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617
◈ 617. [Side Story] 마지막 축제 (7)
“백 년 전. 네 현조부 되시는 조상님께서, 더스크 브링어 대공에게 부탁하셨지. 절대로 지지 않는 병력이 필요하다고.”
황제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서 대공은 당대의 마법과 주술, 저주와 금기, 그리고 자신의 용혈까지 총 집약해…… 황제친위대인 글로리 나이츠를 불사(不死)의 군대로 만들었다.”
나는 어깨를 움찔 떨었다. 더스크 브링어 대공이……?
“그리하여 지난 백 년간 글로리 나이츠는 황제를, 그리고 제국을 지켜냈지. 이후 기사들은 끊임없이 교체되었고 브링어 대공마저 단장직에서 물러났지만, 그 저주와 금술은 대를 이어 내려왔다.”
나는 헤카테의 몸을 감싼, 마법 문자가 새겨진 붕대를 떠올렸다.
그 낡은 붕대가…… 저주와 금술인 걸까.
“글로리 나이츠로 선별된 기사들은, 서임 직후 한 번 죽음을 맞는다. 이미 한 번 죽어야 다시 죽지 못할 테니까.”
“죽인……다고요?”
“그래. 그리고 죽은 몸과 영혼에 저주를 걸어, 강제로 ‘고정’시킨다. 어떤 끔찍한 상처를 입어도 몸은 이때의 형태를 복구해내고, 영혼은 떠나지 못하고 그 몸에 남지.”
입을 벌리고 이야기를 듣고만 있는 내게 황제는 계속했다.
“하지만. 몸은 되살아날지라도 영혼은 깎여나간다. 빠르든, 늦든, 끝은 찾아온다. 그래서 계속해서 후임을 찾아 세대를 교체하는 것이고.”
“…….”
“그리고 현세대의 글로리 나이츠 5인은 내가 매우 험하게 굴렸지.”
황제는 쓰게 웃었다.
“그동안 내가 어느 전장에 있었느냐?”
“……영계에서, 이신들과 싸우셨지요.”
“그래.”
설마.
내 추측에 힘을 실어주듯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전투에 글로리 나이츠도 함께했다.”
“……!”
“영계의 저 밑바닥에서 이종족의 신들과 직접 싸웠다. 아무리 글로리 나이츠가 재능 있는 기사들이라 해도, 초월자는 아니다. 그런데도 저들 다섯은 죽고 되살아나기를 끊임없이 반복하며 이신들과 검을 맞댔으니, 순식간에 소모되었지.”
황제는 그때를 회상하듯 지그시 눈을 감았다.
“현 단장 헤카테는 그래서 망가졌다. 제국 역사상 손에 꼽히는 검의 천재지만, 영혼이 마모되는 것은 다른 일이니까.”
“…….”
“이미 2년 전에 이미 가동 한계가 왔고 진작 은퇴했어야 했다. 실제로, 2년 전 당시 아카데미 생도 중에서 가장 재능 있는 이를 조기 졸업까지 시키며 후임으로 대기시켜 두었다.”
나는 흠칫 놀랐다. 설마.
“그 후임 후보가, 에반젤린……?!”
“그래. 크로스 변경백작 영애, 에반젤린 크로스. 그녀 또한 글로리 나이츠 후보였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그래서 이번 회차의 에반젤린이 본래 게임보다 빠르게 조기 졸업을 하게 된 거였나……!
“하지만 마지막 순간 헤카테가 거부했다.”
황제는 의자에 묻은 몸을 뒤로 젖혔다.
“자신의 후임으로 선별된 기사가 열여섯 살이라는 말을 듣더니, 나에게 간청했다. 최대한 더 버텨보겠다더군.”
“…….”
“그리고…… 사고가 일어났다.”
“사고라니요?”
“페르난데스 말이다.”
아.
오랜만에 듣는 둘째 형의 이름에 나는 작게 입을 벌렸다. 그러고 보니, 그때쯤에…….
“녀석이 나를 계략에 빠뜨렸고, 나와 글로리 나이츠가 영계에 들어선 동안 에버블랙의 연결을 끊어버렸지.”
“맙소사.”
이 망할 둘째 형, 이게 이렇게 이어진다고?
나는 영계에서 황제와 만났던 때를 떠올렸다.
그때 영계에 갇힌 것이, 황제뿐만 아니라 친위기사단 또한 함께였다니.
“에버블랙과의 연결이 끊긴 나는 등대의 빛을 잃었고, 현세로 되돌아오지 못했다. 글로리 나이츠 또한 마찬가지. 우리는 뿔뿔이 흩어졌고, 기사들은 영계의 심해 아래로 표류했다.”
“…….”
“내가 현실로 귀환하고 나서 한참 뒤에야, 가까스로 그들을 구조해냈지만…… 이미 늦었지. 저들 5인은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게다가, 너무 오래 영계에 노출된 탓에 저주와 금술마저 손상되었다. 이제 후임에게 저주를 잇게 할 수조차 없겠지.”
황제는 옅은 한숨을 토해냈다.
“천만다행으로 이신과의 전투가 멎었고, 그래서…… 저 애처로운 나의 기사들에게, 쓰러져 죽을 자리를 고르게 했다. 그곳이 이 크로스로드다.”
“…….”
“네가 보낸 포고문을 보고 헤카테가 요청하더군. 마지막으로 축제에 가보고 싶다고. 죽기 전에 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고.”
그래서…….
평생 입지 않던 드레스에, 유치하기까지 한 붉은색 메리 제인 슈즈까지 신고서.
한껏 단장하고 옛 동창들을 찾아온 것이다.
“저들은 제국의 그림자다. 저주를 받아 두 번 다시 햇볕을 받지 못하고, 평범한 사람처럼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살 수도 없다. 그저 제국과 황제를 위해 제 삶을 온전히 불사른, 가엾고 딱한 자들이다.”
황제는 천천히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들을 네게 맡기면서, 짐이 너에게 무엇을 바라느냐고?”
나는 압도당한 채 아버지를 올려다보았다.
“뻔하지 않느냐. 황제로서, 아비 된 자가 아들에게 내리는 것이란 단 하나.”
축제가 도래한 도시의 오후 햇살을 등지고, 어두운 그림자에 파묻힌 얼굴로…….
황제는 맹수처럼 으르렁댔다.
“시련뿐이다.”
“……!”
“아들아. 예전에 너는 말했지. 괴물을 죽이고 사람을 구하겠노라고. 그리고 짐은 너에게 물었다. 네가 지키고자 하는 사람의 정의는 무엇이냐고.”
황제와 뉴 테라의 황궁에서 나누었던 문답이 떠올랐다.
“그리고 너는 세계수호전선을 창설하며 그 질문에 답했다. 서로 대화하고 이해하려는 모든 존재가, 바로 네가 구하려는 사람이라고.”
그림자 속에서, 황제의 새카만 두 눈이…… 흐릿한 황금빛을 뿜어냈다.
“그렇다면 나는 여기서 한 번 더 물으마.”
“…….”
“대화하고 이해하려는 그 존재가, 씻어낼 수 없는 악(惡)을 품고 있다고 해도, 그래도 너는 포용할 것이냐? 너는 그런 상대마저 끌어안고 지킬 것이냐?”
나는 굳은 채로 움직이지 못했다.
“글로리 나이츠는 너무도 나라를 사랑해서 제 모든 것을 갖다 바친 충직한 애국자들이다. 하지만 제국의 애국자라는 것은, 적국의 원수라는 말과 무엇이 다르겠느냐?”
“…….”
“건국으로부터 지금까지, 글로리 나이츠는 황제의 명령이라면 단 한 번도 거스르지 않고 휘둘러진 검이었다. 저 칼날이 베어낸 무고한 목숨이 대체 몇이겠느냐?”
황제는 계속해서 쏟아냈다.
“네가 경애하는 브링어 대공이 손수 만들어낸 그림자가 바로 저들 글로리 나이츠다. 대공은 가련하고 슬픈 존재지만, 그녀가 품은 어둠은 그녀가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짙다. 너는 대공의 추악한 일면마저도 외면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
“그리고 짐 또한 천하제일의 악인이지. 네게 살갑게 군다고, 너를 위해 모든 것을 안배해둔다고 해서- 짐을 선인(善人)으로 여기지는 않을 것 아니냐.”
황제는 자신이 저지른 죄를 또박또박 토해냈다.
“짐은 무고한 시민들에게 누명을 뒤집어씌워 형장의 이슬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 시체와 영혼을 태워 내 나라를 위한 땔감으로 사용했다. 또한 숱한 이웃나라를 내 속으로 직접 짓뭉갰다. 그 과정에서 대체 얼마나 되는 죄 없는 피가 흘렀으며, 또 무수한 눈물이 흘렀느냐?”
“…….”
“짐이 일군 어둠은 모두 짐이 끌어안고 죽을 것이다. 짐은 너를 흠결 없는 황제로 만들고 싶으니까. 이미 더럽혀진 내 손으로 치울 수 있는 것은 모조리 치워낼 것이다. 그러나!”
황제는 나를 향해 천천히 몸을 숙였다. 가까워진 그의 두 눈에서 거스를 수 없는 위세가 뿜어져 나왔다.
“세계의 어둠은 깊다.”
“……!”
“네가 상상하는 것보다, 네가 파악하는 것보다, 언제나 더욱 더 깊다.”
황제가 두 팔을 좌우로 펼쳤다.
“제국의 그림자가 어디 글로리 나이츠뿐이겠느냐? 모든 기사, 모든 마법사, 모든 병사, 모든 관료와 신하와 애국자들이 이 피칠갑 된 죄 지은 대지 위에 서 있도다.”
“…….”
“네가 사랑하는 너의 사람들을 보아라. 세계 곳곳에서 모인, 너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죽을 수 있는 충성스러운 용사들을 보란 말이다. 그들은 마냥 죄 없고 결백한 이들이냐?”
나는 이를 악물었다.
“설혹 그런 이들이 있다손 쳐도, 그들마저도 너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손에 피를 묻힐 것이다. 너의 대의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모두가 기꺼이 어둠을 뒤집어쓸 것이다.”
“…….”
“그러나 미명(美名)은 결국 명분일 뿐. 이유를 막론하고, 관점을 조금만 달리하면, 모든 인간은 한 발짝씩 악의 구렁텅이에 발끝을 집어넣고 있다.”
황제가 조용히 포효했다.
“진실로, 진실로- 너는 그것마저 끌어안겠느냐? 그 모든 악의를, 이 세계의 어둠을, 진정으로 네가 감당할 수 있겠느냐?”
“…….”
“이 모든 것을 끌어안고 보듬을 용기가, 참으로 네 안에 있느냐? 나의 순수한 아들아. ‘세계’라는 이름의 이 끓어오르는 악의 구렁텅이에서, 네가 되고자 하는 왕의 모습은 결국 무엇이냐는 말이다.”
일순 침묵이 흘렀다.
가까스로 호흡을 가다듬은 뒤, 나는 겨우 물었다.
“아바마마께서는…… 어째서 이런 시련을 제게 내리십니까?”
“엄밀히 말해서, 이것은 내가 내린 시련이 아니다.”
황제가 피식 웃었다.
“네가 선택한 시련이지. 나는 그것을 일깨워준 것뿐.”
“……!”
“무구한 선을 추구한 끝에 수라도(修羅道)로 걸어 들어가고 있는 것은 너 자신이다. 나는 너의 위태로운 순수 대신에, 적당한 타협점을 제시해주려는 것뿐이다.”
황제가 속삭였다.
“말했지 않느냐. 나는 너를 제국의 황제로 만들려 한다고.”
“…….”
“지금은 네가 세계를 지키는 전선을 지휘하고 있으니, 그런 허울 좋은 깃발을 휘두를 수 있겠지. 하지만 그 이후에는? 언제까지고 그렇게 전 세계를 포용하려는 이상을 휘두를 수 있겠느냐?”
떨리는 눈으로 마주보는 나를 향해, 황제는 자신의 ‘타협점’을 제시했다.
“세계를 잘라내라.”
“……!”
“모든 것을 끌어안으려 할 필요는 없다. 너의 세계를, 너의 사람을, 네가 감당할 수 있는 알맞은 양의 악의를, 그만큼만을 포용해라.”
황제가 천천히 몸을 물리며 고개를 옆으로 젖혔다. 비로소 햇살을 맞은 그의 신화적인 얼굴에 사람다운 표정이 스며들었다.
“그것이 내가 바라는 정답이다.”
“그러지 못한다면요?”
“알지 않느냐.”
황제는 피식 웃으며 남쪽으로 턱짓했다.
“어떤 이상을 품었든, 과욕을 부린 왕들의 최후란 하나뿐.”
그 남쪽의 끝에는-
검은 호수 아래, 가라앉은 고대의 왕국이 있을 터.
황제는 어금니를 드러내어 웃으며, 익살스러운 어조로 속삭였다.
“익사(溺死)뿐이다.”
나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황제는 나를 지나쳐 천천히 집무실을 나섰다.
“지켜보겠다, 본헤이터. 네가 네 사람들의 이런 어둠을, 어찌 끌어안고 대처하려는지.”
“…….”
“이 시련의 끝에 네가 움켜쥘 선택도. 그리고 그 결과도.”
끼익- 쿵.
문이 열렸다 닫히고, 혼자 남은 집무실에서 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헤카테가 품은 어둠도. 더스크 브링어가 품은 어둠도, 황제가 품은 어둠도.
그리고…….
이곳 전선에 소속된, 또 수많은 사람들의…… 각자가 품은 어둠도.
진정으로 내가 왕이 되려 한다면. 이들을 이끄는 깃발의 주인이 되려 한다면. 외면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어디까지?
그 모든 어둠을 포용하고 녹여낼 도량이 나에게 있을까?
‘흑룡토벌을 앞두고, 이런 왕도(王道) 고민을 하고 있다니…….’
하지만, 그러나.
알고 있다.
알맞은 정답을 찾지 못하더라도, 서투르고 어설픈 결론을 내더라도…….
나는 이런 고민을 멈춰서는 안 된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알고 있으니까. 이런 고뇌와 번민이, 결국 인간성을 지키는 길로 이어지리라는 것을.
나의 인간성이든, 이곳 전선 모두의 인간성이든.
아직 사람이기 위해서, 마지막까지 고민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