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806)
화. 잔다르크
경례각이 예술이었다.
생각지 못한 타이밍에 나온 포즈라 그런지 더 웃음이 나왔다.
‘최근에 알려줬지.’
아마 요리를 할 때였던 거 같다.
나를 도와주는 연두를 보다가 문득 경례 자세를 취하면 엄청 귀여울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알려줬다.
정석적인 경례 자세, 소위 말하는 거수경례를 하는 방법을.
‘.. 이렇게여?’
‘좋아. 그런데 손은 더 일자로 펴야 해. 손끝은 눈썹을 향해야 하고.’
연두는 곧잘 따라했다.
그렇게 경례하는 법을 알려주고 나니 연두는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아빠. 근데 경례는 언제 하는 거에여..?’
궁금할 만도 했다.
경례에 대해 설명은 해 주지 않고 그 방법만 알려줬으니.
나는 설명해줬다.
‘경례는……’
군대에서 관심병사가 되지 않으려면 해야 하는 것 중 하나라는 둥의 설명은 하지 않았다.
경례의 목적.
그건 상대방에게 경의와 존중을 나타내기 위해 취하는 동작이었다.
그렇다면 왜일까.
갑작스레 연두가 앵글을 향해 경례한 건.
‘그냥 하지는 않았을 텐데.’
알다시피 연두는 알려준 걸 찰떡같이 활용하는 편이다.
그러나 남용하지는 않는다.
이번에도 아무런 맥락 없이 경례를 하지는 않았을 거다.
아니나 다를까.
슥.
뒤를 돌아보니 할머니가 서 있었다.
“뭐야, 요 년아.”
“경례에여..!”
“.. 뭐?”
“맛있는 저녁을 만들어준 할머니.. 할머니한테 경이와 존중하는 경례..!”
결국 또 한 번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다.
이번 콘텐츠에 있어서 연두가 병사라면 할머니는 상급자였다.
“염병.. 어디서 요상한 걸 배워와서는…”
그렇게 말하긴 하지만 할머니 입장에서도 기분이 나쁠 리 없다.
공들여 만들어주신 저녁에 경의와 존중을 담아 하는 경례이니 말이다.
그제야 연두는 손을 내렸다.
“아빠가 가르쳐줬어여!”
그러자 할머니의 시선은 나를 향했다.
“쓰잘데기 없는 걸 가르치고 있어.”
“에이, 쓰잘데기 없지는 않죠. 경례 정도는 알아두면 언젠가 쓸 데가 있다니까요? 연두도 지금 찰떡같이 쓰잖아요.”
“흥. 찰떡은 무슨…”
“그런 의미에서, 할머니.”
딸이 하는데 아빠가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법이다.
군 시절.
경례각 하나는 일품이었던 나다.
그 사실에 자부심같은 건 전혀 없지만 못하는 것보다는 잘 하는 게 나았다.
이렇게 활용할 수도 있고.
척.
할머니를 향한 경례.
아무리 콘텐츠라고 해도 8인의 식사를 준비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도 우리가 공수해 온 식재료로 말이다.
‘끝이 아니지.’
할머니는 우리를 위해 손수 오리까지 잡아오셨다.
경례를 받아 마땅하다.
“흐흣..”
그런 내 모습이 재미있어 보였던 건지 레나가 쿡쿡 웃더니 따라서 손을 올렸다.
틀린 자세긴 했지만 당연했다.
의외로 경례는 배우지 않고 제대로 취하기 어려운 동작이다.
‘그리고 틀리면 어때.’
비록 내가 군필이긴 하지만 자세가 틀렸다고 마음이 불편해지는 유형의 인간은 아니다.
여기가 군대도 아니고 말이다.
중요한 건 의도였다.
감사하는 마음이 담긴 경례라면 동작이 조금 틀리는 것 정도야 애교였다.
아마 연두부도 그렇지 않을까.
“이렇게 하는 거야, 연두야?”
뭘 해도 허투루 하지 않는 성격 때문인지 시은이는 연두에게 자세 코칭을 부탁했다.
연두는 친절하게 얘기해줬다.
옆에서 선동이도 고개를 끄덕이며 함께 강의를 듣는다.
“손은 이렇게 하고.. 손끝은 눈썹을 향해야 해!”
“아.”
결국 연두에게 1대 1 과외를 받은 뒤에야 시은이는 경례자세를 취했다.
훌륭한 경례다.
어디 가서 미필 소리는 듣지 않겠군.
‘.. 뭐라는 거야.’
고개를 휙휙 저었다.
그러고 난 뒤에야 레나는 연두랑 시은이 사이에 끼어서 말한다.
“나도 알려줘! 응?”
“알려줄게!”
훈훈한 장면이다.
아마 경례는 이번 콘텐츠의 시그니처 포즈가 될 거 같았다.
연두랑 시은이, 레나.
네 아이 모두 각기 다른 매력이 있었다.
상 끝에 얹은 삼촌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너는 안 해, 이 놈의 새끼야?”
“.. 어?”
삼촌을 향한 말이었다.
빙긋 웃더니 삼촌은 숟가락을 내려놓고 손을 들어올렸다.
척.
마음이 편안해지는 경례였다.
자세가 틀린다고 불편해지지는 않지만, 정확한 자세를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건 있다.
삼촌까지 참가한 경례.
그러나 아직 두 사람이 남아있었다.
“…?”
다름아닌 유리와 선동이였다.
애써 모른 체 하려다가 할머니의 시선을 느낀 건지 천천히 손이 올라간다.
그리고 손이 이마와 맞닿았을 때.
“푸흣.”
나는 웃음이 터질 수밖에 없었다.
한쪽 눈을 가린 손.
태어나서 처음 보는 신개념 경례였으니까.
“.. 왜, 왜 웃어요!”
“하하, 미안.”
경례에 있어서는 의외로 허당인 유리였다.
그렇다면 선동이는 어떨까.
슥.
자신만만한 표정이다.
방금 시은이와 함께 연두의 명강의를 들어서인지 제대로 된 경례를 할 자신이 있는 모양이다.
어디 한 번 볼까.
매의 눈으로 나는 선동이를 응시했다.
이윽고 할머니를 향하고 있는 선동이의 손이 힘차게 올라갔다.
퍽.
기세는 좋았다.
허나 너무 힘이 들어간 탓인지 그대로 한쪽 눈을 강타하고 말았다.
“으억!”
외마디 비명.
그런 선동이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할머니는 중얼거리듯 입 밖에 뱉었다.
“.. 북한군이 따로 없네.”
졸지에 북한군이 된 선동이였다.
***
밥상을 둘러싸고 앉았다.
음식은 눈으로 먼저 먹는다는 말이 있다.
그 말처럼 그저 밥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뿌듯하네.’
그 어떤 진수성찬을 가져다놔도 이런 기분이 들 거 같지는 않다.
당연한 일이다.
우리가 직접 마련한 식재료로 만든 요리라는 게 가져다주는 의미가 컸으니까.
어떤 그릇을 봐도 그랬다.
“그럼 식사할까요? 할머니 먼저 한 술 뜨시죠.”
“얼씨구.”
나를 보며 할머니는 말했다.
“카메라 켜져 있다고 할미 먼저 챙기는 척 하기는.”
“예?”
“됐어, 이 놈의 시끼야.”
반박할 기회도 주지 않았다.
그런 나를 두고 할머니는 국 한 숟가락을 떠서 입에 넣었다.
그게 신호탄이었다.
억울함은 잠시 잊고 나도 식사에 집중하기로 했다.
“먼저 밥부터 먹어봐야지.”
아직 식지 않아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밥.
사실 반찬을 두고 밥만 먹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래도 이번만큼은 순수하게 밥 한 숟가락만 떠먹어보고 싶었다.
왜냐고? 이건 그냥 밥이 아니니까.
‘밤밥이지.’
막 떨어진 싱싱한 밤을 넣어서 지은 밤밥이었다.
과연 맛이 어떨까.
“아암.”
사실 밥에 무언가를 넣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나 콩은 싫었다.
콩은 반찬으로 먹으면 되는데 굳이 콩을 넣어서 콩밥을 짓는 이유가 납득이 가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
밤밥은 달랐다.
고슬고슬하고 포근한 밥알 사이로 씹히는 밤 알갱이.
베어무는 동시에 밤 특유의 고소한 향이 올라오며 입 안에 단내가 맴돈다.
자연스레 숟가락이 다시 움직였다.
‘지금이야.’
다슬기국을 떠서 입 안에 넣었다.
자칫하면 퍽퍽하게 느껴질 수 있는 밤밥과 시원한 다슬기국은 완벽한 조화를 이뤘다.
다슬기.
양심고백하자면 아까 다슬기 속살을 빼낼 때 조금은 원망했다.
조그마한 게 손은 엄청 간다고.
‘미안하네.’
그런 생각을 한 게 미안할 정도였다.
다슬기는 맛으로 보답했다.
한 번씩 씹히는 식감이 재미있었고 계속해서 손이 가는 맛이었다.
“국물 어때, 연두야?”
“진짜 맛있어여…”
감동한 표정이다.
그 옆에서 선동이는 아예 그릇에 코를 박고서 국물을 들이켜고 있다.
“할머니, 국물 한 그릇 더요!”
다음에 나올 말을 나는 알고 있었다.
“네가 가서 퍼 먹어, 이 놈의 밤톨새끼야!”
“예썰!”
또다시 경례하고서 선동이가 부엌으로 달려간다.
혹시 데일까 봐 염려가 된 나는 따라가서 국을 가득 퍼 줬다.
생선도 인기메뉴였다.
“진짜 맛있다..”
속살이 가득 찬 건 말할 것도 없고 간이 아주 제대로였다.
짭조름한 맛.
그냥도 맛있는데 간장을 톡 찍어서 먹으면 황홀할 정도였다.
“맛있서…”
뭐 하나 빠지는 메뉴가 없었다.
할머니의 시골밥상.
그러나 역시 하이라이트는 오리주물럭이었다.
“우아…”
간장 베이스로 만든 오리주물럭.
담백하고 부드러운 식감이 돼지나 소와는 다른 매력이 있었다.
다른 메뉴들과의 조화 때문일까.
만약 오리가 아닌 돼지나 소였다면 이 정도의 임팩트는 없었을 거 같다.
‘조용하네.’
하지만 괜찮았다.
원래도 그렇지만 특히나 이 순간만큼은 오디오를 채워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먹방은 원래 조용해야 했다.
“아빠..”
이번에도 연두는 나를 챙겼다.
큼지막한 고기 하나를 집어서 내 입에 넣어준다.
‘행복해…’
절로 떠오르는 행복한 미소.
나는 확신했다.
이 미소가 떠오른 것만으로도 이번 콘텐츠는 완전히 성공이라고.
***
행복한 식사가 끝난 뒤.
달그락. 달그락.
설거지는 내 몫이었다.
전부 그릇을 싹싹 비워서인지 음식물은 거의 나오지도 않았다.
그때였다.
뒤에서 말소리가 들려온 건.
‘다 친해졌나 보네.’
아이들이 옹기종기 앉아서 대화중이다.
유리도 소외되지 않고 잘 껴서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좀 더 귀를 기울였다.
“알겠어! 내가 졌다! 됐냐?”
유리 목소리다.
뉘앙스를 보니 오늘 내기의 패배를 인정하는 모양이다.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유리가 패배를 인정하는 모습을 보다니.
‘그만큼 성장한 거겠지.’
겉보기에 똑같은 거 같아도 처음 봤을 때에 비해 유리는 많이 변화했다.
그 변화가 어떻다고 섣불리 단정짓긴 뭐하지만 굳이 말하자면 좋은 측면의 변화인 거 같다.
뒤이어 들려오는 선동이의 목소리.
“으하하! 그럼 어디 한 번 불러보거라!”
“.. 오, 오……”
마침 설거지를 끝내고 멀찌감치 서서 지켜봤다.
눈을 질끈 감고서 유리가 말한다.
“… 오빠.”
“응? 우리가 한 내기는 오빠가 아니었을 텐데.”
지독한 녀석.
대충 넘어가 줄 만도 한데 절대 먼저 넘어가는 법이 없다.
그리고 덧붙인다.
“설마 약속도 안 지키는……”
“하면 되잖아!”
결국 입을 떼는 유리.
“.. 오라버니. 됐냐? 됐냐고!”
“억! 때, 때리지 마! 오빠를 때리는 여동생이 어딨어!”
“여기 있다! 왜!”
많이 친해진 거 같다.
원래 저렇게 장난치면서 친해지는 법이지.
유리가 저렇게 할 수 있는 것도 선동이를 편하게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잠깐 그대로 둬야겠어.’
아이들끼리 더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두는 게 좋을 거 같았다.
잠깐 혼자 바람을 쐬러 나갔다.
“아, 좋다…”
어두워진 하늘.
시골공기는 시원하고 밤하늘의 별은 반짝인다.
이래서 꼭 시골을 올 때마다 한 번씩 전원생활을 꿈꾸게 되는 거 같다.
막상 현실이 되면 답답해할 걸 알지만.
‘충분히 즐겨야지.’
코로 가득 숨을 들이마셨다.
약수터를 찍고 돌아오는 게 내 산책 경로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약수터.
“햐, 시원하다..”
물을 한 모금 들이켠 후에 다시 발을 옮겼다.
돌아가는 길에는 핸드폰을 켰다.
연두튜브에 들어가자 최근 많이 보이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진짜 초록님이랑 연두 MBTI 너무 궁금하다…
┖일단 연두는 앎.
┖ㄹㅇ? 뭔데요??
┖CUTE
┖아.. 그것도 맞지만 진짜로 궁금하다고 ㅠㅠ 제발 해주세요.
MBTI.
최근 유행하는 성격유형검사였다.
알파벳 대신 물을 정도라지만, 놀랍게도 아직 나는 검사를 해 보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렇게 흥미롭지 않았으니까.’
개인적으로 모든 사람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16가지 유형으로 사람을 분류한다는 게 그렇게 흥미롭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조금 생각이 달라졌다.
결과에 의미부여하지 않고 어떤 유형인지 알아두는 것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하고.
‘이것도 어떻게 보면 트렌드니까.’
아직 집까지는 꽤 거리가 있었다.
바로 사이트에 들어간 나는 검사 시작 버튼을 눌렀다.
달칵.
그렇게 내 첫 MBTI 검사는 다소 충동적으로 이루어졌다.
시골 산책길에서.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 뭐야, 이거?”
화면에 떠오른 결과지.
꽂히듯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