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370)
370화. 악수
“어, 주원이다!”
“이야~”
조용히 넘어가기에는 그른 거 같았다.
그러기에는 벌써부터 녀석들의 얼굴에 장난기가 가득했으니까.
눈을 마주친 이상 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 가자, 얘들아.”
아이들과 함께 천천히 걸어갔다.
가까이 다가가면서 보니 최서아 말고도 낯익은 몇몇 얼굴이 보였다.
동창인 건 확실한데 이름이 뭐였더라?
‘아, 맞아.’
한 명의 이름은 거의 바로 떠올랐다.
학창시절 최서아랑 한 몸처럼 붙어다니던 단짝친구 조나예가 분명했다.
어디를 가도 함께였지.
다른 애들은 잘 기억이 안 난다.
아무리 내가 연두를 닮아 기억력이 좋다지만, 7년이 넘게 지났으니 전부 기억하는 건 무리였다.
그래도 오랜만에 보니 반갑네.
가까이 가기도 전에 호들갑을 떠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와! 이주원이다!!”
“대박!”
“진짜 오랜만이다.. 서아 말대로 진짜 고등학교 때랑 똑같은데? 좀 더 으른 느낌이긴 한데.”
“크크, 인정. 으른 느낌.”
“서아야, 주원이 왔어, 주원이..!”
난처한 건 그렇게 호들갑을 떠는 애들이 내가 이름도 기억 못하는 동창들이라는 거다.
물어보기라도 하면 큰일인데, 이거.
내가 그런 걱정을 하는 사이에 최서아는 잔뜩 당황해서 말했다.
“그, 그걸 왜 나한테 말해..”
“에이, 왜긴. 알면서..”
“…”
아무래도 나만 희생양 역할이 아닌 느낌이다.
최서아 역시 벌써부터 친구들로부터 곤혹을 겪고 있는 걸 보니.
곧이어 도착한 나는 짤막한 인사를 건넸다.
“안녕, 오랜만이다.”
“그니까. 서아 빼고는 다 고딩 때 이후로 첨이지.”
“꺄, 옆에 애기들 좀 봐. 연두야! 언니는 아빠 고등학교 때 친구야!!”
“잠깐만. 나 왤케 연예인 보는 거 같지?”
“연예인 맞지. 예명 초록님으로 활동중이잖아.”
인사 한 마디에 몇 마디가 돌아오는지 모르겠다.
정신이 없을 정도다.
성현이가 무언가 언짢은 듯 입을 삐죽 내밀고 끼어들었다.
“야, 너네 우리 만났을 때랑 너무 텐션이 다른 거 아니냐?”
그 말에 조나예는 바로 답했다.
“당연히 다르지.”
“엥? 왜 당연한데?”
“동창이 연두 아빠가 돼서 다시 만났는데 텐션이 낮은 게 이상한 거 아니냐?”
“와.. 연두 아빠가 아주 벼슬이네, 벼슬이야!”
그렇게 말하고선 연두를 바라보는 성현이.
자연스레 다시 입이 열린다.
“.. 맞긴 하지, 벼슬.”
“푸흣.”
1초 만에 이루어지는 성현이의 태세 변환에 하나같이 웃음을 터트린다.
준수가 웃으며 덧붙였다.
“완전 벼슬이지. 예전으로 따지면 이조판서 급은 될 듯.”
“뭐야, 갑자기 조선시대.”
“그리고 이조판서가 뭐냐. 연두가 공주인데 그냥 왕이지.”
“그건 안 돼.”
“왜?”
“주원이가 왕이었으면 나라 망했어. 아무것도 안 하고 연두 예뻐하고 주구장창 그림만 그리다가.”
“킥킥, 그건 그러네.”
하여튼 뭐 하나만 던지면 떡밥을 쉽게 놓아주지를 않는 녀석들이다.
여전하다는 듯 바라보는 여자애들.
그런 와중 조나예가 최서아를 툭 치더니 입을 열었다.
“우리 서아.”
“.. 어?”
“왜 혼자 뒤로 빠져있을까? 이주원 인사도 안 받고.”
“아니, 안 받은 게 아니라..”
“뭐야. 아직도 둘이 어색한 거야?”
수찬쌤도 고개를 끄덕이며 끼어들었다.
“그래. 너희 둘, 만나서 다 푼 거 아니었어?”
하아. 괜히 이러면 또 분위기 어색해지는데.
나는 바로 대답했다.
“푼 거 맞아요. 애초에 별로 심각한 문제도 아니었고요.”
“심각하지 않긴. 아주 그냥 세상 무너진 것처럼 심각했던 녀석이.”
“아니, 선생님!”
아니다. 결혼식이니까 참자.
절대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 입을 다문 게 아니다.
결국 내 입에서는 한 마디가 튀어나왔다.
“9년 전이잖아요..”
수찬쌤은 장난스레 웃음짓더니 말했다.
“장난이야, 인마. 나는 인사하러 가 봐야 되니까 마저 얘기 잘해라.”
불씨를 지펴놓고 쏙 빠져버리시는 선생님.
조나예가 장난스레 말했다.
“괜찮아, 이주원. 우리 서아도 그때 한 심각 했거든.”
“야!”
“알겠어. 미안. 지퍼 채울게.”
찍.
그렇게 입에 지퍼를 채우는 조나예.
어쩌다 보니 자연스레 나와 최서아가 둘이서 얘기해야 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대충은 예상하고 있었다.
길지는 않을지라도 이런 시간이 있을 거라고는.
“또 봐서 반갑네.”
딱히 특별하게 할 말은 없었다.
전에 봤을 때 나눠야 할 이야기는 전부 나누기도 했고.
“응.. 나도.”
놀랍게도 할 말은 끝이었다.
지켜보는 녀석들 입장에서는 싱거울 수 있겠지만 그건 내 알 바 아니지 않은가.
굳이 억지로 말을 이을 필요는 없다.
그때였다.
“오케이.”
이번에는 윤우가 끼어들었다.
“화해했다니까 자세한 사정은 묻지 않으마.”
“아니, 니가 뭔데?”
“쉿. 그건 시크릿이라구~”
순간적으로 말투가 열 받아서 주먹이 나갈 뻔했다.
녀석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치만.. 화해한 걸 입증하려면 그런 게 필요하지 않을까?”
“뭔지는 모르겠는데 왜 그걸 너한테 입증을……”
“이를테면 화해의 포옹.. 은 무리고 화해의 악수같은 거.”
화해의 악수같은 소리하네.
여기가 무슨 병아리들이 다니는 초등학교도 아니고.
그리고 라떼나 그랬지, 요즘은 초등학교에서도 그런 유치한 화해 안 시킨다.
‘웃기잖아.’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하는 게 화해지.
둘 다 부글부글 끓는 상황에서 억지로 포옹시키고 악수하게 해 봤자 역효과만 나는 법이다.
물론 나랑 최서아가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당연히.’
다른 녀석들에게도 별로 호응을 받지 못할 방법임이 분명했다.
오히려 구시대적이라 뭇매를 맞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는데 웬걸?
“캬, 명답이네.”
“화해의 악수는 국룰이지, 크크.”
“좋다, 좋다.”
내가 간과한 게 있었다. 이 녀석들은 내 생각 이상으로 유치하다는 걸.
심지어 불한당 무리뿐 아니라 여자애들까지 호응하고 있었다.
이윽고 눈앞에 무언가가 다가왔다.
스윽.
“아, 악수 정도는…”
최서아의 손이었다.
표정을 보면 왜 뻗은 건지는 대충 감이 온다.
워낙 친구들이 짓궂으니 깔끔하게 한 번 받아주고 끝내려는 거겠지.
‘생각은 알겠는데.’
많이 겪어보지 않아서 얘는 잘 모르고 있다.
한 번이라도 받아주는 순간 구렁텅이에 빠지고 만다는 걸.
그렇다고 뺄 수는 없었다.
여기서 악수를 거절하면 그거야말로 엄청난 갑분싸가 될 게 뻔하니까.
‘어쩔 수 없지.’
알면서도 당한다는 게 이런 기분인 거구나.
체념한 나는 오른손을 들어 천천히 앞으로 뻗었다.
척.
그렇게 마주잡은 손.
“.. 어?”
그런데 이상했다.
손에 아무런 감촉이 느껴지지 않는다.
더군다나 최서아와 마주잡은 손. 내 손이 이렇게 작을 리가 없었다.
상황은 바로 알 수 있었다.
“언니.”
다름아닌 시은이가 최서아의 손을 잡고 있었다.
***
“.. 시은아?”
전혀 예상 못한 돌발행동이었다.
차라리 연두나 레나가 이랬다면 덜 당황했을 거 같은데.
시은이가 이러는 건 처음 보는 거 같다.
‘설마 나 도와준 건가?’
벙찐 표정의 친구들.
특히나 가장 당황한 건 손을 잡은 당사자인 최서아였다.
입을 우물거리다가 목소리를 낸다.
“저, 저기.. 시은..아?”
“네.”
평소와 마찬가지로 시크하기 그지없는 대답이다.
그와 상반되게 손을 위로 힘껏 뻗어서 간신히 마주잡은 게 귀여웠다.
아니, 이럴 때가 아니지.
나는 허공에 뻗은 손을 거둬들인 뒤 물었다.
“시은아. 갑자기 언니 손은 왜 잡았어?”
“친해지고 싶어서요.”
“응?”
“예뻐서 친해지고 싶어요. 최서아언니.”
“..!”
동그랗게 커진 최서아의 눈망울.
얼굴도 붉게 달아오른다.
시은이의 돌직구에 말 그대로 심쿵한 표정이다.
“므.. 무.. 아니.. 응?”
말까지 꼬이는 모습.
아마 스무살 많은 언니를 말 한마디로 이렇게 만들 수 있는 건 시은이가 유일하지 않을까.
그런 시은이의 모습이 신기한지, 연두도 반쯤 입을 벌리고 바라보고 있다.
레나도 마찬가지고.
여기저기서 뒤늦게 튀어나오는 반응.
“오오…!!”
“역시 서아네.. 시은이한테 이런 말을 다 듣고…”
“평화고 얼짱 클라스 어디 안 가지.”
쏟아지는 말에 최서아는 어쩔 줄 몰라하며 입을 뗐다.
여전히 시은이와는 손을 꼭 잡고 있다.
잘은 모르겠지만 겉보기에 놓아주지 않는 쪽은 시은이인 거 같다.
“고, 고마워.. 근데 시은이 네가 훨씬 더 예쁜데.”
“아니에요. 언니가 더 예뻐요.”
화악.
오늘 완전 폭발이다.
나도 한 번만 시은이한테 이 정도로 돌직구 받아보고 싶네.
평생 그럴 일 없을 거 같긴 하지만.
결국 한참이 지난 후에야 시은이는 손을 뗐다.
‘완전 상반되네.’
시은이는 아무렇지도 않아하는 반면 최서아는 완전히 넋이 나간 표정이다.
쿨하게 원래 자리로 돌아가는 시은이.
연두와 레나가 반갑게 맞이했다.
“우아..”
“응?”
“시으니 진짜 머찌다…”
“…?”
순수하게 감탄한 듯한 연두의 한 마디.
신기하게도 아무런 동요도 없던 시은이의 얼굴 전체에 울림이 생긴다.
곧이어 발그레해지는 볼.
‘재밌네.’
이게 관계성이라는 건가.
물고 물리는 관계가 나로서는 그저 재밌을 따름이었다.
아, 참. 그러고 보니 깜빡하고 있던 게 있다.
악수.
시은이로 인해 무산된 나와 최서아의 악수.
이대로라면 또 누군가의 입에서 그 얘기가 나올지 모른다.
그전에 화제를 돌릴 필요가 있었다.
최대한 자연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슬슬 홀에 들어갈까? 시간 되기 전에 적당히 자리 잡아야 앉을 수 있을 거 같은데.”
“아, 그러자!”
“우리끼리 같이 앉으면 되겠다.”
“빨리 가자. 명당자리 놓치면 잘 안 보일지도 몰라. 사진도 찍어야 되는데.”
단순한 녀석들.
나는 피식 웃으며 발걸음을 돌렸다.
그런 와중 시은이와 마주친 눈.
“하하.”
눈빛을 보니 뭔가 느낌이 왔다.
난처해보이는 나를 도와준 게 확실하다는 느낌.
나는 씩 웃으며 살짝 눈을 찡긋해 고마움을 표했다.
***
줄줄이 홀에 입장한 평화고 동창 무리.
다행히 강당이 잘 보이는 적당한 위치에 빈자리가 있었다.
후다닥 달려가는 성현이.
“찜!”
스물여섯살이라기엔 경박하기 그지없는 몸놀림과 언행이다.
어김없이 옆에서 디스가 쏟아진다.
“찜 같은 소리 하네.”
“저러니까 여친이 없지. 여자들이 저런 거 얼마나 싫어하는데.”
“킥킥, 인정.”
옆에서 웃으며 듣던 유새림이 놀란 표정으로 말한다.
방금 듣고 기억한 이름의 여자애였다.
“오. 너네는 여친 있나봐?”
뜨끔한 표정의 두 녀석.
준수가 뜸을 들이더니 입을 열었다.
“없어.”
“뭐야. 근데 왜 유성현 여친 없다고 디스하냐.”
“성현이는 못 사귀는 거고, 나는 안 사귀는 거니까.”
“흐흥, 맞아?”
“뭘 또 물어. 딱 봐도 느껴질 텐데.”
자기애가 충만한 준수녀석.
윤우는 또 없어보이게 옆에서 덧붙인다.
“나도 안 사귀는 거야.”
“흐음…”
“뭐냐, 그 미심쩍다는 듯한 반응은?”
어깨를 으쓱하는 유새림.
이번에는 준수가 역으로 물었다.
“너는 남친 없지?”
그런데 질문이 사뭇 다르다.
마치 없다는 걸 확신한 채로 던지는 물음같다고 해야 하나.
유새림이 놀란 표정으로 되묻는다.
“뭐야. 어떻게 알았어?”
능청스레 준수는 답했다.
“그냥. 느낌이 없을 거 같아서.”
“와..”
역시 당하기만 하고는 못 배기는 녀석이었다.
“야, 나 인기 많거든? 나도 안 사귀는 거야!”
“예, 예.”
“와.. 반응 진짜 열 받아.”
“밥솥이야? 열 받게.”
“…”
나이가 의심되는 드립과 달리 친화력 하나만큼은 인정해줄 만 하다.
7년 만에 만난 여자애랑 이렇게 장난을 주고받을 정도면.
그 증거로 옆에서 윤우가 상당히 부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한결같다니까.’
아마 십년이 흘러도 이 녀석들은 그대로일 거 같다.
나는 웃으며 자리에 착석했다.
“연두야.”
“네, 아빠.”
“이제 곧 시작할 거야. 수찬쌤 결혼식.”
“수찬쌤은 어디써요..?”
“글쎄. 아마 지금 준비중이시지 않을까? 신부도 마찬가지고.”
“빨리 보고 싶따..”
설레는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연두.
나는 작은 목소리로 넌지시 물었다.
“떨리지는 않아? 결혼식 시작하면 저기 올라가서 축가 불러야 할 텐데. 많은 사람들 앞에서.”
“떨리는데.. 갠차나요!”
“왜?”
“혼자가 아니니까..”
혼자가 아니니까.
이 말도 이제는 연두사전에 등록되기 충분한 거 같다.
옆에 앉은 친구들을 바라보며 연두는 말했다.
“가치 할 시으니랑 레나 이써요.. 헤헤.”
시은이랑 레나도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이게 팀이지. 함께면 두려울 게 없는 팀.
자연히 나도 마음이 놓였다.
터벅. 터벅.
점점 하객이 홀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남은 빈자리가 모두 채워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뒤에 서 있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그렇게 하객으로 가득 채워진 홀 내부.
틱.
어느 순간, 밝은 홀 내부가 암전됐다.
그렇다고 온통 어두워진 건 아니다.
아까처럼 테이블 위의 캔들과 몇몇 조명이 내부를 밝혔다.
동시에 흘러나오는 음악.
엄숙하면서도 분위기가 처지지는 않는 음악이었다.
시작을 알리는 느낌이라 해야 하나.
아니나 다를까, 음악이 멎은 뒤에 한 남자가 강당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오늘 결혼식 사회를 맡은 사회자 김도식입니다. 현재 방송국에서 방송 MC와 리포터, 그리고 쇼호스트로……”
사회자의 간단한 자기소개가 이루어졌다.
더 이상의 군말은 없었다.
신세대(?)의 결혼식답게 곧바로 멘트가 이어졌다.
“그럼 바로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신랑 홍수찬님과 신부 최정윤님의 결혼식. 지금 시작합니다!”
시작이라는 말에 잡고 있던 내 손을 더 꼭 쥐는 연두.
대망의 결혼식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