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679
◈ 679. [STAGE 40] 기간토마키아 (2)
크로스로드. 성벽 위.
“하아, 하아아…….”
더스크 브링어가 뜨거운 숨을 토해냈다.
조금 전까지 쏟아진 나이트 브링어의 다섯 번째 브레스를 가까스로 막아낸 참이었다.
나이트 브링어의 브레스는 더할 나위 없이 강맹했으나, 더스크 브링어는 크로스로드에 남은 모든 마력 보조 아티팩트와 회복 보조 아티팩트의 도움을 받아 버텨낼 수 있었다.
치직, 치지직…….
아티팩트들은 모두 망가져 버리고 말았지만.
“…….”
힘겨운 시선으로 그쪽을 보던 더스크 브링어는 비틀거리며 성벽 아래로 향했다.
조그마한 몸에서 연기를 피워 올리는 그녀가 성벽 아래로 내려오자, 병사들이 일제히 그녀를 향해 경례했다. 더스크 브링어는 쓰게 웃으며 마주 목례한 다음 휘청거리며 걸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대공.”
성벽 아래에서 대기 중이던 에반젤린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왕들과의 담판 이후, 루카스는 특임대의 대장이 되었고, 사령관 대리 자리는 에반젤린에게 넘어왔다. 에반젤린은 전선 전체의 병력을 총괄 지휘하게 되었다.
기존의 방어 아티팩트 대신, 마력 및 육체 회복 보조 아티팩트 위주로 설치를 주문한 것도 에반젤린이었다. 그 지시는 과연 정확해서 더스크 브링어는 어떻게든 버텨낼 수 있었다.
다음도 버텨낼 수 있을지는 그녀도 확신이 없었지만…….
더스크 브링어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고, 에반젤린은 무어라 말하려다 참고 가만히 마주 묵례했다.
더스크 브링어가 저편으로 걸어갔다. 그쪽을 보던 에반젤린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리고 정찰조의 모두, 맡은 바 임무에 최선을 다해줘서 고맙습니다.”
그쪽에는 흑룡의 브레스 소식을 알린 정찰조 병사들이 서 있었다.
정찰조가 정확한 타이밍을 아슬아슬하게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수비가 더 힘들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에반젤린은 진심으로 이들에게 고마웠다.
사령관 대리의 치하에 정찰조의 병사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에반젤린이 말을 이었다.
“다만 정찰조는 더 이상 운용하지 않을 겁니다. 앞으로는 원거리 관측조가 흑룡 척후를 맡을 테니까, 여러분은 휴식 후 대기하도록 하세요.”
“예? 하지만, 에반젤린 아가씨…… 아니, 사령관 대리.”
정찰조장이 조심스레 의견을 제시했다.
“어둠이 너무 자욱해서 원거리 관측조가 제대로 살필 수 없기에, 저희가 위험을 감수하고 근거리 정찰조로 투입된 것 아닙니까? 다시 원거리 관측조를 투입한다 한들 어떻게…….”
“그 점은 걱정하지 마세요. 데미안 오빠가…… 저격조장이 관측조에 투입되기로 했으니.”
그 말에 모두 작게 입을 벌리고 납득했다.
천리안(千里眼) 보유자. 데미안.
전선 최고의 저격수가 인류 최고의 눈으로 관측한다면, 저 어둠 속이라 해도 틀림없이 꿰뚫어 볼 수 있을 것이다.
“가장 가까운 관측탑에서 저격조장이 흑룡의 동태를 척후해줄 겁니다. 그러니 척후 임무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말고, 여러분은 악룡의 사악한 기운에 오래 노출되었으니…… 휴식하도록 하세요.”
거기까지 말하고, 애써 격식을 차려 보이려던 에반젤린이 멋쩍게 웃었다.
“다들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에요. 너무 위험한 임무여서, 많이 걱정했거든요.”
“그게 사실, 전멸할 뻔했습니다만…….”
정찰조의 척후병들이 서로 눈치를 살폈다.
“누군가가 저희를…… 구해줬습니다.”
“네? 누군가가……?”
“예. 흑룡의 사기(邪氣) 때문에 눈을 뜰 수 없어서, 누구인지 정확히 살피지는 못했습니다만…….”
척후병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익숙한 목소리였는데…… 처음 듣는 것처럼 낯선…… 이상한 경험이었습니다.”
“자신이 누구라고 말은 않던가요?”
“예, 그것이…….”
가장 마지막에 퇴각한 베테랑 척후병이 그 남자의 말을 전했다.
“저희의 아주 오래된, 동료라고…….”
“아주 오래된 동료……?”
에반젤린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 사람은 지금 어디에?”
“그곳에 남은 듯합니다. 흑룡에게로 혼자 걸어가던 것 같은데…….”
“혼자서 흑룡에게로 가……?”
에반젤린이 떨떠름하게 중얼거렸다.
“대체 누가, 왜……?”
그때였다.
타닷-!
저편 복도에서 멈춘 채 이쪽의 말을 듣고 있던 더스크 브링어가, 다급하게 땅을 박차고 내달리기 시작했다.
“대공?!”
불길한 예감을 느낀 에반젤린이 헐레벌떡 그 뒤를 쫓았다.
더스크 브링어는 부상에 점철된 몸이라고는 믿을 수 없이 날렵하게 내달려서, 텔레포트 게이트 앞에 도착하더니 마법의 문을 열어젖혔다.
화아아악-!
완성된 마법 통로 저편에서 시커먼 악의가 넘실거리며 쏟아져 들어왔다.
에반젤린은 더스크 브링어가 어디로 향하는지 즉시 눈치챘다. 더스크 브링어는 척후병들이 말한 그 지점으로 가려는 셈이었다.
“멈추세요, 대공! 그쪽 텔레포트 게이트는 이미 나이트 브링어의 사기(邪氣)에 부식되고 있다고요!”
“…….”
“게이트 저편에는 흑룡이 있단 말이에요! 게이트마저 곧 망가질 거예요! 지금 그쪽으로 가면, 돌아올 수 없-”
하지만, 더스크 브링어는 망설임 없이.
번쩍-!
텔레포트 게이트 안으로 몸을 던졌다.
에반젤린이 무어라 소리를 지르며 더스크 브링어를 붙잡으려 했지만, 빛이 폭사하며 더스크 브링어가 텔레포트 게이트 너머로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쾅-!
게이트 저편에서 자욱한 어둠이 뿜어져 나오더니, 직후 통로가 강제로 닫혔다.
무너진 마법의 문을 향해 손을 내뻗은 채, 에반젤린은 멍하니 눈을 깜빡일 뿐이었다.
***
쾅! 쿵! 쿠구구궁……!
숲 속에서는 두 용의 결투가 이어지고 있었다.
애쉬는 믿을 수 없이 정교한 동작으로 나이트 브링어의 모든 공격을 피해내고, 파훼하며, 단 한 번도 타격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진 수단을 총동원해- 나이트 브링어를 난타했다.
접근한 애쉬가 주먹을 휘두르자 허공에 마력으로 이뤄진 거대한 용의 주먹이 나타나 나이트 브링어의 턱을 내리갈겼고, 몸을 뒤로 물리며 회전하자 거대한 마력의 꼬리가 나타나 나이트 브링어의 몸 위를 채찍처럼 후려쳤다.
나이트 브링어가 거체를 움직여 반격하려 하자, 애쉬는 등 뒤에 마력으로 이뤄진 용의 날개를 생성해 가볍게 일대를 이탈한 뒤,
“후우우우…….”
숨결을 모으고는,
투학-!
브레스를 토해냈다.
입 바로 앞에서 마력의 구가 뭉쳐지더니, 그곳에서부터 새카만 빛줄기가 날카로운 파공음을 흘리며 레이저처럼 쏘아졌다.
하지만 쉴 새 없이 맹공을 퍼부으면서도 애쉬의 표정은 만족스럽지 못했다.
“정말이지 더럽게 튼튼하네…….”
일방적으로 두들겨 패는 듯 보였지만, 문제는 나이트 브링어의 압도적인 체력과 재생력이었다.
나이트 브링어는 모든 공격에 피해를 거의 입지 않았고, 입는다 해도 거의 즉각적으로 재생해냈다.
애쉬는 자신이 쏘아 낸 브레스가 나이트 브링어의 비늘들에 튕겨 주위로 산란하는 것을, 그리고 그슬린 비늘들이 조금 뒤 새것처럼 회복되는 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
현재 애쉬는 흑룡의 피를 훔쳐 ‘용’이 된 상태였지만, 존재의 격이 오르고 마력 출력이 몇 배, 몇십 배나 늘어났지만.
애초에 그 피의 본래 주인인 나이트 브링어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나약했다.
‘내가 조금만 더 재능이 있었다면…….’
첫째 형 라르크가 용이 되었다면 전설적인 무위(武威)를 앞세워 그 검으로 악룡과 대적했을 것이고, 둘째 형 페르난데스가 용이 되었다면 온갖 신묘한 마법과 계책으로 악룡과 수 싸움을 했겠지만.
애쉬에게는 선택지가 그리 많지 않았다. 본질적으로 그는 전투원으로서의 재능과 능력이 저열했기에.
그러나- 경험.
무수한 회귀를 겪으며 포기하지 않고 싸워 온 회귀자만이 가진 압도적인 깊이의 업(業).
오직 이것만은, 그 누구도 가지지 못한 애쉬만의 무기였다.
‘일반적인 공격으로 쓰러뜨릴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애초에 하지도 않았어.’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고, 애쉬는 웃었다.
자신에게 남은 악룡을 죽일 수 있는 수단은 무엇일까.
고심할 필요도 없었다. 애쉬가 준비해온 것은 처음부터 하나였다.
검이나 마법의 재능이 없어도, 상대가 아무리 크고 자신이 조그맣더라도, 공평하게 죽일 수 있는 수단.
자이언트 킬링(Giant-killing)에 최적화된, 약자들의 공격법……!
‘독(毒)!’
애쉬는 무수한 회차를 겪어본 회귀자였다. 그리고 이전에도 지금과 비슷한 회차가 있었다.
그때도 애쉬는 용이 되었고, 라르크와 페르난데스는 옆에 없었고, 눈앞에는 흑룡이 있었다.
이때 애쉬는 임기응변으로, 자신의 피에 증식(增殖)과 자멸(自滅)의 ‘정수’를 심은 뒤, 흑룡의 체내에 투여했다.
애쉬와 흑룡의 피는 성분상으로 완전히 같았기에, 흑룡의 심장은 그 피를 의심 없이 받아들였고…… 흑룡의 왕성한 생명력 속에서 그 피는 무한히 ‘증식’하며 동시에 ‘자멸’에 이르렀다.
그 회차에서는 이러한 개념독(槪念毒) 투여로 흑룡을 쓰러뜨릴 수 있었다. 애쉬는 이번에도 같은 방법을 사용할 셈이었다.
‘그래서 그 ‘정수’도 미리 챙겨왔다.’
애쉬의 손에는 에버블랙- 인간의 수호수가 지팡이 형태로 들려 있었다.
인간의 본능이야말로 바로 증식과 자멸.
종을 널리 퍼뜨리기를 바라며, 동시에 같은 종을 죽이고 싶어 하는 모순적인 종족.
이미 마법 등대로써의 역할이 끝난 이 나뭇가지에서, 애쉬는 인간이라는 종족의 ‘성질’만을 정수로 추출한 뒤 자신의 손끝에 맺힌 핏방울에 섞었다.
크로스로드의 마법사들이 보았다간 까무라칠 만큼 어렵고 말도 안 되는 개념적인 마법 행사였다. 하지만 애쉬는 숨 쉬듯 능숙하게 해냈다.
‘내가 못 하는 건 규모가 큰 마법 시전이지, 이런 작고 세밀한 쪽은 나름대로 잘한다고……!’
독의 장전이 끝났다. 애쉬는 특유의 위험천만한 미소를 머금었다.
‘아직 놈은 피를 흘린다. 그렇다면, 이 독 또한 먹힌다.’
흑룡이 육신을 초월하고 완전히 밤과 동화되어 신화 상태에 접어들면. 놈의 몸에는 피 대신 어둠이 흐르게 될 것이다. 그러면 이 피를 통한 독살도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흑룡이 북상하여 밤과의 동화를 끝마치기 전에 상대하려 했던 것이고, 다행히도 아직 아슬아슬하게 독이 통하는 상태였다.
‘아직 놈의 몸속에 피가 흐를 때. 독을 주입한다……!’
펄럭-!
등 뒤에 마력으로 이뤄진 용의 날개를 펼친 애쉬가 하늘로 솟구쳤다.
일순 높은 하늘에서 정지한 애쉬를 향해,
《후후후후, 하하하하-! 좋다. 좀 더, 좀 더 발버둥 쳐다오-!》
나이트 브링어가 광소를 쏟아내며 온갖 공격수단을 펼쳐냈다.
마구 쏘아진 깃털과 마법, 음파와 마력, 그리고 실체화된 어둠들이 복잡하게 거미줄처럼 얽혀오며 하늘을 메웠다.
애쉬는 망설임 없이 그 거미줄 같은 화망 속으로 내리꽂혔다.
투학-!
까마득한 공중에서부터 떨어져 내리며, 애쉬는 손끝, 발끝, 팔꿈치, 어깨- 흑염을 뿜어낼 수 있는 모든 부위에서, 마치 비공함 쓰러스터의 불길처럼 흑염을 전개.
그 불꽃의 반동으로 미세하게 몸의 궤도를 비틀고 조정하며, 공중을 유영하며 매끄럽게 낙하. 나이트 브링어가 쏟아내는 모든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회피해냈다.
애쉬는 곡예를 부리며 나이트 브링어의 머리 바로 위로 떨어졌다.
진심으로 감탄하는 얼굴이 되는 나이트 브링어에게 애쉬가 능글맞게 찡긋 눈짓했다.
“내가 황도 사교계에서 알아주는 춤꾼이었거든.”
그리고 애쉬는 나이트 브링어의 얼굴을 향해 활을 당기는 자세를 취했다.
허공에 검은 마력이 뭉쳐지며 활과 시위, 화살의 형태로 변했다. 화살촉 부위에는 조금 전 추출해둔 핏방울과 개념독이 장전되어 있었다.
노리는 것은- 눈.
다른 부위보다 훨씬 방어력이 약할 뿐만 아니라, 뇌와 가깝다. 이전에 독을 사용한 회차에서도 눈을 관통해서 투여한 독으로 놈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
조준은 완벽했고, 독은 강력했다. 애쉬는 확신했다.
이건- 잡았다!
“……?!”
하지만 다음 순간.
눈앞이 새하얗게 물들더니, 현기증이 엄습했다.
일순 시야가 아찔해져서 애쉬는 그만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조준이 흐트러지며 화살촉이 방향을 잃었다.
‘어?’
그 다음 순간에야 애쉬는 알아챘다.
어느샌가 코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뭐야, 갑자기 왜 이런-’
찰나의 동요가 지나고, 퍼뜩 정신을 차린 애쉬는 다시금 화살 끝을 돌려 나이트 브링어의 눈을 조준했지만.
《그러면 안 되지.》
흑룡은 찰나라도 빈틈을 줘서는 안 되는 상대였다.
《내 앞에서 한눈을 팔다니.》
번쩍-!
흑룡의 머리 좌우에서 그새 새로이 장전된 고대의 마법들이 포탄처럼 쏘아졌다.
애쉬는 이전까지 그러해 왔듯이 두 눈으로 그 마법들을 디스펠해내려 했으나,
“……어?”
머릿속이 멍했다.
상대가 쏘아내는 마법에 맞추어 역산술식을 구성해야 하는데, 무엇도 제대로 떠오르질 않았다.
결국.
퍼버벙! 퍼버버벙!
날아든 고대의 마법을, 디스펠해내지 못하고 모조리 두들겨 맞았다.
“크윽……?!”
독을 장전했던 활과 화살이 부러졌고, 피투성이가 된 애쉬는 그대로 지상으로 추락했다.
쿠구궁……!
“하아, 하아, 쿨럭!”
나이트 브링어의 바로 앞에 떨어진 애쉬는 다급하게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균형감각도 맛이 가 있었다.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구토기가 일고, 눈앞에 기억들이 뒤섞이며 명멸했다.
피가 배어나오는 이마를 짚은 채 애쉬는 일순 생각했다.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었지?
떨리는 팔로 바닥을 짚은 채, 마법에 두들겨 맞아 불탄 몸으로 거칠게 피를 토해내던 애쉬의 입가에 허탈한 웃음이 걸렸다.
“젠장…… 그런 건가…….”
애쉬는 자신이 오판했음을 깨달았다.
그는 자신에게 최소한 하루의 시간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간의 오랜 경험으로 잡은 최소치였다. 깨어나고 12시간이 지났으니, 적어도 아직 12시간은 더 유예가 더 있으리라 짐작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고작 12시간-
낡을 대로 낡은 데다, 한 번 부서졌다 끼워맞춘 영혼이 버틸 수 있는 한계 시간은 그 정도였고, 이미 초과한 상태였다.
모래성처럼 무너지는,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자아를 붙잡으려 노력하며…… 애쉬는 이를 악물고 정면을 노려보았다.
《왜 그러지, 플레이어?》
긴 목을 아래로 드리운 나이트 브링어가 짐짓 자애로운 투로 속삭였다.
《앙코르가 이게 끝이라면, 조금 아쉬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