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204)
204화. 명장면
잠시 연두공주와 함께 얼음왕국에 다녀올 시간이었다.
커다란 스크린이 밝아지며 영화가 시작됐다.
그렇다고 바로 영화의 스토리가 시작된 건 아니었다.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디지니 문구.’
디지니의 대표 캐릭터인 미키마우스도 등장했다.
이후 화면에 커다란 눈 입자가 떠올라 천천히 움직였다.
얼음왕국과 관련된 배경이 등장한 것이다.
나는 연두의 귀에 대고 자그마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연두야.”
뚫어져라 스크린을 바라보던 연두가 대답했다.
내가 말한 것처럼 자그마한 목소리로.
“네, 아빠..”
“지금 떠다니는 게 뭔지 알아?”
“모르게써요..”
“눈이야.”
“눈이요..?”
“응. 연두가 본 눈이랑 다르지?”
연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연두가 본 건 엄청 작았는데…”
“맞아. 그런데 그 눈을 엄청 부풀려서 확대하면 저런 모양이 돼.”
“우아.. 눈 엄청 예뻐요……”
실제로 눈 입자는 무척 예쁘게 생겼다.
투명하고 고급스러운 보석 모양을 하고 있었으니까.
벌써 반쯤 넋이 나간 연두를 보니 절로 웃음이 번졌다.
참. 본격적으로 스토리가 시작하기 전에 당부해야 할 게 있었다.
“연두야.”
“네에.”
“영화를 보다가 지혜언니나 아빠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지금처럼 작게 말해야 해. 귓속말로.”
“왜여…?”
이유를 물으면서도 세상 작게 속삭이는 연두.
나는 빙긋 웃으며 설명해줬다.
“영화관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많지?”
“네, 마나요..”
“조용하게 영화를 보고 싶은 사람들도 많을 거야. 그런데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이 있으면 기분이 어떨까?”
“화 나요……”
“하하, 맞아. 화는 안 나더라도 기분이 좋지는 않겠지. 그러니까 영화관에서는 작은 목소리로 말해야 해. 다른 사람이 시끄럽지 않게.”
연두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스크린에 시선을 고정한 연두는 자연스레 손을 뻗었다.
어디로? 바로 내 무릎 위에 놓인 팝콘을 향해.
그렇게 팝콘을 하나 집어든 연두는 바로 입 안에 투하했다.
아작!
베어무는 동시에 연두의 눈이 커다랗게 부풀었다.
그리고는 왜인지 왼쪽 오른쪽을 돌아보며 주위를 살핀다.
입 안에 넣은 팝콘은 계속 오물거리지도 않고.
‘설마..’
혹시나 해서 나는 입을 열었다.
“연두야. 설마 팝콘 먹는 소리가 너무 커서 걱정되는 거야?”
“네에.. 엄청 커써요…”
역시나. 아까 팝콘을 먹었을 때의 표정이 아니었다.
생각보다 커다란 팝콘 씹는 소리에 스스로 놀란 모양.
주위를 둘러본 것도 눈치를 살핀 걸 테고.
나는 피식 웃으며 연두를 안심시켰다.
“걱정하지 마, 연두야. 팝콘 먹는 소리로 화가 나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니까 마음껏 먹어도 돼.”
오랜만에 오는 영화관이지만 하나는 확실히 알고 있었다.
팝콘을 먹는 소리가 들린다고 화를 내는 사람은 없다는 거.
‘일부러 후루룩 짭짭 소리를 내면서 먹는 게 아니라면.’
만약 그런 거로 서로 화를 낸다면 영화관이 아니라 전쟁터겠지.
한편 연두는 내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얼마 지나지 않아 도입부가 끝이 났다.
그리고 영화의 진짜 도입부가 시작됐다.
디지니 영화답게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둥. 두둥.
음악을 들으니 역시 디지니에서 만든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순식간에 영화의 분위기가 조성됐으니까.
음악 하나만으로 영화에 몰입이 되는 느낌이라 해야 하나.
“사랑을 부수고 두려움을 부숴~ ♪”
가사와 따라 바뀌는 장면은 몰입감을 더했다.
상당히 속도감 있는 도입부였다.
물론 영화의 배경은 ‘얼음왕국’이라는 제목답게 차가운 얼음이 가득했다.
“얼음은 통제할 수 없는 마력을 갖고 있지~ ♪”
어느새 나와 연두는 영화에 완전히 몰입했다.
그러면서도 손은 쉴 새 없이 움직인다는 게 우스운 일이었지만.
어쩌겠는가. 나도 모르게 손이 가는데.
오랜만에 먹어보는 영화관 팝콘은 너무 맛있었다.
‘역시 팝콘 없는 영화관은 영화관이 아니야.’
눈은 스크린에 고정한 채 손은 끊임없이 팝콘을 탐했다.
그러다 연두와 손이 겹친 것도 벌써 몇 번째였다.
툭.
봐라. 또 부딪혔네.
이렇게 겹칠 때마다 나와 연두는 마주보고 웃음지었다.
유일하게 서로 스크린에서 눈을 떼는 순간이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자연스레 연두를 바라봤다.
‘.. 어?’
그런데 이번에는 아니었다.
연두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로 영화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럼 방금 부딪힌 손은 뭐지?
생각할 것도 없었다. 경우의 수는 하나였으니까.
‘서지혜.’
하기야 중앙 자리인 데다가 팝콘을 들고 있으니.
손의 동선이 연두하고만 겹치리란 법은 없었다.
지금까지 계속 연두랑만 겹친 거뿐이지.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네.’
부딪혔을 때 꾹 잡을까 생각했는데.
그랬다면 의도치 않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뻔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서지혜를 향해 자그맣게 말했다.
“방금 부딪혔죠? 미안해요.”
“아뇨, 같이 부딪힌 건데요. 근데 맛있지 않아요, 팝콘?”
“진짜 맛있어요. 계속 손이 가네요.”
“흐흐, 제가 말했잖아요. 갈릭이 짱이라고.”
“다른 맛을 모르긴 하지만 그런 거 같네요.”
내부가 어두워서 말하는 표정이 잘 보이지는 않았다.
뭐, 괜찮겠지. 사소하게 부딪힌 거뿐이니까.
‘영화나 집중하자.’
연두와 마찬가지로 나도 처음 보는 영화였다.
서지혜도 그렇다고 했고.
그러니 가능한 한 영화감상에 집중할 생각이었다.
***
본격적인 주요 캐릭터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전혀 모르지만 한 캐릭터는 나도 잘 알고 있었다.
‘워낙 유명했어야지.’
사실상 얼음왕국의 흥행을 이끈 캐릭터 ‘엘사’였다.
영화 내에서 최대 히트곡 ‘Let it go’를 부른 캐릭터이기도 하고.
명장면은 나도 짧은 영상으로 본 적이 있었다.
‘영상미가 엄청났지.’
그 영상을 보고 영화를 풀로 볼 생각까지 했을 정도였다.
워낙 무력했던 시기라 ‘내가 뭔 영화냐.’하면서 보는 걸 그만뒀지만.
생각해 보면 정말 엄청난 잉여였구나, 나.
‘.. 좋게 생각하자.’
그때 안 봐서 연두와 함께하는 첫 영화관을 더 즐길 수 있는 거니까.
영화 내용은 모르고 보는 게 훨씬 재밌으니까 말이다.
‘아무튼.’
오래전에 본 영상인데도 임팩트가 컸던 탓에 선명히 떠올랐다.
그 명장면이 어떤 전개를 통해 펼쳐지려나. 개인적인 영화 감상 포인트였다.
그러던 와중 영화를 보던 연두가 내게 속삭였다.
할 말이 떠오른 모양이다.
“아빠아..”
나는 똑같이 귓속말로 대답했다.
“응, 연두야.”
“안나가 저 사라미에요..?”
스크린을 가리키며 질문하는 연두.
아직 다섯살밖에 안 됐으니 이해도가 조금 낮은 건 당연했다.
속도감이나 전개를 따라가는 것도 살짝 버거울 테고.
그러니 옆에서 감상 조력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예정이었다.
“주황색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애 보이지?”
“네, 보여여..!”
“그 친구가 안나야. 그리고 연한 노란색 머리도 보이지?”
“으응.. 보여요!”
“안나 언니야. 이름은 엘사고.”
“안나.. 엘사…”
영화를 보면서도 적용되는 모양이다.
이렇게 중얼거리며 이름을 외우는 연두만의 방법은.
아빠미소를 지으며 연두를 바라보다가,
“연두야.”
다시 연두를 불렀다.
문득 묻고 싶어진 게 있었으니까.
“네에..”
“연두는 안나가 예쁜 거 같아, 엘사가 예쁜 거 같아?”
사실상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엘사였다.
아직은 안나가 주인공처럼 보이지만.
연두는 쉽사리 내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뭔가 질문이 어려워서라기보다는.’
대답하지 못하는 다른 이유가 있는 거 같았다.
역시나 연두는 자그맣게 입을 열었다.
“안나가 연두 말 못 들어요..?”
연두의 물음에 순간적으로 웃음이 터질 뻔했다.
이렇게 물으면 답은 들은 셈이었으니까.
그야, 안나가 들으면 안 되는 대답이라는 거 아닌가.
애써 웃음을 참으며 대답했다.
“응, 못 들어.”
“그럼.. 아빠 텔레파시 안 할 꺼에요..?”
전에 동물원에서 한 얘기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다.
포로로랑 크록한테 텔레파시를 할 수 있다는 내 뻥을.
나는 애써 태연하게 대답했다.
“약속할게. 절대 안 하기로.”
상당히 철두철미하게 확인을 받는 연두였다.
그만큼 마음씨가 따뜻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자신의 대답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힐까 봐 무서워하는 거니까.
나와 약속하고 나서야 연두는 내 귀에 입을 가져다댔다.
“……가 예뻐요..”
그리고 지금까지 중에서 가장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연두가 한 말은 ‘엘사가 예뻐요..’였다.
나야 이미 답을 알고 있긴 했지만.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저번에 첫눈이 오는 날 연두를 봤을 때 겹쳐 보였다.
얼음왕국 명장면에서 본 ‘엘사’의 모습이.
그게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엘사가 예쁘다는 거지.’
아직 그 장면을 보지 않았는데도 연두의 생각은 나와 같았다.
나는 씩 웃으며 연두의 귀에 속삭였다.
“아빠도 그래. 근데 비밀 하나 말해줄까?”
“비미리요..?”
“응.”
“네, 알려주세여!”
“.. 안나보다는 엘사가 예쁘고, 엘사보다는 연두가 더 예뻐.”
내 비밀을 듣고 붉게 물든 연두의 볼.
어쩌다 보니 영화 감상중에 과하게 꽁냥거린 느낌이다.
“이제 영화에 집중하자. 궁금한 거 있으면 아빠한테 물어보고.”
“네, 아빠..!”
***
본격적으로 스토리가 전개되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우리도 순식간에 영화에 빠져들었다.
무엇이든 얼릴 수 있는 마법을 가진 엘사.
“꺄악!”
부모님 몰래 동생인 안나와 마법을 이용해서 놀다가 사건이 벌어진다.
마법으로 인해 안나를 다치게 해 버리니까.
연두는 어쩔 줄 몰라하며 발을 동동 굴렀다.
“안나 아파여.. 어떠케……”
연두를 속상하게 하는 건 다친 안나뿐만이 아니었다.
의도치 않게 동생을 아프게 해 버린 엘사가 짓는 표정.
그것도 보는 사람을 슬프게 하는 요소였다.
‘확실히.’
잘 만든 영화답게 감정표현이 섬세한 게 느껴졌다.
내가 봐도 캐릭터의 감정에 몰입이 되는 수준이니.
과장 안 하고 연두는 곧 울 거 같은 표정으로 내 손을 꼭 쥐고 있었다.
‘연두는 더 몰입이 될 만 하지.’
나름 여동생을 가진 언니니까 말이다.
아마 누렁이가 아프면 화면 속 ‘엘사’같은 표정을 짓지 않을까.
다행히 안나는 트롤들의 도움을 받아 낫게 된다.
‘하지만.’
이전의 사이좋은 자매의 모습은 사라진다.
‘엘사’가 동생을 다치게 했다는 죄책감에 방문을 잠그고 나오지 않으니까.
전처럼 언니랑 놀고 싶은 안나가 몇 번이고 문을 두드리지만 미동조차 없는 엘사.
그러나 그 매정함 뒤에는 세상 슬픈 표정의 엘사가 있다.
또르르.
결국 연두의 눈에서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완전히 안타까운 자매에게 몰입을 해 버린 연두였다.
옆에서 서지혜가 자그맣게 속삭였다.
“오빠, 여기..”
그녀가 건넨 건 다름아닌 티슈였다.
“고마워요.”
티슈를 건네받은 나는 조심스레 연두의 눈가를 닦아줬다.
언니가 문을 열어주지 않아 풀이 죽은 안나.
안나는 나뭇가지를 주워서 눈을 콕콕 찌르며 노래를 부른다.
“언니.. 같이 눈사람 만들래? 제발 좀 나와봐~ ♪”
이건 나도 본 적 없는 장면이었다.
허나 노래는 알고 있었다. 연두도 알고 있을 테고.
전에 연두가 어린이집에서 배웠다며 불러준 적이 있으니까.
‘이렇게 나온 노래였구나.’
영화를 통해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멜로디가 되게 신나는 느낌이라 생각 못했는데.
이렇게 슬픈 분위기 속에서 안나가 부른 노래일 거라고는.
“같이 눈사람 만들래? 눈사람 아니어도 좋아~ ♪”
이제 연두는 거의 눈물을 흘리다 못해 쏟아내는 수준이었다.
마치 샘물처럼 눈물이 흘러나왔으니까.
결국 서지혜에게 티슈를 몇 장을 더 건네받아야 했다.
‘처음 만난 뒤로 이렇게 우는 건 처음인 거 같은데.’
아, 한 번 더 있긴 하구나.
내가 요리하다가 손을 다쳤을 때 크게 울음을 터트리긴 했지.
그나저나 우는 와중에도 애써 소리는 안 내고 있다.
“훌쩍.”
뭐지. 갑자기 나도 눈물이 핑 도는 기분이다.
세상 슬픈 표정으로 영화를 보는 연두를 보니.
옆에서 서지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도 티슈 하나 드릴까요?”
당황한 나는 대답했다.
“아뇨! 완전 멀쩡해요.”
“크크, 알겠어요.”
고개를 휙휙 저으니 다행히 원 상태로 돌아갔다.
안나의 노래가 끝난 뒤에야 연두의 눈에서 눈물이 가셨다.
그렇다고 자매의 상황이 나아지지는 않았다.
‘안나가 한스 왕자와 사랑에 빠지고.’
엘사는 둘의 결혼을 극구 반대한다.
그 과정에서 갈등이 심화되고 엘사의 능력이 사람들 앞에 드러난다.
사람들에게 괴물이라는 소리까지 듣게 되고.
‘생각보다 내용이 무겁구나.’
내내 웃을 수 있는 내용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슬프고 밝지 않은 전개였다.
그런 내용이 이어짐에 따라 연두의 표정에도 슬픔이 번졌다.
아무래도 이쯤에서 스포 아닌 스포가 필요할 거 같았다.
나는 연두의 귀에 대고 자그맣게 속삭였다.
“괜찮아질 거야, 연두야.”
울고 난 뒤라 대답하는 연두의 목소리가 떨렸다.
“.. 진짜여?”
“응. 연두는 봤잖아. 엘사랑 안나 둘 다 좋은 사람인 거.”
“마자요.. 조은 사라미에요..!”
“응. 그럼 분명히 화해하고 예전처럼 재밌게 놀 거야.”
다행히 연두의 얼굴에 화색이 맴돌았다.
사실 이렇게 말한 거 치고 나는 다음 전개를 전혀 알지 못했다.
허나 한 가지는 확실히 알고 있었다.
‘해피엔딩일 거란 거.’
이 내용이 새드엔딩이면 완전히 동심파괴나 다름없었다.
울면서 시작했다가 울면서 집에 가는 애니메이션 영화라니.
절대로 그럴 리가 없었다.
‘아닐 거야.’
그리고 아니어야만 했다.
아무튼 왕국에서 쫓겨난 엘사는 아무도 없는 북쪽 산으로 간다.
상처를 입은 채로, 하염없이 걸어간다.
그렇게 터덜터덜 산을 오르는 엘사.
‘뭔가 일어날 거 같은 연출인데……’
배경이나 구도에서 그런 느낌이 들었다.
아니, 잠깐. 자세히 보니 익숙한 배경이다.
전에 유투브에서 봤던 명장면의 배경.
‘설마……’
그런 생각과 동시에 흘러나오는 멜로디.
이번에도 설마는 적중했다.
라라 라 라~ 라라 라 라~ 라라 라 라 라~
이 멜로디는 다름아닌 ‘Let it go’의 도입부였으니까.
그렇다면 이어서 나올 장면은 정해져 있었다.
살며시 고개를 들어 앞을 보는 엘사.
“The snow glows white on the mountain tonight~ ♪”
[이 밤의 산은 눈에 덮여 하얗게 빛나고~]스크린에 고정되어 있는 연두의 시선.
아니, 연두뿐 아니라 모든 관객들이 화면에 집중하고 있었다.
얼음왕국의 최대 명장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