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886)
886화. 환장의 케미
아침 식사 준비가 시작됐다.
마트에서와 마찬가지로 역할 분담은 자연스레 이루어졌다.
우영이 재료를 다듬고 아랑이 요리를 하는 식이었다.
짧은 대화는 있었다.
“들어가든지.”
아랑이 건넨 말이었다.
말이 ‘들어가든지’지 사실상 ‘너 이제 필요없어’라는 뜻이었다.
살짝 입꼬리를 올리며 우영이 말했다.
“나야 좋지. 근데 나는 너랑 다르게 거짓말을 못해서.”
“뭐?”
“누가 물어보면 ‘저는 요리 안 하고 잤습니다’ 할 건데 상관없지? 그럼 들어가서 자고.”
상관없지 않았다.
두 사람의 벌칙은 같이 아침 식사를 만드는 거였으니까.
벌칙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또 다른 벌칙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아랑이 중얼거리듯 얘기했다.
“꼴에 거짓말은 또 못하네.”
우영이 어깨가 들썩했다.
“뭐라 했냐?”
“아, 들렸어?”
“들리게 말했으니까 들렸겠지.”
“의도가 잘 전달됐네.”
“한결같이 재수 없는 거 보니까 첫인상이 쭉 이어지는 스타일이네.”
“칭찬으로 들을게.”
“칭찬 아닌데.”
“듣는 건 내 마음이니까.”
“이기적이네.”
“살면서 네가 제일 많이 들었을 말 같은데.”
아직 가스버너 불도 안 켰는데 불똥이 튀었다.
머리채라도 쥐어뜯을 분위기였지만 다행히 둘 다 입으로 불화살을 쏘아대는 선에서 그쳤다.
한차례 폭풍이 지나가고 난 뒤에 비로소 요리가 시작됐다.
타닥. 탁.
조금 서툴긴 하지만 생각보다 우영이는 꽤나 칼을 잘 다뤘다.
엄마가 요리하는 모습을 어깨너머로 보기도 했고 기본적으로 뛰어난 손재주를 지니고 있었으니까.
요리의 맛을 내주는 건 레시피지만 재료 손질은 손재주의 영역이었다.
“양파.”
“두 개는 다지고 한 개는 채 썰어서.”
타닥. 탁.
“당근.”
“잘게.”
역시나 기적의 대화법이다.
요리를 시작하니 둘은 정말 최소한의 말만 주고받고 있었다.
아랑은 소스를 만들고 있다.
따로 레시피는 보지 않았다. 머릿속에 전부 들어있었으니까.
치직. 직.
식용유에 밀가루가 되직하고 갈색빛이 돌 때까지 볶는다.
조금 탔나 싶을 때까지.
소위 말하는 루(Roux)를 볶는 과정이었다.
꽤나 시간이 소요되지만 그렇게 해야 고소하고 완성도 높은 소스를 만들 수 있었다.
오므라이스 소스를 말이다.
“후.”
그렇다.
오늘의 메인 메뉴는 오므라이스.
좀 더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서브 메뉴는 고기 우동이었다.
우동은 면 요리인 만큼 오므라이스를 먼저 만들어두는 게 맞았다.
하얗던 밀가루가 슬슬 되직한 농도로 바뀌며 갈색 빛깔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직이야.’
지금이 중요했다.
탈까 싶어서 멈추는 건 하수였다.
좀 더 빛깔이 진해지는 타기 직전의 순간을 기다린다.
“야, 그거 타는 거 아니야? 너 설마 우리 암살하려고……”
그렇다.
주위에 있는 머저리가 저런 말을 꺼낼 때가 멈춰야 하는 적기였다.
“걱정 마. 네 소스만 따로 만들지는 않을 거니까.”
달리 말하면 우영이에 한해서는 암살할 의향도 있다는 뜻이었다.
그 말과 함께 팬에 물을 부었다.
물과 갈색빛이 된 루가 섞이며 은은한 빛깔을 낸다.
완벽했다.
“아아, 다행이네. 하긴 땅콩이 먹을 요리에 이상한 짓을 하지는 않겠지.”
“……”
이쯤 되면 확실했다.
어지간한 말에는 눈 한 번 깜빡 안 하지만 연두 얘기만 나오면 아랑은 눈에 띄게 반응하고 있었다.
눈치챈 건 주원만이 아니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소스를 휘젓는 아랑.
그러나 우영은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네가 좋아하는 땅콩이 좋아하는 소시지는?”
우영이 멈칫했다.
독기 어린 눈으로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아랑을 보고.
“야, 멈춰. 나 칼 들고 있다?”
“줘.”
“뭐?”
“주고 가서 소스 저으라고. 내가 할 테니까.”
마른침을 삼킨 우영이 말했다.
“말로 하지.”
그렇게 교대한 둘.
거기서 끝났다면 좋았겠지만 우영이는 멈추지 않는 폭주 기관차였다.
“땅콩이 좋아하는 소시지는 자기가 직접 손질하겠다. 그런 건가?”
***
“땅콩이 좋아하는 소시지는 자기가 직접 손질하겠다. 그런 건가?”
“야.”
결국 아랑은 반응했다.
“무슨 의도로 하는 말인지는 모르겠는데, 그거 다 너한테 적용되는 말 아니야?”
“뭐?”
“연두튜브 공식 츤데레. 너잖아, 그거.”
“그래서?”
“그 누구보다 연두.. 를 좋아하는 건 너 아닌가?”
꽤나 논리적인 반박이었다.
그런데……
“푸하하!”
생각지도 못한 반응에 아랑이 흠칫했다.
난데없이 우영이 폭소를 터트린 거다.
“아, 진짜 웃기네.”
“……?”
“그런 거로 하자. 그래서 이건 얼마나 저어야 하는데?”
“그만하라 할 때까지.”
뭔가 거슬리는 반응.
그러나 아랑은 굳이 말을 이어가지 않았다.
딱히 우영에 대해 깊이 파고들어 봤자 의미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타닥. 탁.
칼질은 능숙했다.
눈 깜빡할 사이에 소시지 손질을 끝내고 난 뒤에 볶음밥을 만들기 시작했다.
금세 끝난 오므라이스 준비.
다음은 고기 우동이었다.
“할 거는?”
“됐어, 이제. 이따가 사람들 깨워.”
우영이 의자에 앉았다.
굳이 일을 찾아서 하는 타입은 아니었으니까.
그러다 조용히 팬을 향해 다가가서 숟가락으로 소스를 콕 찍어서 먹어봤다.
맛이 궁금했으니까.
“……!”
신기했다.
분명히 탄 비주얼이었는데 탄 맛은 조금도 나지 않는다.
오히려 고소한 풍미가 올라온다.
간은 적절하게 배어있었고 굳이 볶음밥과 함께 먹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엄청 잘 어울릴 거라는 걸.
“표정이 왜 그래?”
“아니……”
그런 우영을 향해 아랑은 피식 웃으며 말을 뱉었다.
“독은 안 들었으니까 걱정 말고.”
“.. 뭐, 타지는 않았네.”
우아케미.
최악의 케미 같으면서도 묘한 케미가 있었다.
겉면은 굉장히 매운데 먹어보면 의외로 달달한 음식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깨운다, 슬슬.”
“어.”
우영이 아이들 방으로 향했다.
방이 여러 개 있었지만 굳이 함께 자겠다고 고집했던 아이들이었다.
덜컥.
노크 따위는 없었다.
문을 열자마자 새근새근 숨소리가 잔뜩 들려온다.
냅다 불을 켜 버렸다.
“우으..”
아이들은 퀸사이즈보다 큰 대왕 침대에 올라가서 꼭 붙어서 자고 있었다.
꼬물이들 같았다.
“야, 다들 일어나라!”
그 말에 일어난 건 지우와 유리였다.
“지금 안 일어나면 밥 안 준다!”
월이와 시은이도 일어났다.
소란스러운 와중에도 꿈쩍도 안 하고 자는 연두와 레나.
결국 아이들이 흔들어 깨웠다.
“여, 여기가 어디야..?”
잠꼬대처럼 뱉는 연두의 한 마디에 다들 웃음이 터졌다.
뒤이어 정신을 차리고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거실로 나왔다.
“우아.. 맛있는 냄새……”
“우영이오빠가 만든 거예요?”
우영이는 대답했다.
“만드는 데 큰 공헌을 했다고 할 수 있지. 무려 재료를 손질했으니까.”
“요리는 아랑 편집자님이 했나 보네요.”
시은이의 말에 우영이가 얘기했다.
“꼬맹이. 너 그렇게 하나하나 짚고 넘어가는 버릇 고쳐라. 굉장히 피곤한 거야.”
“알아서 할게요.”
“뭐? 버르장머리 없는 녀석이.”
꼰대 우영이 등판.
둘이 티격태격하는 사이에 주원과 준태도 걸어 나왔다.
“오.. 아침부터 맛있는 냄새가 사람을 때리네.”
“좋은 아침입……”
소심하게 아침 인사를 건네려던 준태는 본분을 깨닫고 태세를 전환했다.
“…… 니다, 제군들!”
“하하.”
그렇게 식탁에 무려 열 명이 둘러앉았다.
모두의 앞에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오므라이스와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기 우동이 놓였다.
주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토스트 정도가 아닐까 했는데.’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퀄리티의 아침 식사였다.
맛은 봐야 알겠지만.
우영이가 이런 요리를 했을 리는 없으니 주도해서 만든 건 아랑씨겠지.
‘요리도 잘하는 건가.’
이쯤 되니 못하는 게 뭘까 싶을 정도였다.
편집도 잘하고, 요리도 잘하고, 아직 확인은 못 했지만 사진도 잘 찍는다 했으니.
만능 엔터테이너다.
주원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방금 언급한 것 모두 자신의 특기이기도 하다는 점을.
“그럼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먼저 공략한 건 우동 국물이었다.
국물은 한 숟가락 떠먹는 순간 주원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
육수가 제대로였다.
진하게 우러난 고기 국물이 입 안을 휘감았다.
다른 쪽에서도 탄성이 터져 나왔다.
“맛있서……”
“오므라이스 너무 맛있어여.”
“우아……”
아이들은 발까지 동동 굴렀다.
뒤이어 오므라이스를 맛보고 나도 감탄사를 내뱉으며 얘기했다.
“소스가 대박인데요?”
고소한 풍미가 완전히 살아있는 소스였다.
“어떻게 만든 거예요?”
그 물음에 우영이 말했다.
“너무 당연하게 그쪽에만 묻는 거 아니에요, 형?”
“아, 미안. 누가 만든 거야?”
“얘요.”
아니, 이 녀석이.
그런 와중에 이상함을 느낀 내가 물었다.
“근데 얘? 아랑씨가 누나 아니야?”
“말 놨어요.”
적잖게 놀랐다.
사실 둘이서 제대로 식사 준비를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는데 말까지 놓을 정도면 상당히 친해진 거 아닌가?
준태씨도 깜짝 놀란 눈치다.
“엄청 친해졌나 보네요?”
“아뇨.”
아랑씨가 단번에 일축하긴 했지만.
재차 묻는 말에 그녀가 소스에 대해 설명해줬다.
“밀가루를 볶아서 만든 소스예요.”
알고 있었다.
오므라이스는 만들어 본 적 있으니까.
그런데 이런 색깔이 나오지는 않았는데. 이 정도로 고소하지도 않았고.
“밀가루를 타기 직전까지 볶아야 해요. 색이 까매질 정도로.”
“아.”
꿀팁이었다.
나는 항상 이 정도면 됐겠지 싶은 타이밍에 멈췄으니까.
그게 패착이었구나.
“진짜 맛있네요.”
다시 먹어봐도 소스가 예술이었다.
조금 텁텁하다 싶을 때 우동 국물을 먹어주면 속이 다 풀리는 기분이다.
고기도 맛있었다.
“그래서 벌칙은 어땠어요? 할 만했나요?”
궁금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일찍 일어나서 몰래 염탐이라도 할 걸 그랬네.
“뭐, 그럭저럭요.”
그 정도로 넘어가려 했나 본데 어림도 없지.
아이들도 궁금한 게 많았다.
“누가 말 놓자고 했어요? 아랑 편집자님? 우영이오빠?”
“무슨 얘기 했어요?”
의외로 둘은 사이좋게 하나씩 답변해줬다.
“제가요.”
“영양가 없는 말이라서 기억도 잘 안 나는데 그냥 시답잖은 얘기.”
얻을 건 없었다.
그런 와중에 준태씨가 웃으며 입을 뗐다.
“설레는 건 없었나요?”
“네?”
“같이 장보고 요리한 거잖아요. 혹시나 설레는 포인트가 있었나 하고……”
둘은 동시에 질색했다.
“안 그래도 마트에서 오해받아서 불쾌했는데.”
역시 긁으니까 썰이 튀어나온다.
마트에서 정육점 사장님에게 신혼부부 또는 커플로 오해를 받았다는 모양.
“그래서 뭐라고 했는데요?”
“굳이 해명하기도 뭐해서……”
“커플이라고 했어요? 대박!”
“아니……”
몰이가 시작됐다.
원망 섞인 눈으로 아랑이 우영을 바라보며 말한다.
“뭐하러 그 얘기를 꺼내서는……”
티격태격하는 둘.
그래도 아무 말도 주고받지 않던 전에 비해서는 사이가 좋아진 거 아닐까.
아님 말고.
빙긋 웃으며 나는 입을 뗐다.
“앞으로 친하게 지내도 좋을 거 같은데요?”
“네?”
“나이대도 비슷하고요.”
아랑은 황당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네 살 차이인데요.”
그러고 보니 나이 차이가 꽤 있었다.
왜 거의 차이 안 난다고 생각한 거지.
아랑도 마찬가지였는지 고개를 돌려 우영을 보며 말한다.
“생각해 보니까 한두 살 차이가 아니었잖아. 누나라고 불러.”
“누나.”
“.. 집어치워.”
콩트 같은 대화.
환상의 케미를 넘어서는 환장의 케미였다.
***
아침 식사가 끝났다.
오늘은 사실상 부산에서의 마지막 날이라 봐도 무방했다.
집에 돌아가는 건 내일이지만, 별다른 일정 없이 아침 일찍 출발할 예정이니까.
“다들 모였습니까!”
“네!”
준태씨가 아이들을 소집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나란히 앉아있는 아이들.
“오늘 일정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이들이 귀를 기울였다.
어제처럼 미션이 있는 거라면 설명을 잘 들어둘 필요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어제와는 달랐다.
“그 누구보다 신나게 놀기!”
“.. 으응?”
“그게 오늘 여러분에게 주어진 미션입니다!”
입가에 번지는 웃음.
그렇다.
부산 여행 두 번째 날의 테마는 다름 아닌 자유여행이었다.