해 정신이 갈기갈기 찢긴 뒤 놈에게 삼켜졌지만.
놈의 뱃속이라 추측되는 이 정신세계의 밑바닥에서, 찢어진 스스로를 찾아서 기우고 하나로 합쳐서 백야는 이만큼의 형태를 되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꼴로도 백야는 반격을 꾀하고 있었다.
‘애쉬의 부하 기사놈…… 그 금발 개자식이 나를 더 복제할 준비를 해뒀었지.’
그 정도는 진작 눈치 챘다. 아주 자신을 복제 탄약처럼 쏘아댈 준비를 하고 있었지.
그렇다면 이용해주겠다.
복제된 자신의 의식을 모조리 이 파리대왕에게 쏟아 부어서라도, 기어코 파리대왕의 제어권을 탈취하고야 말겠다.
《어차피 이딴 파리에게 패배하고 영원히 잡아먹히는 것보다야, 무슨 수를 써서든 파리대왕의 제어권을 빼앗을 수 있다면…….》
반격의 기회를 찾아내고, 자신을 이런 지옥에 밀어 넣은 애쉬에게 복수할 수만 있다면.
못할 게 무어랴? 어차피 더 잃을 것도 없는 싸움인데.
그래서 파리대왕이 일대의 모든 파리들에게 징집령을 전달하는 그때, 백야는 자신의 신호 또한 슬쩍 실어 보냈다.
오직 자신만이 감지할 수 있는 고유의 파장으로…….
그 금발 기사 개자식이 제대로 자신의 복제를 더 준비해뒀다면, 제대로 먹혔을 것이다. 또 다른 자신들이 이곳에 쳐들어와줄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반격의 때를 기다리는 것뿐.
《그나저나, 여긴 어디야……?》
백야는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폈다.
파리대왕 집합의식의 밑바닥은 어두컴컴했다. 냄새 같은 게 날 리가 없건만, 축축하고 역겨운 불쾌한 공기가 감도는 것만 같았다.
이 괴수의 제어권만 빼앗으면, 집합의식이고 나발이고 깡그리 불태우고 시작하겠다고 백야가 속으로 생각하는 그때였다.
《어디겠슴까?》
갑자기.
이 밑바닥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곳은 그 늙은 파리가 먹고 소화한 ‘찌꺼기’들이 모여 쌓이는 장소.》
기겁한 백야는 그쪽을 홱 돌아보았다.
어두컴컴한,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그곳에…… 무언가의 형체가 보였다.
《의식 아래의 바닥, 진짜 음흉한 속내가 고이는…… 심층의식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그것은 옥좌였다.
늙은 파리에게 잡아먹힌 파리들의 머리로 만들어진.
오직 뜯어먹힌 머리로만 쌓아서 세워진, 해골 옥좌.
그곳에 왕처럼 걸터앉은 어떤 존재가, 가벼운 말투와 상반되는 진중한 목소리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저는 간단하게 퇴적지라고 부르고 있슴다.》
삼킬 침도 없건만,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키는 시늉을 한 백야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너는…… 누구야? 너는 뭐야?》
《……글쎄요. 이름 같은 건 잊어버렸슴다. 그딴 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으니까.》
존재는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
《다만, 명확하게 기억하는 게 있슴다.》
천천히 옥좌에서 일어나는 존재의 머리 위에는, 휘황찬란하게 어둠을 뿜어내는 거대한 뿔이 돋아나 있었다.
《내가 무엇을 멸망시켜야 하는지.》
존재는 웃었다.
《그리고, 내가 누구를 죽여야 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