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74)
74화. 연두가 보증하는
메일의 발신인은 다름 아닌 서지혜였다.
얼마 전에 그녀와 학습지에 관해 통화를 나눴다.
출판사와 협의한 여러 사항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학습지는 단계별로 차례차례 출간할 계획이라고 했고.’
제작이 끝나는 대로 파일을 메일로 보내주겠다는 얘기를 들었다.
메일이 온 걸 보니 1단계 학습지의 제작이 끝난 모양이었다.
사실 제작이라기보다는 보수라고 보는 편이 맞지만.
‘애초에 완성이 되어있던 학습지니까.’
연두가 학습하는 데에 무리가 없을 정도로 완성도 높았던 학습지였다.
다만, 출간할 거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내용뿐만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 높은 퀄리티를 가져야 했다.
그래야 다른 학습지들 사이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으니까.
서지혜도 그걸 알았기에 시간을 들여 작업한 거겠지.
‘어디 볼까.’
나는 첨부파일로 마우스 커서를 이동했다.
기존의 학습지와 달라진 점을 확인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도.
지이이잉.
그때 핸드폰이 또다시 진동했다.
서지혜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
“여보세요.”
“오빠.”
“네, 지혜 씨.”
“지금 막 메일 보냈거든요. 확인했나 하고 전화했어요!”
“마침 알람이 떠서 확인하려던 참이었어요.”
“그렇구나.. 보면 아마 깜짝 놀라실걸요?”
“하하, 그 정도로 자신 있어요?”
서지혜는 해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왜 출판사랑 같이 작업하는지 알겠더라구요. 얼마나 편한지..”
“다행이네요. 잘 맞는 거 같아서.”
“크크, 그래도 저도 엄청 고생했어요. 과방에서 애들이랑 밤까지 새워가면서 만들었거든요.”
그럴 만도 했다.
출간을 결정한 후, 그리 긴 시간이 흐르지 않았으니까.
노력하지 않았다면 아직 완성하지 못했을 터였다.
‘자극되네.’
아직 결과물을 보지는 않았지만, 묘하게 자극됐다.
그렇게 열심히 제작했다면 나도 그에 맞는 성과를 보여야 할 테니.
그러던 와중 서지혜가 말을 이었다.
“근데 물어보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요.”
“네, 뭔데요?”
“아! 학습지에 관한 건 아닌데..”
“괜찮아요. 얘기해요.”
“연두튜브 영상 봤거든요. 일행이 있었던 거 같은데 누구랑 간 건지 궁금해서……”
하긴, 그러고 보니 영상에는 세연 씨와 시은이도 등장했었지.
얼굴이 나오지 않도록 편집하긴 했지만.
“연두 어린이집 친구가 있어요. 시은이라고.”
“어린이집 친구요?”
“네. 일정이 맞아서 거기 모녀랑 같이 갔다왔어요.”
“그렇구나..”
중얼거리는 서지혜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나도 동물원 좋아하는데……”
왜인지 풀이 죽은 목소리였다.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다음에 같이 가요. 안 그래도 연두가 지혜 씨 보고 싶다고 그러던데.”
“.. 진짜요? 연두가 그랬어요?”
“제가 그런 거짓말을 왜 해요. 연두 지금 제 무릎 베고 자고 있는데 깨워서 물어봐 줄까요?”
물론 그럴 생각은 없었다.
연두의 단잠을 방해할 생각은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서지혜는 당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 아니에요! 절대 깨우지 마세요! 저 연두한테 미움받는다구요!”
“하하, 안 깨워요.”
“.. 그나저나 연두가 그랬다니. 다음에 만나기만 해 봐라. 아주 그냥…”
“아주 그냥 어쩌려고요.”
“어쩌긴요. 당연히 있는 힘껏 껴안아 줘야죠, 히히.”
연두에게 미리 일러줘야 할 거 같았다.
지혜 언니 만날 때 잠깐 숨 막힐 각오 하라고.
***
통화를 마치고 곧바로 나는 첨부파일을 클릭했다.
1권 분량의 학습지 파일이 화면에 떠올랐다.
정확한 크기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컴퓨터로 켜야겠지만.
우선은 대략적인 느낌을 볼 생각이었다.
‘첫 페이지는 표지고.’
표지의 큼지막한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쑥쑥 한글완성! 1단계]표지에서 글자와 필수 틀을 제외한 대부분의 영역은 비어있었다.
그 빈 영역을 메꾸는 건 바로 내 역할이었다.
‘기본적으로 내 역할은 글자를 연상하는 그림들을 그리는 거지만.’
표지만큼은 내가 디자인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만큼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칙칙한 표지의 책을 사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
특히나 아이들이 푸는 학습지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랬다.
다른 사람의 손에 맡겼다가 나중에 후회하고 싶지는 않았다.
‘물론 자진한 이상.’
뛰어난 표지를 디자인해야 한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었다.
대충 훑어본 후 나는 다음 페이지를 확인했다.
무척이나 반가운 페이지였다.
‘연두튜브에도 나온 페이지니까.’
아직까지도 댓글에서 회자되는 부분이기도 했다.
연두튜브 구독자라면 모를 수가 없는 대사.
‘기역은 구렁이!’를 탄생시킨 페이지.
‘엄청 귀여웠는데.’
서지혜의 옆에서 글자공부를 하던 연두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했다.
니은은 나비라는데도 계속 누렁이를 얘기해서 지혜 씨를 곤란하게 했었지.
자연스레 나는 니은을 공부하는 다음 페이지를 확인했다.
아쉽게도 그대로 나비를 그리게 되어있었다.
‘가장자리에 그려도 괜찮겠는데?’
실제 누렁이를 모델로 한 그림을 작게 추가해도 자연스러울 거 같았다.
학습지를 구매할 구독자들을 위한 팬서비스 차원에서 말이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깨닫는 사실이 있었다.
‘노력했네.’
기존의 학습지보다 훨씬 깔끔해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글자 연습을 할 수 있는 칸의 크기도 개선됐고, 전체적인 가독성도 훨씬 좋아졌다.
왜 그녀가 자신감을 보였는지 알 거 같았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단 하나였다.
‘.. 해 보자.’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유니크하고 퀄리티 높은 학습지를 만들고 싶었다.
내 그림을 통해 완벽한 마침표를 찍을 생각이었다.
***
“아빠아!”
“하하, 그래. 잠깐만.”
연두가 뒤에서 내 목을 안고 재촉했다.
지혜 씨의 학습지 그림은 어제부터 그리기 시작했다.
구렁이부터 시작해서 순조롭게 진도가 나가고 있었다.
‘혹시 몰라 그림을 그리는 모습은 카메라로 전부 남겨두고 있고.’
나중에 연두튜브 구독자들에게 학습지를 소개할 기회가 온다면.
간단하게나마 제작 과정을 보여주는 게 좋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물론 구독자들은 내가 그림을 그린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긴 있지만.
‘우스운 건.’
의외로 연두튜브에서 내 이미지가 상당히 좋다는 점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이유를 알 수 없는 신비주의 이미지가 씌워져 있었다.
실제로 나를 아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웃음유발제였다.
‘그 덕에 녀석들이 엄청 놀려댔지.’
실시간으로 연두튜브를 염탐하는 친구 녀석들에게 엄청난 놀림을 받아야 했다.
최윤우와 박준수, 그리고 유성현 말이다.
그나마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 이유를 녀석들이 알아서 망정이지.
내가 일부러 컨셉을 잡는다고 생각하고 놀렸다면, 나는 억울함에 멘탈이 탈곡돼서 가루밖에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뭐, 그것뿐만이 아니라.’
연두튜브의 구독자들이 상상하는 내 이미지는 실제와 상당히 달랐다.
일단 구독자들이 보는 나는 엄청나게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허나, 그건 터무니없는 착각이었다. 실제의 나는 전혀 그런 놈이 아니니까.
연두를 대할 때 한정으로 자연스레 그런 모습이 나올 뿐이지.
‘게다가.’
간간이 나오는 나에 대한 목격담도 골머리를 앓게 하는 요소 중 하나였다.
심지어 딱 봐도 나를 안 보고 쓰는 게 확실한 댓글도 간혹 올라왔다.
머리가 전부 백발이라는 둥, 눈에 사선의 흉터가 있다는 둥의 터무니없는 댓글.
실눈캐 어쩌고 하는데 그게 뭔 소린지도 잘 모르겠다.
분명히 초딩 구독자 녀석들이 적는 게 확실했다.
골 아프게 만드는 건 그런 댓글을 믿는 사람도 꽤 있다는 거고.
‘다행히 그런 사람은 비교적 소수이고.’
내가 굉장히 젊은 남자라는 게 공통의견이었다.
목격담을 종합해서 나온 말 같은데, 이건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다섯 살 아이의 아빠가 스물다섯인 게 그리 흔한 경우는 아니니까.
어쨌든 연두튜브에서의 내 이미지는 그러했다.
‘아, 또 하나 있구나.’
마지막 내 이미지는 우습게도 미술천재였다.
처음에 연두튜브의 썸네일을 공개했을 때는 그나마 덜했다.
그리는 과정을 영상으로 남겨두지 않아서 내가 그렸다는 증거가 없었으니까.
결정타는 연두튜브의 일곱 번째 영상이었다.
‘연두랑 같이 주연이 채널아트를 그렸을 때.’
그 영상이 올라가고 나서 ‘미술천재’라는 낯간지러운 이미지가 굳어졌다.
실제로 해당 영상은 다른 영상보다 높은 조회수를 기록했고.
그림 그리는 모습을 또 올려달라는 댓글도 급증했다. 물론 연두가 등장해야 한다는 가정이 붙지만.
문제는 그런 영상을 기다리는 사람이 구독자들뿐만이 아니라는 거였다.
그들보다도 더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이 존재했다.
“언제 올릴 꺼에요, 아빠..?”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연두였다. 연두가 지금 나를 안고 재촉하는 이유.
그건 바로 ‘어린이대공원 시리즈 3탄’ 업로드 때문이었다.
초상화를 그리는 내 뒷모습이 나오는 영상.
연두가 이렇게 영상 업로드를 재촉하는 건 처음이었다.
‘같이 댓글을 볼 때도.’
연두를 가장 웃게 만드는 댓글은 나에 대한 칭찬이었다.
아빠가 사람들한테 칭찬받는 게 그렇게 좋은 걸까?
하긴, 반대로 생각하면 나도 그렇긴 하구나.
나에 대한 댓글보다는 연두에 대한 댓글이 눈에 들어오니까.
댓글의 비중 차이가 심한 것도 있지만, 이유는 그게 아니었다.
나보다 연두에 대한 좋은 말을 보는 게 즐겁기 때문이었다.
연두가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나를 이렇게 재촉하는 거겠지.
나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돌려보고 올리자, 연두야.”
“조아요!”
연두가 찍은 긴 영상을 13분가량으로 압축한 편집본.
달칵.
마우스를 클릭하자 영상이 재생됐다.
손을 풀고 신세연을 그리는 것부터 시작이었다.
그림을 그리는 장면과 연두의 목소리를 중점으로 편집했다.
‘보는 맛이 있긴 하네.’
내가 그리는 걸 보는 건데도 눈이 꽤 즐거웠다.
편집을 통해 속도감을 줘서 그림 그리는 걸 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러나 포인트는 역시 연두의 생중계였다.
“부시 물에 빠져써요! 아빠가 물깜을 섞어요..!”
손동작 하나하나까지 빠트리지 않는 연두의 생중계.
그게 웃음 짓게 만드는 포인트였다.
‘예쁘네.’
영상 속에 얼굴이 보이지 않는데도 연두가 보이는 거 같았다.
뭐, 나는 보고 싶으면 옆을 보면 되지만.
“하하.”
영상을 보는 연두는 어느 때보다도 맑게 웃음 짓고 있었다.
사랑스러워 죽겠다, 정말.
틱.
영상이 종료됐다. 공들인 만큼 편집은 만족스러웠다.
옆에서 연두가 나를 보며 말했다.
“엄청 조아해요!”
“.. 응?”
“사람두리 진짜 조아해요, 이거..!”
“크크, 그럴 거 같아?”
“네에.”
사실 나는 연두만큼의 확신은 없었다.
화면상에 내가 나오는 영상이라, 조금 걱정이 되는 건 사실이었다.
‘뭐, 그래도.’
연두가 이렇게 좋아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올릴 가치가 있었다.
누가 뭐래도 연두튜브는 연두를 위한 채널이었으니까.
“연두야.”
“네.”
“이번 영상은 연두가 업로드해 볼래?”
“.. 연두가요?”
“응.”
평소에 내가 하는 걸 봐서인지, 연두는 자연스레 마우스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는 업로드 버튼으로 조심스레 커서를 움직였다.
연두가 긴장한 표정으로 내 눈을 바라봤다.
“눌러여, 아빠..?”
“응.”
달칵.
그렇게 연두가 보증하는 영상이 업로드됐다.
[어린이대공원 시리즈 3탄! 아빠의 즉석 재능기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