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699
◈ 699. [STAGE 40] 던 브링어
지상.
크로스로드로부터 남쪽. 벌판 끝.
최후의 저항군은 전멸해 있었다.
애쉬가 소환한 분신들은 몰아닥치는 어둠의 파도 앞에서 버티지 못하고 휩쓸려 나갔다. 애쉬 본인 또한 나이트 브링어의 벼려낸 밤 앞에서 몇 번이고 난도질당한 끝에 쓰러졌다.
요르문간드는 몸이 두 동강으로 쪼개진 상처를 버텨내지 못하고 그대로 죽어갔고, 뱀의 옆에 서 있던 광대 크라운은 나이트 브링어가 손수 몸을 반으로 찢어주었다.
날뛰며 저항하던 파레키안은 나이트 브링어의 주먹질 한 번에 온몸의 갑피가 으스러진 채 쓰러졌고.
마지막으로, 스케이리안은.
《커흐, 크으윽……!》
나이트 브링어의 손에 목이 붙잡힌 채, 컥컥거리며 허공에 들려 있었다.
흑룡 군단 중 최강의 마법 방어력을 지닌 동룡(東龍)이었으나, 그 몸에 붙어 있던 아름다운 비늘들은 모두 부서져 아래로 비처럼 쏟아져 내렸고…… 이제 상처와 핏물밖에 남지 않은 흉한 몰골로 변해 버렸다.
《스케이리안. 나의 순린.》
그런 자신의 아들을 향해 나이트 브링어가 조소가 담긴 목소리로 물었다.
《보고 싶다던 것은 보고 왔느냐?》
《……그럼요, 아버지.》
목을 조르는 거센 악력 앞에서 피를 토해내며, 스케이리안은 입가를 치켜 웃었다.
《실컷 보고 왔습니다.》
《호오…… 그것이 무엇이었느냐?》
《말씀드려도 이해하지 못하실 겁니다.》
스케이리안은 진정 만족하고 더 이상 미련이 없다는 듯 평온한 눈길이었다.
《세계를 닫을 궁리만 하시는…… 밤 속에 웅크려 계신 아버지께서는 결코 발견하지 못할 아름다움.》
《…….》
《저는 그것을 보고 왔거든요.》
스케이리안이 피식, 비웃었다.
《이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시다니, 아버지께서는 참으로…… 불쌍하시군요…….》
우두둑!
스케이리안은 더 이상 말을 뱉지 못했다.
나이트 브링어가 손에 힘을 주어 아들의 목을 부러뜨렸기 때문이었다.
《내게서 비롯되었으니, 다시 내게로 돌아와라.》
나이트 브링어는 축 늘어진 스케이리안의 몸을 자신의 등 위에 아무렇게나 올렸다.
두 용의 몸이 맞닿은 부위가 흐물흐물 검게 녹아내리더니, 스케이리안의 몸이 느릿하게 흡수되기 시작했다.
나이트 브링어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큰소리치던 애쉬도 정성껏 찢어놓으니 더는 일어서지 못하고, 이제 자신에게 대적할 상대는 없었다.
세계 최후의 저항이란, 이토록 허망한 것이었다…….
더 이상 여유를 부리며 놀아줄 이유도 없었다. 나이트 브링어는 이제 모든 것을 끝내려 했다.
《……응?》
그때였다.
쿠구구구…….
갑자기, 하늘이 떨렸다.
그리고 나이트 브링어가 의아하게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과 동시에-
쩌어어어어억!
하늘을 뒤덮은 어둠의 장막이 갈기갈기 찢기며 틈새를 벌리더니, 그 사이로 눈부신 햇빛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무슨……?!》
나이트 브링어는 일순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저 하늘을 덮은 어둠의 장막은 호수왕국 아래의 그 어둠을 엮어 만들어낸 물건이었다. 사악하고 역겨운, 저 외신(外神)들의 의지가 깃든 그 끔찍한 암흑이었다.
나이트 브링어는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증오하는 외신들의 어둠마저 끌어다 썼다. 이유야 단순했다. 그 어둠이 강력하기 때문이었다.
저 호수 아래에 외신들이 흩뿌려둔 어둠은 일반적인 어둠과는 달리, 살아 있는 모든 존재를 절망으로 끌어들이려는 악의로 넘쳐났다.
이 세계가 외신들의 놀이터가 된 이후로, 그 어떤 필멸자도 저 어둠을 극복해낸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오히려 나이트 브링어 자신보다 더 믿고 있었던 어둠이거늘, 어떻게…….
《크으윽-?!》
명징한 새벽 햇살이 마치 창끝처럼 쏟아져 내렸다.
나이트 브링어의 거대한 몸은 이 무차별적인 햇볕 아래에서 간단없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인세에 상륙하기 전부터 하늘에 어둠의 장막을 뿌려 밤을 깊게 만들었고, 그 깊어진 밤과 자신의 몸을 결합하여 본래보다 훨씬 초월적인 힘을 손에 넣었던 것인데.
이번에야말로 세계를 멸망시키기 위하여, 낮을 밤으로 덮어버리는 역천(逆天)의 술법까지 사용하여 사리(事理)를 뒤집어가며 이곳까지 온 것인데.
《웃기지 마라…….》
무너지고 있었다.
어둠의 장막이 갈기갈기 찢기고, 세상에 마땅히 도래해야 할 여명이 드리우자…… 그의 몸도, 그의 계획도, 아침을 앞둔 어스름처럼 허물어져 내렸다.
《이 정도로, 내가 포기할 것 같으냐-!》
나이트 브링어는 하늘을 노려보며 어둠의 마안을 발동했다.
콰아아아아!
악룡의 초월적인 사악한 의지만으로, 갈기갈기 찢겨나갔던 어둠의 장막이 서로 촉수를 내뻗으며 봉합되기 시작했다.
기워 붙여진 어둠의 장막 사이로 햇볕이 다시금 하나둘 막히기 시작했다. 나이트 브링어는 자신의 밤을 되찾기 위하여 사력을 다했다.
그때였다.
쿵, 쿵, 쿵…….
여러 개의 다리가 가볍게 땅을 차는 소리가 들렸다. 나이트 브링어는 흠칫하며 시선을 내려 그쪽을 보았다.
그곳에 있었다.
눈도, 코도, 귀도, 입도 없는. 여섯 개의 다리와 여섯 개의 꼬리를 가진…….
용이라기보다는 마치 도마뱀과 흡사한 형태를 가진 그의 또 다른 아들이.
나이트 브링어는 치를 떨며 그 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파레키안……!》
흑룡의 발톱 파레키안은 천천히 자세를 낮췄다. 그리고.
기이이이잉-!
심장부에서 기계 엔진음 같은 소리를 울리더니, 금이 간 온몸에 붉은 기운을 퍼뜨렸다.
《방해하지 마라, 버러지 같은 게-!》
포효하며 나이트 브링어는 암흑 마법을 마구 퍼부었다.
콰광! 콰과과광……!
마법에 직격당한 파레키안의 전신이 터져나갔다. 나이트 브링어는 제 자식이 그대로 짓이겨졌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
자욱한 연기가 걷혀나가자, 그곳에서는 파레키안이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체력이 절반 이하로 떨어질 경우, 파레키안은 다음 페이즈로…… ‘진짜 모습’을 드러낸다.
이 모습이 너무도 상대하기 까다롭기에, 애쉬는 페이즈를 넘기지 않고 정신지배로 파레키안을 사로잡는 전술을 사용할 정도였다.
기이이잉…….
외피가 벗겨져 나가자, 파레키안은 이전보다 더욱 뾰족하고 날렵한 형태로 변모해 있었다. 이전이 도마뱀이었다면, 이제는 여우가 갑옷을 입은 듯한 느낌이었다.
기이이이잉!
특유의 엔진음이 한 번 더 울리더니, 파레키안의 여섯 다리 관절부에 일제히 붉은 불꽃이 피어났다.
투학-!
땅을 박찬 파레키안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재빠른 속도로 내달렸다. 뒤로 늘어진 여섯 개의 꼬리 또한 끝에서 붉은 불꽃을 방출하며, 마치 살아 있는 로켓과도 같은 모습으로 속도를 더했다.
최속(最速)의 용.
흑룡 군단 구성원 중에서, 아니, 이 세상에 존재했던 역사 속 모든 용 중에서 가장 빠른 존재.
그것이 흑룡의 발톱 파레키안이었고, 천하의 나이트 브링어마저도 일순 그 속도를 놓쳤다.
삽시간에 파레키안이 나이트 브링어의 바로 앞까지 도달했다.
하지만, 결국 파레키안 또한 나이트 브링어에게서 비롯된 존재.
《네가 아무리 재빠르다 한들…….》
나이트 브링어의 황금안이 무시무시하게 번뜩였다.
《내가 따라잡지 못할 것 같으냐-?!》
‘벼려낸 밤’이 덮쳐들었다.
한 치의 빈틈도 없는 정확한 조준이었고, 파레키안은 그대로 직격당했다.
챙그랑……!
유리 깨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파레키안이 한 번 더 터져나갔다.
그리고,
《……뭐?》
파레키안의 으스러진 갑피 아래에서, 본래라면 존재할 리 없는 마지막 페이즈- 세 번째 모습이 드러났다.
더욱 작고 날렵하고 매끄러워진, 갑옷마저 벗어 던진 여우 같은 형태.
나이트 브링어로서도 처음 보는 이 모습은, 바로 스케이리안이 가지고 있던 두 번째 여의주를 파레키안에게 사용한 결과였다.
여의주는 존재의 격을 상승시키는 도구.
이것으로 파레키안은 자신의 한계를 강제로 돌파, 가능성으로만 존재하던 재능 개화의 끝에 도달했다.
그리고, 여의주를 사용하고 자신의 한계를 넘어선 것은 파레키안뿐만이 아니었다.
“우, 우와아, 우와아아아……!”
파레키안이 자신의 갑피 안에 숨겨두었던 환영술사- 바이올렛이 파레키안의 목을 두 팔로 휘감은 채 덜덜 떨었다.
《괜찮다.》
그때 파레키안이 말했다.
입이 없는 탓에 그 목소리는 가슴 안에서부터 울리듯 흘러나오고 있었다.
처음 듣는 그 무기질적인, 하지만 상냥한 기운이 깃든 목소리에 바이올렛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파레키안이 한 번 더 말했다.
《가자.》
“아, 어, 응……!”
투학-!
땅을 찬 파레키안이 로켓처럼 솟구쳐 올랐다.
파레키안은 그야말로 섬광과도 같은 속도로 나이트 브링어의 몸을 타고 올랐다. 세 번째 모습으로 변한 파레키안은 나이트 브링어로서도 손을 쓸 수가 없을 만큼 재빨랐다.
삽시간에 나이트 브링어의 목을 타고 그 머리 바로 앞까지 접근한 파레키안이 신호를 주었다.
《지금이야, 바이올렛.》
“우으으…….”
세계 최강의 괴수 앞에서 공포에 떨면서도,
“우아아아앗-!”
바이올렛은 기어코 파레키안의 등을 차고 뛰어올라, 두 손을 나이트 브링어의 머리에 얹었다.
바이올렛은 한낱 좀도둑, 한낱 사기꾼에 불과한 인간이었으나, 스스로 위대해지기를 원했다.
그래서 스케이리안은 자신의 여의주를 그녀에게 선물하고, 이번 전투 직전 사용해 그녀의 격을 상승시켰다.
그리하여, 고작 변두리 도박장에서 촌부들 돈이나 뜯어내는 데에 쓰이던 그녀의 환술은,
번쩍-!
세계 최악의 흑룡에게도 쓰일 만큼의 위력을 품게 되었다.
바이올렛의 궁극기, [백일몽]이 작렬했다.
《……?!》
난생 처음으로 정신이 뒤흔들리는 감각을 느끼며- 나이트 브링어는 사방으로 고통스러운 포효를 쏟아냈다.
캬아아아아아-!
대기를 찢어발기며 드래곤 로어가 사방으로 할퀴어졌다.
환술을 사용하고 아래로 추락하던 바이올렛의 앞으로도 드래곤 로어가 쏟아졌다. 바이올렛은 자신의 죽음을 직감했다.
“하하.”
하지만 어째서일까. 생각만큼 두렵지는 않았다. 오히려 후련했다.
아마도 자신이 평생 꿈꿔본 적조차 없는…… 대단한 위업을 달성했기 때문이리라.
‘봤느냐, 세상아.’
바이올렛은 환하게 웃으며 두 눈을 감았다.
‘내가 너희한테 한 방 먹였다.’
그런 그녀의 앞으로 칼날 같은 드래곤 로어가 덮쳐왔다.
바이올렛은 피하지 못했다.
카가가각……!
***
《허억……. 허억…….》
나이트 브링어는 몸을 아래로 숙이고 거칠게 숨을 헐떡였다.
그의 정신력은 고강했다. 고작 인간이 거는 환술 따위에 걸릴 만큼 나약하지 않았다.
하지만, 흔들렸다.
환상에 당하지는 않았으나, 틀림없이 정신이 흔들렸다. 나이트 브링어는 자신의 가슴이 전에 없는 동요(動搖)로 들끓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햇볕 때문이다. 갑자기 햇볕이 쏟아진 탓에…….’
쩌억, 쩌어어억-
집중이 흐트러지며, 먹구름처럼 하늘을 가렸던 어둠의 장막이 다시금 찢겨나가기 시작했다.
어둠 사이로 파고드는 햇볕이 점점 더 많아졌다. 나이트 브링어의 몸과 결합해 있던 어둠 또한 버티지 못하고 증발하기 시작했다.
거칠게 숨을 헐떡이던 나이트 브링어가 고개를 들었을 때…….
《……?》
문득 눈앞에,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는 한 여인의 형상이 보였다.
까마득한 과거, 이제는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는 그 신화시대의 끝자락에서.자신을 죽이고 슬픈 눈으로 내려다보던, 그 붉은 머리의 여자가.
그야말로 한낮의 꿈(白日夢)처럼…….
– 당신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야, 나이트 브링어.
긴 붉은 머리칼을 휘날리며, 여자가 슬프게 웃었다.
– ……기다려. 나도 곧 따라갈 테니.
《큭?!》
거칠게 고개를 휘저은 나이트 브링어가 다시 정면을 보자, 그곳에는 추억 속의 여인은 흔적도 없고.
대신 일렁이는 잿빛 아지랑이 속에서, 검은 사슬코트를 입고 깃대를 치켜든 상처투성이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저벅, 저벅.
어느새 고요해진 전장에는 남자의 발소리만이 나지막이 울렸다.
착각일까?
선조룡의 위대함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볼 수도 없는, 이 열화되고 희석되고 오염된 후손의 그림자에서…….
“왜 그러지, 흑룡?”
그녀의 냄새가 이리도 선명하게 나는 것은.
어째서.
치를 떠는 나이트 브링어의 앞으로 다가온 애쉬가 피투성이 얼굴로 히죽 웃었다.
“내가 가슴 아픈 추억이라도 헤집었나?”
대답 대신 나이트 브링어는 거칠게 포효하며 애쉬에게 달려들었다.
빛나는 황금안을 마주 치켜뜨고서, 애쉬 역시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세계의 명운을 건 결전은 이제 종막으로 치닫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