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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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7화. 독일어 수업
“마계랑 지상계를 잇는 눈, 초월안의 소유자다!!”
뭔지 몰라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거창하다.
아무런 이유 없이 예은이가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니었다.
그야, 눈앞에 있는 건 노엘이었으니까.
‘.. 금발에 초록색 눈.’
특히나 초록색 눈동자는 예은이 세계관에 따르면 마안에 속했다.
레나와는 또 달랐다.
금발이라는 점에서 비슷하긴 하지만, 노엘은 외모에서 더 이질적인 분위기가 흘렀으니까.
다른 세계에서 온 게 아니면 낼 수 없는 느낌이라 해야 하나.
실상은 그 세계가 마계도 어디도 아닌 독일이지만.
예은이는 생각했다.
‘.. 진짜야.’
처음 레나를 봤을 때도 혹시나 하고 의심했던 기억이 있다.
얼마간 바라본 결과 판단을 내렸다.
아니라고.
그러나 눈앞의 존재는 보는 순간 진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또한 예은이는 생각했다.
‘마계에서.. 나는 초월안의 소유자를 좋아했던 게 틀림없어.’
예은이 유니버스, 아니 세계관이 빠르게 수정됐다.
뒷받침하는 여러 이유가 떠올랐지만, 본인도 자각 못 한 이유는 노엘이 너무 잘생겼기 때문이었다.
그 외모가 예은이의 확신에 신빙성을 더했고.
뒤늦게 달려 나온 연두.
“예은아!”
오랜만에 예은이를 본 연두의 얼굴에 반가움이 떠올랐다.
“천상의 로…… 아니, 연두야.”
“헤헤.”
그런 연두의 손을 잡고 예은이가 말했다.
세상 진지한 표정으로.
“어디서 온 거야?”
“.. 으응?”
“마계와 지상계를 잇는 존재.. 초월안의 소유자!”
감히 쳐다볼 수도 없다는 듯이 소심하게 노엘을 향하는 시선.
그 시선을 본 연두는 물었다.
“노엘?”
또 한 번 예은이는 꿈틀했다.
“노엘..”
역시나 범상치 않은 이름이었다.
이질적인 이름.
실상은 그것도 이곳이 독일이 아닌 한국이기 때문이었지만.
“노엘은 독일에서 왔어..!”
“도, 독일!”
무슨 말을 해도 격하게 반응하는 예은이.
딱 거기까지였다.
가만히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어머니 유수진의 인내심은.
“그만하고 빨리 인사 안 해!”
그러다 주원을 보고 인사한다.
“어머,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괜히 민폐를 끼친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예은이가 너무 심심해해서……”
“하하, 아니에요. 안 그래도 놀고 있었는데요.”
그렇다.
공교롭게도 전화한 타이밍이 시기적절했다.
인사를 나눈 뒤에 주원은 예은이를 향해서도 반갑게 인사했다.
“오랜만이야, 예은아.”
꾸벅.
요리를 잘하는 아저씨.
얼굴을 보니 그날 식탁에서 들었던 말이 떠오른다.
‘건강하고 씩씩하게 크려면 당근은 꼭 먹는 게 좋거든.’
왜인지는 모르겠다.
그 말이 머릿속을 두둥실 떠다니다가 사라졌다.
다음은 노엘이었다.
“.. 윽.”
영롱한 초월안과 마주하니 모든 걸 간파당하는 기분이었다.
예은이는 살짝 고개를 틀고서 말했다.
“바, 반가워.”
다소 수줍은 인사였다.
그 말을 들은 노엘은 손을 뻗으며 인사했다.
“Schön, dich zu sehen.”
(만나서 반가워.)
평범한 인사말이었지만 억양이 센 독일어는 예은이의 귀에 꼭 주문처럼 느껴졌다.
눈앞에 드리운 손.
주문에 걸린 듯 마법처럼 예은이는 손을 뻗었다.
찌릿.
손이 닿자마자 전기가 통하는 기분이었다.
그걸 본 노엘은 생각했다.
‘한국에는 이런 애가 많은가 보네.’
선동이도 그렇고 제스처가 과한 아이가 많았다.
그건 친해지고 싶다는 의미로 느껴졌다.
노엘에게 있어서 그런 의도를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건 표정이었다.
레나로부터 배운 표정.
스윽.
올라가는 입꼬리.
노엘은 보다 더 능숙해진 썩소를 예은이에게 선보였다.
그 웃음을 본 예은이는 생각했다.
범접이 불가능한 존재라고.
***
노엘의 웃음.
의도한 건 아니지만 어지간한 중이병이 아닌 이상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웃음이었다.
“그럼 잘 부탁드릴게요.”
“네, 어머님.”
유수진이 떠나고 난 뒤.
아직 예은이와 인사를 나누지 않은 한 아이가 있었다.
다름 아닌 선동이였다.
아까부터 시종일관 선동이는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처음 보는 애가 등장한 건 그렇다 치고, 포커스가 오로지 노엘을 향해 쏠려있었으니까.
‘안 되겠어.’
아직 예은이라는 여자애는 자신이 있는 줄도 모르는 거 같았다.
어쩔 수 없지.
한 발 앞으로 나가 존재감을 드러내는 수밖에.
툭.
그렇게 선동이는 앞으로 나섰다.
헛기침까지 내뱉으며.
“큼..”
다행히 효과가 있었다.
노엘에게 눈을 떼지 못하던 예은이가 고개를 돌렸으니까.
“어! 당신은……”
역시 알아보는구나.
꿈틀대는 입꼬리를 간신히 억누르며 선동이는 태연한 표정을 유지했다.
굳이 먼저 말하지는 않기로 했다.
네가 생각하는 사람이 맞다는 둥, 내가 바로 감자소년, 그리고 이든의 모델이라는 둥의 이야기는.
먼저 얘기하지 않아도 들려올 테니 말이다.
“마계와 지상계를 잇는 눈, 초월안의 소유자!”
생각과는 다르긴 하지만 뭔가 대단해 보이기는 한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다.
이거 방금 노엘을 봤을 때랑 똑같은 멘트 아닌가?
그런 생각과 동시에 이어지는 말.
“…… 노엘의 집에서 청소를 담당했던 남자!”
“…”
한마디로 청소부라는 뜻이었다.
기가 막혔다.
청소부라는 말 때문이 아니라, 담당한 곳이 노엘의 집이라는 것 때문이었다.
뭐냐고, 이 열받는 여자애는.
옆에서는 연두가 또 친절하게 소개를 대신해준다.
“선동이오빠야.. 이름은 오선동.”
“오선동. 역시……”
뭐가 역시인 건데!
약이 바짝 올라 주먹을 꾹 쥔 선동이 뒤에서 들려왔다.
“염병.. 뭐가 이렇게 소란스러워?”
한 마디로 이목이 집중됐다.
모습을 드러낸 민홍임.
그런 그녀의 눈에 들어온 건 처음 보는 아이인 예은이였다.
“거기 쥐방울 옆에.”
“…”
“뭘 그렇게 멀뚱히 서 있어? 어른을 처음 봤으면 인사를 해야지, 요 가시나야.”
예은이는 흠칫 몸을 들썩였다.
이유는 하나였다.
아무리 할머니라고 해도, 나는 비밀통로 결사대이자 인간계의 수호자인데.
바로 고개를 숙이기에는 자존심이 용납할 수 없었다.
“어쭈?”
그 자존심이 꺾이는 건 한 마디면 충분했다.
자동으로 고개가 내려갔으니까.
허나 끝이 아니었다.
“버르장머리 좀 보게? 고개만 까딱하면 끝이야?”
그 말에 더욱 내려간 고개는 허리를 경계로 정확히 90도를 만들었다.
명품 폴더가 된 예은이.
민홍임이 아닌 연두를 바라보며 입을 뗐다.
“아, 안녕하세요오…”
차마 정면으로 바라보기에는 심장이 떨려서였다.
“참내. 웃기는 년일세.”
예은이조차 한 수 접게 만드는 포스.
그렇다.
세계관 최강자는 초월안의 소유자도 누구도 아닌 민홍임이었다.
***
점심 식사가 이어졌다.
밥을 먹고 온 예은이였지만 조용히 한 자리를 차지했다.
왜냐고?
부엌에 선 아저씨의 모습을 봤으니까.
두근. 두근.
그 뒷모습만으로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할머니. 그냥 앉아계셔도 되는데……”
“됐어, 이놈아.”
탁. 탁.
주원의 옆에서 민홍임은 채소와 버섯을 손질했다.
보기 좋은 뒷모습.
어느새 선동이의 손에는 연두색 카메라가 들려있었다.
“.. 흐흐.”
음흉한 웃음은 패시브였다.
그 옆에서 연두가 자그맣게 웃으며 입을 뗐다.
“고마워여, 선동이오빠..”
“응?”
“아빠랑 할머니.. 연두 카메라로 찍어줘서……”
그걸 모르는 주원은 할머니의 조력에 힘입어 요리에 온 정신을 기울이고 있었다.
오늘 선정한 메뉴는 간장제육볶음.
이유는 간단하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메뉴니까.’
거의 호불호 없이 좋아할 만한 메뉴였댜.
매운 걸 못 먹는 연두도, 야채를 싫어하는 예은이도, 독일에서 온 노엘과 줄리도.
슬쩍 옆을 바라봤다.
할머니에게도 손주의 요리실력을 선보이고 싶었다.
“감사해요, 할머니.”
“이제 알아서 해.”
바라던 바였다.
야채 손질을 마친 할머니는 쿨하게 돌아섰다.
사실상 준비는 끝이었다.
미리 요리 스승 이호연으로부터 전수 받은 마법 소스로 고기를 재워뒀으니까.
비록 유투브를 통해서긴 하지만.
‘실패할 수가 없다는 거지.’
달궈둔 팬에 바로 고기를 투하했다.
치지직.
지금부터는 과장이 아니라 초등학생이 와도 할 수 있었다.
연두도 할 수 있다는 거다.
그렇다고 연두한테 맡길 생각은 없지만.
탁. 탁.
고기끼리 뭉치지 않도록 살살 풀어가며 볶아준다.
그러다 고기가 다 익을 즈음.
‘버섯이랑 대파 투하.’
이제 버섯만 보면 된다.
버섯이 익어 윤기가 돈다 싶을 때 불을 끄면 되거든.
바로 지금이다.
미련 없이 불을 끄고 하얀 접시에 옮겨 담았다.
“깨깨깨…”
통깨를 뿌려 마무리한다.
맛도 맛이지만 비주얼부터 눈을 사로잡는다.
바로 식탁 위로 가져갔다.
툭.
그리고 나는 봤다.
접시를 놓는 순간부터, 이미 눈으로 식사를 시작한 아이들의 표정을.
***
대표메뉴인 간장제육볶음과 더불어 미역국, 그리고 각종 반찬이 식탁 위에 올라갔다.
“잘 먹겠습니다!”
식사에 앞서 들려오는 인사들.
어서 먹으라고 얘기한 뒤에 노엘을 향해서도 말을 건넸다.
“맛있게 먹어, 노엘.”
“Vielen Dank, Ihnen.”
굳이 줄리가 해석해주지 않아도 어떤 말인지는 감이 왔다.
젓가락을 드는 노엘.
왜인지 예은이는 세상 감격스러운 표정이다.
동시에 중얼거린다.
“퓌엔 당크, 인헨.. 윙가르디움 레비오우사…”
“푸흣.”
실소가 나왔다.
왜 갑자기 그게 이어지는 건데.
확실히 독일어는 일상적인 말도 주문을 외우는 것처럼 느껴지긴 했다.
이윽고 본격적인 식사가 시작됐다.
“우와…”
선동이를 시작으로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튀어나온다.
연두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으.. 맛있어…”
행복에 젖은 표정이다.
언제부터일까.
이런 반응을 볼 때마다 상상 이상의 뿌듯함이 느껴지곤 했다.
“입에 맞으세요, 할머니?”
미역국을 한술 뜨며 대답한다.
“뭐, 그냥 먹을 수준은 되네.”
“하하.”
이 정도면 극찬이라고 볼 수 있다.
다행이네.
첫입을 뗀 순간부터 줄리는 말없이 식사에 열중하고 있다.
남은 건 노엘과 예은이뿐이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예은이는 젓가락도 들지 않고 노엘을 바라보고 있다.
슥.
그 속에서 노엘은 천천히 숟가락을 들었다.
역시 고상하다.
보통의 또래 아이에게는 찾아보기 어려운 품위 있는 동작.
먼저 입에 댄 건 미역국이었다.
“…”
한층 선명해진 눈동자.
그 상태로 노엘은 미역국 두어 숟가락을 더 떠먹었다.
‘.. 마음에 드는 건가.’
괜히 집중하게 되네.
한편 예은이는 뒤늦게 아차 하고 숟가락을 들더니 미역국을 떠먹는다.
정확히 세 숟가락이다.
내 생각이 맞다면 노엘을 따라 하는 거 같았다.
사락.
다음은 젓가락이었다.
젓가락은 대망의 간장제육볶음을 향했다.
양파와 버섯, 그리고 고기 한 조각을 집어 들어 밥 위에 올린다.
그리고 다시 숟가락이다.
‘역시는 역시 역시군.’
혹시나 했는데.
젓가락으로 밥을 먹는 행동 따위는 없었다.
양도 딱 적당했다.
너무 적지도 않고 그렇다고 넘치지도 않는 한입에 딱 들어갈 만한 양.
“…”
예은이는 갈등에 빠진 듯 보였다.
고기 한 조각은 진작에 가져갔지만 갈등 요소는 양파와 버섯이었다.
그러나 곧 마음을 정한 듯 젓가락을 움직였다.
슥. 슥.
양파와 버섯.
그렇게 예은이는 노엘의 식사를 그대로 카피하고 있었다.
정작 노엘은 눈치 못 채고 있었지만.
마침내 첫입이었다. 내 기준에 국은 첫입으로 안 치니까.
오물. 오물.
아까와는 달랐다.
이번에는 명백히 표정에 변화가 일어났다.
심각해진 표정.
그 표정을 한 채로 노엘은 중얼거리듯 이야기했다.
“Es ist lecker.”
입에 안 맞는 걸까.
반대로 표정을 못 숨기던 예은이는 뒤늦게 인상을 잔뜩 구기며 얘기한다.
“이즈 이스트 레커..”
멘트까지 따라한다.
그 소리를 들은 노엘은 조금 놀란 듯 예은이를 바라보더니 웃음 짓는다.
물론 특유의 썩소였다.
대체 이번에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걸까.
‘모르겠어.’
감이 오지 않는다.
결국 나는 줄리에게 작은 목소리로 도움을 청했다.
“저기, 줄리.”
“네.”
“방금 노엘이 뭐라고 한 건가요?”
줄리는 빙긋 웃으며 뭐라 뭐라 얘기한다.
짧지 않은 설명이었지만 한 마디로 압축이 가능했다.
그게 뭐냐고?
“하하..”
내 입으로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끝내주게 맛있다는 뜻이었다.
***
식사가 끝난 뒤.
우물쭈물하며 한참을 서 있던 예은이는 연두를 불렀다.
“.. 으응?”
알쏭달쏭한 표정의 연두.
그런 연두를 데리고 향한 곳은 다름 아닌 노엘의 앞이었다.
냅다 예은이는 고개를 숙였다.
“가르쳐줘!”
“…?”
“나한테도 주문을 가르쳐줘!”
여기서 예은이가 말하는 주문은 독일어를 뜻했다.
줄리는 유능했다.
“주문? 독일어를 말하는 거니?”
“네!”
그렇게 노엘의 귀에는 ‘독일어를 가르쳐줘!’라는 문장이 들어왔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번역하는 줄리.
자연히 모여들었다.
“한국인이 한국어만 할 줄 알면 되지…”
“오, 독일어? 나도 궁금한데.”
노엘에게 포커스가 쏠리면 화가 나는 선동이와, 마침 뒷정리를 마치고 거실로 걸어 나오던 주원까지.
의외로 노엘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그렇게 시작됐다.
수강생 넷을 앞에 둔 노엘의 독일어 수업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