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588
◈ 588. [STAGE 35] 파리대왕 (4)
콰과과과광-!
파리대왕의 몸 안에서부터 거대한 폭발이 일었다.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배리어가 켜졌고, 제로니모는 통로 내부에서부터 쏟아져 나온 충격파와 열기에 휩쓸려 파리대왕의 몸 바깥으로 튕겨 나왔다.
빙글빙글 돌며 균형을 잡지 못하는 비공함 안에서, 나는 필사적으로 파리대왕의 몸에 붙은 불길을 노려보았다.
번아웃이 남은 생을 모조리 그러모아 지핀 폭발은 엄청난 규모였다.
타고난 마력이 폭파 속성인 번아웃의 패시브 궁극기는 [불꽃놀이].
그 효과는 자신이 죽인 상대의 시체가 즉시 폭발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번아웃이 자폭으로 터뜨린 폭발은 부화장 내부의 괴수들을 휩쓸었고, 놈들은 죽으면서 연쇄 폭발.
서로가 서로를 터뜨려 죽이며, 막대한 규모의 불길을 일으킨 것이다.
부화장 내부에서 막 변태를 끝내려던 엄청난 숫자의 변종 파리들은 이 일격으로 대부분 폭사했을 것이다.
훌륭한 전과였다. 훌륭하다는 말로 끝낼 수 없을 만큼 대단한 전과였다.
하지만…….
“흐, 흐윽, 흐끅…….”
내 옆에서 입을 틀어막고 울음소리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애쓰는 바디백을 보자, 속이 무너져내릴 것만 같았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괴수전선은 결정적인 순간 희생을 자처한 용사들의 영웅적인 전과에 기대어 생존해 왔다. 나는 그들의 유지를 기리며, 잇고, 그렇게 여기까지 왔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희생을, 어쩌면 나는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알맞게 죽을 사람을 데려가서. 그들을 죽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야 물론, 이런 것을 따질 만큼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다. 하지만.
지휘관으로서, 나는…….
‘나는…….’
그때 창밖을 주시하던 데미안이 외쳤다.
“파리대왕이 완전히 추락합니다!”
가까스로 균형을 되찾은 제로니모의 창 바깥으로, 길게 연기를 뿜으며 지면에 처박히는 파리대왕의 모습이 보였다.
배 끝이 땅에 닿아, 평야의 흙모래를 헤치며 앞으로 미끄러지던 파리대왕의 몸이 기우뚱하더니 앞으로 고꾸라졌다.
쿠구구궁……!
어마어마한 모래먼지와 뭉게구름을 사방으로 흩뿌리며 파리대왕의 머리가 앞으로 처박혔다.
그러고도 날아들던 속도 때문에 놈은 계속해서 앞으로 미끄러졌다.
“해냈어……!”
“작전, 성공입니다…….”
“크흑! 제기랄……!”
모두 적 군단장의 추락에 안도하면서도, 번아웃의 죽음에 침통해 했다. 우리는 작전 성공 상황인데도 결코 마냥 기뻐하지 못했다.
직후, 켈리베이가 푹 잠긴 목소리로 내뱉었다.
“……안 좋은 소식이 하나 더 있다.”
불길함을 느낀 내가 물었다.
“안 좋은 소식이라니요?”
“우리도 추락한다.”
“……!”
“출격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무리한 움직임뿐이었잖냐. 제로니모의 선체에 피로가 누적됐고…….”
켈리베이가 바쁘게 계기판을 만지며 말했다.
“방금 폭발에 휘말렸을 때 마력로에 결정적 이상이 생긴 모양이다……. 출력이 저하되고 있어.”
삽시간에 고도가 낮아졌다. 다시금 빙글빙글 돌기 시작한 비공함 내부가 거세게 흔들렸고, 모두가 비명을 질렀다.
켈리베이가 꽥 고함을 질렀다.
“꽉 잡아! 불시착한다-!”
다음 순간, 제로니모의 선체가 흙바닥에 처박혔다.
콰과과광……!
***
성벽 위에서는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덮쳐온 일반 거대 파리들은 병사들 또한 다소 고전하더라도 해치울 수 있었지만, 문제는 변종 파리였다.
배리어를 갖추고 나타난 이 변종 파리들은 병사들의 공격수단 대부분을 무효화 해버렸기에, 가까스로 백병전 부대가 방패를 들고 막아내는 게 한계였다.
그마저도 놈들의 날카로운 앞발과 뾰족한 꼬리침에 방패가 찢어지고 꿰뚫리기 일쑤였다.
“아악!”
“놈들을 막아내야 한…… 크헉!”
곳곳에서 사상자가 발생했다.
에반젤린이 궁극기 [최후의 요새]를 유지하고 있어, 그 효과를 받는 병사들은 어떻게든 버티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빌어먹을 비행괴수…….”
에반젤린이 치를 떨었다.
괴수를 상대로 이곳 전선이 갖는 압도적 이점- 성벽이라는 장점이 비행괴수 앞에서는 모조리 무력화되고 있었다.
놈들은 수월하게 성벽 위로 파고들었고, 압도적 방어력의 배리어와 흉악한 공격수단까지 보유하고 있었다.
‘뭐 이딴 적이 다 있어?’
게다가, 그 뒤에서 시시각각 가까워오는 파리대왕의 본체. 저 거대한 사악(邪惡).
모든 것이 절망스러운 전황이었다.
하지만 에반젤린이 이번 전투에서 해야 할 일은 절망이 아니었다.
사령관 대리로서, 또한 변경백작위 계승자로서…… 전선 전체를 지휘하고,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우며, 최후까지 싸워 지키는 것이 그녀의 역할이었다.
“우리야-아아아앗!”
성벽 끝에 발을 걸친 에반젤린이 포효했다.
“들어라, 벌레들아! 내 이름은 에반젤린 크로스!”
방패기사들의 전매특허 기술인 [전장의 포효]였다.
에반젤린의 고함을 들은 변종 파리들이 일제히 그녀를 향해 눈을 돌렸다.
“변경백작위 계승자이며, 이 도시의 차기 영주 내정자시다!”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벌레들을 보며 에반젤린이 방패를 치켜들었다.
“당연히 해충구제사업도 내가 할 일이라고-!”
카가가가각-!
벌레들의 흉악한 공격이 에반젤린의 방패 위로 쉼 없이 떨어졌다.
[대미지 세이브]로 그 공격을 받아낸 에반젤린은 뒤이어 창끝에 그 대미지를 모아서, [대미지 페이백]으로 반격했다.투학-!
그러자 파리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배리어로 대응했다. 에반젤린의 [대미지 페이백]을 거뜬하게 받아냈다.
하지만, 에반젤린도 기다렸다.
가까워진 놈들이 저 배리어를 쓰는 순간을!
타앗!
그대로 파리들을 향해 뛰어오른 에반젤린의 입가에 악동 같은 미소가 걸렸다.
“그 배리어 말이야, 아까 닿아보니까 따끔거리던데!”
그리고- 자신의 방패를 파리들의 배리어에 갖다 댔다.
“그러니까 이 배리어도 내가 받아들이기에 따라서는 ‘공격’이지, 그렇지?!”
에반젤린의 [대미지 세이브]는 상대의 공격을 방패로 흡수하는 기술이다.
물리 공격은 순수한 대미지로, 마법 공격은 속성별 다른 에너지로 고스란히 저장되는 메커니즘을 가졌다.
그리고 파리들의 배리어는 외부에 닿는 모든 것을 반발하며 밀어내는 방어막.
배리어에 닿은 방패를 거센 힘으로 밀어내려 했고, 에반젤린은 그 ‘공격’을 고스란히 흡수했다.
촤아아악!
다음 순간, 파리의 배리어가 깨끗하게 벗겨졌다. 에반젤린이 쾌재를 불렀다.
“이게 되네!”
에반젤린의 창끝이 다시금 빛나기 시작했다. 조금 전에 파리로부터 빼앗은 배리어가 마치 덧댄 창날처럼 푸르게 빛나며 창 위에 씌워졌다.
“으랏차차!”
[대미지 페이백]!콰과광!
창끝에 꿰인 파리가 터져나갔다.
방패로 배리어를 빨아들이고, 배리어가 휘감긴 창으로 파리 괴수들의 멱을 따버린다.
에반젤린은 이 망할 괴수들의 배리어를 무효화할 방법을 찾아내자 기뻐서 환호성을 질렀다.
“좋았어! 너네 이제 다 죽었다, 진짜!”
땅에 착지한 에반젤린은 칭찬해달라는 것처럼 주위를 휘휘 둘러보았다.
그리고 발견했다.
츠칵! 츠칵! 츠카아악!
군청색 머리칼에 퀭한 눈을 한 하녀복 차림의 여검사가, 푸르게 빛나는 단도를 뽑아 들고 파리들을 도륙하는 장면을.
엘리제였다. 그녀는 왼손에 들린 푸른 단도로 괴수들의 배리어를 수술하듯 섬세하게 갈라버린 다음, 그 틈으로 검관에서 꺼낸 칼을 아무 것이나 꺼내어 투척했다.
푸확! 푸확-!
파리들이 연거푸 쓰러졌다. 이 엄청난 움직임을 보며 에반젤린이 입을 떡 벌렸다.
“엘리제 언니, 그 칼은 뭐예요?!”
엘리제는 빙글 돌아 물러서서 에반젤린의 옆에 서더니, 호흡을 정리하며 대답했다.
“……[배리어 커터]. 고대에 마법사들을 수술할 때 쓰던 메스라던가 뭐라던가.”
“우와, 완전 편해 보이네!”
그 옆에서는 성전기사단이 전투 중이었다.
붉은 사제들은 대부분 톤파나 철퇴 등의 둔기를 착용한 상태였는데, 단장인 로제타만 철 채찍을 휘두르고 있었다.
신묘하게도 이들이 배리어 위를 타격할 때마다 배리어 안쪽의 파리들이 몸을 뒤틀며 괴로워하더니, 오래 버티지 못하고 퍽퍽 상처를 입고는 쓰러져 죽었다.
에반젤린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쪽도 편해 보이네! 그건 또 어떻게 한 거예요?!”
사뿐하게 채찍을 거둬들인 로제타가 답했다.
“내가중수법(內家重手法)…… 이라고 할까요, 침투경(浸透勁)의 원리를 응용한 것인데.”
“뭔 소리야 그건 또!”
“아무리 외부에 튼튼한 갑옷을 입고 있어도 강한 진동을 주면 내부는 엉망진창이 되는…… 뭐 그런 건데. 쉽게 말해서 배리어를 건너뛰고 신성력으로 때리는 테크닉입니다.”
“아니 진짜 쉽게 말하시네!”
미간을 곱게 찌푸린 로제타가 품에서 수첩을 꺼내더니 무어라 썼다.
“에반젤린 크로스, 말꼬리 잡기, 이단 포인트 10점…….”
“어우, 그놈의 이단 포인트! 나중에 헌금으로 갚을 테니까 괴수나 잡아욧!”
“……크흠. 앞으로 좋은 영주가 되실 것 같군요, 에반젤린 양.”
로제타가 수첩을 품에 집어넣었다. 에반젤린은 기가 막혀서 허허 웃었다.
그때였다.
화아아악-
옆쪽에서 화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성벽 위의 모든 영웅과 병사들이 그쪽을 보았다.
“후우우우…….”
드래곤 레이디, 더스크 브링어였다.
그녀는 대체 무슨 수를 쓴 것인지는 몰라도, 마력으로 열 마리가 넘는 변종 파리 괴수들을 강제로 붙든 뒤, 놈들이 함께 펼친 배리어를 붙잡고 바짝 달라붙어서는…….
“귀찮게- 하지 말란 말이다아아아!”
은빛 왕관 아래로 새카만 머리칼을 뒤로 휘날리며, 영거리 브레스를 쏟아넣었다.
쩌저저저적!
브레스를 막으며 붉게 달아오른 배리어가 오래 버티지 못하고 녹아내렸고, 열 마리가 넘는 변종 파리들이 한꺼번에 불타 죽었다.
“…….”
“…….”
“…….”
기술 및 장비, 그리고 내가중수권 등의 오의(奧義)까지 총동원해서 싸우던 영웅들의 얼굴이 뜨악하게 굳었다.
“후우!”
허공에서 공중제비하며 성벽 위로 되돌아온 더스크 브링어가 뾰족한 이빨을 드러내며 말했다.
“이놈들의 배리어는 출력 한계가 명확하다. 화력을 집중해! 그러면 오래 못 버틸 거다.”
“아, 알겠습니다, 대공!”
에반젤린이 지휘를 내렸고, 대포와 발리스타, 아티팩트가 파리들을 하나씩 조준하고 화력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더스크 브링어의 말대로, 놈들의 배리어는 견고했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화력을 집중시키자 파리들은 하나씩 쓰러졌다.
그렇게 전황이 회복되려는 추세를 보일 때쯤…….
“파, 파리대왕이!”
척후병이 고래고래 소리쳤다.
“파리대왕이 추락합니다-!”
“……!”
모두 놀라서 그쪽을 보자, 정말이었다.
파리대왕은 어느새 날개가 모두 불타버려 소실된 채로, 등 뒤에서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며 바닥으로 쓰러지고 있었다.
성벽 위의 모두가 환호했다. 더스크 브링어가 아이처럼 팔짝팔짝 뛰어오르며 손뼉을 쳤다.
“애쉬 녀석, 해낸 건가! 우오오오 믿고 있었다고!”
“진짜로 추락시키다니, 정말 대단…….”
말하다 말고 에반젤린의 얼굴이 굳었다.
“……그런데 저거, 성벽에 닿기 전에 멈출까요?”
“?!”
쿠구구구구구-!
애초에 무시무시한 속도로 하늘을 날아오던 파리대왕이었다.
양력을 잃어 땅에 추락하고, 이제 거대한 머리마저 흙바닥에 처박은 참이었지만.
여전히 추력(推力)이 남아 있었다. 파리대왕의 거구는 주위로 무지막지한 흙먼지를 뿌리며 성벽을 향해 미끄러져왔다.
“……막아.”
멍하니 중얼거린 에반젤린이 직후 고래고래 소리쳤다.
“막아야 해요! 모든 화력, 파리대왕에게 집중-!”
즉시 대포와 발리스타, 아티팩트는 물론이고.
대기 중이던 마법사들의 마법, 각종 이능과 주술, 더스크 브링어의 혼신을 다한 브레스까지 모든 것이 파리대왕을 향해 쏟아졌다.
쾅! 콰과과광! 쿠과광……!
하지만, 어림도 없었다.
파리대왕은 정수리부터 온몸이 으깨지고 박살 나면서도 여력을 죽이지 않고 그대로 몸으로 성벽을 향해 밀고 들어왔다.
저지가 불가능함을 깨달은 에반젤린이 있는 힘껏 고함을 질렀다.
“전원, 성벽 아래로-! 피해요-!”
병사와 마법사, 연금술사와 사제들이 다급하게 대피했다.
성벽 중앙부에 있던 이들은 성벽 아래로 다급하게 내려가거나, 아니면 좌우로 산개해 옆의 성벽으로 달려 도망쳤다.
그리고-
충돌.
쿠과과과광……!
미끄러지던 파리대왕의 거구가 성벽에 닿았다.
그 압도적인 질량은 제국 건축기술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요새도시 크로스로드의 남문을 으스러뜨리고, 남쪽 성벽을 중앙부터 모조리 붕괴시키며 안으로 파고들었다.
쿠궁, 쿠구구궁…….
그리고 마침내, 파리대왕의 전진이 멈췄을 무렵에는.
그 거대한 몸이 성벽을 꿰뚫고 도시 안으로 한참을 파고든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