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798)
화. 여행의 꽃
시골행 멤버는 총 여섯 명이었다.
나와 연두, 시은이, 레나, 유리, 그리고 외삼촌인 김윤호까지.
차량을 따로 대여할 필요는 없었다.
그야, 내 차는 6인승 SUV니까.
‘쾌적해.’
6인승이라고 해도 건장한 성인 남성 여섯명이 타면 조금은 불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체구가 작은 아이들이 타기에는 쾌적한 환경이었다.
아이들을 케어해 줄 외삼촌도 있고.
“주원아.”
“네.”
“가다가 피곤하거나 힘들면 얘기해. 내가 운전하면 되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의외로 장거리 운전을 하며 교대해서 운전할 수 있는 동승자의 유무는 중요하다.
삼촌은 운전경력이 나보다 훨씬 더 길었다.
“네, 힘들면 말씀드릴게요.”
미리 보험도 들어뒀으니 믿고 맡길 수 있었다.
가능하다면 내가 쭉 운전할 생각이긴 하지만 혹시나 하는 상황이 있을 수 있으니까.
살짝 고개를 돌린 윤호삼촌은 입을 뗐다.
“네가 유리구나.”
유리와는 초면인 삼촌이었다.
시은이와 레나는 언제 봤냐고?
유리가 단비음악대에 합류하기 전인 수찬쌤의 결혼식 때 만난 적이 있었다.
즉, 초면인 건 유리뿐이었다.
“.. 안녕하세요.”
어색하게 인사하는 유리.
문득 유리를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오른다.
콩쿨장에서 내가 건넨 인사를 가볍게 패스하던 그때를 생각하면 많이 성장한 거 같긴 하다.
윤호삼촌에게 나는 없는 어른미(?)가 있는 것도 있지만.
낮게 깔리는 음성과 나긋나긋한 말투, 그리고 기본적으로 배어 나오는 여유가 있었다.
외유내강이라고 해야 하나.
쉽사리 무시할 수 없는 단단함이라고 해야 할까.
원래 삼촌은 그런 사람이었다. 다른 친척들과는 어딘가 궤를 달리하는 느낌이 있었다.
그러나 처음 봤을 때와는 달라진 점이 있다.
‘당시에 한 선택을 말하는 게 아니야.’
그건 진작에 잊었다.
언제까지고 나무랄 수도 없고, 애초에 내게 그런 자격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무엇보다도 연두가 그걸 바라지 않는다.
그럼 뭘 얘기하는 거냐고?
‘여유가 없어보였어.’
의아할지 모른다.
방금 기본적으로 배어 나오는 여유가 있다고 했으면서 여유가 없어보였다는 건 무슨 소리냐고.
그에 답하자면 느낌이 미묘하게 달랐다.
전자의 여유는 품격이다.
오랜 회사생활을 해서인지 천성이 단단한 사람인 건지 몰라도 삼촌은 그 여유를 가지고 있었다.
허나 나는 기억한다.
장례식장에 연두의 손을 잡고 들어오던 삼촌의 모습을.
‘공허함.’
그런 삼촌의 모습에는 왠지 모를 공허함이 느껴졌다.
당시에는 느끼지 못했지만 돌이켜보면 그랬다.
피곤에 찌든 얼굴은 둘째치고 흐릿한 눈은 텅 비어보이는 느낌을 줬으니까.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공허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반가워. 주원이한테 들은 대로 예쁜 아이구나.”
잘 모르겠다.
정말 삼촌이 변한 건지, 아니면 단순히 내 착각인지는.
뭐, 어느 쪽이든간에 내 눈에는 전보다 좋아보이니 그거로 충분한 거겠지.
왜인지 모르겠지만 유리는 얼어붙은 상태다.
아무래도 얼음을 땡 쳐 주는 건 내 몫인 거 같았다.
“그럼 가 볼까요, 삼촌?”
“그래.”
“다들 차에 타자. 삼촌 말 잘 들어야 한다?”
힘차게 대답하는 아이들.
그렇게 우리는 할머니 집을 향해 출발했다.
***
항상 그랬다.
시골에서의 시간도 즐겁지만 차 안에서의 시간도 묘미 중 하나였다.
나랑 연두만 있어도 즐거운데, 연시레유가 한데 뭉쳤으니 말할 것도 없었다.
쉴 새 없이 수다가 오갔다.
“괜찮으시죠, 삼촌?”
연두를 포함해 다행히 말썽을 부리는 아이들은 아니었다.
시은이는 말할 것도 없고, 레나는 활발하긴 하지만 사고뭉치는 아니고, 유리는 때때로 사고를 치긴 하지만 일반적인 아이들의 말썽과는 다른 종류니까.
만약에 민우같은 아이들 네 명을 케어해야 했다고 생각해 보라.
아무리 삼촌이 외유내강이라고 해도 견디지 못하고 나를 향해 얘기했을지도 모른다.
‘주원아. 나 운전이 하고 싶은데……’
그럼 나는 결코 운전대를 양보하지 않았을 거다.
삼촌과는 의가 상했을 테고.
그런 불미스러운 사태가 발생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응,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
실제로 그랬다.
거울을 통해 보는 삼촌의 얼굴에는 옅은 미소가 떠올라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아이들의 관심은 삼촌을 향해 옮겨갔다.
“아저씨.”
“응, 시은아.”
호기심 많은 아이들이다 보니 질문이 끊이질 않았다.
시은이와 레나는 구면이라고 해도 얼굴만 봤지 제대로 이야기를 나눠본 건 아니니까.
사실상 초면인 거나 마찬가지였다.
“연두가 그랬어요. 아저씨가 공부 엄청 잘 했다고.”
“하하, 그랬니?”
“네.”
정확히 내가 연두에게 해 준 얘기였다.
옆에서 뿌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연두를 보니 절로 웃음이 번진다.
고개를 끄덕이며 시은이가 말했다.
“그럼 초등학교 때 몇 등이었어요?”
“초등학교 때?”
“네.”
삼촌은 조금 생각하는가 싶더니 입을 뗐다.
“글쎄. 잘 기억은 안 나지만 1등이었던 거 같은데.”
“1등이요?”
“응.”
“그럼 중학교 때는요?”
“1등이었지.”
놀라는 아이들.
멋쩍은 듯이 윤호삼촌은 옅은 미소와 함께 입을 뗐다.
“너무 놀라지 않아도 돼. 아저씨는 시골에 있는 학교를 나와서 전교생 수가 적었거든. 얼마 안 되는 학생들 속에서 1등을 한 거니까 그렇게 대단한 거라고 말하기는 어렵지. 아마 너희들이랑 비슷할 거야.”
그건 절대 아니라는 듯이 연두가 고개를 격하게 내젓는다.
나도 동감이긴 하다.
시골 학교를 다닌 것과 별개로 삼촌은 진짜 공부를 잘했을 거 같으니까.
결국 국내 최고의 명문대로 꼽히는 한국대를 졸업했고 말이다.
청출어람의 표본이라고 해야 하나.
“.. 그럼 고등학교 때는요?”
이번 질문은 유리의 입에서 나왔다.
차 안에 있다 보니 유리도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지는 않았다.
질문에는 은근히 견제하는 뉘앙스가 묻어난다.
듣기로는 유리가 피아노뿐 아니라 공부도 꽤 잘 한다고 들었으니까.
“고등학교 때..”
살짝 턱을 괸 삼촌이 말을 이었다.
“고등학교 때는 서울로 올라가서 좀 좋은 학교를 다녔거든. 그래서 시험에서 한두번 미끄러진 적도 있었고.”
무슨 말을 하든지 서론에 불과하다.
중요한 건 결론이었다.
“그래도 전체 성적을 종합적으로 따지면 문과에서는 일등이었을 거야.”
결국 다 1등이란 소리였다.
이 정도면 기억할 필요가 없는 수준이다.
1등밖에 한 적이 없으니.
“우와…”
놀라는 반응 속에서 레나가 입을 뗐다.
“아저시!”
“응?”
“그럼.. 아저시 꿀떡 좋아해요?”
“꿀떡?”
다소 뜬금없는 질문에 김윤호가 작게 웃으며 얘기했다.
“좋아하지.”
“.. 헤.”
뭐가 좋은 건지 모르겠다.
일등도 꿀떡을 좋아한다는 사실이 기쁜 걸까.
그런 맥락없는 대화흐름 속에서 유리도 다시 한 발을 얹었다.
“그럼.. 아저씨가 저 뭐라고 했어요?”
“응?”
“아, 아저씨가요.”
“아저씨라면 주원이를 말하는 거니?”
무언은 긍정이다.
대답이 없는 걸 보니 나를 말하는 게 맞는 모양이다.
이어지는 삼촌의 목소리.
“예쁜 아이라고 했지. 가끔 솔직하지 못해도 그런 모습이 귀엽다고 했고.”
내가 유리에 대해 그런 말을 했던가.
잘 기억이 안 난다.
그래도 얘기를 들어보니 내가 한 말은 확실한 거 같았다.
진짜 내 생각이니까.
“그리고 연두한테 유리같은 친구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했어.”
“…”
침묵이 흐른다.
운전하는 입장이라 어떤 표정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쁜 반응은 아닌 거 같다.
뭐, 그럴 만도 하지. 대부분 칭찬이니까.
“저는요? 아저시가 저는 뭐라고 했서요?”
“저도 궁금해요.”
곤란하네.
다행히 윤호삼촌은 좋은 말만 골라서 각각 레나와 시은이에게 전해줬다.
딱히 전할 나쁜 말도 없긴 하겠지만.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레나가 입을 뗀다.
“연두는요?”
“하하, 연두는 스스로 가장 잘 알지 않을까. 그래도 굳이 말하자면……”
그러다 피식 웃으며 얘기한다.
“아니다. 이건 나중에 주원이한테 직접 듣는 게 좋을 거 같네.”
자연스러운 바통 터치까지.
역시 맺고 끊음이 완벽한 윤호삼촌이었다.
그런 나를 순간적으로 멈칫하게 만드는 질문이 귀에 들어왔다.
“그럼 아저씨 결혼했어요?”
나를 가리키는 게 아니라 삼촌을 가리키는 얘기였다.
삼촌에게 조금 불편한 질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화제를 전환하려는데 들려오는 답.
“아니.”
의외로 쿨한 대답.
거기서 멈추지 않고 유리는 또 물었다.
“왜요?”
“결혼할 생각이 없었거든.”
조금은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삼촌은 얘기했다.
“아저씨는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외톨이라 결혼하는 것보다는 혼자 사는 게 더 행복할 거라 생각했으니까.”
그렇다.
삼촌은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비단 자신뿐 아니라 상대를 위해서이기도 하다.
연두에게 손을 뻗지 않은 것도, 책임질 자신이 없어서였으니까.
“그런데 조금 달라졌어.”
“.. 어떻게요?”
“주위를 보고 느꼈거든.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나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서로 의지하면서 사는 것도 행복하겠구나 하고.”
아무래도 내가 느낀 삼촌의 변화는 착각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 변화가 생각 이상으로 따뜻해서.
***
얼마나 달렸을까.
쉴 새 없이 떠들던 뒤에서 자그마한 목소리가 귓가를 타고 들어왔다.
“화장실…”
레나의 목소리였다.
“화장실 가고 싶어, 레나야?”
“.. 네.”
꽤나 힘겨워보이는 목소리다.
설마 참은 건가?
화장실 가고 싶은 게 부끄러워서 참은 거라면 변수인데.
그런 레나를 향해 유리가 말한다.
“큰 거니?”
레나가 유리를 째려보며 말한다.
“.. 작은 거거든.”
“왜 짜증을 내고 그래? 그냥 물어본 건데.”
“그런 거 물어보지 마!”
“풋.”
그리고 윤호삼촌을 당황하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변수였다.
유리와 레나 간의 다툼은.
어쨌거나 비상사태니 빨리 대처를 해야 했다.
바로 내비게이션을 확인했다.
“휴..”
다행히 다음 휴게소까지의 거리가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6km.
고속도로인 걸 감안하면 5분도 안 돼서 뛸 수 있는 거리이다.
“금방 휴게소 가니까 조금만 참아, 레나야.”
“네..”
과속하지 않는 선에서 나는 좀 더 엑셀을 세게 밟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휴게소.
빈자리를 찾아 주차하는 동시에 윤호삼촌이 레나를 데리고 내렸다.
“내가 데리고 갔다 올게, 주원아.”
“네, 삼촌.”
뒤따라 아이들과 함께 내렸을 때.
이미 삼촌과 레나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
휴게소.
사람이 많은 만큼 가장 조심해야 할 장소였다.
‘아이들을 잃어버리기 쉬우니까.’
더군다나 내가 케어해야 할 아이는 세 명이었다.
연두, 시은이, 그리고 유리.
“그럼 우리도 화장실 갔다 올까?”
“네!”
“절대 혼자 다니면 안 돼. 알겠지?”
당부한 뒤에 화장실을 향해 이동했다.
아이들이 잘 들어가는 걸 확인하고 삼촌과 함께 입구에 서서 기다렸다.
가장 먼저 나오는 건 레나였다.
“이제 괜찮아, 레나야?”
시선을 피하며 레나가 중얼거리듯 말한다.
“진짜 아니에요..”
“응?”
“큰 거…”
하마터면 웃음이 터질 뻔 했다.
아직까지 신경쓰고 있었구나.
가만 보면 의외로 레나는 부끄럼이 많았다.
“괜찮아, 레나야. 그게 쑥스러워할 일도 아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오는 세 아이.
다시 바로 차를 타고 출발하는 건 아니었다.
화장실이 급한 게 아니더라도, 휴게소에는 들를 생각이었으니까.
‘해결해야지.’
화장실 말고도 해결해야 할 게 하나 더 있었다.
허기진 배였다.
점심시간에 가까워지며 배꼽시계가 밥을 달라며 울리고 있었으니까.
배를 채울 음식은 정해져 있었다.
“이쪽으로 와 볼래, 얘들아?”
여행의 꽃.
결코 그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