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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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6화. 인편
타이푼을 활용해 풀어낸 첫 번째 문제.
그걸 시작으로 나머지 문제도 지우는 어렵지 않게 풀어냈다.
“.. 다 풀었어, 엄마!”
“그래, 잘했어.”
“헤헤.”
기본적으로 딸이 잘 되길 바라는 그녀였다.
이번에야말로 풀지 못했을 거라는 건 그저 예상이었을 뿐, 완벽히 풀어낸 상황에서 꼬투리를 잡을 만한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이희영은 딸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지우야.”
“응.”
“당분간 진도는 그만 나가자.”
지우의 눈이 동그래졌다.
늘 선행학습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엄마와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으니까.
그 생각대로였다.
이희영에게 이렇다 할 심경의 변화가 있는 건 아니었다.
“복습도 중요하니까.”
벌써 3학년 수학의 두 번째 대단원까지 진도를 나간 상태.
서두르는 건 독이 될 수 있다.
전체적으로 복습을 진행한 뒤에 넘어가는 게 더 합리적이라는 판단이었다.
조금은 실망한 듯한 지우의 표정.
그 표정을 보지 못한 이희영은 계속해서 말했다.
“1학년인데 3학년 수학을 하고 있다고 해서 친구들보다 훨씬 앞지르고 있다는 착각을 해서는 안 돼. 우쭐해서도 안 되고.”
“.. 왜?”
“오늘 그 친구만 해도 그렇잖니. 지우한테 수학을 알려준 친구.”
“타, 타이푼?”
“… 그래.”
고개를 살짝 떨군 채로 지우는 중얼거렸다.
“예은이..”
“그래. 연두랑 같은 반 친구라면 그 예은이란 애도 1학년인 거 아니니?”
“마, 맞아…”
어느새 지우는 또 움츠러든 채로 말을 더듬고 있었다.
자신감 있던 모습은 사라지고.
잘했다며 칭찬해 줄 때가 아닌, 엄마가 이런 얘기를 할 때면 자연스럽게 생기는 변화였다.
안타깝게도 그런 면에 있어서 이희영은 둔감했다.
“그 친구뿐만이 아니야. 이 순간에도 저 멀리 앞질러가고 있는 친구들은 수없이 많으니까. 그 친구들한테 뒤처지지 않으려면 더 노력하는 수밖에 없어.”
왜일까.
늘 듣는 말인데도 이번에는 조금 다르다.
지우는 조심스레 입을 뗐다.
“꼭.. 앞질러가야 해?”
“뭐?”
“친구들이랑.. 같이 가면 안 돼..?”
그런 지우의 물음에 이희영은 대답했다.
“다른 거 같네. 지우랑 엄마가 생각하는 친구는.”
확실히 그랬다.
지우가 생각하는 ‘친구’의 기준에 선행학습 여부같은 건 없었다.
함께 고민을 나누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모두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안녕..?]아주 오래전.
혼자 쓸쓸히 놀이터에 앉아있던 날, 연두가 다가와 손을 내밀어준 그 순간부터.
지우의 마음속에 뿌리내린 친구의 정의였다.
“잘 들으렴.”
허나 이희영은 아니었다.
그녀가 생각하는 친구의 기준과 정의는 아예 달랐다.
“그렇게 지우가 생각하는 친구들과 걸어가는 동안, 앞서 달려가는 친구들과의 격차는 점점 벌어질 거야. 그럼 어떻게 될까?”
“나, 나는……”
“따라잡을 수 없게 돼.”
그 뒤에 이희영은 덧붙였다.
“그러니까 방법은 하나야.”
“…”
“그 앞에서 달려가는 친구들과 친구가 되면 돼. 이를테면 오늘 지우한테 수학을 가르쳐준 예은이같은 아이.”
예은이는 이희영이 생각하는 친구의 기준에 부합하는 아이였다.
3학년 문제를 푼다는 사실만으로도.
뒤늦게 그녀의 눈에 들어온 지우의 기죽은 표정.
“.. 지우야.”
“으, 응..”
“네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야.”
이희영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엄마도 그럴 때가 있었으니까.”
“.. 응?”
“지금 같이 있는 친구들이 영원히 함께일 거 같고, 친구들이 있으면 어떤 힘든 일도 이겨낼 수 있을 거 같다는. 그런 생각을 하던 때가 있었지.”
“그, 그럼……”
“착각이었어.”
그렇게 한 마디로 일축한 이희영은 말했다.
“왜인 줄 아니?”
“.. 왜?”
“힘든 상황이 찾아왔을 때,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거든. 친구라고 생각했던 어느 누구도. 단 한 명도.”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번진다.
평소라면 하지 않는 말이었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괴로워지는 기분이 드는 기억이었으니까.
“그런 상황 속에서 남는 건 단 하나란다.”
“하나..?”
“그래.”
손으로 스스로를 가리키며 그녀는 말했다.
“나.”
“…”
“오직 ‘나’만이 남아.”
평소 목소리 톤의 변화가 없다시피 한 그녀였다.
그래서 더욱 차이가 두드러졌다.
조금의 격앙된 목소리만으로도 평소와는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으니까.
“그런 ‘나’한테 아무것도 없다면 어떻게 되는 줄 아니?”
“어, 엄마..”
“무너지게 되어있어.”
스스로의 변화를 체감하지도 못한 채로 이희영은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그게 사람이거든.”
처음이었다.
늘 반복하는 얘기이긴 했지만 이 정도로 딥하게 이야기한 적은 없었으니까.
그런 엄마를 보는 지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러니까 능력을 길러야 해. 누군가에게 의지하려는 나약한 마음이 아니라, 스스로 극복해낼 수 있는 능력을. 그 능력이 있어야 지우가 생각하는 친구도 떠나지 않게 만들 수 있으니까.”
옳고 그름의 여부와 별개로 여덟 살의 아이가 이해하기 쉬운 얘기는 아니었다.
지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지금 엄마의 말 속에는 차마 헤아리기 힘들 정도의 상처가 묻어난다는 걸.
“그리고 학생에게 있어서 그 능력은 공부란다.”
딸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이희영은 얘기했다.
“엄마 말이 이해가 가니?”
알 수 없었다.
혼란스러운 감정 속에서 또 여러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이윽고 지우는 입을 뗐다.
“.. 응.”
환하게 웃어보였다.
“나.. 열심히 할게, 엄마.”
“.. 착하구나.”
그 모습은 마치,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실타래같았다.
***
선화초 교무실.
음악동아리 담당교사 유신애와 도서부 담당교사 주진리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다름 아닌 예은이에 관해서였다.
“걱정이 되긴 했어요.”
찾아간 건 유신애였지만, 먼저 얘기한 건 주진리였다.
그녀는 말했다.
“동아리활동에 거의 흥미를 못 가지는 거 같았거든요.”
“그랬나요.”
“네. 친구들이랑 어울리고 싶은 마음도 없어보였고요.”
조금은 망설이는가 싶더니 주진리는 얘기했다.
“그리고 아실지는 모르겠지만…… 예은이가 조금 특이한 면이 있거든요.”
“특이한 면이라면……”
“사실 잘 모르겠어요. 어떤 판타지소설을 읽은 건지, 아니면 그런 상상을 하는 걸 좋아하는 건지. 한 번은 책은 안 읽고 뭘 열심히 그리고 있길래 뭘 하고 있는 거냐고 물으니까 지도를 그리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지도요?”
“네. 학교 안에 있는 비밀통로를 찾기 위한 지도를 그리고 있다고. 그 비밀통로를 찾으면 보고 싶은 건 뭐든지 볼 수 있다고 했던가?”
확실히 그랬다.
돌이켜보면 처음에 음악실에서 예은이가 뱉은 말이 있었다.
‘나는 비밀통로 결사 동아리 회장이다. 기지가 필요해 음악실로 왔다.’
그래.
분명히 비밀통로 어쩌고라고 했지.
조금 미간이 움츠러든 유신애, 그녀의 표정을 본 주진리가 말했다.
“사실 터무니없는 얘기잖아요? 그게 귀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이 됐죠. 근데 뭐 상상력이 풍부한 나이이기도 하고, 누구나 한 번쯤은 그런 때가 있는 법이니까요. 저도 슈가바니룬에 환장했고요. 그때는 피에루가 얼마나 얼마나 멋있던지…… 앗.”
Tmi였다고 생각한 걸까.
멋쩍은 듯 미소를 지으며 주진리는 말을 보탰다.
“그렇다고 예은이가 머리가 나쁜 건 아니란 말이죠. 아니, 오히려 좋다고 해야겠네요.”
“왜죠?”
“책은 제대로 읽지도 않는데 질문하면 대답은 곧잘 하거든요. 감상문도 조금 별나긴 하지만 잘 쓰고. 이해력이 굉장히 빠르다고 해야 할까요?”
“.. 그렇군요.”
“그래서 조금 놀랐어요. 갑자기 예은이가 음악동아리로 갔다고 했을 때.”
실제로 그랬다.
저번 동아리시간에 예은이는 도서부가 아닌 음악동아리를 찾았다.
그런 예은이를 향해 유신애는 얘기했다.
‘돌아가렴.’
‘…’
‘다른 동아리에 이렇게 허락도 없이 들어오면 안 되지. 학기중에 동아리를 바꾸는 것도 교칙상 안 되고. 도서부라고 했지? 어서 도서실로 가.’
그 날 이어진 대화였다.
늘 그렇듯 유신애는 엄격했고, 연두는 어쩔 줄 몰라했다.
그 속에서 들려온 건 짧은 한 마디였다.
‘싫어..’
‘.. 뭐?’
‘나는… 나는 여기에 있고 싶어……’
반말은 지적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앞선 자기소개와 달리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쓸쓸함에 잠깐이지만 당황하고 말았으니까.
그래서였다.
지금 도서부 담당교사인 주진리를 찾아온 건.
“진리쌤.”
“네.”
“괜찮으시다면 예은이를 우리 동아리로 데려와도 괜찮을까요?”
조금 놀란 듯 주진리는 답했다.
“예은이도 그러고 싶어하는 거 같고 선생님도 그렇게 말씀하시니 저는 상관없는데……”
교칙을 걱정하는 거 같았다.
그 의도를 알아챈 유신애는 얘기했다.
“다른 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예은이 부모님께도 다른 절차도 제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거창한 이유는 없었다.
학생이 무언가를 간절히 바란다면, 그걸 들어주는 건 교사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교사로서 유신애의 신념이었다.
‘궁금하기도 하고.’
음악동아리 속에서 예은이가 보여줄 모습이 개인적으로 궁금하기도 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이렇게까지 얘기하는데 주진리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네, 그럼……”
그렇게 결정됐다.
예은이의 음악동아리 입부가.
***
장소는 철원.
훈련소에 들어온지도 벌써 열흘 가량이 흘렀다.
“헉.. 헉…”
소대로 돌아온 소대원들이 숨을 몰아쉰다.
고래도 그중 하나였다.
훈련소에 들어와서 고래는 새삼 스스로의 인기를 실감하고 있었다.
‘.. 내가 이 정도였나?’
이렇게 말하면 엄청난 인기를 실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실상은 그 반대였다.
아무도 없었다.
스트리머이자 방송인으로서의 고래를 알아보는 사람이.
‘이게 말이 돼? 머리를 빡빡 잘라서 못 알아보는 건가?’
나름 알아주는 인지도를 가진 고래였다.
마이크래프트에 한정하면 항상 세 손가락 안에 꼽히기도 했고.
그래서 생각했다.
훈련소에 들어가면 연예인 수준은 아니더라도 꽤나 인기인이 될 거라고.
“.. 인기인은 개뿔.”
“응? 뭐라고?”
“아니에요. 그냥 지쳐서요.”
“하하, 뭐야.”
자기도 모르게 속마음이 입 밖으로 튀어나온 동한은 고개를 휙휙 저었다.
그와 별개로 훈련소생활은 나름 괜찮았다.
걱정했던 것 치고는 버틸 만 했고, 분대원들과 친해지는 데 큰 어려움을 겪지도 않았으니.
확실한 건, 겨울에 왔으면 지옥이었다.
그 사실에 안도하며 고래는 나름 순조로운 훈련소생활을 하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보여주고 싶었다.
훈련소 들어가면 폐급 확정이라며 자신을 비웃었던 시청자들과 윤영이누나에게.
‘나도 한다면 하는 놈이라고.’
그때였다.
옆에서 투덜대듯 뱉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근데 진짜 이게 맞는 건가?”
훈련소에서 친해진 한 살 터울의 형이었다.
이름은 유재진.
“뭐가, 형?”
“아니, 그렇잖아. 우리 들어온지도 벌써 열흘 가까이 됐는데 지금까지 인편을 못 받아보는 게 말이 돼? 애들한테 듣기로는 보통 일주일 안에는 첫 인편 받아본다고 했는데.”
“그렇긴 하네.”
“일 좀 하지, 진짜. 이렇게 굴리면서 인편도 안 주는 건 뭐냐고.”
동한은 웃으며 위로했다.
“주말이 껴서 그럴 거야. 금방 오겠지.”
“.. 그렇겠지.”
유독 재진이 늦은 인편에 분노하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여자친구였다.
그는 사회에 두고 온 여자친구가 있었으니까.
“안 보내지는 않겠지?”
“에이, 설마. 3년을 만났다면서.”
행복한 고민이다.
게임과 방송에 미쳐있었던 고래에게 인편을 보내줄 여자친구는 없었다.
더 정확히는 여자 자체가 없었다.
‘아니, 있구나.’
딱 한 명.
친누나나 다름없는 윤영이누나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눈물이 앞을 가리는구만.
나머지는 시청자들이다.
의기양양했던 처음과 달리 지금은 잘 감이 오지 않았다.
얼마나 많은 시청자들이 인편을 보내올지.
‘.. 안 오는 거 아니야?’
그런 불안감도 없지는 않았다.
오랜 시간을 함께한 시청자라고 해도 결국은 온라인상에서 맺어진 인연이니까.
얼굴도 알지 못하는.
게다가 그들에게는 방송인 고래 말고도 선택지는 많았다.
‘기억은 하려나.’
지금쯤이면 군대에 갔다는 사실을 잊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고래의 존재조차.
힘든 훈련보다도 그런 생각들이 동한을 씁쓸하게 만들었다.
그때였다.
치지직.
방송화면이 떠오르더니 음성이 들려왔다.
조교의 목소리였다.
“각 분대 분대장들 집합.”
자주 있는 일이었다.
그 말에 따라 분대장인 배동현은 일어서서 복도로 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온 그의 손에는 들려있었다.
웬 바구니가.
“어, 그게 뭐야?”
씩 웃으며 배동현은 답했다.
“인편 왔대.”
“진짜?”
“드디어 왔구나!!”
심드렁하니 앉아있던 유재진의 눈이 번쩍 뜨인다.
고래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둘뿐 아니라 모든 분대원들이 흥분해서 벌떡 일어났다.
“너무 서두르지 마. 나눠줄 테니까.”
동현은 돌아다니며 차례차례 인편을 나눠줬다.
그러던 와중.
동한의 앞에 멈춘 동현의 눈이 커다래진다.
“.. 뭐야?”
“왜 그래요, 형?”
“동한이 너는 인편이 왜 이렇게 많아? 너 밖에서 유명했어?”
그 말대로였다.
한눈에 봐도 비교가 될 정도로 수북이 쌓인 출력된 편지들.
멋쩍게 웃으며 동한이 대답했다.
“유명하다기보다는… 방송을 좀 해서요.”
“방송?”
“네.”
이목이 쏠린다.
그런 상황 속에서 이어지는 물음.
“방송명이 뭐였는데?”
“그.. 고래라고.”
“어어?”
어디선가 들리는 소리.
분대원 중 한 명이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나 아는데!!”
“…”
“와, 진짜 소름이다.. 동한이 네가 고래라고? 왜 못 알아봤지?”
“하하..”
하나둘 알아본다.
겉으로 내색은 안 하면서도 속으로는 씨익 웃고 있었다.
그래. 이게 맞는 거지.
‘고맙다, 얘들아.’
동한은 시청자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인편이 잔뜩 온 덕분에 자연스럽게 방송을 했다는 걸 밝힐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건네받은 인편.
“궁금하다.”
“이게 인싸라는 거구나. 내 인편 숫자 너무 초라한데?”
“같이 봐도 돼, 동한아?”
기분이 좋아진 고래는 고개를 끄덕이며 설레는 마음으로 첫 인편을 펼쳤다.
옹기종기 모인 분대원들.
[잘 지내지, 고래야?]따뜻한 제목.
역시 억까를 하긴 해도 다들 마음은 착하다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시선을 내리는데,
-잘하고 있을지 심히 걱정된다, 고래야.
-근데 그 얘기는 지켰어?
-훈련소 들어가자마자 같이 들어간 분대원들 군기부터 제대로 잡고 시작할 거라고 했던 거.
-눈만 마주쳐도 벌벌 떨게 만들 거라고……
띠용 커다래지는 눈.
서둘러 인편을 가린 동한은 좌우로 시선을 돌렸다.
싸늘한 시선이 비수처럼 꽂힌다.
“.. 진짜야?”
“와, 동한아. 그렇게 안 봤는데.”
“전부 가식이었니?”
전부 장난이었다.
그걸 모르는 동한은 손사래를 치며 부정했다.
“아니야! 이거 다 구라야! 원래 얘네는 구라를 밥 먹듯이 친다고.”
그렇게 해명하는 동안 옆에서는 재진이 편지를 읽고 있다.
“흐헤헤.. 나경아. 나도 사랑해……”
동한은 깨달았다.
인편의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내용이 중요한 거라는 걸.
하나같이 매웠다.
시청자들이 보낸 인편은.
‘.. 너무하잖아!’
다른 곳도 아닌 군대다.
그중에서도 최전방에 위치한 백골부대이고.
빈말로라도 따뜻한 말 한마디 정도 해 줄 수는 없는 건가?
[아 ㅋㅋ 거기는 이런 거 있냐?](사진)
[고래야. 너 생각나서 보낸다.](치킨 기프티콘)
[이거 뭐냐? 윤기가 좔좔 흐르네.](사진)
-아아.. 이것은 튀긴 닭이라는 것이다. 네놈의 세계에는 없는 음식이지.
으득.
동한은 이를 악물었다.
‘치킨 사진 좀 그만 보내라고!!!’
속으로 울부짖었다.
벌써 얼마나 많은 닭을 본 건지 모르겠다.
밀려오는 허탈함과 그 와중에도 치킨에 반응하는 침샘에 정신이 피폐해지려는 순간,
-고래오빠…
눈에 들어온 제목에 고래는 실소를 내뱉었다.
‘가지가지 하는구나.’
이제는 제목만 봐도 어떤 내용일지 전부 예상이 갔다.
고래오빠?
딱 봐도 여자인 척 자신을 설레게 하려는 시청자의 소행이다.
‘.. 속겠냐고.’
웃음밖에 안 나온다.
무슨 얘기를 해 놨을까 확인이나 하자는 마음으로 동한은 시선을 내렸다.
그와 동시에 벌어지는 입.
“.. 어?”
조금 더 시선이 내려가고, 편지를 쥔 동한의 손이 덜덜 떨렸다.
이윽고 터져나왔다.
“어어! 어어어!!!”
“뭐야!”
갑작스러운 고래의 텐션에 흥미를 잃었던 분대원들도 다시 모여들었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편지를 두 손으로 쥐고 벌떡 일어난 고래는 웃음을 터트렸다.
세상을 다 가진 듯이.
“크하하!!!”
지금껏 온 편지로 황폐해진 마음을 단번에 치유시키는 한 통의 편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