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319)
319화. 계이름
“같이 보자, 연두야.”
“.. 네!”
[연두의 피아노 연주!(feat. 누렁이와 합주)]달칵.
클릭과 동시에 댓글창이 떠올랐다.
구독자 수 500만을 코앞에 둔 만큼 댓글 수도 장난이 아니었다.
어느새 관습(?)처럼 굳어진 영상을 보기 전에 남기는 사전 댓글들이 가장 먼저 보였다.
-올라왔다! 연두우!! 존버는 성공한다!
┖잠깐만.. 나 지금 잘못 본 거 아니지? 연두가 피아노를 친다고??
┖썸네일 봐. 벌써부터 은혜롭다…
┖예전에 원스타 사진 진짜 레전드였는데 이제는 연주까지.. 미쳐따리…
┖젓가락 행진곡을 두드려도 행복할 거 같다. 연두라면… :하트1:
┖근데 미쳤네 ㅋㅋㅋ 댓글창 외국인들이 점령한 거 봐.
┖만국공용어 바뀌었잖음. 영어에서 연두어로 ㅋㅋㅋㅋㅋㅋㅋ
확실히 연두부의 국적은 무척 다양했다.
영어는 기본이고 각종 언어가 댓글창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중에서 내가 보는 댓글은 대부분 한글과 간단한 영어뿐이었다.
‘뭐, 괜찮겠지.’
해석은 되지 않지만 일일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방금 본 주접처럼 연두를 향한 연두부의 마음도 만국 공통이니까.
눈에 들어오는 다음 댓글.
-아니, 근데 왤케 잘 침?
┖내 말이 ㅋㅋ 솔직히 연주에 대한 기대는 전혀 안 하고 들어왔는데..
┖그럼 연주 영상인데 뭘 기대함?
┖그걸 질문이라고 하냐. 당연히 연주 말고 우리 연두를 기대했지.
┖ㄹㅇ 아무리 기대해도 항상 그걸 뛰어넘는 연두.
┖마음이 웅장해진다. 연두는 진짜 전설이다.. 피아노까지 잘 치는 건 진짜 반칙 아니야? ㅠㅠ
┖연두부 심장 뿌셔뿌셔!!
연두의 피아노 실력에 대한 열띤 반응.
지금까지 왜 이런 모습을 감춰뒀냐고 항의하는 연두부도 여럿 있었다.
물론 그 항의의 대상은 나였다.
‘해명하고 싶네.’
내 입장에서는 억울한 일이었다.
딱히 감춰두고 혼자 본 기억은 없으니 말이다.
단지 연두의 성장 속도가 너무 빨랐던 것뿐이지.
‘지금은 더 잘해졌고.’
날이 갈수록 연두의 피아노 실력은 발전하고 있었다.
아마 다음 영상이 올라갈 때쯤이면 더 깜짝 놀라는 연두부의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럼 자연히 내 억울함도 해소될 터였다.
“보고 있어, 연두야?”
“네에.”
배시시 웃는 걸 보니 잘 보고 있는 게 틀림없다.
나에 대한 항의 댓글을 보기 전에 잽싸게 커서를 내렸다.
이윽고 눈에 들어오는 한 베스트 댓글.
“푸흣.”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오랜만인데. 이렇게 보자마자 터지게 만드는 주접 댓글은.
이번 영상인 피아노와 관련이 있으면서도 신박함이 느껴지는 댓글이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나 싶을 정도로.
“왜여? 아빠 왜여..?”
막상 연두는 헤매고 있다.
내가 뭘 보고 웃었는지 굉장히 궁금한 눈치다.
그럴 만도 하지. 내가 모르는 걸로 상대가 웃는 것만큼 답답한 일은 없으니.
일부러 반응하지 않자 조금 토라진 듯 연두가 말했다.
“연두도 가치 보고 시픈데……”
더 장난치면 진짜 삐질 거 같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이거야.”
“네?”
“아빠는 이거 보고 웃은 거야.”
스윽.
해당 댓글을 가리켰다.
연두의 시선이 바로 내 손끝을 따라갔다.
천천히 댓글을 읽는 연두.
“님드라. 연두를 개이르므로 포혀나면 먼지 암?”
그대로 따라 읽는 거긴 하지만 인터넷 용어를 구사하는 연두를 보니 되게 신선한 기분이다.
뉘앙스와 발음이 어색한 게 귀엽다고 해야 하나.
댓글의 원본은 이러했다.
-님들아. 연두를 계이름으로 표현하면 뭔지 앎?
┖갑자기?
┖뭔데. 도? 미? 솔?
┖다 틀렸음 ㅎㅎ 정답은 ‘레’입니다!
┖이유가 뭔데. 뜸 들이지 말고 말해라. 뜨거운 불주먹 맛을 보고 싶지 않으면.
나도 여기까지는 보고 뭔가 싶었다.
갑자기 연두를 계이름으로 표현한다는 것부터, 왜 하필이면 ‘레’인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았으니까.
이어지는 작성자의 댓글이 일차로 나를 웃게 만든 부분이었다.
┖연두의 귀여움이 ‘도’를 넘어서 ‘미’ 치기 직전이니까요 ㅎㅎ
상상도 못 한 주접이었다.
귀여움이 도를 넘어서 미치기 직전이라 ‘레’라니.
어떻게 이런 기가 막힌 주접을 생각해 낸 거지?
‘진짜 학원이라도 다니는 건가.’
그런데 놀라운 건 이게 끝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이를 응용해서 한층 더 발전한 주접이 어느 연두부로부터 튀어나왔다.
나처럼 감탄하는 수많은 답 댓글 속에서.
┖ㄴㄴ 틀렸음. ‘레’가 아니라 ‘파’지.
┖왜?
┖간단함. 연두의 미모가 ‘도’를 넘어서 ‘미’쳐버렸으니까.
┖와 ㅋㅋㅋㅋㅋㅋ 레전드다, 이거.
┖센스 보소 ㅋㅋ 나도 그 학원 가르쳐줘! 당장 수강신청하러 가게.
┖맞지 ㅋㅋ 미치기 직전으로는 부족하지. 연두를 표현하기에는.
┖댓글 작성자인데 패배를 인정합니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도를 넘어 미쳐버려서 ‘파’라니.
그러나 감탄한 나와 달리, 막상 당사자인 연두는 아리송한 표정이다.
“으응..?”
생각해 보니 확실히 그랬다.
연두가 이해하기에는 다소 고차원적(?)인 주접이었으니까.
따라서 나는 차분히 설명해줬다.
“그러니까 이 말은… 연두가 너무 귀엽고 예쁘다는 거야.”
“왜여?”
“하하, 왜냐하면……”
쏟아지는 질문에 상당한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그럴 만한 가치가 있을 정도로 재미있는 댓글이었다.
***
오늘부터 연두를 표현하는 계이름은 ‘레’와 ‘파’였다.
어느 하나를 선택하기 힘들 정도로 둘 다 마음에 쏙 든단 말이지.
설명 끝에 연두를 이해시키는 것도 성공했다.
‘엄청 좋아했지.’
뜻을 알고 나서 세상 좋아하던 연두의 표정이 눈에 선했다.
연두부의 댓글로 힐링의 시간을 가졌으니 이제 해야 할 건 정해져 있었다.
얼마 남지 않은 작화를 마무리할 차례였다.
‘첫 파트.’
오늘 안에 첫 원고를 보내주는 게 목표였다.
의자에 앉은 나는 지금껏 진행한 작화를 확인했다.
[소녀와 환상의 숲]표지는 아직 그리지 않았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부분인 만큼 최대한 신경써서 그릴 생각이었다.
고로 지금 볼 부분은 첫 페이지였다.
‘도입부에 해당하는 부분.’
‘소녀와 환상의 숲’은 특징이 존재했다.
동화책이지만 굳이 비유하자면 게임과 비슷한 형식을 취하고 있었다.
챕터별로 딱딱 나뉜 느낌이라 해야 할까.
‘좋은 거지.’
작화가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편했다.
비슷한 분량으로 챕터가 나뉘어 있기에 별도의 경계를 설정할 필요가 없었다.
한 챕터씩 작화를 진행하고 컨펌을 받으면 되는 구조였다.
그에 따르면 이 도입부는 ‘Chapter 1’이라 볼 수 있었다.
‘이야기의 시작인 만큼.’
가장 중요한 요소는 몰입도였다.
읽는 이로 하여금 자연스레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도록 해야 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청각장애를 가진 소녀.
소녀의 아픔에 몰입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그 아픔을 보여줘야 했다.
‘하지만.’
너무 길어져서는 안 됐다.
결국 이 동화는 ‘환상의 숲’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니까.
간결하면서도 임팩트 있게 소녀의 과거를 보여주는 게 챕터 1의 과제였다.
그래서 채택한 게 ‘파노라마’ 연출이었다.
청각장애로 인해 소녀가 겪은 아픔을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도록 표현하는 거다.
수군거리는 사람들.
들리지 않지만 눈에 보이는 부모님의 말다툼.
친구들의 따돌림과 그로 인한 소외감.
남들과 같을 수 없다는 점에서 괴리감을 느끼는 소녀의 모습까지.
담담하게.
굳이 과장할 필요도, 번뜩이는 발상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그저 있는 그대로 표현해도 충분했다.
실제 청각장애를 가진 소녀가 겪을 아픔과 감정을.
그러려면 나 역시 몰입이 필요했다.
‘내가 소녀라면.’
가녀린 소녀와 달리 건장한 남성이긴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작화에 매우 큰 도움이 됐다.
주인공에 나 자신을 투영해서 생각하는 건.
‘나라면 어떻게 행동할지, 어떤 기분일지, 어떤 선택을 할지.’
결국 그걸 그리는 게 작화가의 일이었다.
등장인물에 몰입하면 몰입할수록 한층 더 섬세한 표현이 가능해진다.
그에 더해 또 하나의 방법.
연두.
소녀에 연두를 투영하는 것이었다.
조은서가 한 얘기였다.
왜인지 모르겠는데 스토리를 만들면서 계속 연두가 겹쳐 보였다고.
‘나도 그랬고.’
실제로 연두도 소녀와는 다른 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었다.
가장 사랑하는 만큼, 연두는 내가 가장 잘 몰입할 수 있는 아이였다.
그렇게 그리니 신기할 정도로 몰입이 잘 됐다.
소녀의 이야기에.
사각. 사각.
손에 쥔 펜은 계속해서 움직였다.
너무 몰입해서 다소 먹먹한 감정이 들 때도 있지만.
그만큼 높은 퀄리티의 그림이 눈앞에 그려졌다.
‘이것도 잠깐이고.’
소녀와 환상의 숲은 힐링과 치유를 담은 이야기였다.
따라서 아픈 건 잠깐이었다.
소녀의 미소를 그릴 미래를 생각하며 나는 펜을 놓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무리됐다.
‘Chapter 1’에 해당하는 ‘소녀와 환상의 숲’의 도입부가.
“후우..”
숲에 들어가기 전까지의 과정.
다음 챕터부터가 본격적인 이야기의 시작이었다.
새로운 캐릭터도 등장하고.
‘그럼 보내 볼까.’
우영이와는 끊임없이 작업물을 주고받고 있으니.
보낼 대상은 다름아닌 조은서 작가였다.
작가님에게 보내는 첫 원고인 만큼 조금은 긴장되는 기분이었다.
‘어떤 반응이려나.’
마지막으로 쭉 훑어본 뒤에 나는 첫 원고를 보냈다.
‘소녀와 환상의 숲’의 시작을.
***
동화책 출판사 ‘푸르른 숲’의 편집자 서하늘.
출근해서 자리에 앉은 그는 웃으며 휘파람을 불었다.
요즘 들어 대체적으로 기분이 좋을 때가 많았다.
‘다행이야.’
그 이유는 다름아닌 조은서작가 때문이었다.
항상 지켜보는 입장에서 늘 신경이 쓰였다.
비유가 맞는지 모르겠지만 아픈 손가락이라고 해야 하나.
편집자로서 판단할 때 조은서는 무척 뛰어난 이야기꾼이었다.
허나 계속 빛을 보지 못했다.
그 이유를 들라면 여러가지가 있었다.
‘우선.’
출판시장이 침체기라는 게 가장 컸다.
당장 ‘푸르른 숲’만 해도 거의 창작이 아닌 유명한 동화를 번역해서 유통하는 걸로 수익을 창출하고 있었다.
현재 흐름에 동화 창작은 정말 쉽지 않은 시장이었다.
안 그래도 침체되어 가는데 영상 매체가 발달하며 더욱 가속화됐으니까.
‘하늘의 별 따기지.’
그런 상황에 좋은 작화가를 구하는 건 하늘의 별 따기였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답답할 따름이었다.
열심히 일하는 작가에게 작화가도 제대로 연결시켜주지 못하는 현실이.
바로 그때였다. 동아줄이 내려온 건.
[안녕하세요.]조은서가 그렇게 원하던 작화가(?) 초록님으로부터 온 연락.
일사천리로 계약까지 진행됐다.
‘만약 흥행에 성공한다면.’
조은서작가의 가치는 올라가게 될 테고 작품 활동을 이어갈 수 있게 되겠지.
물론 아직은 희망사항일 뿐이지만.
전에 비해서 긍정적인 상황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서하늘이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출근은 하셨으려나.’
완성을 했음에도 조은서는 매일같이 회사에 출근하고 있었다.
완성도를 높이겠다며 수정을 거듭하고, 오히려 더 열정적으로 변한 느낌이다.
그 모습이 전에는 안쓰러웠다면 지금은 보기 좋았다.
터벅. 터벅.
노트북을 들고 조은서의 작업실로 향했다.
가볍게 문을 두드렸다.
‘아직 안 오셨나?’
딱히 미동이 없었다.
서하늘이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었다.
삐그덕.
이것도 빨리 고쳐야지.
그런 생각을 하며 작업실에 들어간 서하늘의 동공이 확장됐다.
조은서가 있었다.
“.. 작가님.”
단지 그 사실에 놀란 건 아니었다.
벙쪄 있던 서하늘이 심각하게 한 마디를 이었다.
“작가님.. 우세요..?”
조은서가 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