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676)
676화. 초월안의 소유자
“촬영감독 오선.. 아니, 감자소년.”
마치 전장에서 임무를 마치고 돌아와 보고를 올리는 장수의 느낌이다.
왜 그런 거 있잖아.
최선을 다했으니 미련은 없다는 듯한 표정.
‘그런데 그 임무가 뭔데?’
감이 오지 않는다.
애초에 나는 이 녀석한테 무언가를 시킨 기억도 없고.
단서는 하나였다.
여전히 나를 향해 내밀고 있는 이 연두색 카메라.
슥.
카메라를 건네받았다.
그러자 선동이는 내 생각대로 할 일을 끝냈다는 듯 대자로 바닥에 드러눕는다.
그 모습을 보며 쿡쿡 웃는 연두.
“헤헤..”
한시름 놓았다.
심각한 일이 있었다면 연두가 이렇게 웃지 않았을 테니.
뒤늦게 입을 뗐다.
대상은 선동이가 아닌 할머니였다.
“저 없는 동안 별일 없으셨죠?”
“있을 게 뭐 있어?”
“그러니까요. 방금 보니까 되게 즐겁게 보내신 거 같던데요.”
여기서 방금 본 장면이라 하면 연두가 할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있던 장면을 칭했다.
어깨를 꿈틀하는 할머니.
본인이 생각해도 그 모습이 어색한지 쏘아붙인다.
“시끄러!”
굳이 감상을 덧붙이지는 않기로 했다.
이를테면 잠깐이나마 본 장면 속 할머니의 눈이 무척이나 따뜻해 보였다는 것.
후회가 될 정도였다.
그런 줄 알았으면 모르는 척 거실에 좀 있다 들어올걸.
‘많이 친해졌나 보네.’
원래도 그랬지만 연두와 할머니는 많이 가까워진 거 같았다.
느낌이 그랬다.
단순히 물리적 거리뿐 아니라 정서적 거리도.
“아빠..”
“응, 연두야.”
“할머니 무릎 베고 누우면.. 진짜진짜 기분 좋아요.”
“하하, 그래?”
빙긋 웃으며 물었다.
“어떻게 기분 좋은데?”
“따뜻하고, 폭신폭신하고……”
생각만 해도 좋은지 연두는 배시시 웃으며 좋은 점을 나열했다.
끝으로 덧붙인다.
“…… 그리고, 할머니 냄새가 나여.”
“할머니 냄새?”
“응.”
다소 아리송한 이유였다.
그래서인지 순간적으로 할머니의 표정에 알 수 없는 미묘한 표정이 스친다.
이윽고 들려오는 목소리.
“노인네 냄새난다는 걸 잘도 돌려 말하네.”
딱 봐도 의도와는 정반대의 말이었다.
그 말에 연두가 반응한다.
“노인네가 뭐에요..?”
쉽지 않은 물음이다.
최대한 근접하게 설명해 주니 깜짝 놀란 연두의 눈이 동그래진다.
그러고선 발을 동동 구르며 얘기한다.
“.. 아니에여!”
“뭐?”
“노인네 냄새 아니에요! 할머니 냄새는.. 할머니 냄새에요!”
사실 노인네가 나쁜 뜻은 아니다.
내 설명을 듣고 할머니가 스스로 그런 의도로 사용했다는 걸 파악한 모양이다.
그래서 억울한 거겠지.
이쯤 되니 나도 궁금해져서 물었다.
“그럼 연두야.”
“.. 네에.”
“할머니 냄새는 어떤 냄새인데? 할머니 냄새라는 게 따로 있는 거야?”
그 말에 연두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 눈을 바라보며 말한다.
“으응, 있어요. 아빠도 있어요, 아빠 냄새.”
“아빠 냄새?”
“네, 연두가 좋아하는 냄새..”
기분이 묘하다.
평소 향수를 자주 쓰지는 않으니 진짜 내 냄새라는 게 있기는 한 거겠지.
꼭 달라붙은 채로 연두는 덧붙인다.
“할머니 냄새도 좋아해여. 따뜻하고, 계속 맡고 싶어서……”
웬일로 가만히 듣고 있는 할머니를 향해 말했다.
“.. 그렇다는데요?”
“…”
한 템포 늦게 할머니가 반응한다.
“쓰,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있어!”
“궁금한데..”
“뭐?”
“연두가 이렇게 말하니까 궁금하다구요. 할머니 냄새가 어떤 냄새인지.”
“그게 무슨……”
오랜만에 미친 짓 한번 해보기로 했다.
이렇게 말하긴 해도 나는 엄연히 민홍임 여사님의 손주이다.
그 점을 감안하면 딱히 미친 짓도 아니다.
지극히 정상적인 행동이지.
스르륵.
그대로 쓰러지듯 누워서 할머니 무릎을 베고 누웠다.
자연히 느껴졌다.
연두가 말한 할머니 냄새가.
“이, 이게 미쳤나!”
“에이, 미칠 것까지야. 손주가 할머니 무릎 베고 누울 수도 있죠.”
“저리 안 비켜, 이놈의 조대새끼야!”
원래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게 사람 심리다.
귀여운 손주라면 더더욱 그렇고.
애정 어린(?) 거친 말들이 들려올수록 나는 더욱더 깊숙이 파고들었다.
“이, 이게 진짜……”
자연히 알 수 있었다. 연두가 말한 ‘할머니 냄새’가 뭔지.
단지 코에 들어오는 향뿐만이 아니다.
역정을 내면서도 막상 나를 밀어내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느껴지는……
짜악!
따뜻함이라고 말하려고 했다.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지는 동시에, 등이 맵다 못해 뜨거워지기 전까지는.
뜨억 소리를 내며 나는 고개를 돌렸다.
“아니, 할머니! 아무리 그래도……”
그런 내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고개를 돌린 내 눈에 비치는 건 다름 아닌 연두색 카메라였으니까.
그 뒤에는 카메라를 든 선동이의 얼굴이 보인다.
“흐흐. 할머니한테 등짝 맞는 초록…”
“…”
어딘가 나사 하나가 빠져 버린 선동이의 모습이었다.
***
다시 한번 입이 벌어졌다.
연두색 카메라 속 내용물을 보고.
‘이게 다 뭐야?’
게다가 전부 오늘 촬영한 것들이다.
이 정도의 양이면 오늘 하루를 통째로 촬영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제야 이해가 간다.
이걸 다 찍으려면 체력이 소진될 만도 하지.
‘대상은 연두랑 할머니인 거 같고.’
호기심이 일었다.
촬영은 일상이 되긴 했지만, 이건 내가 없는 동안에 찍은 거니까.
옆에 늘어져 있는 선동이.
‘연두는 누렁이랑 있고.’
할머니도 밖에 있으니 이 방에는 나와 선동이뿐이었다.
넌지시 말을 건넸다.
“선동아.”
“.. 예.”
“근데 이건 왜 찍은 거야?”
“올려야 하잖아요… 연두튜브.”
감동이다.
다른 게 아니라 나를 그 정도로 신경 써준 게 감동이었다.
올릴 콘텐츠는 많긴 하지만.
다시 봤다, 선동아.
마음속으로 녀석을 칭찬하며 나는 첫 번째 영상을 열었다.
“연두부님들, 안녕하세요. 저는 오선동…… 아, 이렇게 말하면 모르겠구나. 저는 감자소년, 그리고 이든 모델로 활동하고 있는 오선동입니다.”
“푸흣.”
난데없이 들려오는 자기소개부터 웃음이 터졌다.
그와 별개로 모르겠다.
중간중간에 왜 힘겨워 보이는 숨소리가 들려오는 건지.
“후욱.. 후욱..”
이런 소리였다.
그 뒤에 비치는 건 나란히 서서 설거지를 하는 연두와 할머니의 모습이었다.
같이 한 거였구나.
비주얼만 보면 아까 이상으로 다정한 장면이다.
“아, 정말 열심히 하네요. 그런데 할머니는 연두가 준 그릇을 들고만 있습니다. 설거지가 하고 싶지 않은 걸까요?”
중간중간에 파고드는 선동이의 얄미운 코멘트.
시트콤이라기에는 진지했고, 다큐라기에는 말투가 다소 경박했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했던가.
“뭐 하는 거야, 지금?”
“연두부님들, 들리시나요. 저한테 뭐 하는 거냐고 묻고 있네요.”
“이놈의 새끼가……”
이어지는 몇 마디와 선동이의 비명소리.
그렇게 영상이 끝이 난다.
헛웃음을 뱉으며 클릭한 다음 영상도 비슷한 구조였다.
“어억!”
이 소리와 함께 영상이 끝났다.
다음 영상도, 그리고 그다음 영상도.
왜 영상이 풀타임이 아니라 여러 개로 나뉘어있는 건지 납득이 가는 장면이다.
‘.. 포기하지 않았어.’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선동이는 굴하지 않았다는 거다.
할머니의 무력에도.
계속해서 촬영을 시도해서 끝내 지켜냈다.
연할머니 케미를.
‘연두랑 외할머니.’
연두튜브 내에서 언급되지 않으면 섭섭한 케미였다.
끝까지 영상을 본 나는 선동이를 바라봤다.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마음은 전달받았다, 선동아.’
이런 성의를 보고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도 재미있었다.
하나하나의 영상마다 연할머니 케미가 녹아들어 있었으니까.
“선동아.”
“네, 아저씨.”
“고맙다. 만들어 볼게.”
결심했다.
연두부를 열광하게 할, 오직 연할머니 케미를 위한 영상을 제작해 볼 생각이었다.
재료는 선동이의 의지가 깃든 이 영상들이었다.
***
툭.
연필을 내려놨다.
눈을 번쩍 뜬 예은이는 그대로 누워서 마루를 데굴데굴 굴렀다.
마침 쟁반에 과일을 들고 온 유수진은, 또 시작이라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왜 그러니?”
그 말에 급정거한 예은이는 입을 뗐다.
“.. 무료하구나.”
“뭐?”
“이 감정은, 마계에서 백 년간 적수가 없었을 때 느낀 감정과 비슷하지 않은가. 무료하다, 무료해.”
“…”
방학 동안에 중이병이 더 심해진 예은이였다.
늘 옆에서 그런 모습을 보는 어머니 유수진의 눈에는 익숙한 장면이었다.
쟁반을 내려놓으며 얘기했다.
“그냥 심심하다고 하렴.”
“…!”
정곡을 찔린 표정.
그러나 곧 포커페이스를 유지한 뒤에 예은이는 말했다.
“그런 단순한 감정이 아니야!”
“그러시겠지~”
유수진은 중얼거렸다.
“백 년은 무슨. 이제 여덟 살 된 꼬맹이가.”
슥.
고개를 돌리는 딸의 시선을 피하며, 그녀는 무슨 일 있었냐는 듯이 휘파람을 불었다.
입을 삐죽 내미는 예은이.
실은 엄마 말이 맞았다.
따분해졌다.
새로운 주문을 외우는 것도, 학교 지도를 고치는 것도.
“자, 일어나서 과일부터 먹으렴.”
“이건……”
몸을 일으킨 예은이는 바로 과일 한 조각을 베어 물었다.
“인간계에 와서 잃어버린 마력을 미약하게나마 회복시켜주는…… 아암.”
입 안에 번지는 달콤함.
복숭아는 예은이가 가장 좋아하는 과일 중 하나였다.
다른 설명은 필요 없었다.
예은이가 좋아하는 과일과 마력을 회복시켜주는 과일은 동의어나 다름없었으니까.
싫어하는 과일은 그 반대이고.
‘이, 이건 마력을 급격하게 떨어트리는 토마토! 내가 순순히 당해줄 줄 알고!’
그러다 엄마한테 딱밤을 맞은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다행히 이번에는 복숭아였다.
잠시나마 좋아하는 과일로 무료함을 달래는 예은이를 향해 유수진이 말했다.
“많이 심심하니?”
그녀라고 신경이 안 쓰이는 건 아니었다.
이른 중이병에 걸린 것과 별개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소중한 딸이니까.
마음이 쓰였다.
방학 내내 하루종일 집에서 혼자 노는 걸 지켜보는 건.
‘언니랑은 사이가 나빠진 지 오래됐고.’
언제부턴가 그랬다.
늘 붙어 다니던 예은이와 예솔이는 사소한 얘기조차 나누지 않게 됐다.
어쩌다 말을 섞었다 하면 바로 다툼이 일어나고.
“엄마랑 같이 놀까? 퍼즐도 있고, 전에 산 인형도 있고……”
그녀가 말하는 것 중에 예은이의 마음이 동하게 만드는 건 하나도 없었다.
왜냐고?
이미 머릿속에 떠오르는 게 있었으니까.
언제나 그렇듯, 솔직하게 말하는 법은 없었다.
“아아, 오랫동안 함께했던 내 벗, 천상의 로엘이 보고 싶구나.”
주원이 연두어 해석 자격증을 갖고 있듯이, 유수진은 예은어 해석 자격증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바로 해석이 가능했다.
“연두가 보고 싶다는 거지?”
“…!”
또 정곡을 찔린 예은이.
“그런 게 아니야!”
“그럼?”
“수호신 누렁이가 있긴 하지만 언제까지나 어둠의 기운을 막아낼 수 있는 건……”
유수진은 귀를 닫았다.
그 뒤에 조용히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곧이어 연결된 전화.
“안녕하세요, 저 예은이 엄마인데요. 혹시……”
기대감에 반짝이는 예은이의 두 눈.
이윽고 전화가 끊겼다.
그 뒤에 들려온 건 미소를 머금은 엄마의 한 마디였다.
“나갈 준비하렴.”
가까스로 새어 나오는 소리를 참긴 했지만 표정을 숨길 수는 없었다.
환해지는 예은이의 얼굴.
곧바로 방으로 달려가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가장 아끼는 옷이었다.
“난 준비됐어!”
“그래.”
유수진의 입가에도 웃음이 번졌다.
이유가 어떻든 간에 즐거워하는 딸의 얼굴을 보는 건 기분 좋은 일이었으니까.
한달음에 도착한 목적지.
딸의 손을 잡고 현관 앞에 선 유수진은 벨을 눌렀다.
띠리리.
얼마 지나지 않아 열리는 문.
절로 손에 힘이 들어간다.
그런 예은이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연두가 아니었다.
“…”
그럼에도 예은이의 입이 떡 벌어졌다.
왜냐고?
그럴 수밖에 없는 장면이 실시간으로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으니까.
“마, 마안…”
세상 떨리는 목소리로 예은이는 덧붙였다.
“마계와 지상계를 잇는 눈, 초월안의 소유자다!!”
독일인을 처음 본 예은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